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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9

       세계수 견학은 매년 있는 유구한 전통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 일정이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두 차례에 걸친 해룡의 습격으로 인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 공사가 한창인데 세례식을 열겠다고요?

       – 안 될 일입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국회에서 그런 얘기가 오가고 했다던데.

       

       솔직히 알 바는 아니었다.

       

       견학이 취소되는 일은 결국 없었으니까.

       

       “이곳이 브륄리움 섬으로 들어가는 게이트입니다.”

       

       안내인이 나타나 주변 풍광을 소개했다. 에테르는 학생들을 이끌고 천천히 발을 옮겼다.

       

       “우와….”

       

       가까이서 세계수를 본 학생들은 너도나도 탄성을 내질렀다.

       

       섬은 또 하나의 세계였다. 정령들이 사는 세계. 마치 고요한 수목원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 분위기가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다.

       

       부유한 집 자식들은 사진기를 가져와 찰칵거리기 시작했다. 영거리에서 본 세계수의 크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에테르도 내색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대자연의 웅장함에 적잖이 놀랐다. 

       

       안내인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계수의 밑동 둘레만 8.5km에 달합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을 전부 수용하고도 남는 크기이죠. 또한 여신님의 은총 덕분에, 세계수는 보통 나무와는 달리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생장하였답니다.”

       

       안내인은 그리 말하며 입장 전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테르는 그동안 출석을 부르기로 하였다.

       

       자신이 맡은 학생이 1백 명에 이른다. 오늘 여기서 한 명이라도 변고가 생기다면 마수라는 의심이 커질 것이다.

       

       “…….”

       

       조졌다. 한 명이 안 보인다.

       

       “버멜 호르데는 어디 갔지?”

       

       학생들은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평소 붙어다니던 로테와 프레이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맺히려던 찰나.

       

       “버멜은 르네이 총장을 따라갔어.”

       

       아카샤가 다가와 그리 소곤거렸다.

       

       “뭐? 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해서. 어차피 우리 정체를 알고 있으니까, 여기 없는 게 더 낫잖아?”

       

       보고를 받은 에테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실을 따라갔다면야, 사라졌다고 해서 오해받을 일은 없겠지.

       

       “아, 그리고 걔가 말이야….”

       

       아카샤는 더욱 언성을 낮추었다.

       

       “호롱불과 그림자를 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어.”

       “그게 뭔….”

       

       갑자기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릴 하고 있어.

       

       “언니한테 말하면 바로 알아듣는다고 하더라.”

       “알아듣긴 했지.”

       

       호롱불, 그리고 그림자라.

       

       이 두 가지는 창천(蒼天) 파스모를 상징하는 단어다. 버멜의 말은 곧 파스모를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몰라.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

       

       아카샤는 그 말을 끝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표면상의 동료인데도 뒤통수를 걱정해야 한다니. 세상이라는 게 각박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문득, 얼마 전 마왕성으로부터 온 답신이 떠올랐다. 에테르가 받은 편지는 총 두 개였다.

       

       [아직 결전병기가 전부 제작되지 않았습니다. 빨라도 6월 말에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까지 저희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니, 상천께서도 들키지 말고 몸 성히 있으시길.]

       

       이것이 첫 번째 편지의 내용. 파스모와 길라흐가 공무로 보낸 것인지라 딱딱한 어조로 쓰여있었다.

       

       문제는 두 번째 편지였다.

       

       [동봉된 또 다른 편지는 길라흐가 작성했다. 그는 오만하고 방종하며 시기심이 많으니 해당 편지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 놈은 공적을 치하받기 위해 해룡을 움직여 세계수를 생매장할 계획이다.]

       

       “미친 새끼들.”

       

       마왕이 부활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편지 내용만 보면 정말 위험한 것 파스모다. 파스모는 두 차례 해룡의 습격을 근거로 에테르를 설득하려 하고 있다.

       

       누가 이런 거에 낚일 줄 알고?

       

       버멜이 ‘호롱불’과 ‘그림자’를 조심하라고 했다. 길라흐의 성격은 자신도 잘 안다. 길라흐는 생각보다 단순하게 움직인다. 그러니 오히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파스모를 경계하는 것이 정답이다.

       

       “놈이 머지않아 사고를 치겠군.”

       

       에테르는 편지 내용을 되뇌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무래도 피곤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브릴뤼움 섬의 북쪽에는 조면암으로 이루어진 주상절리가 있다.

       

       세실은 이곳에서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수백 명의 마도사 집단이 스태프와 스크롤을 점검하며 대기 중이었다.

       

       그때 전령이 다가와 세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버멜 호르데라는 학생이 총장님을 뵙길 청합니다!”

       

       버멜 호르데라니?

       

       호르데라는 성씨는 처음 듣는다. 아마 하이엘프는 아니겠지. 그렇다고 레니냐처럼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것도 아니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군요.”

       “어떻게 할까요? 돌려보낼까요?”

       “잠깐만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세실이 고민하던 사이, 마도사 중 하나가 다가와 속삭였다.

       

       “그 학생이 실은 인간형 마수일지도 모릅니다.”

       “어허,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세실은 도리질을 쳤다.

       

       “인간형 마수라기엔 찾아오는 방법이 조악하잖아요.”

       

       아무리 복잡한 시기라지만, 모든 걸 의심으로 때우는 건 부적절하다.

       

       무언가 용건이 있어 찾아온 것이겠지. 마침 해룡을 기다리느라 심심하던 참이었다. 세실은 손을 휘적거렸다.

       

       “일단 데려와 보세요.”

       

       얼마 후 남학생 하나가 절리로 들어왔다.

       

       “버멜 호르데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키는 훤칠하고, 얼굴은 반반한 학생이었다.

       

       전반적으로 깔끔한 첫인상이었다. 마수라고는 느껴질 수 없을 정도로 선해 보이는 건 덤이다.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세실은 선인과 악인은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아스테야가 회색지대라면, 버멜은 명백한 선인이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에게 무슨 용건이라도 있나요?”

       

       세실은 스태프를 거둔 채로 물었다.

       

       혹시 길치라서 여기까지 온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마도사를 하나 시켜서 보내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런 예측은 제대로 빗나가고 말았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계시죠?”

       “…….”

       “해룡.”

       

       해룡(海龍),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세실의 귓가에 내리꽃혔다. 세실은 벙찐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곧 평정을 되찾았다. 이미 리바이어던의 습격을 두 번이나 받았으니, 그 정도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맞아요. 저희는 오늘 해룡이 나타나진 않을까 경계하고 있어요.”

       “그래도 총장님께서 직접 나오시다뇨.”

       “우리 아카데미 학생들이 견학을 온 건데 당연히 제가 뒤를 봐주어야죠.”

       

       세실은 사무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끼쳤다. 버멜의 눈동자가 예사 눈동자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하이젠버그 교수님 말이죠.”

       

       전조도 없이 튀어나온 이름. 세실은 속으로 뜨끔했다.

       

       “…아, 혹시 교수님 반 학생인가요?”

       “네.”

       “교수님이 심부름을 보내셨나 보네요.”

       

       아스테야가 뭔가 전할 말이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버멜이 찾아온 이유가 도저히 생각나질 않았다.

       

       그리고 버멜은 이번에도 세실의 예상을 바닷가의 조개껍데기처럼 뒤집어버렸다.

       

       “총장님께선 하이젠버그 교수님과 해룡 리바이어던의 관계를 의심하시고 계시군요.”

       “…….”

       

       세실은 석화 광선을 맞은 것처럼 얼어붙었다.

       

       ‘얘가 사람 마음을 읽나?’

       

       오죽하면 고유마도에 독심술이 있는 줄 알았다. 세실이 알기로, 남의 심정을 읽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일단은 잡아떼는 길을 선택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저는 총장님께서 교수님을 의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버멜은 다른 사람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 그러나 말의 각 어절에는 모래주머니가 달린 것처럼 무게가 있었다.

       

       “…이쪽으로 와 보세요.”

       

       세실은 버멜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어떻게 알았죠? 제가 하이젠버그를 의심한다는 걸….”

       “얼마 전 2차 습격이 있었을 떄, 교수님과 총장님이 기숙사 옥상에서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누구한테요?”

       “유피엘 피어바인과 레니냐입니다.”

       “…계속해 보세요.”

       “저는 당시 서쪽 건물에 있었습니다. 하늘에 반짝거리던 불빛을 보았죠. 얼마 안 가 그 광원이 북쪽에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세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학생이 자신과 똑같은 추리를 했었다니.

       

       “그 불빛은 하이젠버그 교수님께서 보내신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폭우가 쏟아진 이후에 만드신 거라고 하시더군요. 교수님께서 제를 지냈으면 지냈지, 그 도구로 해룡을 조종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정보는 어디서 들었죠?”

       “해당 기숙사에 있던 사람들에게서요.”

       

       세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동안 세실은 의심하느라 주변 사람에게 물어볼 생각을 안 했었다. 괜히 물었다가 저번처럼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렇다. 자신이 영입한 교수를 스스로 마수라고 의심한다? 이것보다 추한 짓이 어디에 있다고.

       

       그런데 지금, 이해자를 만났다. 그래서인지 입맛이 카카오를 씹은 것처럼 씁쓸해졌다.

       

       “학생, 이름이….”

       “버멜. 버멜 호르데입니다.”

       “저보다 나은 식견을 가졌군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세실은 거짓말은 잘 못하는 성격이다. 학생 상대로 시치미 떼고 싶진 않았다.

       

       “좋아요, 호르데 군. 학생의 말은 새겨들을게요. 이제 이걸로 용건은 끝인가요?”

       “아니요.”

       

       버멜은 언성을 높여 말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저도 해룡과 싸우게 해 주세요.”

       

       그 순간이었다.

       

       툭, 툭, 투툭.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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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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