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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8

     바르셀로나에 황금이 미친듯이 쏟아진다고 하더라도, 배 한 척을 전부 황금으로 만들 정도의 양이 나오지는 않는다.

     나오는 줄 알았다.

     나오지 않을까 싶었고, 실제로 모든 금을 끌어모아 배를 만들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금을 모으고 녹이고 그걸 깎아서 배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로버트 경. 이거 어차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유인하기 위한 건데, 굳이 그만큼 많은 양의 금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없죠.”

     가성비.

     아무리 무능왕을 죽이기 위한 황금의 관이라고 하더라도, 전열함 급의 3층 갑판 배를 전부 황금으로 두르기에는 너무나도 돈이 아까웠다.

     그것도 금으로 통짜로 만드는 건 더더욱!

     “자네도 알다시피, 금이라는 게 어떻게 쓰이든 금이라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지.”

     노스트럼에서는 금화로 사용되었다.

     제국에서는 금이 주괴의 형태로 보관되어, 탈러의 가치를 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연금술과 마도공학에서는 금을 연성하여 마도공학의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데 쓰이기도 했다.

     그런 중요한 금을 고작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데 전부 다 때려박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 배는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최대한 금을 아끼면서 배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이미 뼈대는 물론이거니와 그 형태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진 황금의 배를 가볍게 손으로 두드렸다.

     “9년 전 수법을 또 써먹기로 했다네.”

     터ㅡ엉.

     손등으로 배를 두드리기 무섭게, 내부에서 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금으로 된 배가 확실하지. 여기 사다리로 올라가서 발로 디디는 갑판도 금이고, 실내로 내려가는 계단도 금이야. 전부 금인 건 확실하지.”

     “적어도 ‘표면’은 말이죠.”

     “그래. 제국의 위조금화에서 발상을 떠올렸지.”

     나는 옆에 놓여있는 금덩어리 하나를 집어들었다.

     “보통 금 주괴라고 하면 내부가 꽉 차있는 걸 떠올리기 마련이잖나. 하지만 이거 보게.”

     “안이 텅텅 비어있군요?”

     “그래. 1kg 금괴처럼 보이지만, 실상 무게는 100g도 되지 않는 녀석이지.”

     “그야말로, 속빈 강정이로군요.”

     “금이지만.”

     

     터ㅡ엉.

     다시금 손등으로 두드려도 공허한 소리만 요란하게 울린다.

     “금이라서 무르기에 마스터급이 손등으로 두드리는 걸로 망가지거나 구겨질 수도 있지만, 그건 또 그렇게 둘 수는 없지.”

     

     하지만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겉이 전부 금으로 둘러져있지만 내구도는 금이 아니라는 것.

     “겉에는 왁스를 발라뒀지.”

     왁스.

     노스트럼에서는 편지를 봉할 때 쓰는 실링 왁스 정도가 대표적으로 사용되지만, 제국에서는 마도공학으로 만들어진 차량정비에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고 있다.

     그중에는 최대한 차체의 원색을 드러내기 위해 광택만 내는 목적으로 개발된 투명왁스도 존재한다.

     실제로 투명한 건 아니지만.

     “국내에서 이 정도로 투명한 왁스가 나옵니까?”

     “제국산이야.”

     “어, 으음….”

     “제국에서 수입해서 지브롤터에서 재포장하여 들여왔으니까 지브롤터산 왁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하지만 왁스만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래서 내부에 마석도 좀 붙여뒀지.”

     나는 옆에 놓여있는 예비용 금판의 내부를 가리켰다.

     “자네는 익숙하지?”

     “예. 마석을 자르고 토막내고 끌칼로 마법진 모양을 만들어내느라 아주 눈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지브롤터 기사단 모두요.”

     “그것도 다 좋은 경험이야.”

     금판의 안쪽에는 금판보다는 조금 더 두터운 마석이 넓게 펼쳐져있었고, 그 안쪽에는 똑같은 마법진이 연달아 그려져있었다.

     “이렇게 금의 아래에는 마석을 채워넣었지. 내구도를 강화하는 물리적인 보호막 마법이 발현되도록 마법진이 음각이 된 마석을.”

     “도련님.”

     “어.”

     “마석판보다 더 많이 들어간 거 따로 있지 않습니까?”

     “……흐.”

     로버트 경의 말에 나는 직접 검을 들었다.

     “안에 보면-”

     “아, 아뇨! 자를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확인은 안 해주셔도 됩니다!”

     로버트는 식겁을 하며 손을 휘저었다.

     왁스. 금. 마석.

     그리고 그 안에 숨겨져있는 무언가.

     “아쉽군. 어차피 다시 붙여놓기만 하면 그만인데.”

     “이 배를 깎고 자르고 조립하느라 기사들이 얼마나 많이 고생을 했는데요! 도련님, 진정하세요.”

     “제일 많이 금을 잘라낸 건 나인데?”

     나는 배의 표면을 손으로 가볍게 쓸었다.

     “이 정도로 얇게 금박을 저며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나 말고 누가 있겠어?”

     “맞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나이프로 양파를 얇게 써는 것처럼 누구보다 쉽게 처리하셨잖습니까.”

     “나로서는 이 배의 규격에 맞게 금괴를 녹여내고 굳히느라 고생한….”

     대장장이, 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우리 엘프들이 더 고생을 많이 해서 고마울 따름이지.”

     나무판자 역할을 할 금판을 잘게 자른 건 나지만, 그렇게 만들기 위해 금을 모아 녹이고 거대한 주괴로 만들었던 건 전부 다 여기 모여있는 엘프들이다.

     엘프인가?

     엘프다.

     

     어딘가 하는 행동들이 저기 지금은 멸망한 것으로 알려진 드워프들과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명실상부한 숲의 종족 엘프들이다.

     활을 쏘고, 자연을 사랑하고,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숲을 사랑하고.

     엘프는 식물을 아낀다.

     광석과 광물, 땅은 식물이 아니다.

     나무를 함부로 훼손하지 않지만, 그들의 생활은 어느정도 나름의 문명수준이 분명 존재했다.

     그 근간을 이루는 것은 다름아닌 석기.

     …엘프 정도의 피지컬이면 창 같은 것도 나무봉에다가 창날을 끼우는 게 아니라, 깎은 돌칼로 돌을 갈아서 창처럼 만들어 돌창을 들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기는 하다.

     수상할 정도로 삽을 잘 다루고 황금에 관해서는 어린 아이 찰흙다루는 것보다 훨씬 잘 다루는 이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귀와 백옥같은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숲의 요정들이다.

     그저, 처음과는 조금, 아주 사소한 정도로 달라졌을 뿐.

     내가 처음 엘프의 숲에 방문했을 때는 대부분 백금경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수 년에 걸쳐서 땅을 파고 지하를 정비한 끝에 어느덧 다들 늠름해졌더라.

     내 잘못은 아니다.

     그저 노스트럼과 제국의 육류를 본격적으로 섭취하게 되면서 근육이 단련되었을뿐.

     엘프는 자연을 사랑한다.

     하지만 동물은 식물이 아니다.

     “로버트 경. 엘프들이 저렇게 된 건에 대하여,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나는 그저 저들에게 숲 외부의 식사를 몇 번 대접했을 뿐이야.”

     엘프는 그저, 고기의 맛을 알아버렸을 뿐이다.

     그렇게 강해진 육신의 힘을 바탕으로 하여, 엘프들은 바르셀로나의 지하를 정비하면서도 황금의 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하아. 알겠습니다. 도련님. 그러면 이거 이대로 끌고가면 되는 겁니까? 바퀴도 달고?”

     로버트는 배의 아래를 가리켰다.

     “바퀴, 아직 안 달아둔 것 같은데. 바퀴를 단 판을 따로 붙이는 겁니까? 아니면 뒤집어서?”

     “바퀴는 없어.”

     “…예?”

     “이건 배지, 마도자동선이 아니니까.”

     “…….”

     “그냥 평범하게 황금으로 만든 배라고 한다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이걸 타고 다니겠는가? 이게 함정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도 타게 만들어야지.”

     나는 배의 아래를 가리켰다.

     “이건 배야. 하지만 마도자동선은 아니지.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아주 특별한 배라고.”

     “설마….”

     “드디어, 라고 해야겠지.”

     엘프들이 공장에서 떠났다.

     “나머지 공정은 저 사람의 몫이라네, 경.”

     그리고 바깥,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공장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바이크에, 드레스?”

     “그래. 드레스. 제국에서 유행하는 라이딩복이 아니지.”

     헬멧을 쓰지 않은 채 바이크를 직접 몰고 온 검은 드레스의 여인은 하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온 거야?”

     “예, 바토리 소장.”

     바토리 에르제베트.

     “아카데미 연금학 수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건 제국 연구소 다른 소장이 강의하고 있으니까 문제 없어. 나에게는 지금 이게 더 중요하니까.”

     바토리 소장은 흡사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공장 안에 있는 황금의 배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레이 총독님. 옆에 달 ‘부품’ 말이야, 설마 그냥 무쇠를 깎아다가 달 생각은 아니겠지?”

     “모든 게 황금인데, 옆에 달린 부품이 황금이 아니어서야 되겠습니까?”

     나는 바토리 소장을 위해 준비한 금색의 원판을 두드렸다.

     “이 수십 톤에 이르는 무게의 배를 ‘띄워야’하는데, 당연히 통짜 황금으로 만들어야죠. 어쩌면 배에 들어간 금보다 여기에 들어가는 금이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흐흐흐.”

     “…어째, 저거 생긴 게.”

     로버트 경이 찜찜한 표정으로 내 옆에 놓인 원판을 가리켰다.

     “9년 전에 도련님이 성벽에 달아야 한다고 하셨던 승강기, 그 아래에 풍석을 달고 합쳐둔 그걸 축소해놓은 거랑 되게 비슷해보이는 건 제 착각입니까?”

     “로버트 경.”

     나는 로버트 경을 향해 검지를 입술에 붙이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것은 그저 우연일 뿐이라네.”

     “…….”

     “혹은 과거의 경험이 수 년에 걸쳐 쌓이고 중첩되어, 하나의 새로운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런 것을 두고 우리는 ‘발명’이라고 부른답니다, 로버트 경. 호호호.”

     바토리 소장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낮게 웃었다.

     “…뭔가 죽이 잘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엄청 미묘하군요.”

     “미묘하다니. 무엇이?”

     “바토리 소장은 제국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이거 잘못했다가는….”

     “어머, 제국 사람이라뇨?”

     바토리 소장은 두 손을 모으며 씩 미소를 지었다.

     “저는 연구자랍니다?”

     “…….”

     “제국인이든 뭐든, 국왕 전하를 위해 무언가 특별한 걸 준비하라고 하니 그에 맞는 무언가를 선보이고자 할 뿐이죠. 그저….”

     “그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다보면 사소한 실수로 인해서 사고가 생기는 경우가 있죠. 그리고 그 바람에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도대체 뭘 하려고….”

     “별 거 없어요. 풍석의 방향을 시작부터 아래로 향하게 만들뿐. 그리고 풍석을 좀 많이, 황금으로 된 배를 띄울 정도로 많ㅡ이 제작해서 붙여둘 뿐이에요.”

     로버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설마.”

     “네. 이건….”

     “내가 말하지, 소장.”

     나는 바토리 소장의 시선을 받으며, 로버트 경을 향해 손으로 허공에 글자 하나를 적었다.

     “기술의 발전은, 드디어 인류를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거라네.”

     “…비행선?”

     “그렇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새로운 충격.

     “세상 모든 걸 경험해봤다고 해도, 배가 하늘을 나는 건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을걸?”

     호기심은 고양이, 아니 무능왕을 죽인다.

     “그것도 황금으로 된 배가 하늘을 나는데, 그 자가 이걸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땅을 달리는 마도자동선도 신기하다고 나에게서 훔쳐간 작자다.

     “비행선을 참으면, 그건 분명 뭔가 다른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걸로 해석하면 되는 일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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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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