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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8

        

       *** ***

       

        오후가 중간쯤 지났을 시각.

         

       포달랍궁의 문이 열렸다. 붉은 천에 하얀 테를 두른 포달랍궁의 정복 대신 일반적인 복장으로 변복한 수도승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내려갔다.

         

       포달랍궁의 수행자들이 우르르 내려가면 라사에 소란이 일어날까봐 걱정된 라노징부의 조치였다.

         

       “오늘 공연은 힘을 많이 주었다는데…”

         

       “소궁주 님도 공연에 일조하셨다고 하니 놓칠 수 없지!”

         

       포달랍궁의 수행자들 역시 마술 공연을 좋아했다. 사라로 인해 모든 즐거움을 끊고 불공을 쌓기 위해 엄격한 수행을 이어가던 도중 나타난 휘황찬란한 볼거리에 모두 흠뻑 빠져들고 만 것이다.

         

       그렇게 포달랍궁의 수행자들이 라사를 향하고 있을 때 차이랑은 사라의 방문을 두들겼다.

         

       “사라야, 엄마는 공연을 보러 내려가려고 하는데….사라는 어떻게 할 생각이니?”

         

       사라의 방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차이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내려가지 않으면 시간에 맞추지 못할 텐데…

         

       “부인, 먼저 내려가시게.”

         

       “하지만…”

         

       “사라는 내가 챙기리다.”

         

       차이랑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문 앞을 나섰다. 라노징부는 사라의 방문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어느덧 포달랍궁이 조용해졌다. 오늘 공연을 보기 위한 이들이 다 포달랍궁을 빠져나간 탓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고요한 시간이 지났다. 문득 라노징부가 입을 열었다.

         

       “사라야. 이별이란 그리 가슴 아픈 것이다.”

         

       라노징부는 약 한달 반 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그저 죽어가는 사라를 보면서 하루 하루 이별을 준비하던 나날을.

         

       “저들이 오기 전까지 나는 너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상하기도 싫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지만 현실이 그러했지.”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흑묘 소저가 네 구음기를 흡수해주고 호천안 마술사가 네 치료법을 알았던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그런데 사라야, 이 어리석은 아버지는 그 기적을 내 손으로 걷어차려 했단다.”

         

       라노징부는 쓰게 웃었다.

         

       “새로운 치료법이니 산신이 노하셨다느니…이런 저런 주장을 하던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느냐? 그런 자들을 상대할때마다 희망을 품고, 실망하고를 반복하면서 결국 사라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내 멋대로 단정짓고 말았단다.”

         

       그야말로 천운 그 자체였다.

         

       그 때 만약 사라가 방을 빠져나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만약 흑묘가 사라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라야. 너는 나에게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단다. 그러니 나에게 너를 돌려준 저들의 마지막 공연을 보고 배웅하고 싶단다. 그러나 나는 세상 무엇보다도 네가 소중하기에 너를 홀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라노징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닫았다. 여전히 사라의 반응은 없었고 라노징부 역시 채근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

         

       끼이익.

         

       사라의 방문이 열렸다. 라노징부는 눈을 뜨고 사라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눈은 촉촉했고 눈가는 퉁퉁 불어 있었으며 코를 훌쩍이는 사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라는 라노징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라노징부는 말없이 사라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슬퍼요.”

         

       “그래.”

         

       “마술사님들이 영원히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구나.”

         

       “그리고…보고 싶어요. 마지막은 싫지만…그래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걸.”

         

       라노징부는 맥락 없이 쏟아지는 사라의 감정을 느끼며 등을 토닥였다. 성장통이라는 것은…아픔을 동반한다. 방 안이라는 세계에 갇혀 있던 사라가 모르던 것들이 사라를 즐겁게 하고…또한 아프게 하는 것이다.

         

       라노징부는 말없이 사라의 선택을 기다렸다. 이 세상 모든 선택에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그저 고민하여 자신의 목적을 관철할 길을 고르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니.

         

       사라가 이대로 궁에 틀어박혀 화를 내는 것도 사라의 길이요, 이대로 애달픈 마음을 안고 공연을 보러가는 것 역시 사라의 길이었다.

         

       그저 라노징부는 그 선택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공연…늦었겠죠?”

         

       “가고 싶으냐?”

         

       사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공연 시작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부터 라사를 향해 뛰어간다고 한들 몇 시간은 걸릴 거리였으니…

         

       “인사…하고 싶었는데.”

         

       라노징부는 아쉬운 사라의 목소리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사라의 의지가 ‘현실’이라는 장애물에 막혀 좌절되지 않도록 그 뒤를 받쳐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 아니겠는가.

         

       “가자꾸나.”

         

       “….아버지?”

         

       라노징부가 가볍게 사라를 안아 들었다. 사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꽉 잡거라.”

         

       사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라노징부의 목을 꼭 껴안았다. 무공고수인 아버지가 달리는 편이 사라에 빨리 도착할 수 있겠지. 그래도 시간에 맞출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해봐야 할 문제였다.

         

       파아앗!

         

       “아앗?!”

         

       그저 달음박질을 생각하고 충격에 대비하던 사라는 화들짝 놀랐다. 그 자리에서 도약한 라노징부가 단번에 십 장을 넘게 뛰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단 한번의 걸음으로 건물 하나를 넘어 그 꼭대기에 도착한 라노징부는 그대로 건물을 연속으로 뛰어 넘었다.

         

       경공!

         

       경공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점은 바로 절정지경이었다. 천지간의 소통으로 인해 지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니까. 그 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면 정말로 몸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경신(輕身)의 재주를 펼칠 수 있으니 그 지구력에 더해 속도까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그러나 어느 초절정의 고수라도 라노징부와 같은 경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경신법은 자신의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경지. 안고 있는 사람의 무게는 줄일 수 없으니 그야말로 쏘아진 화살과 같은 속도는 낼 수가 없다.

         

       사라는 자신의 몸을 받치는 라노징부의 기운을 느꼈다. 사라는 알 길이 없었지만 이는 화경에 든 이들만 사용할 수 있는 이기(以氣)의 이치를 극성으로 활용한 결과였다.

         

       허공섭물의 원리로 사라의 몸을 아래에서 위로 띄워 올리니 사라의 몸무게 역시 가벼워져 지금과 같은 재주가 가능한 것이었다.

         

       파아아아아앗!!

         

       순식간에 포달랍궁을 가로질러 성벽 위에 오른 라노징부가 성벽을 딛고 새와 같이 날았다. 그야말로 성벽 위에서 수십 장을 뛰어오른 라노징부!

         

       쉬이이이이이익!

         

       고산의 바람이 라사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시야를 가로막던 성벽에서 수십 장을 뛰어올라 시원스럽게 허공을 가르고 있자니 발밑에 라사의 모습이 펼쳐졌다. 어느 때와 같이 수많은 인파들이 공터에 모여 있었고 도시에 있던 사람들이 공터로 이동하는 것 역시 한 눈에 들어왔다.

         

       사라가 환하게 웃었다. 처음 즐겨보는 속도감과 동시에 날아가는 것만 같은 상황에서 느껴지는 해방감 때문이었다.

         

       물론 사라가 함박 웃음을 짓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속도라면…공연 시각에 맞추어 라사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사라가 라노징부을 더 세게 안으며 소리쳤다.

         

       “아빠 최고!”

         

       “하하하하하!”

         

       라노징부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신영은 라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 ***

         

       흑묘가 무대 사이로 관객석을 살피고 있었다.

         

       “사라는 아직입니까?”

         

       여일예의 물음에 흑묘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가장 앞자리, 사라와 궁주내외를 위해 준비한 세 자리에는 오직 차이랑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연을 시작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만.”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보죠.”

         

       시간을 알린 옥수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무림천하의 시간관념은 현대처럼 엄격하지는 않다.  시간개념은 존재하지만 휴대용 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옥수수 역시 사라가 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같았다. 그러니 옥수수가 시간이 다 되었다고 입을 연 지금 이 시간은 느슨한 시간관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왜 공연 시작을 안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정이 지체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웅성! 웅성!

         

       공연을 기대하던 즐거운 소음이 조금씩 불만을 품고 커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

         

       그렇게 대략 1 다경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바깥을 살피던 흑묘 역시 아쉬운 기색으로 마술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발걸음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일행들이 마치 홀린 듯이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도 잠시 후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이고.”

         

       어마어마한 기의 소용돌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수백 장, 수천 장이 떨어져 있어도 태풍의 징조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아주 먼 거리에서 전력으로 거대한 힘을 뿜어내며 거리를 좁혀오고 있는 무인의 기척이 느껴졌다.

         

       어지간한 화경고수들도 찍소리 못하고 눌릴 방대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여일예의 힘조차 따위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기세.

         

       이건 누가 봐도 라노징부지.

         

       그리고 라노징부 혼자서 이리 황급히 달려오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 일행의 얼굴이 밝아졌다. 일류 고수인 옥수수만이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공연, 시작하자고.”

         

       “네!”

         

       “갑니다!”

         

       내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일행들. 잠시 얼을 타던 옥수수가 황급히 무대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마술사 옥수수가 인사 드립니다!”

         

       있는 힘껏 내공을 끌어 올려 증폭된 옥수수의 목소리가 무대에 울려퍼지고.

         

       와아아아아아아!!

         

       마술 공연이 시작되었다.

         

       ***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마술사 옥수수가 인사 드립니다!”

         

       와아아아아아!!!

         

       라노징부는 옥수수의 목소리와 함성 소리를 듣고는 더욱더 빠르게 라사를 가로질렀다. 이미 공연 시작은 한참이나 늦은 상황이었지만 옥수수는 이런 저런 만담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호천안 일행 역시 사라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라는 라노징부의 몸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와하하하하!!

         

       역시 옥수수라 해야 할까. 너무 늦게 시작된 마술공연에 성을 내던 군중은 곧 옥수수의 입담에 웃음을 터트렸다.

         

       ‘고마워요, 옥수수 마술사님.’

         

       사라는 라노징부의 품 안에서 옥수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라사의 거리를 빠져나와 드디어 공터에 도착했다.

         

       사라는 라노징부의 품에서 빠져나와 달려나갔다. 안전요원들이 열심히 사람을 통제해 만들어 놓은 통로를 달렸다. 통제를 따르지 않는 아이인 줄 알고 제지하려던 안전요원들은 곧바로 사라 뒤에 모습을 드러낸 라노징부를 보고는 깜짝 놀라 고개를 숙이며 길을 열었다.

         

       사라는 가빠진 숨을 고르며 차이랑의 옆에 착석했다. 차이랑이 사라의 손을 꼭 잡았다. 사라는 차이랑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무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옥수수와 눈이 마주치고 사라는 옥수수의 눈이 반달처럼 휘는 것을 보며 활짝 웃어주었다.

         

       돌연 옥수수가 발을 구르자 형형색색의 고리가 비산했다.

         

       쩔그렁!!

         

       와아아아아아!!

         

       새로운 듯 익숙한 마술도구의 깜짝 등장에 관중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사라 역시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저 무대의 고저차를 이용해서 보이지 않게 바닥에 놓아둔 고리가 있었고 발판을 밟아 비상하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쩔그렁!!

         

       와아아아!!

         

       이제는 숙련된 마술사가 된 옥수수가 고리를 분리하고 합칠 때마다 관객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사라는 생각했다.

         

       마술의 수법을 알고 나서도 여전히 재미있다고. 그 수법을 알고 나서도 막상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런게 마술이구나.’

         

       고리가 합쳐지고 떨어지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직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재주. 그게 마술의 본질이었다.

         

       옥수수가 들어가고 호천안이 나왔다. 호천안은 사라를 보고는 가볍게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다람쥐 패를 꺼내들었다.

         

       “자~ 이 다람쥐는 마술의 다람쥐입니다.”

         

       반짝반짝한 은 다람쥐. 그리고 번쩍번쩍하는 금 다람쥐.

         

       두 다람쥐가 호천안의 온 몸을 달리는 향연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캬, 저건 옛날에 거리 공연 때 본 거였는데 이게 여기서 다시 나오네!”

         

       “음. 확실히 시원시원해졌군!”

         

       사라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며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이 일조한 부분이 호평을 받으니 절로 어깨가 으쓱거렸다.

         

       다람쥐 마술이 끝나고 이번에는 당도연이 무대에 올라왔다. 당도연 역시 사라를 보고는 빙긋 웃어주었다. 그 뒤로 펼쳐지는 끈 마술.

         

       사라는 마술 하나하나에 전력으로 환호성을 내지르고 손뼉을 쳤다.

         

       마술을 시연하러 나오는 마술사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사라는 조금씩 깨달아갔다. 마술이라는 것이 그 비밀이 밝혀지더라도 여전히 재미있는 것처럼.

         

       지금 마술을 펼치고 있는 마술사들과 떨어지더라도 마술사들과 이어졌던 인연은 잘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유지될 것이라고.

         

       “으아아악!!”

         

       절단 마술이 펼쳐졌다. 평소와는 다르게 격하게 퍼덕이는 옥수수.

         

       호천안이 옥수수의 상체가 든 철관을 밀며 무대를 누볐고 옥수수는 우스꽝스러운 비명을 그 상태로 양 손으로 공을 높이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하하하하하!!

         

       이미 절단 마술은 이 라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술이었고 그 충격 역시 가신 상태. 다들 감흥이 약해진 찰나에 가해진 우스꽝스러운 변수에 라사의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사라는 철관이 조립되고 멀쩡하게 일어나 인사하는 옥수수를 향해 박수를 쳤다. 아까와는 달리 사라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끝났구나.’

         

       공연이 끝났다.

         

       모든 마술사들이 무대로 올라왔다. 장치 담당인지라 마술을 펼치지 않았던 당소열까지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호천안 일행은 사라를 바라보았고 사라는 일행을 바라보았다.

         

       와아아아아아!!

         

       정형화되어 있던 평소의 공연과 다르게 변주된 마술이 대거 등장한지라 라사의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뜨거운 환호성을 보냈다.

         

       그 환호성이 사라와 일행의 간극을 메워 주었다. 사라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방긋 웃어주며 손을 흔들어 주었고 그 모습에 그들도 미소를 지으며 역시 손을 흔들어주었다.

         

       [여러분 즐거우셨습니까!?]

         

       내공을 담은 호천안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사람들은 환호성으로 대답했다.

         

       [여러분, 지금 이 공연은 이 라사에서 하는 마지막 공연입니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마술 공연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탄식. 그리고 드문드문 이어지는 성난 고함. 그리고 갑작스러운 발표에 당황하는 사람 등등..

         

       [그간 이 라사에서 마술 공연을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호천안은 빙그레 웃으며 이별을 직감하고 있는 사라를 바라보았다.

         

       [즐겁고 보람 있는 나날이었으나…저희는 중원인. 이제 중원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것은 유목민 뿐만은 아니지요!]

       

       “그간 즐거웠다!”

         

       “또 보고 싶을 거다!”

         

       진짜 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관객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토해냈다. 각자의 감정을 토해낸 탓에 섞인 소리들은 알 수 없는 메아리가 되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사라는 무대에 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생명의 은인 호천안.

         

       구음기를 가져가 준 흑묘.

         

       귀엽게 여겨주던 여일예.

         

       심술궂었던 당소열.

         

       항상 웃어주었던 당도연.

         

       친절했던 옥수수.

         

       포달랍궁이라는 폐쇄된 틀에서 깨어난 사라가 처음으로 사귄 사람들이었으니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다 추억이 있었다.

         

       이별은 천재지변과 같이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사라는 처음으로 맞이하는 이별이라는 슬픔이 가슴을 두드리는 것을 느끼며 눈에 애써 힘을 주었다.

         

       힘을 주지 않으면 곧바로 울어 버릴 것만 같았기에.

         

       사라는 감정을 숨기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후회했다. 오늘 아침에 찾아왔을 때 얼굴을 마주하고 못다한 이야기를 다 털어 놓을걸.

         

       흑묘 언니에게 정말정말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었다. 여일예 언니에게는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었다. 당소열에게 뺨을 살살 만진다면 만져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옥수수에게는 친해진 수행자들에게 안부를 전해주겠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당도연에게 사실 흑묘 언니한테 비천 마차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고 털어놓고 싶었다.

         

       그리고 호천안에게는 자신을 치료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자신을 치료해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노라고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지만…그런 마음을 전할 기회는 지나갔으니 마지막으로 활짝 웃어보였다.

         

       그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사표현이었기에.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관중들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그저 웅웅거리는 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우는 와중이었다. 그럼에도 사라는 호천안 일행의 얼굴이 번지는 미소를 보고는 자신의 인사가 전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여러분! 이만 안녕입니다!]

         

       파라라락.

         

       무대의 장막이 떨어져 내렸다. 사라는 장막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호천안 일행과 짠 마술은 절단 마술이 마지막이었지만 어쩐지 저들이라면 지금 장막이 떨어진 뒤에 없어져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사라뿐만이 아닌지 많은 관중들이 탄성을 흘렸다.

         

       그러나.

         

       장막이 떨어진 뒤에도 호천안 일행은 고개 숙인 채 그대로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당도연이 움직여 장막과 연결된 밧줄을 잡아들었다.

         

       당도연이 장난스럽게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고.

         

       화아아아악!

         

       당도연의 채찍처럼 거대한 장막과 연결된 밧줄을 휘두르자 그 장막이 날 듯이 펼쳐지며 호천안 일행을 한 바퀴 감싸안았다.

         

       그 장막이 떨어졌을 때 호천안 일행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관중들은 마지막으로 펼쳐진 마술에 함성을 내질렀다.

         

       “아….”

         

       그리고 사라는 호천안 일행이 사라진 자리를 보고는 기어이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이별이 주는 슬픔을 더 이상 억누를 수가 없었다. 사라는 말없이 방울방울 눈물을 흘렸다.

         

       마술처럼 이어진 인연은 마술로써 마무리되었다.

         

       오늘의 모든 마술이 자신을 위한 무대였음을 깨달은 사라는 이별을 받아들였다. 이별을 받아들이고 그 아픔을 묵묵히 견뎠다.

         

       여운에 잠긴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고 공터는 점차 비워졌다. 공터가 텅 비고 땅거미가 질 때가 되어서야 사라는 감정을 추스릴 수 있었다.

         

       “사라야.”

         

       사라는 차이랑이 건네주는 꾸러미를 바라보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마술사님들이 전해달라 부탁한 거란다.”

         

       사라는 서둘러 꾸러미를 열어 보았다. 첫 번째로 꺼낸 것은 귀여운 고양이가 수놓아진 주머니였다. 흑묘가 쌀튀김을 보관하던 주머니. 아니나 다를까 열어보니 쌀튀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두 번째 것은 목함이었다. 목함을 열어보니 나비 장신구가 들어 있었다. 가벼운 움직임에 살랑살랑 날갯짓을 하는 나비 장신구. 사라는 보자마자 당소열의 작별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 번째 것은 검에 달 수 있는 수실이었다. 여일예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선물.

         

       당도연은 당가의 손님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객패를 남겼고 옥수수는 중원의 금화를 남겼다.

       

       그리고 사라는 마지막을 호천안의 선물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서책이었다.

         

       [호천비록 (하)]

         

       사라는 홀린 듯이 책을 펼쳤다. 사라가 보았던 마술의 기법이 모두 들어가 있는 책이었다. 사라는 마지막에 쓰여 있는 글귀를 읽었다.

         

       [상권은 사천당가의 당려아가 가지고 있음. 하권을 보여주고 상권의 마술을 배울 것!]

         

       [공연 후 남은 마술 도구들은 모두 사라에게 소유권이 있음을 명시함]

         

       “하핫.”

         

       사라는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사라는 두 사람에게 마지막 장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장을 읽은 차이랑과 라노징부 역시 가볍게 웃었다.

         

       “제가 중원에 갈 수 있을까요?”

         

       “건강을 회복하고 무공 수련을 열심히 한다면 말이다.”

         

       사라는 구령역천양밀염극단을 섭취한 뒤 일어난 자신의 몸상태를 설명해 주던 호천안의 말을 떠올렸다. 영약에 의해 보강되었기는 했지만 급속으로 성장한 터라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는 무리해서는 안 된다고 했었지.

         

       구음기가 더 이상 몸을 망치지 않게 되었을 뿐 완벽하게 회복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역시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있었으며.

         

       적어도 향후 수년간은 정양해야 하고 몸이 완전히 자랄 때까지는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중원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포달랍궁 근처를 뛰노는 것과 달리 중원으로의 여행은 몸에 무리를 줄 가능성이 높았다. 사라는 중원에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호천안 일행과 포달랍궁의 수행자들이 많은 노력을 통해 자신의 몸을 낫게 해 주었는데 그걸 한순간의 욕심으로 망쳐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긴 기다림이 되겠지만…그 사이에 구음기를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일이었다.

         

       구음기를 완벽히 다루어야만 구음절맥이라는 천형을 완벽히 극복할 수 있을 테고 완벽하게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호천안 일행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일 테니까.

         

       그 정도는 해야 중원에 갈 수 있게 되었을 때 당당히 호천안 일행을 찾아갈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사라는 라노징부를 올려다보았다.

         

       “도와주실거죠? 아버지.”

         

       “물론이다.”

         

       “이 엄마도 응원할게.”

         

       “고마워요. 어머니, 아버지!”

         

       라노징부와 차이랑 그리고 라노사라는 웃으며 서로의 손을 잡았다. 세 사람은 손을 잡고 나란히 몸을 일으켰다.

         

       호천안 일행이 탄 비천마차는 중원을 향해 움직였고.

         

       사라 가족은 느릿한 걸음으로 포달랍궁을 향해 걸었다.

         

       서장의 라사.

         

       어느 한 공터에서 이별과 재회의 약속이 펼쳐진 어느 한 날의 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음.

    우선 전화의 무참한 오타와 인물 혼동에 대해서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오늘 서장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겠다고 생각한 작가는 그저 호로록 글을 작성했고 호로록 작성하다보니 이미 열두 시가 되었더군요. 헉? 열두 시라고? 일단은 쓰던 부분을 적당히 잘라 업로드했습니다만….

    네.

    퇴고를 전혀 하지 않고 올린지라 대참사가 발생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갑자기 자꾸 다른 인물이 등장하니 독자님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우셨겠죠.

    포달랍궁 파트가 끝났으니 조금 뒷이야기를 풀어볼까요.

    지금의 사라는 당려아가 호천비록을 받을 때부터 쌍을 이루기로 기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사라’도 아니었고 포달랍궁의 소궁주도 아니었지만요. 그저 구음절맥을 앓고 있는 소녀 캐릭터에 불과했지요.

    그러다보니 머릿속에 ‘려아 = 사라’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전화는 전혀 퇴고를 하지 않은 날림이었지만 이전화에서도 계속 사라를 려아라고 업로드 한 것은 려아를 봐도 머리는 사라라고 인식하고 있으니 음 아무 문제도 없군 업로드..! 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결국 뭐라고 변명해도 작가의 불민함으로 독자님들의 몰입을 해친 것이니 다시한번 고개숙여 사과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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