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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8

   전투가 다시금 이어진다.

   

   그 양상은 이전과 비슷하다.

   

   해골은 공격하고 나는 그걸 방어한다.

   

   달라진 점은 오롯이 하나. 내 귓가에 들려오는 할배의 목소리뿐이다.

   

   <여아야. 실력 있는 자들이 다들 하나 같이 정석을 강조하는 이유를 기억하느냐?>

   ‘알죠! 할아버지가 지겹도록 잔소리했으니까!’

   

   모든 이들이 정석이라 부르는 것은 그 분야에서 기본이 되는 존재이며 그 위에 무언가를 쌓기 위한 토대다.

   

   만일 이 정석을 갈고 닦는 과정을 무시한 채 그 위에 건물을 세우게 되면 얼핏 보기에는 빠르게 세워지는 것처럼 보여도 머잖아 우르르 무너져 내려 노력한 것보다 못한 꼴이 되고 말지.

   

   나는 할배에게 이에 대해서 지겹도록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고수들이 정석을 강조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며 내가 꼼수로 숙련도를 올릴 때마다 잔소리를 하는 데 어찌 이를 잊을까.

   

   <가라드를 흉내 내는 해골…이라고 말하면 길군. 대충 가라드라 하자꾸나. 어쨌건 저 놈이 사용하는 검술은 이 정석의 극치다.>

   

   할배가 말한다.

   

   가라드의 검은 특출난 구석이 없다고.

   

   저를 맞상대하며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나이니만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말이 먼저 튀어나와야 할 터이다만.

   

   난 할배가 하는 이야기가 뭔지 알 것만 같았다.

   

   해골이 내지르는 검은 빠르지 않다. 프레이의 특기인 쾌검을 통한 압박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지.

   

   그렇다고 검이 무겁지도 않다. 알른 가문의 기사단에서 보았던. 상대에게서 방어라는 단어를 앗아가 버리는 위압감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그럼 화려한가? 전혀. 그의 검은 지독할 정도로 수수하고 실리적이다.

   

   이외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가라드의 검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런데 강하다.

   

   너무나도 강해서 어떻게 뚫어내야 할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항상 있어야 할 곳에 검이 있어서 도저히 앞으로 발을 내딛을 수가 없다.

   

   <저 녀석은 그 평범한 검으로 영웅의 일각이 되었으며 당대 최강의 기사라 불렸다. 왜인지 아느냐?>

   ‘몰라요!’

   <다른 이들이 토대의 위에 건물을 지을 때 저 녀석은 계속 토대를 쌓아 올리기만 했거든.>

   

   세상에 알려진 여러 특출한 검술은 일종의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무시무시하게 높은 빌딩이거나.

   

   어디를 둘러봐도 들어갈 구석이 보이지 않는 성이거나.

   

   빠져나갈 길이 없는 미로거나.

   

   마구잡이로 지어졌으나 이상할 정도로 튼튼한 집이거나.

   

   헌데 가라드의 검은 건축물이 아니다.

   

   토대다.

   

   바닥에 흙을 쌓고 쌓고 또 다시 쌓아서 다른 건물들과 비슷한 높이의 언덕을 만들어 냈으니.

   

   가라드는 건물을 짓는 대신 산을 쌓아버린 것이다.

   

   <그 정신 나간 짓거리를 성공한 끝에 이루어 낸 성과가 무엇인지 아느냐? 저 놈은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상대를 자신의 전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

   

   드높은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것이 보인다.

   

   빌딩의 허약한 지점이.

   

   성의 불안한 부분이.

   

   미로의 지도가.

   

   막 지어진 집의 기둥이.

   

   그렇기에 공략할 수 있다.

   

   상대의 강점을 짓누르고 약점을 파고들어 답답해진 상대가 건물 바깥으로 뛰쳐 나오게 만들어서는 자신의 압도적인 높이로 짓누르는 것이다.

   

   <이것이 네가 무력감을 느꼈던 이유다. 정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높은 산은 그 자체로 절망감을 주거든.>

   

   할배의 설명을 이해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정작 내 머리는 조금도 상쾌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요!’

   

   가장 필요한 것.

   

   어떻게 저를 쓰러트려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듣지 못했으니까.

   

   날 숨 막히게 하는 상대를 찬양하는 할배의 말에 짜증이 나서 소리쳤더니 할배가 웃었다.

   

   <산이 있으면 올라야지. 묵묵하게 오르다 보면 언젠가 정상이 보이잖으냐.>

   ‘그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에요?!’

   

   아니 진짜 저게 무슨 소리야?!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로 잘린 말이 가득하잖아!

   

   머리가 순간 멍해져서 소리를 내질렀지만 할배에게선 답이 없다. 꼭 해야 할 말을 다했다는 것처럼.

   

   갸아아악!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이 제멋대로 요약해서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다니!

   

   할배! 당신 허접 주신을 모시는 사람이라고 상대 복창 터트리는 것까지 닮아가는거에요!?

   

   서서히 동화 되어 가는 거라면 나중에는 아주 허접주신마냥 변태가 되어서 허엌ㅋㅋ 헠ㅋㅋ 거리고 있겠네!

   

   …그럼 내 주변은 변태로 가득 차 버리는 건가?!

   

   안 돼! 그런 끔찍한 미래는 받아들일 수 없어!

   

   머리에 열이 올라 헛소리를 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해골의 검을 놓쳐 버렸다.

   

   뒤늦게 철벽의 경고를 듣고서 방패를 올리지만 해골은 자세를 잡는 걸 허락해 줄 정도로 허술하지 않으니.

   

   불안정한 자세에서 해골의 검에 얻어맞은 나의 몸이 허공을 날아서 바닥에 처박힌다.

   

   입 안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이젠 말할 틈도 없나 보지? 하. 그 자그마한 입이 틀어 막힌 걸 보니 즐겁구나.”

   

   해골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충격전환으로 신성이 차오른 게 느껴지는 걸 보면 제대로 얻어맞은 모양이야.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고는 아르마디의 손길로 스스로를 치유했다. 안키르가 신성의 격을 올려준 덕분에 내 몸 상태는 빠르게 만전으로 돌아왔다.

   

   “보고만 있을 텐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몸이라 조금 부끄럽다만?”

   

   놈의 너스레를 무시하며 할배의 말을 되새기지만 쉽게 답은 나오지 않는다.

   

   고등학교 다닐 때를 빼면 언덕을 올라본 적이 없는 나한테 등산을 하라고 해도 말이지.

   

   “체념했나?”

   

   그나마 떠오르는 건 하나다.

   

   회사에서 노예취급 당할 적에 부장이 달고 살던 말.

   

   그 대머리 돼지는 만날 산이란 건 땅을 보고 걷다 보면 어느새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이라 그랬어. 일도 마찬가지니까 묵묵히 일하면 야근도 금방 끝날.

   

   …어라?

   

   잠시. 잠시만.

   

   “이 정도군.”

   

   가만 생각을 하다가 머리가 상쾌해져서 헛웃음이 샜다.

   

   하. 지 혼자 퇴근하면서 저딴 말을 지껄일 때마다 패죽이고 싶었는데. 그게 지금에 와서야 도움이 될 줄은.

   

   “…흠?”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와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자니 해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성했다 생각하는 걸까.

   

   뭐어. 어찌 생각하든 별 상관은 없지.

   

   몸 안에 돌아다니는 신성을 정비하고 메이스와 방패를 다잡았다.

   

   “호오. 포기하지 않은 건가? 역시…”

   “시끄러♡ 고자 해골♡”

   

   처음에 할배는 말했다. 나의 전략에는 틀린 것이 없다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서 보증하겠다고.

   

   “좆이 없어져서 수컷 탈락해 버린 거야?♡ 재잘재잘 거리는 게 꼭 말 많은 아줌마네♡”

   

   내 전략이 옳다면.

   

   내가 올라가고 있는 등산로가 맞다면.

   

   정상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주변을 둘러볼 필요는 없다.

   

   나아갈 길만을 바라보면서 발을 움직이는 것으로 족하지.

   

   “지금이라도 새로운 성정체성을 찾아볼래?♡ 드레스 꺼내서 줄 테니까 입어와!♡ 어차피 한 가운데가 텅 빈 해골이라 아무도 이상함을 못 느낄 거야!♡”

   

   이 해석이 맞다면 할배의 말은 결국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란 소리였다.

   

   하던 대로. 먹힐 때까지. 계속해서 나아가라고.

   

   만일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땅을 내딛는데 힘을 더하기만 하라고.

   

   네가 택한 길을 믿으라고.

   

   “영웅 가라드와 드레스인가~♡ 푸하핫!♡ 엄청 잘 어울릴지도?♡”

   “…그래. 네 녀석이 입을 열 틈을 준 내가 잘못이구나.”

   

   이 해석이 옳은지 아닌지는 모른다. 어쩌면 정상이 아니라 절벽으로 나아가는 걸지도 모르지.

   

   근데 뭐 어때. 내가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려고 그러면 할배가 다급하게 소리를 내질러 줄 거 아냐.

   

   그럼 그 때가서는 할배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탓이라고 따지면 돼.

   

   “그걸 이제야 알았어?♡ 머리가 텅 비어서 생각도 느리구나?♡ 고자에 병신이라니♡ 풋♡ 불쌍해라♡”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내질러진 검을 받아낸다.

   

   가파른 등산길에 오를 시간이었다.

   

   *

   

   평소 항시 루시의 곁에 있는 루엘이 생각하기에 루시가 지닌 무재는 진짜였다.

   

   수많은 고행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가르쳐 줄 때마다 빠르게 받아들이는 그 습득력은 분명 그녀에게 영웅이 될 자질이 있음을 증빙했지.

   

   허나 루시에게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루시가 너무나도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신의 사랑을 받아 간택되어 하늘에서 직접 이야기를 듣는 루시가 지닌 지식은 수많은 경험을 해 온 루엘조차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루시가 이 방대한 지식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 다룬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필요한 순간에 최적의 지식을 꺼내 들었고 그를 통해 제일 빠르고 안전한 길을 만들어냈다.

   

   루시가 위험을 극복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의 용사가 저만큼 유능했다면 참 좋았겠단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던가.

   

   허나 이러한 지식은 때로 루시를 위험에 빠트리기도 했다. 그녀의 지식이 너무도 유용했기에 그 지식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카론 그 미친년이 만들어낸 저 해골은 한없이 가라드와 닮아 있었다.

   

   가라드와 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그조차도 순간 착각해버릴 정도로.

   

   해골이 다루는 검술도 마찬가지였다.

   

   해골의 검은 가라드의 검이 지닌 장점과 단점을 똑같이 지니고 있었다.

   

   앞서 루엘은 루시에게 가라드의 검에 약점은 없다고 말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라드 본인의 경우다.

   

   압도적인 체급으로 모든 걸 찍어누를 수 있는 가라드의 검에는 분명 약점이 존재치 아니했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압도적인 체급이 뒷받침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상대를 짓누를 체급이 없다면 가라드의 검은 약점이 아니라 장점이 없는 검이 되어버리고 만다.

   

   지금 저 해골 같은 경우가 그러했다.

   

   본래 지니고 있던 막대한 마력을 빼앗기고. 부족한 악신의 기운으로 아슬아슬하게 움직이고 있는 해골의 체급은 한없이 낮다.

   

   수많은 사선을 넘으며 쌓아 온 전투 경험으로 루시를 압박하고 있지만 그 뿐.

   

   순수한 체급 자체는 루시와 비슷하지.

   

   그러니 꾸준히 자신의 전략을 고수한다면 이길 수는 없을지라도 한 방을 먹이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실제로 전투 초반에는 루시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해골이 지닌 버릇을 완벽히 암기하고 있는 듯한 움직임으로 해골을 몰아 붙였지.

   

   어지간한 상대였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루시가 지닌 특유의 어투로 감정을 뒤흔들어 버리면 상대는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한 채 무작정 돌격을 반복하다 박살나버릴 테니까.

   

   허나 이번 상대는 어지간하지 않았다.

   

   수많은 전장을 넘어섰던 가라드의 기억을 지닌 해골이다.

   

   녀석은 분노 속에서도 문제를 파악했고 자신의 검을 바꾸는 것으로 루시의 지식을 파훼해 버렸다.

   

   그 때부터 상황이 뒤집혔다.

   

   자신의 지식이 무용해짐에 따라 루시가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감정적으로 휘말려 버린 그녀는 해골이 바라는 대로 놀아나게 되었다.

   

   루엘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처참한 패배를 겪는 것으로 문제를 인지하게 만들기 위해서.

   

   루시는 영웅이 되고자 하는 아이가 아니다. 영웅이 되어야만 하는 아이다.

   

   지금 나의 도움으로 해골을 쓰러트려봐야 언젠가 다른 강자를 만나 같은 방식으로 목숨을 위협당할 터.

   

   그럴 바에야 목숨을 잃을 걱정이 없는 이 곳에서 패배하는 편이 낫다. 라고. 루엘은 생각했다.

   

   이런 루엘이 생각을 바꾼 이유는 별 것이 아니었다.

   

   방패를 다잡는 루시의 모습이 너무도 분해 보였기에.

   

   그리고 자기 손녀 같은 아이를 괴롭히는 빌어먹을 샌님이 짜증났기에.

   

   지극히 감정적인 판단이었다.

   

   그래서 루엘은 루시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면서도 이래선 안 됐다고 후회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왜 자꾸 다리를 훑어보는 거야?♡ 고자라 세울 것도 없잖아?♡ 아! 혹시 생전의 버릇이 남은 거야?♡ 영웅님께서는 어마어마한 변태였구나?♡”

   “…적당히 해라!”

   

   루시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자신이 걷는 길이 맞다고 굳건히 믿고서.

   

   위로. 위로. 또 다시 위로.

   

   정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미 전투의 주도권은 뒤집힌 지 오래다.

   

   루시가 느긋하고, 해골이 급하다.

   

   저래선 안 된다.

   

   힘이 부족한 해골은 루시의 방패를 뚫을 능력이 없다.

   

   그러니 틈을 만들어 내어 활로를 열어야 하거늘 루시의 도발에 휘둘려 무작정 내달리고 있었다.

   

   하. 이렇게 잘 하는 녀석이 방금 전에는 왜 그랬던 것인지.

   

   고칠 줄 알았다면 진즉에 고치란 말이다.

   

   뭐어. 저 확신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긴 하다마는 그것은 내가 서서히 가르쳐주면 될 문제이니.

   

   지금은 여기에 만족하도록 하자꾸나.

   

   <여아야.>

   ‘뭔데요! 할아버지! 짧게 말해주세요!’

   <키다. 키를 가지고 공격해라. 놈은 자기 주변사람들에 비해 작은 게 콤플렉스였다.>

   ‘…그거 참 도움이 되는 조언이네요!’

   

   그럼 이제 맘 편히 가라드와 닮은 해골이 놀림당하는 것이나 구경하도록 할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을 잇다 보니 약간 늦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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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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