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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9

    예르나의 발소리를 들은 루크는 예르나가 저 문을 열면 당장에 보게 될 광경을 눈에 담았다.

     

    당장에 안방은 말할 것도 없고, 주방과 연결된 거실은 상태가 조금 더 심각했다.

    바닥을 장식한 우유와 계란 등의 재료, 그리고 깨진 접시조각들.

    오러로 강화된 식칼이 떨어지며 긁힌 바닥과, 쿠션이 터진 소파.

    게다가, 마력이 나가서 불도 켜지지 않아 어두컴컴하다.

     

    이쯤 되면 무슨 전쟁이라도 치르지 않았는가 생각될 정도다.

     

    “예르나가 화내면 어떡하지?”

     

    파이리스가 집안의 꼴을 보고는 자기도 아니다 싶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루크 역시 이런 집 상태를 예르나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큰일났구나……. 이런 난장판은 클린으로도 치울 수 없는데…….”

     

    클린은 기껏해야 미세한 먼지나 병원균을 소독하거나, 얼룩을 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하는 성능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고서클 마법사가 마력을 퍼붓는다면야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지금의 자신은 고서클과는 거리가 멀고 그 정도로 남아도는 막대한 마력도 없다.

    아린세이아로 통하는 아공간을 연다면 그곳에 있는 세계수, ‘글레이프니르’에서 흘러나온 마력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아공간을 열기 위한 마력도 역시 마력고갈상태인 이 곳에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최악을 가정할 수 밖에 없다.

     

     

    만약에 자신이 외출을 했다가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어질러진 집의 상태를 본다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루크는 잠시 머리를 굴려, 예르나의 예상반응을 추렸다.

     

    “……으음.”

     

    자신이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한들 엉덩이를 좀 때리며 훈계를 하는 것 정도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그것도 충분히 수치스러운 체벌이긴 하지만 최악의 경우, 예르나가 자신에게 정이 떨어지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

    루크는 한번 깨진 신뢰가 다시 붙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지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은 이미 한번 ‘허락 없는 외출’로 신뢰를 잃은 상태이지 않은가.

     

    루크가 생각하기에, 신뢰를 잃은 사람은 가문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굳이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도 않고, 아직 성도 잇지 않았다.

    그녀를 만난 시간에 기대어본다 한들, 고작해야 1년 남짓한 짧은 시간의 만남이다.

     

    “어쩌면, 우리는 ‘시설’에 보내질 수도…….”

    “시……설?”

     

    게다가, 그녀에겐 항상 미안할 일만 저지르지 않았던가?

    혹시나 이번 일로 그녀가 완전히 질려서 자신을 ‘시설’로 보내버린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루크는 잠깐 과거의 ‘고아원’을 떠올려 보았다.

     

     

    열악한 환경, 맛 없는 식사, 단체생활.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루크에게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마법 연구시간과 개인공간의 부재.

     

     

    ‘시설은 안돼!’

     

     

    다른 모든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당장에 연구를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것이 없다.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차라리 현대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무시하고, 숲으로 도망치는 것이 깔끔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계획,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진학과정을 거쳐 적법하게 클래스마법의 권한을 획득한다’라는 것은 영영 불가능하게 될 터다.

     

    자칫하면 평생동안 비양심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을 하며 자신의 가치를 낮추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자신의 가치를 중시하는 마법사의 입장에서는 끔찍한 결말이다.

     

    “그것만은 안돼!”

    “안돼……!”

    파이리스는 루크의 말을 따라하며 자신의 양 볼을 잡았다. 

    그것을 피하고 싶은 것은 예르나에게 혼나기 싫은 파이리스도 마찬가지였으니.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한 발소리에, 루크와 파이리스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동자에 서로의 닮은 모습이 비친다.

    당혹과 긴장으로 얼굴에 핏기가 가셔 하얗게 되어가는 것마저 판박이였다.

     

    “어떡하지, 언니?”

    “……잠깐만, 내가 생각이 있다.”

    ————-

     

    “휴우, 지친다 지쳐.”

     

    예르나는 지친 듯 한숨을 쉬었다.

    지원병력이 많아서 일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인솔하고 배치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예르나는 남을 부리는 것 보다는 차라리 직접 현장에 나가는 편이 더욱 마음이 놓이고 편했기 때문에.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그런 약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겠지.

     

    예르나는 문 앞에 도착하자 어깨와 허리를 펴고 당당한 자세를 만들어냈다.

    혹시 이것이 모성애? 같은 생각을 혼자 하면서.

     

    그렇게 예르나가 문을 향해 손을 뻗을 때, 갑자기 문이 먼저 열렸다.

     

    “예, 예르나언니! 벌써 왔네요!”

     

    루크였다.

    뒷머리를 묶고 앞치마도 두르고 있는 것이, 뭔가 요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참, 언제 봐도 귀엽고 기특하다니까.

     

    “어머, 오늘은 먼저 맞이해주는 거야? 별일이네. 그런데 혹시 요리 하고 있었니?”

     

    예르나의 말에 루크는 잠깐 자신의 앞치마를 내려다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목에 붙여 둔 반창고를 긁으며 말했다.

     

    “하, 하하. 그, 그렇죠.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언니의 발소리가 들리길래. 마중을 좀 나와볼까 싶어서…….”

    “그래? 마중 나와줘서 고마워. 그나저나, 오늘 어디 안 나가고 잘 있었어?”

    “다, 당연하죠.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집 안에 잘 있었다고요.”

    “흐음, 그래?”

     

    예르나는 루크의 말에서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비단 목소리와 말투가 평소보다 더 아이같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귀가 축 처져 있었던 것이다.

    루크는 항상 무언가 혼날 짓을 하거나 미안할 때 저렇게 귀가 처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루크의 귀가 딱 정확히 그 형상이 아닌가.

     

    예르나는 조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루크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정말이야? 그런데 왜 귀가 그렇게 처져있어?”

    “내, 내 귀가 뭐 어때서요?”

    “축 처져 있잖니, 넌 항상 내게 미안할 때 그러더라.”

    “……그, 그런!”

     

    루크는 차마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자신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귀가 처진다는 것을 처음 안 모양이다.

     

    루크의 그런 모습도 귀엽긴 하지만.

     

    “설마, 언니 몰래 어디 나간 건 아니지?”

    “그, 그럴리가! 맹세코 그런 일은 없어요!”

     

    예르나는 한번 피식, 웃고는 루크의 뒤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그런데, 집안에 불은 왜 다 꺼놨어?”

    “그, 그건!”

     

    루크는 황급히 대답했다.

     

    “그게. 음, 거실에서 파이리스가 낮잠을 자는 중이라서…….”

    “흠, 그래? 지금까지 자는 거면 꽤 오래 자네.”

     

    하지만 파이리스가 낮잠을 오래 자는 것 정도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라서 납득은 간다.

    그렇게 생각하며 집 안으로 발을 들이려는 순간, 루크가 말 없이 그 앞을 막아선다.

     

    “……?”

    “…….”

     

    뭔가 타이밍이 어긋났나? 같은 생각을 하며 한걸음을 더 내딛자, 루크 역시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여 자신의 앞을 막았다.

     

    “왜 그래? 언니도 이제 들어가고 싶은데.”

    “언니……. 저, 하고 싶은 요리가 생겼는데, 식재료가 없어서요! 그래서 힘드신 와중에 정말 죄송하지만……. 잠시 이것 좀 사다 주시겠어요?”

    “응?”

     

    예르나는 얼떨결에 루크가 건네는 쪽지를 받아들었다.

     

    쪽지에는 사과파이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재료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루크가 쿠키를 만드는 건 봤어도 사과파이를 만드는 걸 본 적은 없었는데, 아마도 오늘 집 안에 있다가 갑자기 해보고 싶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재료가 집에 없어서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설마, 너 이거 때문에 나가고 싶었는데 언니가 외출금지라고 해서 나가지 못했던거야?”

    “……네, 그래서 언니한테 부탁을…….”

    “언니 오기 전에 전화하지. 그랬으면 미리 사왔을 텐데.”

    “…….”

     

    루크는 그 말에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시선을 피하며 문고리를 꼬옥 쥔다.

     

    예르나는 그 모습이 뭔가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라고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루크가 대체 왜 그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던 걸까?

    설마 루크가 바보라서 그런 건 아닐테고.

     

    곰곰히 생각을 하던 예르나는 문득,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알겠다. 루크, 너. 언니랑 같이 나가고 싶었던 거구나?”

     

    그 말에 루크는 허를 찔린 듯 화들짝 놀라며 문고리에서 손을 놓았다.

     

    “……네? 아니, 음…….”

     

    루크는 한동안 영문모를 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요. 하지만, 저는 외출금지라서…….”

    “푸흡, 괜찮아, 괜찮아! 그런 거면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 집안에만 있어서 많이 심심했나 보구나?”

    “…….”

     

    루크의 얼굴은 사과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꽤나 빨갛게 되었다.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외출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기사, 루크는 원래 하루에 한번은 꼭 산책을 나가던 아이니까.

    집 안에만 있는 것이 여간 답답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뭐, 이제 되었으려나.

    루크도 충분히 반성한 것 같으니까.

     

    “그럼, 잠깐만 들어가서 네 앞치마랑 잠옷부터 갈아입고…….”

     

    하지만 루크는 예르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뛰쳐나오며 외쳤다.

     

    “아뇨! 지금 이 상태로 바로 나갈게요!”

    “으, 응? 그 옷 그대로?”

    “문제 없어요!”

    “부끄럽지 않아? 정말 괜찮겠어?”

    “정말로 이대로 나갈 수 있어요! 언니, 바로 나가요!”

    “그, 그래? 뭐 그렇다면야…….”

     

    음, 루크는 그렇게까지 밖에 나가고 싶었던 걸까?

     

    크게 휘파람까지 불고 있는 걸 보니 정말 신나는 모양이다.

    그렇게 앞장서서 가기 시작한 루크를 뒤따르며 예르나는 턱을 긁적이며 생각했다.

     

    ‘……설마 루크가 외출을 저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어쩌면, 루크에게 외출금지는 너무한 처벌이었을지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순순히 엉덩이를 맞을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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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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