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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9

       “레오, 인사드리세요. 아제르나 제국의 귀하신 황녀분들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그레이스 남작가의 장남, 레오 그레이스라고 합니다. 고귀한 혈통의 두 분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 말에 레오는 정중하게 두 황녀에게 인사했다. 그야말로 ‘신사’의 표본과도 같은 자세였다.

        

       나와 앨리스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내가 말하고 있는 ‘처음 만났을 때’는 시간을 돌린 이후가 아니다. 시간을 돌리기 전,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이 되기 전’을 말한다. 나, 그리고 앨리스 두 사람을 모두 확실하게 황녀라고 인식하고 있던 레오는 우리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었다.

        

       특히 나를 대놓고 언니라고 부르면서 말을 놓고 지내는 클레어 때문에 레오가 속앓이를 많이 했다. 머리가 빠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로.

        

       원작에서도 초반에는 앨리스와 얽힐 때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었고, 그게 어느 정도 개그 요소였으니 이해할만했다.

        

       하지만 지금 레오의 얼굴에 그런 면이 보이지는 않았다. 클레어와 앨리스에게 인사하는 레오의 표정은 무척 침착했다.

        

       이 시열대에서도 레오가 두 사람을 완전히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검술에만 매진했던 클레어와 다르게 나는 내 재능을 조금은 다른 쪽으로 옮겼다. 이렇게 보여도 시간을 돌려가며 열심히 공부했던 나다. 시험 문제를 전부 외우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이해할 때까지 몇 번이고 수업을 되풀이해서 듣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도 쭉 그렇게 해왔다.

        

       덕분에 어린 시절에 배우는 내용은 이미 대부분 학습해서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저 시험용으로 벼락치기 공부만 했다면 기억하지 못해 다시 시간을 돌려가며 복습해야 했겠지만, 이미 제대로 배우고 넘어간 것들이 많아서 굳이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릴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잊은 사소한 것들을 위해서 한 두 번 정도는 되돌리긴 했지만, 아무튼.

        

       ‘검술’이 아니라 ‘공부와 교양’으로 그레이스 남작 부부의 눈에 들었고,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남작 영애로 자랄 수 있었다. 황궁에서처럼 사격 연습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남는 시간에 제대로 된 귀족의 교양을 연습했다.

        

       그레이스 남작가의 작위가 이전 황제에게 직접 사사받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집안의 영애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황녀’를 직접 만나러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황족을 만나기 위해서는 명분이 있어야 했다. ‘친분’이라는 명분을 쌓기 위해서는 일단 얼굴을 마주한 적이라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 연회였다.

        

       귀족들이 연회에 꼬박꼬박 참여하는 이유는 그런 식의 친분과 명분을 쌓기 위해서다. ‘사교회’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눈치와 말로 싸우는 전장 같은 곳. 사소한 약속 하나도 하나하나 계산해서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가 그런 곳에 열심히 드나들면서 유명해지면, 이전에는 그런 쪽에 전혀 관심 없던 클레어나 앨리스도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남작’영애가 이름을 날리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얼굴이 예쁘고 또래보다 몸매가 좋아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레이스 가는 황실과 가까운 가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특출난 무언가가 있는 곳은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이런 쪽보다는 검술로 더 유명한 곳이었고.

        

       내가 ‘그레이스의 흑백합’이라는 듣기만 해도 장기가 꼬일 것 같은 요상한 별명을 가지게 될 때까지 몇 년이 걸렸다.

        

       덕분에 앨리스와 클레어가 내 메시지를 알아듣는 게 엄청나게 오래 걸려서, 이전에 우리가 마주했던 것은 딱 두 번뿐이다.

        

       그나마 한 번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파악해나가는 시간’이라는 명분으로 써버려야 했고.

        

       나에게는 별다른 약혼자가 없었기에—줄은 어느 정도 서있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을 애써 무시했다—내가 무도회에 갈 때마다 파트너는 내 ‘남동생’인 레오였다.

        

       따라서 레오도 이 두 사람을 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작 얼굴을 두 번 마주했을 뿐이다. 여인과의 대화를 남성이 듣는 것은 실례였기에 레오는 우리가 대화할 때마다 뒤로 빠져주었고, 당연히 이 두 사람과 대화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전혀 당황하지 않은 건, 그리고 이전에 두 번 만났을 때도 당황하지 않은 것은, 당연히 ‘내가 알던 레오’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시간이 이상하게 빠르게 느껴지는 것에 더해서, 정말로 있었던 일이 완전히 취소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내가 확신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방금 ‘누님’이라고 한 거야?”

        

       일반적으로, 남성이 ‘안녕하십니까’라고 하면 당연히 반대쪽에서도 정중한 말투로 그 인사를 받아주는 것이 예절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내가 레오를 불렀을 때 레오가 했던 그 ‘누님’이라는 말이 클레어의 성질머리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예?”

        

       레오는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면서 당황한 듯 대답했다. 나는 그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역시 겁먹거나 새파랗게 질리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실비아가 네 ‘누님’이라고.”

        

       “클레어.”

        

       클레어가 분개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말을 이어 나가자, 앨리스가 얼른 나서서 클레어를 제지했다.

        

       “그야…… 실비아 누님은 정말로 저의 누님이니까요?”

        

       레오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렇게 되물었다.

        

       “왜?”

        

       클레어가 그렇게 불쑥 물어보자 레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야…… 누님은 언제나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공부도 잘해서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거든요. 가끔 제가 어떤 잘못이나 실수해도 감싸주기도 하고요.”

        

       “…….”

        

       레오의 말에 앨리스와 클레어의 시선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뭐.

        

       사실 레오에게 누님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다. 이전의 내가 ‘감정 없는 쿨뷰티’를 연기 중이었다면, 지금은 최대한 완벽한 남작 영애를 연기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단언컨대 이쪽이 훨씬 어렵다. 일상에서까지 하나하나 다 조심하다 보니 레오한테는 믿음직한 누나로 보였던 모양이지.

        

       하지만 그런 설명을 듣고 난 뒤에도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인 클레어를 보고, 레오는 드디어 뭔가 떠올렸다는 듯 물었다.

        

       “아, 혹시 제가 누님과 같은 입학생이라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거 있잖아. 전에—”

        

       “클레어.”

        

       앨리스가 황급히 클레어 앞을 막아섰다.

        

       “……내 자매가 무례하게 굴었네. 대신 사과할게.”

        

       “아, 아닙니다, 그게…….”

        

       레오가 눈을 굴리는 걸 보고, 나도 앞으로 한 발자국 살짝 나오며 대답했다.

        

       “궁금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다만, 그 이야기는 그레이스 가의 내부 사정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여기저기 말하고 다닐만한 이야기도 아니라서요.”

        

       “아냐, 오히려 잘못한 건 이쪽이니까. 클레어.”

        

       앨리스가 클레어 쪽을 살짝 돌아보면서 말했다.

        

       “실례했으니까 얼른 사과해.”

        

       “아, 진짜!”

        

       클레어는 여러모로 엄청나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결국 머리를 감싸 쥐고 한참을 서 있다가 쥐꼬리만 한 목소리로 “……미안.”이라고 말했다.

        

       그런 클레어를 보고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높임말을 쓸 필요는 없어. 어차피 여기서는 다 같은 학생이니까. 교칙 상으로도 ‘동등하다’라고 되어있잖아? 적어도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는 서로 편하게 지냈으면 하는데, 어때?”

        

       그리고 악수하자는 듯 손을 레오에게 살짝 내밀었다.

        

       “어…….”

        

       레오는 조금 당황한 듯 내 쪽을 보았다. 나는 그런 레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레오는 조금 미소 지은 채 앨리스가 내민 손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졸업할 때까지는.”

        

       그래, 그렇겠지.

        

       레오에게 ‘기억’이 온전하게 남아있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히, 레오는 뭔가 알고 있다. 아직 본인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뿐.

        

       그렇지 않으면 앨리스의 이 말을 이렇게 부드럽게 받아줄 수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만약 레오가 이렇다면, 다른 아이들도 비슷하겠지.

        

       “그럼 나도 계속 편하게 할게.”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반말을 쓰던 클레어가 그렇게 말했다. 레오는 그런 클레어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을 뿐이다.

        

       *

        

       “제가 제국 사교의 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회실을 향해 걷는 와중에 샤를로트가 말했다.

        

       “남작가의 영애가 사교회 전반에 이름이 퍼져있는 경우는 조금 특이해 보이긴 해요. 특히 그 이름이 국경 너머 벨부르에까지 퍼졌으니 더 신기한 일이죠. 제가 듣기로 그레이스 가는 무가로 훨씬 유명한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저 소양을 갈고 닦기 위해 노력했을 뿐입니다.”

        

       “훌륭하네요. 확실히 호감을 느낄만한 분이시긴 해요. 학생회에서 당신을 직접 지목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레이스의 흑백합’.”

        

       내가 언젠가 저 별명을 붙인 놈을 찾아다 내장을 끄집어내 주리라.

        

       내 내장이 비비 꼬였던 것 이상으로 고통스럽게 해주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함께 걷던 레오가 자랑스러운 표정을 하는 것은 둘째치고, 그 옆쪽의 두 황녀는 간신히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설마 이전에도 나한테 저런 별명이 있었던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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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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