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58

    <258 – 인간지뢰>

     

    안데르센 대공자는 내심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서부귀족연합의 1인자.

    변방귀족파 남학생들의 수장.

    제국 3대공신가문의 자제들에게 맞서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같이 무거운 짐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에게 부담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잘못 고른 지뢰강의들이었다.

     

    “지금부터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는 30m 모형 탑에서 뛰어내려라.”

    “예?”

    “다리가 부러지든 멀쩡하든 착지만 하면 이번 강의 실기평가는 합격이다. 물론 <전신 마르크>를 믿으면 다치지 않고 내려올 수 있지.”

    “…”

    “신앙의 길에 귀의하지 않겠다면 신성 없이도 자신의 육체가 훌륭한 전사라는 사실을 증명해라!”

     

    매 강의시간마다 신앙심을 강매하는 <믿음 없이 신성술을 쓰는 법> 강의.

     

    “자, 오늘은 그냥 맨바닥에서 자도록 해요.”

    “정말입니까? 물이 차오르는 집중호우주간에 나무 위에 매달린 채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나무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잠들지 않아도 됩니까?”

    “반대로 오늘은 마나를 최대한 감추도록 노력해야 할 겁니다. 바닥에 마나를 감지하면 솟구쳐서 먹이를 물어뜯는 웜을 풀어놓았거든요.”

    “…”

    “참고로 이 웜은 먹이를 사냥할 때 크와앙 하고 울부짖는답니다. 웜이 울면 누군가는 들켰다는 뜻이니까 즉시 깨어나서 공격을 피해야겠죠?”

     

    단 한 번도 마음 편하게 자본 적이 없는 <어디서나 잘 자기> 강의.

     

    “예로부터 병법에 이르기를 도주야말로 최고의 병법이라 하였고, 백번 말하고 듣는 것이 한 번 실천함보다 못하다는 격언도 있었다.”

    “…그래서 저희 강의에 치료사가 여섯 분이나 오신 이유가 뭡니까?”

    “도주도 잘 쳐본 사람이 잘하는 것. 도주경로를 잘못 잡거나 발이 느린 사람은 공부가 잘못 되었거나 실전에 약한 탓에 실제로는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발전하려면 죽을 것처럼 아픈 경험을 해야겠죠?”

    “…”

     

    뒤를 쫓는 교관들에게 붙잡히면 숲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게 되는 <삼십육계 줄행랑> 강의까지.

    안데르센 대공자 본인의 강의선택안목이 처참하리만치 나쁜 것과는 별개로 이놈의 강의들의 난이도가 너무 빡셌다.

    선배들의 조언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로!

     

    “안데르센.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아카디아 영애는 모르겠지. 우리와 같은 강의를 듣지 않았으니 이 절박한 마음을.”

    “안데르센의 수강신청 리스트만 봐도 본인의 고집을 굽히는 편이 본인에게도 이로울 것 같지만… 본인이 원한다면 어쩔 수 없죠. 목표를 이루길 바랄게요.”

     

    서귀연 학생들이 대거 기권하는 와중에도 안데르센 대공자를 따라 수강신청을 한 불쌍한 귀족들은 끝까지의 그의 곁을 지켰다.

    안데르센 대공자를 따른다는 잘못된 선택을 한 어리석은 이들의 수는 무려 넷.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피로가 가득하여 다크써클이 눈두덩이 가득 드리웠다.

     

    “오. 여기 1학년들 좀 봐.”

    “제법 싹수가 있는데?”

    “피로에 찌든 눈. 마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반강제로 살기 위해서 발달된 근육. 심신이 피로에 찌들어 자연스럽게 새어나오는 살기까지. 2학년 급인데?”

     

    1학년들을 무작정 괴롭히던 3학년들도 이 싹수 바른 후배들의 모습에 섣불리 접근하지 못했다.

     

    “얘들은 잘못 건드리면 우리 졸업하거나 퇴학당하기 전에 경지가 역전 되어서 복수당하지 않을까?”

    “좀 무섭네.”

    “변방귀족들이 제국귀족들보다 배짱이 좋다니. 쯧. 이번기수는 강자가 거꾸로 나오겠어.”

    “바르크사르 녀석은 저쪽에서 1학년 학년수석한테도 손대려고 하던데?”

    “그래서 1학년한테 탈락 당했잖아. 쯧쯧. 3학년의 수치 같은 녀석. 우린 저러지 말아야지.”

     

    당장 힘으로 강제해서 이득을 취할 수는 있지만 성장세가 너무 빠른 탓에 후환이 두려운 후배들!

    그런 애매한 평가 덕분에 운 좋게도 멀쩡히 있을 수 있던 서귀연 일동에게 마침내 그들이 기다리던 인물이 다가왔다.

     

    “안데르센? 설마 도이치 왕국의 프레첼 대공가문의 차남인 안데르센 프레첼이냐?”

    “오랜만에 뵙습니다, 벨벳 공. 이제는 벨벳 선배라고 부르는 편이 좋겠습니까?”

    “하하. 편한 대로 불러도 좋다. 올해 입학한다던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만 설마 대운동회에서 얼굴을 보게 될 줄은.”

    “아카디아가 많이 보고 싶어 할 텐데 아쉽게 되었군요. 함께 찾아오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그 아이는 영리하니까 실수를 적게 하지.”

    “…? 그 말씀은 저희는 실수를 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부족한 실력에 용케도 자발적으로 기권했다는 뜻이란다.”

    “아하. 서귀연의 동지들 앞에서 아카디아보다 제가 낫다고 칭찬을 해주신 겁니까? 그래도 아카디아의 앞에서는 참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와는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으니까요.”

    “많이 컸구나. 어딜 가든 대접이나 받겠다고 응석부리던 녀석이 남의 기분을 다 신경 쓰고.”

    “선배님도 3학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피부가 곱고 표정에 여유가 느껴지십니다. 다른 3학년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강함을 지닌 덕분이겠죠?”

     

    안데르센의 눈에 기대감이 담겼다.

     

    “선배님. 위험을 무릅쓰고 대운동회 3학년과의 대결에서 남은 것은 긴히 드릴 부탁이 있어서입니다. 푸른 피를 잇는 귀족의 인연으로 귀여운 후배가 부디 도움을 청합니다.”

    “후후. 이번에는 어떤 응석을 부릴 셈이냐? 우리 가문에 처음 놀러왔던 때처럼 손님대접용 과자를 리필해주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이를 셈이냐?”

    “…그건 14살 때의 일이 아닙니까. 식탐 많던 어렸을 때의 일은 그만 잊어주십시오.”

     

    안데르센을 따라왔던 귀족들이 눈짓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14살이 그렇게 어린 건 아니지 않나?’

    ‘지금의 오크노디보다도 나이가 많은데.’

    ‘조용히 해. 그러다 대공자님이 삐져서 우리는 안 도와주겠다고 하시면 어떡해.’

     

    벨벳 선배는 후후 웃으며 느긋하게 물었다.

     

    “그래, 먹보야. 이번에는 무엇이 욕심이 나더냐?”

    “기말고사의 족보를 얻고 싶습니다. <믿음 없이 신성술을 쓰는 법>과 <어디서든 잘 자기>, <삼십육계 줄행랑> 강의가 아니라면 필수공통강의 족보라도…”

    “어디서 변장한 4학년한테 속기라도 했니? 어떻게 골라도 그딴 강의만…”

    “…저희 수강내역이 그렇게 심합니까?”

    “1학년이 1학기에 들을 수 있는 강의 중에는 제일 지독한 것만 골라서 들었구나.”

     

    저희라는 말에 뒤에 있는 친분도 시원찮은 후배들은 왜 덤으로 딸려있는지 이해한 벨벳이 안데르센만큼 딱한 것들을 바라보는 눈으로 동정심을 보였다.

    동급생이 아닌 상급생에게, 그것도 귀족선배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받을 줄 몰랐던 그들은 괜히 눈가가 뜨거워지고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안데르센 대공자만 따라가지 않았다면 이런 개고생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알려주마.”

    “정말입니까?”

    “선배 좋다는 게 이래서 좋은 거 아니겠니? 심지어 우리는 같은 서부를 대표하는 귀족인데… 필요할 때에는 은혜를 베풀어야지.”

     

    생각지도 못한 상냥한 환대에 이제는 안데르센 대공자마저 진심으로 감동받았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나선 것이지만 벨벳 선배가 이렇게까지 잘 대해주실 줄이야!

    자신만 믿고 따라왔다가 단단히 재난을 겪는 귀족동지들의 얼굴을 볼 낯이 없었는데 이제야 세력장으로서의 체면이 선다.

     

    “멈추세요!”

     

    오크노디의 등장만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기쁘게 끝났을 순간이었다.

     

    “…덤벨? 아니, 어째서?”

    “3학년 선배의 것을 뺏어 탔어요!”

    ‘덤벨이 왜 하늘에 떠있냐고 물은 게 아니라 비행마법은 어떻게 알고 있냐는 물음이었는데…’

     

    뭐가 됐든 오크노디의 박식함이 통상의 1학년과는 진도가 맞지 않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오크노디. 아카디아가 너를 아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자리는 서귀연의 귀족들이 재회의 기쁨을 가지는 자리다. 외인이 함부로 나서서 방해해도 좋을 자리가 아니야.”

    “그런 물러터진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지뢰강의만 쏙쏙 골라서 듣죠!”

    “뭣…!”

     

    명치에 비수가 꽂힌 것처럼 일그러지는 안데르센 대공자의 얼굴.

     

    “오크노디, 말이 심해!”

    “대공자님이 저주받은 안목의 소유자라고 해도 면전에서 당신은 저주받았다고 말해도 되는 건 아니야. 넌 사제가 아니잖아!”

    “세상에, 오크노디. 조금은 자제심이라는 것을 지니렴. 아무리 대공자님이 입을 여는 족족 끔찍한 재난만 불러오는 파멸의 주둥아리를 지녔어도 걸어 다니는 인간지뢰남은 너무하잖니.”

    “엣. 저 그렇게까지 심한 말은 안했는데요.”

    “아무튼 사과해!”

    “죄송합니다…?”

     

    혼란을 틈타 본심을 은근슬쩍 드러내며 대공자의 체면을 지키겠다고 실드를 친다는 명목 하에 대공자를 실드로 후려치는 서귀연 멤버들!

    그들이 불쌍하기는 해도 아닌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는 똑 부러지는 오크노디는 재차 그들을 말렸다.

     

    “왜 그렇게 우리를 방해하지 못해서 안달이야?”

    “벨벳님은 천사야. 족보를 알려주신다고 했다고!”

    “설마 너도 같이 듣고 싶어서 그래? 아카디아 영애의 체면을 챙겨준 너라면 괜찮겠다 싶긴 한데.”

     

    대공자도 서귀연 멤버들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981기 서귀연의 1인자로서 그녀를 지켜준 네 정성에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족보야 얼마든지 공유해줄 수 있으니 방해만 하지 말아다오.”

    “마음은 감사한데 그거 받으면 안 되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도요!”

     

    오크노디는 오랜만에 멋지고 늠름하고 아름다운 귀족선배를 만나 긴장이 풀어진 이 철부지 귀족 남학생들이 간과하고 있던 사실을 짚어주었다.

     

    “빚을 지우는 대가로 여러분에게 무슨 부탁을 할 줄 알고 부탁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들어주셔야 할 건 귀족가의 빚이 아니라 3학년의 빚인데!”

    “…!”

     

    귀족이 아닌 3학년의 빚.

    공포감이 몰려오는 단어선정이다.

    안데르센 대공자와 서귀연 멤버들은 온화했던 환상이 깨지며 섬뜩한 현실감에 사로잡혔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