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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9

       49명의 주자는 관중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트랙을 달리기 시작했다.

         

       학교 밖 광장에 설치된 특설 무대 위에서는 레카체프의 조교들이 경기를 해설했다. 그들은 학교 지도를 구획 별로 세워두고, 격자 위를 움직이는 말들을 가리키며 판세를 설명했다. 그리고 사회자를 맡은 학생들이 그 내용들을 취합해 현재 상황을 관중들에게 전달했다.

         

       “선수들의 절반 정도는 지금 같은 곳으로 향하는 것 같은데, 제가 보는 게 맞나요?”

       “네. 역시 그곳이겠죠. 지난 시험에서 한 번도 보물상자가 나오지 않은 곳이죠!”

         

       사회자가 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지도 하나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 지도에는 막 빨간색 말 하나가 들어서던 참이었다.

         

       “여기네.”

         

       엘라는 자신이 도착한 장소를 둘러봤다.

         

       학교에서 가장 큰 문과 가장 높은 천장, 그리고 가장 넓은 계단이 있는 장소.

       그녀가 도착한 곳은 바로 2번 경기장인 현관이었다. 이곳이 바로 지금까지 있었던 세 차례의 시험에서 한 번도 보물상자가 나오지 않은 곳이었다.

         

       “각 팀의 에이스들이 속속 현관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오늘 가장 치열한 경기가 펼쳐질 곳으로 예상되는 곳이죠.”

       “그래서 좌석표가 가장 비쌌던 곳이기도 하고요.”

         

       선수들이 한 명 한 명 들어올 때마다 현관이 내려다보이는 2층 난간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원래 학교 복도였던 그곳은 현재는 관중석으로 쓰이고 있었다.

         

       이 구역에서 선수들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1층 로비와 중앙 대계단, 그리고 층계참까지가 전부였다. 2층으로 오르는 양옆 계단은 광고판으로 막혀 있었다.

         

       주자들은 다른 팀의 타일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움직였다. 그들은 때때로 건너편 타일로 가기 위해 사람 키만 한 정원석을 재주넘기로 뛰어넘거나 담벼락을 뜀틀 삼아 짚고 넘어가야 했다. 불과 50cm짜리 정사각형 공간 안에서 그런 재주를 펼치는 것은 선수들에게 피 말리는 일이었으나, 그것을 지켜보는 관중들에게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중간에 안 닿았지?”

       “와, 대단하네. 저걸 저렇게 넘어가고.”

       “역시 일류 곡예사들이군.”

         

       선수들은 그렇게 장애물을 피해 타일과 타일 사이를 넘나들며 화단을 뒤지고, 돌담을 조사하고, 계단을 살폈다.

         

       엘라는 그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느긋한 태도로 관망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시험의 사례를 봤을 때, 보물상자는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았다. 적어도 몇 개의 함정은 해제해야 상자로 가는 길이 열렸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주자들이 경기장을 수색하는 동안, 이곳에 깔린 빨간색 타일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힘썼다. 그녀가 밟을 수 있는 타일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경기장 곳곳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타일의 색은 고정된 게 원칙이었지만,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변했다.

         

       첫째는 타일을 밟았던 사람이 그 타일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선수의 몸이 기존 타일에서 벗어나 다음 타일에 닿으면, 기존의 타일은 무작위로 다른 색으로 변했다. 즉, 같은 팀 사람들이 줄지어서 같은 타일을 밟으며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자가 한 번 진입한 곳에서 돌아서서 같은 경로로 빠져나가는 것 역시 힘들었다.

         

       둘째는 그 타일을 둘러싼 4개의 타일의 색이 최소 한 번씩 변했을 때였다. 그렇게 되면 그 4장의 타일에 둘러싸인 중간 타일의 색이 무작위로 변화했다. 이것도 대회 안내 책자에 실려 있는 규칙 중 하나였다. 이 규칙 때문에 연쇄적으로 여러 개의 타일이 바뀌기도 했다.

         

       셋째로 같은 색의 타일이 연속해서 붙어 있을 때였다. 그때는 둘 중 하나가 다른 색으로 바뀌었다. 이 역시 연쇄적인 변화를 일으키곤 했다.

         

       위 3가지 규칙을 따라 빨간색 타일은 생겼다가 사라졌다 하는 것을 반복했다.

       엘라는 경기장 내부의 바닥 색깔이 변화하는 흐름을 조심스럽게 눈으로 좇았다. 신중해야 했다. 되는대로 눈에 보이는 빨간색을 마구 밟고 다니다가는 밟을 타일이 하나도 없는 ‘구석’에 내몰릴 수 있었다. 그러면 꼼짝없이 갇혀서 죽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팀은 이곳에 4명이나 몰린 탓에 밟을 타일이 부족해 곤란을 겪고 있었다.

         

       “거길 밟고 지나가면 어떡해! 내가 저기로 가는 도중이었는데!”

       “그럼 미리 신호를 보냈어야지. 정해둔 거 까먹었냐?”

       “야, 이대론 안 돼. 한 명, 아니, 두 명은 다른 데로 가야겠다!”

       “위에서 아직 신호를 안 줬는데 멋대로 그러면 되냐?”

         

       팀원 간의 불화는 2명 이상 투입한 팀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다들 보물상자가 있는 제1 후보지에 너무 많은 주자를 보낸 탓에 타일의 변화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이는 이전의 시합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보물상자 후보지가 특정 경기장 한 곳으로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어떻게든 상자를 탐색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또한 여의치 못했다. 학교 측이 곳곳에 설치해둔 함정 때문이었다.

         

       화단 속을 뒤지려던 사람들은 뱀들과 마주쳤다. 화려한 무늬를 가진 놈들은 마치 각자가 한 송이의 꽃인 것처럼 몸통을 꼿꼿이 세우고는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설마 대회에 맹독을 가진 뱀을 풀어두지는 않았겠지만, 수십 마리의 뱀들이 화단을 점거하고 있는 모습에 곡예사들은 기가 질려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누구 뱀 조련사 없어?”

       “제길. 우리 팀에 1명 있는데, 다른 곳에 갔다고.”

         

       한편, 돌담을 조사하던 사람들도 곤란한 장애물과 마주했다. 그들은 벽돌들 사이에서 수상쩍은 틈새를 발견했다. 분명 시험을 위해 따로 파둔 것이 분명했다. 그 안쪽에 스위치 비슷한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시험을 돌이켜 봤을 때, 저 스위치를 작동하는 것이 보물상자로 가는 길을 여는 조건이었다. 문제는 그걸 도통 누를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팔 하나가 다 들어갈 만큼 깊었지만, 어린애 손목만큼 틈새가 좁았기 때문이다.

         

       “이거 연체술을 익힌 사람을 위한 장애물 같은데?”

       “막대기 같은 걸로 안쪽을 쑤셔 볼 수 없을까?”

       “안 돼. 중간에 묘하게 굴곡이 져서 막대기는 안 들어갈 거야.”

         

       계단을 살펴보는 것도 조심해야 했다. 중앙 대계단은 경사가 좀 가파른 평범한 돌계단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곳은 학생들의 다릿심과 균형 감각 단련을 겸하는 곳이었다. 발판 중앙을 정확히 밟지 않으면 모든 발판이 기울어져 계단이 커다란 미끄럼틀로 변했다.

         

       “으아앗!”

       “큭, 어느 팀 멍청이 짓이냐!”

       “줄타기 전공 아닌 놈들은 다른 곳으로 가라고!”

         

       계단이 모두 반듯하게 경사면으로 변하면, 발목에 힘을 단단히 주고 버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기 힘든 이유가 있었다. 학교 측이 시험을 위해 계단에 기름칠을 잔뜩 해두었기 때문이다. 날렵한 곡예사들은 미끄러지는 순간 지상의 타일을 향해 몸을 날렸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멈춰 서기 위해 근처에 발을 디뎠다가 다른 색의 타일을 밟곤 했다. 심지어 볼썽사납게 엉덩방아를 찧고 바닥까지 미끄러져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탈락! 탈락! 탈락! 탈락자가 속출합니다!”

       “방금 대계단에서만 3명이 탈락했습니다!”

         

       엘라는 탈락한 선수들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방금 돌계단의 발판 하나에 슬쩍 체중을 실어 기울인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그때, 머릿속으로 클라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했어. 이제 화단 좌측에 있는 아치문 쪽으로 이동할래? 그 안쪽으로 파란색 팀 2명이 들어갔는데, 나오는 타일 2개만 지우면 그 사람들 그쪽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 할 거야.’

       ‘알았어. 그러면 2명 다 탈락인 거야?’

       ‘둘 중 한 명을 희생하면 나올 수야 있겠지. 아니면 다른 팀들이 변수를 만들어서 근처에 파란색 타일을 만들어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든가.’

       ‘좋아. 난 뭘 하면 되지?’

       ‘빨간색 타일 4개를 내가 말한 순서대로 밟으면 돼.’

         

       엘라는 클라라의 지시대로 이동했다.

       애초에 그녀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다른 팀의 선수들을 사냥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클라라가 낸 아이디어였다. 그녀는 이 경주에서 동전을 얻게 만드는 방법보다 더 효율적인 것이 바로 ‘동전을 잃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을 꿰뚫어 봤다.

         

       “그렇잖아요? 주자는 최대 5명밖에 못 넣는 귀중한 자원이에요. 3명이 탈락하면 자동으로 실격 처리되는 패배 조건이기도 하고요.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2명이 탈락한 상태에서는 무조건 1명을 부활시키기 위해 동전을 30개 쓸 수밖에 없죠. 그렇게 30개, 60개 정도 상대에게 마이너스를 강요하면, 우리 쪽은 게임을 풀어나가기 쉬워지죠.”

         

       그녀의 말은 이치에 맞았지만, 의도적으로 다른 주자를 탈락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경주에서 상대 팀을 공격하는 수단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의도적으로 핀치에 몰아넣기에도 이 학교라는 공간은 너무 넓었다.

         

       “아뇨, 아뇨. 있어요. 한순간, 한군데에서 그런 기회가 만들어지잖아요?”

         

       클라라가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알아차린 사람은 원더스타인과 마야, 그리고 도스빌 남작뿐이었다. 세 사람의 눈동자는 지도의 한쪽을 향했다.

         

       2번 현관. 이번 시험에서 보물상자가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경기는 트랙을 따라 50명을 골고루 퍼트린 상태로 시작하지만, 그곳은 경주 시작 직후에 주자들이 몰릴 확률이 높았다.

         

       그곳을 탐색의 장이 아니라 사냥터로 활용한다면? 정말 상대 팀들에게 마이너스를 먹이고 시작할 수 있다면? 하위권인 그들이 우승할 확률이 높아졌다.

         

       그녀의 전략은 앞선 시험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6, 7, 8월의 시험에서 50명의 주자는 9개의 경기장으로 흩어져서 움직였고, 한 경기장당 보통 5명, 많아야 10명이 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한 경기장에 30명이나 되는 사람이 몰려와 있었다. 2년 동안 치러질 레카체프의 예선전 전체를 통틀어서 딱 이번 달에만 일어나는 특수한 현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노린 것이다.

         

       “물론 다른 서커스단이 그것을 걱정해서 안 몰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몰릴 거라 확신해요.”

         

       원더스타인도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건 일종의 군비 경쟁과 비슷했다. 상대 우위를 점하기 위해 효율이 떨어지는 걸 알면서도 소모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주자가 무작위로 경기장에 흩어져서 상자를 탐색하는 것이 모두에 있어서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게임은 ‘모두가 방해받지 않고 즐겁게 게임을 즐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오직 3곳만이 승리하고 나머지 7곳은 패배했다.

         

       그런 와중에 거의 100% 보물상자가 있을 게 확실한 장소가 있었다. 그곳에 단원을 보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거기 말고 다른 곳에 힘을 쏟는다는 전략도 설득력이 약했다. 결국 9개 경기장 중 2곳을 골라야 하는 도박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괴물서커스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 바로 사냥이었다. 그들이 가진 전력으로는 어차피 이곳을 제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마야, 가스통, 스벤이 이런 곳에 들어왔다간 빨간색 타일을 낭비하며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탈락하고 말 것이다.

         

       엘라를 제외한 나머지는 목숨을 부지하면서 클라라의 지시에 따라 다른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판을 깔아두고 탐색을 해두는 것이 더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클라라는 10개 서커스단 중에 이곳에 단원을 한 명만 보낸 곳이 자신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황금 카니발과 은막 서커스 역시 단원을 한 명밖에 보내지 않았다.

       은막이야 자신들과 전략을 공유해서 그렇다지만 황금 카니발 역시 레이나 한 명만 보낸 건 의외였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이 엘라에게 시킨 것처럼 다른 팀의 탈락을 유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황금 카니발은 명실상부한 우승 후보였다. 그들은 레카체프 출신 곡예사 4명과 레이나를 탐색 팀에 투입했다. 그리고 강당 팀에도 각 게임의 최고 득점자 십수 명을 선발해 내보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자신들과 같은 언더독의 방식을 쓰다니?

       최강의 전력을 가진 팀이 빠르게 힘으로 누르려 하지 않고, 느리고 효율적인 승리를 노리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클라라는 근처에 앉아 자기네들끼리 수신호를 주고받는 황금 카니발의 직원들을 눈으로 훑으며 혀를 할짝거렸다.

       역시 우승 후보는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었다.

         

       엘라와 레이나의 공작으로 인해 4번째, 5번째 탈락자가 나오는 순간, 학교 밖 특설 무대 쪽에서 사회자의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방금 강당에서 첫 번째 미니 게임이 끝났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리자리아 님, 258 코인 후원! 이렇게 큰 금액을…!! 몇 안 되는 인생픽까지… 응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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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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