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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8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새 예선전 당일이 되었다.

       10월 23일 토요일 오전. 우리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시험장으로 출발했다.

         

       학교로 향하는 마차 안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았다. 별장을 떠날 때만 해도 들떠 있던 단원들의 얼굴은 광장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굳어졌다. 심지어 서커스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가스통조차 지금은 키르쿠스를 찾으며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런 사태를 예측했던 나와 엘라는 미리 준비한 대로 행운의 과자를 꺼냈다.

         

       “다들 이거라도 먹는 게 어때요? 긴장감이 좀 풀릴 겁니다.”

         

       포장지를 뜯자 초콜릿과 버터 향이 가득 피어올랐다. 굳어있던 단원들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들은 내가 내민 과자를 하나씩 가져갔다.

         

       나는 마차에 마침 실어놓았던 것을 우연히 꺼낸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이 과자는 며칠 전에 클라라를 통해 슬라그보로트 제과 공장에 특별히 주문해놓은 것이었다. 나는 그 안에 모두 좋은 점괘를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단원들은 과자를 부숴 먹고는 안에 든 점괘를 꺼내 읽었다.

       그러나 그들의 쪽지에 적힌 글귀들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사냥꾼의 덫에 걸림.’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음.’

       ‘잊었던 악몽이 떠오름.’

       ‘당신의 악한 면모를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림.’

       ‘계획했던 일이 실패함.’

       ‘자기 자신의 관을 보게 됨.’

         

       모두 불길하기 짝이 없는 점괘가 나왔다.

       만약, 그 순간 스벤이 재치 있게 농담을 던지지 않았다면, 그대로 분위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을지 몰랐다.

         

       “단장님, 주문 실수했지요? 원래는 ‘서커스 그랑프리 예선전에서 우승함.’이나 ‘붉은색을 선택하면 무슨 일이든 잘 풀린다.’ 같은 쪽지를 넣었어야 했는데 말이죠, 핫핫.”

         

       다들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은 불행의 징조를 단숨에 실패한 장난으로 끌어내렸다. 나는 항복의 자세로 두 팔을 들어 보였다.

         

       “좋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원래는 좋은 말만 넣을 생각이었어요. 당연히 스벤 씨가 말한 그런 노골적인 문구는 아니었지만요.”

       “저번에 공장 견학 갔을 때 보니까 쪽지를 한 움큼 쥐어서 소금 치듯이 반죽 위에 뿌리더라. 여러 단지에서 무작위로 뽑아서 말이야. 아마 제과사가 불행의 단지와 행운의 단지를 착각한 모양이야.”

       “헤헷, 행운이든 불행이든 어때요. 맛만 좋으면 됐죠. 이거 되게 맛있네요.”

         

       우몬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엘라의 손에 든 봉지에서 과자를 한 움큼 꺼냈다. 그리고 그걸 하나하나 까먹으며 쪽지를 계속 꺼내 읽었다.

         

       ‘기르던 애완동물에게 물림.’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누명을 씀.’

       ‘친구를 크게 다치게 함.’

         

       “야야, 그만 읽어라.”

       “도대체 저런 불행 점괘는 왜 넣는 거야?”

       “그러게. 저딴 점괘를 후식으로 내놓는 식당이 있다면 다시는 가기 싫을 거 같은데.”

       “재수 없는 말들을 잘도 생각해내네.”

       “핫핫, 쓸데없는 데 창의력을 낭비하는군요, 제과사들이.”

         

       계획한 것과는 달라졌지만, 그래도 덕분에 분위기는 풀리게 되었다. 다들 이 황당한 상황에 대해 떠들어 대면서 한동안 시험에 대해서는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간신히 끌어올렸던 자신감은 마침내 학교 앞에 도착해 문을 연 순간, 깔끔하게 날아가 버렸다. 기자들의 고함과 구경꾼들의 뜨거운 함성이 우리를 둘러쌌다. 수천 개의 시선이 우리를 향해 날아와 박혔다. 단원들의 몸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마차에서 내렸을 때,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건 나와 마야뿐이었다. 단원들을 격려하던 엘라조차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불안한 심리를 숨기지 못했다.

         

       “긴장되나 보군요.”

       “뭔가 분위기가 달라. 누군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느낌?”

       “다른 서커스단 사람들이겠죠.”

       “핫핫, 아니면 상대 팀에 돈을 건 도박꾼들이거나요.”

         

       우리는 마차에서 내려 강당으로 향했다. 대회 당일이라서 그런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기자들의 접근을 막아주었다. 그래도 단원들은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고 연신 주변을 살폈다.

         

       우리가 큰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루즈에서 한 번 겪었었다.

       그러나 그때는 각자 대본대로 정해진 연기를 완수하면 될 뿐이었다. 오늘 우리는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단 3시간 만에 결판이 나는 경기에 임해야 했다. 장미 풍차 카바레 때와는 압박감의 차원이 달랐다.

         

       교정 안으로 들어서자, 지난 일주일 동안 몰라보게 달라진 레카체프의 모습이 드러났다.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학교 건물이었던 장소가 지금은 ‘아크로바틱 러시’를 위한 경기장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10가지 색깔의 휘장들이 학교의 외벽을 따라 융단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는 각 서커스단을 후원하는 집단의 문장과 서커스단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선수분들은 이쪽으로!”

         

       우리는 학생들의 인도에 따라 이동했다. 걷는 동안 객석에 자리 잡은 클라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녀는 랫맨들을 이끌고 우리보다 한발 먼저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단장님! 과자 공장에서 무슨 실수가 있었나 봐요. 다른 팀에게 나눠주려고 했던 불행 과자들이 모두 행운 과자로 바뀌어서 왔어요! 다른 팀 스텝들이 받더니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는 거 있죠? 심지어 거기에는 제가 손수 쓴 ‘서커스 그랑프리 예선전에서 우승함.’도 있었다고요.”

       “그런 노골적인 문구를……아니, 됐습니다. 그리고 불행 과자는 우리가 먹었습니다.”

       “으앗!”

         

       마침 우리는 ‘슬라그보르트 제과. 놀랍도록 맛있습니다! 행운 과자 주문 제작 가능!’이라고 적힌 광고판 앞을 지났다. 광고판들은 주자들이 엉뚱한 길로 빠지는 것을 막는 역할도 했다.

         

       학교 전체를 무대로 한 레이스라고 했지만, 선수들은 학교 아무 곳이나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50명이나 되는 선수들이 동시에 움직이는데 학교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버린다면, 시합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주자들이 달리는 길은 대개 정원이나 홀 같은 넓은 광장 형태의 공간으로 한정되었고, 크게 총 10곳으로 구분되었다.

         

       1번, 화단을 비롯하여 황제의 동상과 갖가지 조형물이 있는 설치되어 있는 ‘앞뜰’.

       2번, 정문, 로비, 대계단이 있는 ‘현관’.

       3번, 대나무숲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휴식 공간이 펼쳐져 있는 ‘중앙 정원’.

       4번, 길들인 동물들이 머무르는 공간인 ‘후원’.

       5번, 학생들이 식사하는 공간인 ‘식당’.

       6번, 학생들이 외부인들에게 공연을 보이는 공간인 ‘극장’.

       7번, 단검 투척 연습과 폭죽 제조 실습이 행해지는 ‘사격장’.

       8번, 땅재주와 벽 타기 연습이 이루어지는 ‘운동장’.

       9번, 연못과 분수대가 있는 ‘수영장’.

       10번, 그리고 학교 전체를 한 바퀴 감아 도는 달리기 전용의 ‘트랙.’

         

       보다시피 경기장은 대부분 1층에 있었고, 객석은 2층 이상에 설치되어 구경꾼들이 경기장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관람객은 구매한 좌석에 앉아서 혹은 난간이나 창가에 매달려 아래에 있는 주자들의 경기를 구경할 수 있었다. 지금도 1번 앞뜰을 가로질러 가는 우리를 향해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여기서 이제 갈라져야 하네.”

         

       강당 앞에 도착한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를 격려했다.

       나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단원들을 배웅했다. 이제는 혼자 일어서고 천천히 걷는 것쯤은 할 수 있었다. 싸우러 떠나는 그들에게 단장으로서 약한 모습만 보일 수 없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트로피를 들고 있을 거야.”

         

       다른 강당 팀 단원들과 인사를 나눈 엘라가 나를 바라보더니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나 의욕 만점인 그녀였지만, 오늘따라 어딘가 더 힘이 들어가 보였다. 비장미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는 말 대신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믿고 있습니다. 행운을 빌어요.”

       “맡겨만 둬!”

         

       그녀는 그렇게 외치고는 탐색 팀을 이끌고 떠났다.

       멀리서 사회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자들은 트랙 위로 올라서 주십시오!”

       “게임에 임할 선수들은 강당으로 들어가 주세요!”

         

       나는 다시 휠체어에 앉기 전, 마지막으로 엘라를 한 번 더 돌아봤다.

       웃는 남자의 가면 아래 감춰진 내 속마음도 다른 단원들처럼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불과 몇십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왠지 그녀가 멀리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

         

         

       객석은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었지만, 주자들의 출발 지점이자 마지막 도착 지점인 10번 트랙만은 예외였다. 그곳은 학교의 외곽을 두르고 있었으므로, 외부인들도 울타리를 따라 서서 구경할 수 있었다.

         

       엘라는 마지막으로 탐색 팀 단원들을 모아두고 말했다.

         

       “알았지? 3명이 ‘탈락’ 상태면 자동으로 실격 처리야. 그러니까 다들 최대한 살아남는 것에만 신경 쓰라고. 항상 바닥에 주의를 기울이고. 경사면에는 함부로 다가가지 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면 클라라 선배에게 보고해. 적절한 조언을 내려줄 거야. 우리가 다른 서커스단보다 우위에 서는 점은 그거 하나니까 적극적으로 활용해.”

         

       다른 팀은 객석에서 단원이나 직원이 보내는 신호를 통해 지시를 하달받았지만, 그들에겐 음향실이 있어서 그런 수고를 덜었다.

         

       다만, 오늘은 다른 때처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혹시나 미니 게임을 치르거나 위험한 장애물을 넘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주의를 흩어놓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원더스타인은 직접 소통 방식이 아니라, 클라라를 중간에 두고 대화를 전달하는 방식을 썼다.

         

       “주자들 위치로!”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그들은 흩어져 각자 정해진 장소로 향했다.

         

       10개의 서커스단에 뽑힌 주자들은 팀에 해당하는 색이 박힌 조끼를 걸치고 서로 20m의 간격을 두고 다른 팀끼리 번갈아 섰다. 49명의 주자는 그렇게 1km짜리 트랙을 둥그렇게 둘러쌌다. 그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봤다.

         

       지금 트랙에 깔린 불빛은 모두 ‘하얀색’이었다. 그것은 모든 팀이 밟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신호탄의 총성이 터지고 5분이 지나면, 그것들은 모두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어떤 팀도 밟을 수 없는 타일을 의미했다. 즉, 경기가 시작되고 5분 안에 9개 경기장 중 어느 곳으로든 들어가야 했다.

         

       엘라는 레이나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것을 봤다. 그녀는 여전히 우는 여자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엘라는 그녀가 이 위치로 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 6, 7, 8월의 시험에서 보물상자는 10개 경기장 중 각각 세 곳에 나누어 숨겨져 있었고, 지금까지 한 곳도 겹치는 곳이 없었다. 즉, 아직 한 번도 보물상자가 나온 적이 없는 장소가 하나 남아 있었고, 그곳은 이번에 보물상자가 놓일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엘라는 지난 며칠 동안 그곳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원더스타인과 마야의 도움 덕분에 그녀는 눈을 감고도 그곳의 구조를 자세하게 그릴 수 있었다.

         

       다른 서커스단도 다들 그 정도 분석은 한 모양이었다. 엘라는 앞뒤로 미리 조사해두었던 익숙한 얼굴들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들 클라라가 예측했던 각 서커스단 탐색 팀의 에이스 단원이었다.

         

       레이나는 하필 엘라 바로 앞에 섰다. 그녀는 엘라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바라보고 섰다.

         

       “야, 이런 날까지 가면을 썼냐?”

         

       엘라가 레이나의 등에 대고 속삭였다. 물론 말이 속삭이는 거지, 20m나 떨어져 있어서 거의 고함을 치는 거나 다름없었다. 울타리를 둘러싼 관객들의 소음 때문에 다른 주자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내 마음이야.”

       “너무 하네. 왜 이렇게 쌀쌀맞게 굴어? 그 콧수염이 또 뭐라고 했어?”

         

       엘라의 말에 레이나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녀의 귓가로 지몬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잊지 마라. 네가 서커스단을 나가기 위한 조건을.

         

       레이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

         

       절대 아무 일도 없는 게 아닌 거 같은데.

       엘라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말았다. 시험을 앞두고 다른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었다.

         

       그렇게 제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기를 30여 분.

       높으신 분들의 인사말과 주최 측의 경기 안내가 끝나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총 12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체크무늬 깃발을 들고 트랙을 둘러싸고 섰다.

         

       그들은 깃발을 높이 들었다가, 탕하는 신호총의 격발음과 함께 동시에 깃발을 내렸다.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시험.

       아크로바틱 러시.

       그 10월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타텐 님, 10코인 후원! 잘 보겠습니다라니! 아직 정주행을 끝내시지 않으신건가요? 어쨌든 응원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경기 전체의 호흡을 짜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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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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