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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8

    루크는 잠시 쿠키를 만들던 손을 멈추고 뒤를 향해 외쳤다.

     

    “파이리스, 지금 방에서 뭘 하고 있느냐?”

    “……인형놀이!”

    “흠, 그래?”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던가.

    인형놀이를 어떻게 하길래.

    파이리스도 리브가 상당히 반가웠던 모양이지.

     

    “그럼 좀 조용히 놀지 않겠느냐, 방이 소란스럽구나. 그리 시끄럽게 굴면 밑에 사는 사람이 올라올게다. 쏟아진 건 다시 잘 치워두고.”

    “응!”

     

    정도로 주의를 주는 정도에 그쳤을 뿐,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파이리스의 목소리에 뭔가 격한 숨소리 같은 게 섞인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리브가 가만히 있는 곰인형도 아니다보니 어느정도의 격한 움직임은 납득이 간다.

    파이리스도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아이니까.

     

    하지만 파이리스의 ‘응’이라는 대답이 무색하게도, 소란은 한번 더 있었다.

     

    -우당탕! 콰당!

     

    결국 그대로 두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루크는 하던 것을 이내 완전히 내려놓고 뒤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향했다.

     

    루크가 다가갈 때 까지도 방 안은 여전히 시끄러운 소음을 내보내고 있었다.

    -발칵!

    루크는 닫힌 문을 열며 말했다.

     

    “대체 무얼 하고 놀길래 이런 소란을 내는…….”

     

    문이 열리자마자 타이밍 좋게 안에서 튀어나오듯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 갈색의 형상.

    루크는 속수무책으로 얼굴이 덮쳐지고 말았다.

     

    “읍?”

     

    깜짝 놀라서 얼굴에 달라붙은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으니, 이번에는 묵직한 충격이 자신의 몸을 들이박았다.

    그에, 루크는 당연스레 중심을 잃고 뒤로 크게 넘어졌다.

     

    -콰당!

     

    “으억!”

     

    넘어지면서도 가까스로 꼬리를 깔고 앉는 것은 피한 루크는 간신히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꽤 질량이 있는 무언가가 몸 위에 얽혀있다는 느낌이 들다가 사라지고, 이내 몸이 가벼워지며 얼굴을 감쌌던 것도 사라졌다.

     

    대체 이 습격은 무슨 영문이란 말인가?

    루크는 꽤 혼란스러웠다.

    넘어진 엉덩이도 아프고.

     

    “아야야…….”

     

    집이기도 하니 굳이 마법을 쓸 필요를 느끼지 않아 몸에 실드를 미리 걸어 두지 않았었기에 모든 충격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내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만약 옛날의 몸이었다면 이 정도 충격으로도 허리의 통증을 호소했겠지만, 이 몸은 유연하기도 하고 튼튼하기도 해서 금방 회복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랄까.

     

    “이게 대체 무슨……?”

     

    간신히 몸을 일으킨 루크의 앞에 펼쳐진 광경은 꽤 난장판으로 어질러진 방 안이었다.

    가지런히 정리해 두었던 침대와 이불은 물론이고, 바닥에 놓여있던 카페트까지 뒤집어지고 마구잡이로 접혀 있다.

    그 뿐 아니라, 서랍 위에 올려져 있던 몇 안되는 화장품은 바닥을 적시며 굴러다니고 있었고, 베게는 옆구리가 터져서 그 속을 채우고 있던 깃털이 아직도 방 안을 날아다니고 있다.

    서랍에 있던 물건들 역시 죄다 꺼내진 채 어질러져 있었고, 몇몇 물건들은 파괴되어 파편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난리통이란 말인가?

     

    처음의 몇 초 동안, 루크는 정말 말도 안되지만 방 안에서 마나 밤이라도 터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 잠깐만 더 생각해보면 그것이 단순한 현실부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방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파이리스와 리브 뿐이었고, 당연히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존재도 동일하게 파이리스와 리브 단 둘 뿐이다.

    그것을 기반으로 생각을 해보면, 자신의 얼굴에 달라붙어온 것은 리브였고 자신의 몸에 가해진 충격은 파이리스였다는 것도 손쉽게 유추할 수 있다.

     

    “파이! 리브! 방이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루크는 분노를 담아 외쳤다.

    평소 마법사적인 결벽증을 지니고 있는 루크의 입장에서, 집의 이런 꼴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끔찍한 사태에 가까웠다.

     

    -콰당탕!

     

    하지만 자신의 말을 듣는 건지 어떤지, 장소가 바뀌었을 뿐 여전히 소란은 계속되었다.

    아니, 오히려 심화되는 듯 싶다.

    아마도 자신의 목소리가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헌데, 문제는 그 방향이 주방이라는 것.

     

    루크는 곧 주방에 두었던 예르나의 연고를 떠올리며 튕기듯 몸을 일으켜 주방을 향해 달려갔다.

     

    ————

     

    “리브! 파이리스!”

     

    루크가 그 이름을 외치며 주방에 도착한 순간, 소란은 현재 어느정도 잦아든 상태였다.

    그 이유는, 현재 그 둘은 일종의 대치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

     

    리브는 도마에 놓여있던 식칼을 움켜쥔 채, 검술의 자세를 취하고 날카롭게 벼려진 검기를 뽑아내고 있었으며,

     

    “씨이…….”

     

    파이리스 역시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잔뜩 열받은 표정을 지은 채 거품기를 쥐고 있었다.

    파이리스는 뭔가 의도가 있어서 쥔 것은 아니고, 아무거나 움켜쥐었는데 하필 그게 거품기인 것 같았다.

     

    루크는 차마 이 상황에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당황하기도 했고, 여기서 자칫 잘못하는 순간 정말 큰일이 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리브는 지금은 저렇게 귀여워보여도 전 왕실 기사단의 군단장급 소드마스터정도의 사양으로 제작된 전투병기.

    그런 전투병기의 손에, 정말 제대로 된 현대식 날붙이, 식칼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

    저 오러의 정순함은 아린세이아에서 그 오랜 시간을 겪으며 극도로 손상된 검날조차 날카롭게 벼리는 정도의 성능이다.

    헌데 그것이 현대식 강화합금에 중첩 샤프니스로 날카롭게 단조된 검을 들었다는 것은, 루크조차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예르나의 화상을 치료할 연고는 아직 멀쩡하다는 점일까.

     

    “이, 이게 다 무슨 일이냐? 대체 왜 싸우느냐?”

     

    때문에, 루크는 분노라는 감정을 잠시 뒤로 치워버리고 대화를 시도했다.

     

    만약 여기서 파이리스를 혼내게 되면 파이리스를 ‘적대관계’로 인식한 리브가 검무를 출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고 리브를 혼내기엔 손에 쥔 검이 두렵다.

    아직 리브와는 깊고 확실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전이라서, 잘못하면 손 하나를 내어주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본래 리빙아머의 주종관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은 적어도 하루정도의 시간을 가져야만 확신이 가능한 작업이므로.

     

    ‘나는 어쩌면 정말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 말았을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파이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인형이 날 때렸어!”

    “리브, 그게 정말인가?”

     

    루크가 묻자, 리브는 억울하다는 듯이 자신의 고개를 조금 까딱거리며 관절부에 삐져나온 솜들을 가리켰다.

    자신 역시 피해자라고 하는 듯 하다.

     

    “파이리스, 리브는 네가 먼저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은 듯 한데.”

    “그, 그건……. 쟤가 먼저 날 약올렸단 말야!”

    “…….”

     

    루크의 ‘정말인가?’라는 시선에 리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하는데? 정말 약올린 것이 맞느냐?”

    “그, 그치만 쟤가 먼저 나랑 언니 사이에 끼어들었잖아! 내가 먼저 가족인데! 인형 주제에!!”

     

    파이리스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했지만, 곧 리브에 대한 혐오감을 여실히 드러내며 들고 있던 거품기를 고쳐쥐었다.

    리브는 그렇다 치고, 대체 저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리브가 뭔가를 들고 있으니 자신도 그래야 한다는 판단일까?

     

    하지만 이 반응은 이상하다.

    파이리스는 기본적으로 만인에게 친근하며, 새로운 얼굴도 가리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어째서 리브는 저토록 싫어하는 것일까 생각하던 루크는 이내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

     

    그러고보면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다.

     

    가끔, 리빙아머가 혼자 허공에 검무를 추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단순히 논리회로에서 발생한 오류라고 생각했었다만, 후에 음유시인이 왕성에 방문해 조언하기를, 그것이 ‘정령’에 반응한 움직임이었다고 말해준 것이다.

    위의 사례를 생각해본다면, 기본적으로 리빙아머는 아티팩트의 일종이고, 정령들은 일반적으로 아티팩트를 혐오하거나 기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성향.

    케이트의 경우엔 자신이 직접 만드는 장면을 눈으로 보고 납득하였으니 그나마 괜찮지만, 파이리스의 입장에서 리브는 그렇지 않다.

     

    이미 ‘외부에서 완성된’ 인형을 아무런 말도 없이 가져온 것에 가깝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자신’이 만든 아티팩트도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한 순간에 사이가 좋아질 수 없었던 것.

     

    “……하아.”

     

    전말을 알아챈 루크는 지친 한숨을 쉬었다.

    루크는 울상을 짓고 있는 파이리스와 리브에게 달래듯 말했다.

     

    “파이리스, 리브. 일단 그 손에 든 것 들은 내려놓는 것이 어떠냐.” 

    게다가 저 거품기는 의미도 모르겠고.

    저런 걸 해봤자 리브에게 ‘무장상태’로 인식되게 할 뿐인데.

     

    “쟤가 안 내려놨어!”

    “…….”

     

    흠, 그것 참 깐깐하구만.

    루크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제안했다.

     

    “그래, 그래. 그럼 동시에 내려 놓자꾸나. 셋을 세면 동시에 그만 두는 게다. 알았지?”

     

    이번엔 불만이 없는지, 리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응.”

     

    “하나…….”

     

    루크가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집 안을 감돈다.

    대체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 것일까.

    루크는 다시 숨을 가다듬고 숫자를 이었다.

     

    “둘…….”

     

    -깜빡, 깜빡.

     

    눈을 깜빡인걸까? 같은 의문이 품어질 정도로 순간적인 찰나.

    눈 앞이 까매졌다가 다시 회복된다.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루크는 가볍게 넘겼다.

     

    “셋.”

     

    헌데, 루크가 셋을 세자마자 툭-, 하고 모든 조명이 꺼졌다.

    집안이 완전히 어둠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툭, 챙그랑.

     

    리브의 손에 들려 있던 식칼이 리브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했다.

    동시에 리브 역시 마치 실 끊어진 꼭두각시인형처럼(실제로 인형이긴 하지만) 힘을 잃은 채 털썩 쓰러진다.

    그 상황이 어딘가 연결되는 것 같아, 루크는 파이리스를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파이리스, 대체 이건 또 무슨 장난이지?”

    “언니! 나, 난 안 그랬어! 난 아냐!”

     

    하지만 파이리스는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며 손을 내젓는다.

     

    “흠…….”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감정에 솔직한 정령인 파이리스는 거짓말을 하는 연기만큼은 정말로 못하니까.

     

    “그럼 조명이 고장났나?”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루크가 고개를 들어 조명을 바라보자,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정말로 단순한 문제였다.

     

    “마력고갈이라고?”

     

    ———-

     

    그러니까, 이유는 정말 간단했다.

     

    그저 과거 예르나가 집에 설치해둔 마력 차단 시스템이 지금 작동을 한 것이다.

     

    마력세 300만길, 그 이후로 예르나는 집에 마력 차단 시스템을 설치했다.

    일정 이상의 마력이 사용되면 곧장 차단기가 내려가, 과도한 소모를 막는 것이 목적.

     

    헌데 지금 그것이 발동했다는 것은, 분명 큰 마력이 소모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리브로군…….”

     

    리브가 출혈상태로 무리한 움직임을 보인 것이 문제였다.

    리브는 본래 군사목적으로 설계된 리빙아머.

     

    곰인형의 몸에 가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효율을 감안한다면 여전한 출력을 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마력을 단순히 마력핵 하나로 충당할 수는 없었을 터.

    주변의 마나를 끌어다가 충당하며 작동했을 것이다. 

    “…….”

     

    그리고, 그런 출력을 일개 가정집이 버틸 수 있을 리도 없다.

    그것이 바로 이 마력고갈 사태의 원인.

     

    루크는 이마를 짚었다.

     

    “일 났군……. 이제 곧 있으면 슬슬 예르나도 돌아올 시간인데…….”

     

    헌데, 드래곤도 제 말하면 찾아온다고 했던가.

    복도에서 엘프 특유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루크와 파이리스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자매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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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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