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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8

       

       

       

       

       

       258화. 스스로 잠든 용 ( 6 )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이만큼 슬픈 것이 존재할까.

       

       “영감탱이는 지금…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는 거다.”

       

       이베르의 입을 통해 전해진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용왕이라는 존재의 사념이 케니스의 검에 깃들었다는 것은 금방 잊을 정도로.

       

       “그, 그런…”

       

       “야, 야. 심연에 갇혀서 도와 달라고 하는 걸 수도 있잖아. 너무 확신하는 거 아니야?”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법. 프리가가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고개를 저은 이베르가 반박했다.

       

       “생각을 해봐라. 심장이 터져 죽어가는 용이 아직도 살아 있을 수 있나? 그것도 버러지들의 본거지인 오물 같은 심연 속에서? 긴 시간을 홀로 버텼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런가?”

       

       “나는 잘 모르겠네. 심연이라는 것도 처음 들어서.”

       

       심연에 대해 잘 모르는 프리가와 에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심연에 대해 잘 모르는 이의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끔찍하네요.”

       

       성기사이자 용사인 케니스는 심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심연의 편린을 엿보았기에 얼마나 가혹하고 끔찍한 공간인지도 잘 알았다.

       

       “그래. 아마 내 예상이지만… 영감은 거의 확실하게 제정신이 아닐 거다. 어쩌면 더 이상 용이 아닐 수도 있지.”

       

       “용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ㅡ”

       

       “씹어먹을 버러지 새끼들이 영감의 몸에 수작을 부렸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바늘처럼 가늘어진 이베르의 눈이 허공을 응시하며 번들거렸다. 잔뜩 수축한 동공에 차가운 분노와 혐오가 들끓었다.

       

       “용왕이다. 용들의 왕이란 말이다. 그런 존재가 타락하면 무슨 짓을 벌일 수 있고,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너희들의 작은 머리로는 차마 상상도 못 할 거다.”

       

       “…막아야겠네요. 용왕이라는 분도 그걸 막기 위해서 저에게 꿈을 통해 말했던 거군요.”

       

       “아마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거다. 영감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빨리 죽여야 해.”

       

       방의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심연이라는 것에 대해 자세히 모르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는 파악할 수 있던 프리가와 에스텔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팟!

       

       묵빛의 대검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이베르가 고개를 번뜩 들었다. 덕분에 깜짝 놀란 프리가가 크게 몸을 들썩였다.

       

       “으앗씨! 깜짝이야! 뭐야 갑자기!”

       “……”

       

       대답도 없이 한참이나 허공을 응시하던 이베르가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파닥파닥ㅡ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케니스와 프리가, 에스텔은 영문도 모른 채 그 뒤를 따라갔다.

       

       “저, 저건 또 무슨…”

       

       “와ㅡ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눈에 엄청 띄네.”

       

       저마다의 소감을 뱉었다. 

       

       태양이 저물고 달이 떠오른 깊은 밤. 창문 밖의 풍경에는 은은한 달빛에 잠긴 성도의 풍경이 보였다.

       

       헌데ㅡ

       

       “…구름이라는 게 원래 저렇게 번쩍거렸나?”

       

       “아뇨 공녀님… 그럴 리가요.”

       

       밤이라는 것은 오롯이 달빛만이 은은하게 걸려 있어야 할 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까만 밤하늘의 구름이 밝은 빛을 품어 찬란하고 오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구름 위에 반짝이는 염료를 잔뜩 엎지른 것 같았다.

       

       은은하게 빛을 반짝이는 오색 구름은 한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이리저리 제 형태를 바꾸며 신비한 문양과 기묘한 그림의 형상을 취하기도 했고, 그들이 읽을 수 없는 문자의 형태를 만들기도 했다.

       

       케니스와 프리가, 에스텔이 입을 쩍 벌리고 한밤중의 오색구름을 바라보았다.

       

       “위대하신 분께서, 나를 찾으시는군.”

       

       “저걸… 신께서?”

       

       “이야ㅡ 미아 찾는 전단지가 장난 아니게 크네. 하늘에다 저렇게 직접 써버린다고? 어디 가서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겠어.”

       

       프리가의 짓궂은 놀림에 이베르가 눈가를 쓸어내렸다.

       

       어쩌겠는가. 그가 성지에서 몰래 빠져나왔을 때부터 예견된 미래였다.

       감내하는 수밖에.

       

       “머리 작은 원숭이들. 나는 이만 가야 한다. 그러니… 내가 이리 부탁하지.”

       

       파다닥- 하고 날아오른 이베르가 침대 위에 올라서서 깊이 머리를 숙였다. 

       

       “어, 어어! 왜 이러세요! 얼른! 얼른 고개 드세요! 빨리!”

       

       “…너 왜 그러냐? 미쳤어?”

       

       “용이 고개를 숙이다니…”

       

       저마다의 방식으로 놀라는 이들.

       

       용이라는 종족이 얼마나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용을 제외한 다른 종족은 원숭이, 털 달린 놈들, 귀 긴 것들… 이런 식으로 낮추어 부르기 일쑤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 오만하고 자존심 강한 용이,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부탁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니!

       

       “나는 돌아가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다만 이번 일은 나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부탁하마. 너희들도 부디, 영감을 죽이기 위해… 그의 안식을 위해 노력해다오. ”

       

       “내가 왜 도마뱀ㅡ 으읍! 으브븝!”

       

       “당연하죠.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게요. 용왕이라는 분의 긴 고통을 끝낼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 프리가의 입을 틀어막은 에스텔.

       그사이에 케니스가 약속했다.

       

       반드시 용왕이라는 자의 고통을 끝내주겠노라고.

       

       완전히 타락한 용왕이 어떤 위협으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것도 있었지만, 이것은 마땅한 도리였다.

       고통에 신음하는 자를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는, 인간의 도리.

       

       케니스는 용사였고, 용사는 약한 자와 고통받는 자들의 앞에 서서 싸우는 자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한쪽 무릎을 꿇어 이베르와 시선을 맞춘 케니스가 확신에 가득 찬 눈을 빛냈다.

       

       “제가 약속할게요.”

       

       

       

       

       

       *****

       

       

       

       

       

       슥, 스슥ㅡ

       

       어떻게 하면 집 나간 이베르를 찾을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난 방법은 역시 탐지 계열 스킬을 사는 거였다.

       

       탐지 관련 스킬은 종류도 제법 다양했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개를 풀어라!》부터 《오늘 밤, 사냥에 나선다.》처럼 살벌한 이름까지.

       

       종류가 다양한 만큼 각자 내세우는 효과와 장점도 제각각이었다.

       

       

       《개를 풀어라》는 광범위한 지역을 수색하지만 사냥개의 지속시간이 짧았고, 《오늘 밤, 사냥에 나선다.》는 숲과 정글에 특화된 스킬이었다.

       

       그런 스킬들을 쭉 훑으면서 나한테 맞는 스킬을 찾으려 부단히도 애썼다. 

       

       ‘일단 얼마나 멀리 갔는지도 모르니까 범위는 최대한 넓게… 거기에 지속 시간도 길어야 하고… 그러면서 탐색 효과는 좋아야 하니까…’

       

       그러다 보니까 스킬의 허들이 점점 높아졌고, 빈곤해진 내 지갑이 찢어져 버릴 수준의 스킬만 남아버렸다.

       

       “이건 좀… 곤란한데.”

       

       가성비 스킬은 찾아볼 수 없다. 가혹할 정도로 내 지갑을 쥐어 짜내려는 스킬들뿐. 지금 내 잔고 수준에서 한계는 고작 2만 원.

       

       “씹 진짜… 내가 직장인인데 고작 이 정도 지출에 벌벌 떨어야 되냐…”

       

       처량할 지경이다.

       

       월급의 절반은 적금으로 묶이고, 월세와 생활비, 식비, 통신비 등등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내 용돈. 아무리 생각해도 월급의 절반을 적금으로 든 것이 후회된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라던가.

       

       이제 슬슬 만기가 다가오고 있는 만큼, 조금만 더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면 어떻게든 괜찮을 거다. 원래 고생 끝에 낙이 오는 법이니까.

       

       ‘그래도 이런 비싼 스킬들은 좀 그런데…’

       

       범위가 넓은 《사냥개를 풀어라!》를 사야 하나. 지속시간이 너무 짧은 게 마음에 걸리는데.

       

       골똘히 궁리하던 그때, 꼭 내가 이베르를 찾아야 되는 건가ㅡ하는 의문을 떠올렸다.

       

       어떻게든 이베르가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일. 꼭 내가 이베르를 찾으라는 법은 없는 거다. 어떻게든 이베르한테 돌아오라는 신호만 줘도 되는 거 아닐까?

       

       ‘눈에 잘 띄게 신호를 주는 스킬들은 훨씬 싸네.’

       

       가볍게 빛기둥을 만들어 위치를 알리는 것부터 화려하게는 하늘에서 온갖 불꽃쇼가 일어나는 것까지.

       

       가성비적인 측면에서도 훨씬 훌륭하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스킬을 골랐고, 제일 괜찮을 것 같은 스킬 하나를 결제했다.

       

       부웅ㅡ!

       

       [WEB발신]  카드 8,500원 일시불 승인.

       

       국밥도 못 먹을 돈으로 스킬 하나 산 거면 혜자? 아닐까?

       

       띠링ㅡ!

       

       《비단 구름의 춤! 오랫동안 하늘에 잔류하는 비단 구름을 만듭니다. 조작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스킬은 치장용 스킬로 분류되어 있던 거다. 아마 원래 사용법은 하늘에 구름을 만들어서 꾸미는 용도였겠지만.

       

       팔에 걸면 팔찌가 되고, 발에 걸면 발찌가 되는 법. 이걸로 용을 그리면 어떻게든 이베르가 그걸 보고 찾아올 것이다.

       

       스윽-.

       

       화면에 한움큼 뭉친 오색 구름을 조작해 용과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그 옆에 글씨도 쓴다.

       

       《이베르야, 돌아와.》

       

       한글로 써서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이베르가 이걸 봤는데도 쌩까면 어떡하지?’

       

       정말 만약의 상황.

       이베르가 내 그림을 보고도 무시한다면?

       

       “…”

       

       이 그림은 내가 이베르에게 던지는 신호다.

       

       내가 널 찾고 있으니 돌아오라는 신호였고, 지금 돌아오면 가출을 봐주겠다는 나름의 온건한 제스처.

       

       만약 이베르가 이 그림을 보고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베르야. 나에게도 순정이 있다.”

       

       이베르는 아직 어린 나이의 용이다.

       인간으로 따지면 이것저것 겪어보고 성장해야 할 나이라는 부정할 수 없다.

       

       허나.

       

       많은 것을 경험하는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어른으로서 올바른 방향을 지도해 주는 것은 필수다.

       

       하물며 가출이라니.

       내면의 유교 드래곤이 꿈틀거리는, 실로 올바르지 못한 행실.

       

       거기에 이베르의 가출로 인해 엉덩이춤 버프도 못 돌렸다. 그로 인한 보이지 않는 손실도 분명 어마어마할 거다.

       

       스윽-.

       

       “나의 마음을 도려내는 비행 청소년은 용서하지 않아.”

       

       절대로 이베르의 엉덩이춤 버프를 못 돌려서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다. 버프 못 돌려서 꼴 받은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어, 이건 자라나는 비룡을 바른 용으로 키우기 위한 나의 불타는 교육열이다.

       

       이 뜨거운 마음, 부디 이베르에게 닿기를.

       

       

       

       *****

       

       

       

       파닥파닥ㅡ

       

       작은 날개를 바삐 움직여 성지의 문으로 향하던 이베르가 돌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읏…”

       

       봄이 한창 무르익어 밤중에도 온화할 텐데, 어째서인지 차가운 냉기가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상당히 불길한 악의가… 자신을 향했던 것 같다.

       

       “…빨리 가야겠군.”

       

       어서 돌아가자.

       안전한 그분의 품으로. 

       

       이베르가 어둠 속에서 열심히 날개를 재촉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루엘… 잊지 않았습니다…!! C 등급, 샛별의 지팡이 소유자…!! 모닝스타의 주인…!! 핑크머리 루엘은 지금…!! 모닝스타를 휘두르며… 불경한 자들의 머리통을 깨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현상금이라뇨…? 에, 에엣..?! 나, 난데 현상금…?! 꾸금 장면이라니…!! 작가는 절망적으로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라서… 꾸금 같은 거…!!! 몰라욧!! 꺄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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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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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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