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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8

        

         “흐헉. 어우읍…!!”

         ‘어…… 역시 화났나?! 역시 존나 화난 것 같은데!’

         

         팡!

         

         흡사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꼬리 채찍의 궤도로부터 남자가 허겁지겁 다리를 내뺐다.

         

         입으로는 간신히 헐떡이는 소리만 반복하면서도 그는 주변 상황을 살피는 눈길 자체는 절대 끊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회피 동작이었다. 혹은… 제대로 된 공격조차 아닌 위협에 과민하게 반응했거나.

         

         산소가 겨우 도는 뇌로 현재 본인이 믿기엔 냉정하다 여겨지는 판단을 계속하며 빈 공간으로 몸을 날렸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이 구질구질하게 구는 먹이감을 노리고 펼쳐진 살벌하고 끈적거리는 그물이 피부 위에 내려앉은 것처럼. 공기가 들러붙어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오싹했다.

         

         …아니, 이건 체력 한계치를 아득히 넘어선 상태로 자꾸 몸뚱이를 혹사해서 그런가?

         

         그냥 냅다 발치에 달라붙어서 ‘천사 같은 아나스타샤님…! 시발, 먼 미래에 다 설명드릴 테니까 제발 오늘은 그냥 좀 넘어가주세요!!’를 외치지 않은 대가를 치르는 걸지도.

         

         끼기긱—!!

         

         “씹!?”

         

         골목의 그늘진 음영에서 불꽃이 튀는 걸 보자마자 냉큼 발을 물렸다.

         송곳니와 발톱이 마찰한 순간 보이는 하운드로이드의 실루엣과 붉은 안광은 죽음이 형상화한 듯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아까까지 바지 자락을 물고 늘어지던 모습은 지금에 비하면 진짜 멍멍이 수준.

         게임에서 나오던 특수 로봇들 치고는 생각보다 그렇게 무섭진 않다며 웃어넘긴 과거의 자신을 몇 대 때리고 싶어졌다.

         

         드로이드 군세는 이젠 구태여 쫓아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무리를 이뤄 한 쪽 길을 틀어막고서는, 섣불리 이쪽으로 오면 벌어질 일을 책임질 수 없으니 알아서 멀리 물러나라며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다가오고 있을 뿐.

         

         “…다, 다른 길로 가야겠네. 음.”

         

         일렁이는 어둠으로부터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서 시선을 전방에 고정한 채로.

         

         그는 본디 도주로로 염두에 두었던 네오 헤이븐의 명물, 구시대 지하철로로 통하는 수많은 입구 중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으로 잰 걸음을 재촉했다.

         

         정말 세 살배기 어린애가 와서 보더라도 유인당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남자도 잘 알았다.

         

         달려서 빠져나갈 구멍은 더럽게 한정되어 있고, 건물 사이로 보여야 하는 하늘은 무슨 기계 역병이라도 창궐한 것처럼 드론 떼거리로 뒤덮여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린 금속 천장에 짓눌릴 것 같았으니까.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건, 서투르게 가지고 노는 연극은 이만하겠다.

         넌 혼 좀 나야겠으니 이리 들어와라…라며 누군가 아련히 손짓하는 모습이 뻔히 보이는데 못 알아채는 게 병신이지.

         

         그렇지만 또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인 게 정말 남은 방법이 없었다! 몽땅 막혔다고…!

         

         퍼석!!

         

         “잘못했슴다! 잘은 모르겠는데, 제가 존나 잘못한 것 같습니다!”

         

         봐라, 방금도 뒤에서 발사된 철갑탄에 깨진 콘크리트 알갱이가 튀기지 않았나?

         안 그래도 편대 비행하는 무인기로 웅웅대는 대기 진동음이 가시질 않는데 이런 조미료까지 주기적으로 더해 주다니.

         

         전에 장난치듯이 덤벼들던 때는 분명 아나스타샤의 그림자나 관심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마치 성가신 포로를 수송하는 것처럼 조금만 어물쩍거려도 창으로 찌르는 듯한 공격이 등쪽에서 날아온다.

         

         건물 몇 채만 넘으면 낮 시간 근무를 끝마친 시민들의 퇴근이 한창일 일상적인 공간일 터인데, 여기는 무슨 엑사테크의 자동화 병기 공장 마냥 인류의 내리막이 떠오르는 살풍경이 펼쳐져 있다.

         

         일개 해커의 범주를 넘어선 전력을 숨기고 있는 처세술에 감탄이 절로 나왔으나.

         

         사실 이마저도 ‘너란 존재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정신나간 선전 포고와 함께 시작되는 그녀의 정식 보스전 퀘스트 라인과 비교하면 아직 귀여웠다.

         

         적어도 온갖 해괴한 특수형 드로이드나, 자폭 드론이나, 오버클록된 포탑으로 이루어진 킬링 트랩 같은 건 안 보였기에.

         

         ‘설마, 선행 체험판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아무튼 온갖 비관적인 상상으로 머리속이 가득한 그에게도 아직 믿는 구석은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이 기계 병사들은 자신을 모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나스타샤의 앞으로 끌고가고 싶은 모양인데… 공교롭게도 지하도로 빠지는 맨홀 구멍 또한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

         

         어떻게든, 한 순간만 더 제치면 된다는 생각으로 체력을 온존하며 입술을 적셨다.

         

         물론 막상 무사히 지정된 장소에 도착하더라도. 단박에 뚜껑을 열어젖히고 안 다치게 안으로 뛰어든 다음, 또 내부 통로를 달려나가야 한다는 무슨 일류 스턴트맨스러운 일정이 기다리고 있긴 했으나.

         

         그것마저 의식을 또렷하게 만드는 일종의 연료이자 스파이스로 소모되었다.

         

         거의 발악에 가까운 투정도 명확한 목적이, 다 의미가 있는 노력이니까 견뎌낼 수 있다는 일념 하에.

         이런 곳에서 중요한 열쇠를 지닌 서브 히로인과 운명적으로 마주친 것처럼, 모든 게 잘 풀릴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뭐, 당사자가 알았다면 자신을 비롯한 세상 사람들을 함부로 무슨 NPC 취급하지 말라며 불같이 위험한 사상을 교정하려 들었겠지만. 아마 이번엔 둘이 그런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찾아오긴 어려워 보였다.

         

         “아윽! 잠깐만, 진짜 잠깐만요…. 이거 너무 뛰어다녔더니 다리에 쥐가….”

         

         – ……. –

         

         이제 와서 친절하게 부상자 취급을 해줄 리도 없거늘.

         돌연 무게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 남자가 아픔을 호소하며 무릎을 꿇고 땅을 짚자, 거리를 두고 그 꼴을 감시하던 제로 1호기가 묵묵히 퀵 스캐닝을 실시.

         

         [ 손상된 옷감 사이로 보이는 종아리나 정강이엔 근육 수축 징후 없음.

         단, 복부 근처에는 외상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서 발생한 원인 불명의 출혈이 탐지됨. ]

         

         속 보이는 핑계란 판정을 내리는 데에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제가 알아서 준비된 자리로 걸어 들어가겠다는데 말릴 없었기에, 딴에는 열심히 눈치를 보다가… 탁! 하고. 그가 지면을 박찬 추진력을 살려 옆쪽 샛길로 뛰어들자마자 약간의 ‘긴박감’을 더해주기 위해 고개를 까딱였으니.

         

         Buzzzzzzzz——……!!

         

         “!? 야이, 미친!!”

         

         왜 그 유명한 농담이 있지 않나?

         눈앞에 커다란 벌이 있어서 말벌인가…? 싶으면 실은 그냥 벌이고, 공기 떨리는 소음과 함께 손가락만 한 비행 물체가 날아다녀서 드론이라 착각했다면 그게 진짜 토종 말벌이라는 인터넷 썰.

         

         그렇다면 웬만한 남자의 팔뚝보다도 체장이 긴 공격 드론들이 벌떼 마냥 머리 위로 급강하해서 날아든다면 느낌이 어떨까.

         

         실제로 그런 회전수로 날개가 돌아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본인은 플라잉-믹서기들의 한복판에 맨몸으로 노출된 신체를 푹 숙였으며.

         

         일단 장비된 실탄 한 발 안 쐈음에도, 부족한 광원으로 인해 얼핏 검은 소용돌이처럼 보이는 그 플라스틱 와류는 어디 한군데가 잘려 나갈 것처럼 아찔한 소음을 연주하며 앞다투어 그의 후드와 옆구리를 마구 스치고 지나갔다.

         

         괜찮다…! 아마도. 진짜로 아프진 않다. 자신을 겁먹게 만드려는 위협에 불과하다.

         

         스스로를 설득하듯 계속 되뇌며 달려드는 드론 폭풍을 헤치고 나간 그의 눈에.

         가끔씩 누가 들락날락한 듯, 촘촘히 먼지가 껴서 꼼짝도 안 할 것 같은 다른 맨홀과는 달리 뚜껑의 테두리가 선명한 지하도 출입구가 보였다.

         

         존나 거슬리고, 그 이상으로 무섭긴 해도 억제력은 부족하다. 그럼 그냥 이대로 가서 지하로 숨어버리면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엉금엉금 기어가던 찰나.

         

         “엥…?”

         

         갑자기 일대에 자연 재해처럼 휘몰아치던 드론들이 예고도 없이 다시 수직으로 치솟아 흩어졌다.

         

         배터리 부족을 원인으로 전술적 퇴각을 실행했다기엔 여러모로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물러남.

         경고 사격 이외로는 화력을 낭비한 적도 없으니 탄약 부족도 아니고, 자신을 드론으로 괴롭히는 게 질렸다 해도 하필 지금 병력을 뺄 이유는 없을 텐데 왜일까?

         

         정답은 예상보다 이르게 공개되었다.

         

         여지껏 유일한 탈출구(Exit Point)로 잡아 놓고 움직이던 맨홀 뚜껑이, 그 밑에서 등장한 ‘특별한 드로이드’에 의해 두 동강난 채로 박살 나며 파편이 흩뿌려졌으니 필시 그거에 맞아서 쓸데없이 격추되는 걸 피한 거겠지.

         

         뻐엉—!

         깡! 쿠궁…….

         

         막혀 있던 공기가 순환되자 북 터지는 소리가 울렸으며. 소음과는 달리 예리하게 조각난 맨홀 조각은 허공을 유영하다가 근방에 틀어박혔고.

         

         “…………시발.”

         

         다리 하나당 못해도 서너 개는 되는 자유 관절을 지닌, 그리고 그런 것보다 훨씬 더 눈에 띄는 진동 칼날을 무수히 장비한 기계 거미가 천천히 땅밑에서 기어 나왔다.

         

         괜한 희망을 주고 싶지 않은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흉내조차 내지 않았다.

         

         두정부에 달린 스캐너를 처음부터 어정쩡하게 바닥을 기고 있는 그에게 고정한 채로 우아하게 등장한 슬래셔가 노골적으로 앞쪽에 있던 다리 두 개를 잠시 교차시켜 블레이드 상태를 점검.

         

         우우웅…!

         초진동하는 두 날붙이가 일순간 가까워짐에 따라 공명하며 대기가 육안으로 보일 수준까지 일그러지는 현상은 더럽게 비현실적이었다.

         

         게임에서 슬래셔는 기본적으로 악질적인 유리 대포 타입의 적.

         

         사각에서 급습해오던가, 높은 곳에서 강습해서 즉사 판정이 있는 잡기 처형을 발동하던가. 하여간 비싼 게 많은 귀중품 획득처나 엑사테크 사유지 파밍 난이도가 좆같아지는 가장 큰 원흉 중 하나로.

         

         정석 공략법은 원거리에서 연산 중추를 포함한 대가리를 날려버리거나, 다리에 가려진 하부 동력부를 원 탭에 제거하는 것.

         좁은 실내에서도 미리미리 탐지를 돌려서 관통탄으로 엄폐물째 부수면서 공략하는 게 기본인 놈이다.

         

         왜? 그야 일단 달라붙으면 캐릭터가 다리에 총 한두 발 쏘는 동안 쟤는 고기를 못해도 열 번은 다져서 큐브 스테이크를 만들고 있을 텐데, 그럼 때려죽여도 교환비가 안 맞으니까?

         

         …그런데 자신은 원거리 무기는커녕 어드벤처 게임에 자주 등장하는 쇠파이프 같은 근접 무장 하나 없는 상태로 마주쳤네? 어머나, 이것 참 이상해라.

         

         어렴풋이 윤곽만 남아있던 멋들어진 탈출 계획을 전면 백지화한 그가 머리를 굴렸다.

         

         자, 어쩌다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만약 자신이 선량한 네오 헤이븐의 일반 시민이라면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가장 능청스러울지.

         

         뭐라고 해야 자비로운 아나스타샤 더 엔젤님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을지에 대해서.

         모두 망설일 필요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해주시길 바랍니다.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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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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