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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8

        

       엘라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눈꺼풀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져서 그녀의 눈을 덮었고, 온몸에 나른함이 엄습했다.

       숨은 고르게 변했고, 온몸의 근육은 마사지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풀어졌다.

         

       엘라는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가 마치 폭신한 물 같다고 느꼈고, 그녀의 아래에 이아린이 끼워준 베개는 구름 같다고 느꼈다. 그렇게 엘라는 몰려오는 수마에 저항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잠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윽고 쌔액거리는 고른 숨소리를 내면서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엘라가 잠들고 나자 이아린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이 차버린 이불을 끌고 왔다. 그리곤 그녀의 목까지 잘 덮어주고는 이세린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그녀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귀신처럼 있던 이세린은 흠칫 놀라며 머리카락을 걷어내었고, 머리카락 사이로 슬쩍 눈을 내밀어 이아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아린이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고 쉿 하는 소리와 함께 다른 손으로 침대를 가리키자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이아린이 눈으로 말했다.

         

       ‘알겠지?’

         

       이세린이 눈으로 답했다.

         

       ‘알았어.’

         

       자매는 오랜만에 꿀잠을 자는 엘라의 방에서 조심조심 나가기 시작했다. 점혈로 재운 것이기에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깨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 아니던가.

         

       이아린은 초상비(草上飛)의 경지에 이른 경공을 사용해 아무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문에 도달했고, 이세린은 그레모리의 권능을 사용해 폭신한 모래를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소리 없이 문까지 이동했다. 그리곤 잘 자라는 듯 방의 불을 끄고 문소리가 나지 않게 살며시 닫았다.

         

       그리고 그렇게 둘은 해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어? 파티 끝났나요?”

         

       하지만 그렇게 돌아가는 두 사람을 만류하는 사람이 있었다.

         

       “동생 방에서 파티가 일어나고 있을 것 같아서 왔는데?”

         

       아나스타시아였다.

         

       그녀는 벌써 가냐는 듯 실망한 얼굴로 그녀들을 올려다보았다. 특히 이아린을 노리는 것인지 그녀가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나스타시아의 모습은 새끼 고양이가 울먹이는 눈동자로 올려보는 것 같았고, 이아린은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아린은 아나스타시아의 유혹을 뿌리쳤다.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엘라가 쉬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녀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나스타시아에게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었다.

         

       “저기 엘라 자고 있어.”

         

       엘라가 자고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말이다.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그러한 이아린의 말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엘라가 잠에 빠져 있다.’라는 것을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것이다.

         

       “아-린. 고마워용!”

         

       아나스타시아는 무엇이 생각난 것인지 기쁜 듯 실실 웃었고, 가지고 온 빨간색 자루를 질질 끌면서 거침없이 엘라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아린과 이세린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명색이 엘라의 자매인데 뭐 큰일이야 벌이겠나 싶어 그대로 몸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아나스타시아는 그 누구의 제지도 없이 엘라의 방 안으로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질질 끌릴 때마다 꿈틀거리며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무언가’가 들어있는 빨간색 자루는 덤이었고.

         

       아나스타시아는 불이 꺼진 방 안에서 꿀잠을 자는 엘라를 향해 자루를 끌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곤 자루를 꼭 쥔 채 침대에 기어 올라간 뒤 자루의 입구를 풀었다.

         

       끼긱.

         

       입구가 천천히 벌어지며 무언가가 자루에서 걸어 나왔다.

         

       그것은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의 무언가였다.

       ‘게이밍’이라는 타이틀이 붙기라도 한 듯 RGB 조명처럼 빛을 발했고, 가느다란 다리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세 갈래로 갈라진 발가락으로 몸을 지탱한 채 폭신거리는 침대 위에 우뚝 선 채 짤막한 부리를 포효하듯 천장을 향해 내밀었으며, 바둑알을 끼워서 맞추기라도 한 듯 자그마하면서도 광택이 도는 검은 눈동자를 크게 뜬 채 자신이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자축(自祝)했다.

         

       자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리를 들고 무언의 포효를 한 것으로도 모자라, RGB 조명처럼 화려한 빛을 내뿜으며 방을 파티장의 분위기처럼 만들었고, 몸을 이리저리 씰룩거리고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둥그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했다. 게다가 아주 사악하게도 엘라가 옆에서 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배려 없이 침대 위에서 통통 튀기까지 했으며, 엘라의 몸을 덮고 있는 이불 위로 올라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허리 부근에 자리를 잡고 앉기까지 했다.

         

       저 사악한 존재의 만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아나스타시아뿐.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자루에서 빠져나온 무언가의 행동을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루에서 나온 무언가가 엎드려서 자는 엘라의 위에서 데구루루 구르다가 잠에 빠져드는 것을 똑똑히 보았음에도 그것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 무언가를 옆으로 살짝 치우고 엘라의 몸을 베개 삼아 자신 역시 잠을 청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사악한 존재들이었다.

         

         

         

        * * *

         

         

       엘라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가면을 쓰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오리너구리 히어로였다. 가면으로 정체를 숨기는 정의로운 오리너구리는 초능력을 이용해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며 사악한 악당, 카피바라 군단을 물리치고 있었다.

         

       “꿈이네요.”

         

       엘라는 이 초현실적인…. 맨정신으로는 상상조차 힘든 말도 안 되는 풍경을 보자마자 자신이 꿈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깨달을 필요조차 없다.

         

       오리너구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카피바라 군단을 물리치고, 카피바라가 최후의 발악으로 끌고 온 거대 비버 로봇을 폭발시키고 사람들을 구하는 장면이 어떻게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저건 꿈이다.

       무조건 꿈일 수밖에 없었다.

         

       엘라는 빠르게 자신이 자각몽 안에 있음을 인정했고, 싸움에서 부서지지 않은 멀쩡한 벤치를 찾아서 앉았다.

         

       “윽.”

         

       벤치는 묘하게 푹신하면서도 서늘했다.

       마치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솜사탕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벤치가 주는 기묘한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일어날까 말까 아주 잠시 고민했다가 주위에 멀쩡한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벤치에 앉아있는 것을 선택했다.

         

       ‘꿈이라….’

         

       엘라는 벤치에 앉은 채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어쩌다가 잠이 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이 들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리기 시작했고, 그러자 그녀의 어깨 부근에서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그녀의 얼굴 앞에 자그마한 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판은 점차 매끄럽게 변했고, 이윽고 모니터처럼 변했다.

         

       모니터처럼 변한 구름은 그녀의 고민을 해결해주기라도 하려는 듯 영상을 틀어주었다.

         

       그 영상은 그녀가 잠이 들기 전 있었던 일.

       즉, 불청객 두 명이 찾아와서 깽판을 벌였던 것을 그대로 틀어주었다.

         

       “아, 맞아요. 퓨마가 나를….”

         

       엘라는 그 영상을 보고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퓨마, 이아린이 자신을 제압하고 힘을 빼버린 뒤 잠에 빠져들게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멋대로 자신을 잠재운 이아린에게 잠시 분노를 느꼈다가, 이내 체념하듯 한숨을 푹 쉬었다.

         

       자신이 걱정되어서 한 짓인데 거기다 대고 화를 내는 것도 좀 그랬으니까.

         

       엘라는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잠에서 깨면 이런 짓은 하지 말라고 경고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벤치에 등을 기댔다.

         

       벤치에 등을 기대자 폭신한 감각이 그녀의 등에 느껴졌다.

       마치 구름을 빚어서 그녀의 등을 받쳐주는 것 같은 환상적이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묘하게 서늘한 느낌 때문에 시원한 바람을 빚어서 등받이 모양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녀는 그렇게 벤치의 포근함을 만끽하고 있다가, 문득 감고 있는 눈꺼풀 바깥으로 화려한 빛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저게 뭔가하고 의문을 떠올렸다가 바깥에서 오리너구리와 카피바라 군단의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경찰차? 소방차?’

         

       엘라는 감고 있는 눈 너머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사이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사이렌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스윽 돌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그곳에서도 자신이 있다는 듯 똑같이 눈꺼풀 바깥에서 그녀를 괴롭혔다.

         

       엘라는 다시 한번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또?’

         

       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엘라는 묘한 짜증을 느끼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어?”

         

       그녀가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보인 것은 사이렌이 아니었다.

       사이렌처럼 빛나는 무언가였다.

         

       엘라는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무언가의 눈을 마주하고 말았고, 심연처럼 검은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잘 닦인 바둑알처럼 광택을 발하는 무언가의 눈을 홀린 듯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의 몸에서 나타나는 빛에 눈부심을 느끼면서도 다시 눈꺼풀을 닫을 수도 없었다.

         

       엘라는 그저 짤막한 날개를 펄럭거리며 허공에 떠 있는 그 무언가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것과 닮은 현실의 동물의 이름을 천천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게이밍 오목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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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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