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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9

        

       게이밍.

       오목눈이.

         

       어울리지도 않고, 어울려서도 안 되고, 어울릴 수도 없는 단어들.

         

       하지만 엘라는 눈앞의 존재를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오목눈이와 똑같은 생김새를 갖고, 찬란한 RGB 색상의 빛을 내면서 털 색을 계속해서 바꿔 가는 저것을 게이밍 오목눈이라 하지 않으면 뭐라 하겠는가!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그렇지….”

         

       엘라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오목눈이를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오목눈이는 바둑알 같은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엘라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짧은 날개를 쉬지 않고 퍼덕퍼덕 움직이며 사람 머리통만 한 커다란 크기의 몸을 허공에 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오목눈이의 털 색은 계속해서 바뀌었고, 클럽의 조명처럼 화려하게 빛을 뿜어내면서 엘라의 몸을 감쌌다.

         

       뺙.

         

       엘라가 ‘게이밍 오목눈이’라고 명명한 정체불명의 귀여운 생명체는 엘라가 자신을 인지하자 기쁘다는 듯 짧은 부리를 열어 울음소리를 내뱉었고, 흐느적흐느적 움직이더니 엘라의 무릎 위에 안착했다. 그리곤 날개를 수납해 자기 몸을 둥그런 털 뭉치 형태로 만들더니 엘라를 그대로 올려다보았다.

         

       뺙.

         

       그것은 마치 자신을 키우라고 주장하는 듯 당당하게 엘라를 바라보았고, 자신을 키운다고 말하기 전에는 절대 비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 굳은 다짐을 얼굴에 띠고 있었다.

       그냥 대충 점을 찍은 것 같은 두 눈에는 굳센 결의가 들어가 있었고, 짧은 부리는 굳건한 의지가 서린 채 꾸욱 다물어져 있었다. 게다가 무슨 방법을 쓰는 것인지 엘라가 이리저리 움직여도 미동도 없이 무릎에 딱 붙어있기까지 했다.

         

       그렇게 엘라는 게이밍 오목눈이와 한참 눈을 마주쳤다.

         

       저 멀리 찌그러진 시계의 초침이 한 바퀴를 돌 정도로 아주 오랫동안 말이다.

         

       마치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고양이와 집사가 대치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이러한 기다림을 보고 있자니 답답했던 것일까?

       누군가가 난입했다.

         

       “동생, 뭘 그리 고민하나요?”

         

       게이밍 오목눈이를 끌고 온 장본인.

       엘라의 꿈속에 무단으로 침입한 마녀.

       자신이 엘라의 언니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적 자매.

         

       아나스타시아였다.

         

       “내가 네 주인이 되겠다, 네 충성 맹세를 받아들이겠다! 어서 그렇게 말하세요.”

         

       그녀는 벤치의 뒤편에서 사뿐사뿐 걸어와 엘라를 재촉했다. 그러자 엘라는 꿈속에서도 나와서 자신을 괴롭히냐며 발끈해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하지만 엘라는 멍청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자신이 익숙해진 아나스타시아의 모습이 아닌, 아나스타시아와 처음 만났던 그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신과 똑같은 키, 똑같은 얼굴.

         

       엘라는 이게 꿈속의 허상인지 진짜 사람인지 의심이 들었다.

       엘라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아나스타시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꿈이라면 무언가 어색한 점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내 그녀의 입에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장난스러운 말투가 흘러나오자 그런 의심은 씻은 듯 사라져버렸다.

         

       “안뇽? 언니예용~”

         

       부드러우면서도 장난스러운, 강압적이면서도 포용력이 있는, 산들바람같이 사람을 간질이면서도 묘하게 마음속에 스며드는 듯한 목소리.

         

       그녀가 익히 알고 있는 아나스타시아의 목소리였다.

         

       아나스타시아는 양손으로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애교를 부렸고, 엘라의 바로 옆자리에 앉고는 그녀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그러자 꿈속임에도 현실에서 손가락으로 찔리는 것 같은 간지럼이 엘라에게 엄습했다.

         

       콕콕.

       콕콕콕.

         

       “힉, 히익. 그만, 그만하세요.”

       “싫어요~”

         

       엘라는 게이밍 오목눈이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기에 아나스타시아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계속 몸을 비틀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러는 건가요! 그, 그만!”

         

       엘라는 대체 자신에게 왜 이러냐며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아나스타시아는 손가락 공격을 멈추더니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동생에게 문제. 여기는 꿈일까요, 아닐까요?”

       “네?”

       “맞추면 공격이 멈춰요~ 틀리면~”

         

       말 안 해도 알겠죠?

         

       아나스타시아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엘라에게 재촉했다.

         

       어서 답을 말하라고.

         

       엘라는 아나스타시아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이곳이 꿈이 아니면 뭐겠는가.

         

       오리너구리가 사람을 구하고 다니고, 카피바라 군단이 깽판을 치고,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이곳저곳이 녹아내리고 기묘한 형태로 뒤틀려 있는 곳이 가득한 이곳이 꿈의 세계가 아니라면 뭐겠는가.

         

       게다가 당장 그녀의 무릎에 앉아있는 게이밍 오목눈이도 현실에 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녀석이고, 그녀가 앉아있는 벤치마저도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촉감이다.

         

       “당연히….”

         

       엘라는 그녀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이곳이 당연히 꿈이라고 말하려는 그 순간.

         

       엘라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신이 없어서?

       아니다.

       꿈이 아닌 다른 장소일 가능성을 떠올려서?

       그것 역시 아니다.

         

       그녀가 입을 닫은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섬찟함.

       꿈의 세계 그 자체가 그녀에게 경고하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

         

       그 느낌 때문에 저도 모르게 입을 닫아버리고 만 것이다.

         

       “동생도 재능이 있네요~”

         

       아나스타시아는 엘라가 입을 꾹 다물고 답을 말하지 않자 기쁘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그 얼굴에는 호의가 가득했고, 약간의 장난기가 묻어있었다. 그녀는 장난이라도 치려는 듯 그녀에게 바싹 붙었고,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 말은 금기였답니다~ 잘했어요?”

         

       그녀는 잘했다는 듯 엘라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곤 오목눈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겨 신호를 보내곤,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벤치의 등받이 부분을 손으로 한 움큼 떼어내더니 그것을 확성기 모양으로 빚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있는 힘껏 소리쳤다.

         

       『 이곳은 꿈이다! 』

         

       벤치에서 떼어낸 구름으로 만든 확성기는 아나스타시아의 외침을 어마어마하게 증폭하며 도시 곳곳에 그녀의 말을 전달해주었다.

         

       공원에서부터 도시의 끝까지.

       길거리에서 건물의 안까지.

       웅성거리는 사람에서부터 누워있는 카피바라 군단까지.

       기자 회견을 하는 오리너구리부터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까지.

         

       그 모든 존재에게 말이다.

         

       “….”

       “….”

       “….”

       “….”

         

       그들은 침묵했다.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것을 멈추고, 모두 입을 꾹 닫았다.

       그리고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몸을 일으켰으며, 하나둘 몸을 돌려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았다.

         

       건물 안에 있던 이들은 창밖에 몸을 내밀었다.

       걸어가던 이들은 몸을 돌렸다.

       쓰러져 있던 것들은 오뚝이처럼 기괴하게 일어섰다.

       움직이던 것들은 죄다 움직임을 멈추고 허수아비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모든 이들은.

       모든 것들은 아나스타시아를 보았다.

         

       그리고 그 소름 끼치는 침묵 속, 누군가가 말했다.

         

       “너희한테나 꿈이지.”

         

       끔찍한 악의가 담긴 한 마디.

       그것을 시작으로 멈춰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시아를 향해서.

         

       “아아아아!”

       “꿈이라고?! 꿈이라고—!!!”

       “너희는 항상 그렇지! 너희는 항상 똑같아!”

       “꿈이라고? 이게 왜 꿈인데?!”

       “죽어! 아니, 죽여!”

       “죽여어어어어—!”

         

       그들은 얼굴에 끔찍한 악의와 증오를 품은 채 미친 듯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내밀고 있던 이들은 몸이 부서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내려 그들에게 기어 왔다.

       몸이 성한 이들은 좀비가 사람에게 달려들 듯 뛰어왔다.

       다리가 불편한 이들은 네발로 기어서 달려왔다.

         

       “죽여버린다! 죽여버린다-!”

       “아니, 죽여선 안 돼! 죽이면 깨어나잖아!”

       “잡아서 가둬! 가둬버려!”

         

       그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아나스타시아와 엘라를 향해 달려왔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악몽의 한 장면이라 표현해도 어색함이 없었다.

         

       “금기어라면서요…?”

         

       엘라는 달려오는 수많은 사람을 보며 공포에 질렸다.

       그녀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며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았다.

         

       “맞아용. 자각몽의 금기랍니다~ 하지만…. 으음~”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태연했다.

       수많은 사람이 악다구니를 쓰며 자신들을 찢어 죽이려고 하고 있는데도,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평온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까 보았던 장난기가 어려있던 미소 역시 그대로였으며, 묘한 흥분감마저 눈에 감돌고 있었다.

         

       “이 언니의 두 번째 질문이에요~ 이 언니는 진짜 언니일까요, 가짜 언니일까요?”

       “당연히 진짜겠죠! 가짜는 이런 미친 짓을 안 할 테니까!”

       “정답이랍니다~”

         

       그녀는 잘했다는 듯 엘라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그녀의 무릎에 앉아있던 게이밍 오목눈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마치 대전차 미사일을 쏘는 것처럼 어깨 위에 오목눈이를 얹고,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사람들을 조준했다.

         

       “RGB 브레스! 발사!”

         

       장난스러운 이름.

       장난스러워 보이는 행동.

         

       하지만 그 결과는 장난스럽지 않았다.

         

       콰아아앙!

         

       아나스타시아의 어깨에 올라간 오목눈이는 풍선이 부풀 듯 몸을 빵빵하게 부풀렸고, 한계치까지 모아두었던 숨을 부리를 쩍 벌리며 한 번에 토해냈다. 그러자 부리에서는 무지개를 연상케 하는 찬란한 빛이 쏟아져나오며 허공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고, 미친 듯이 뛰어오던 수많은 존재들을 한 번에 삭제해버렸다.

         

       삭제.

       말 그대로 삭제였다.

         

       사람들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모조리 증발해버렸으며, RGB 브레스라고 이름 붙인 장난스러운 광선이 지나간 자리는 공간이 통째로 도려진 것처럼 뻥 뚫려버렸다.

         

       용이 숨결을 뿜어 만든 것 같은 파괴적인 현장.

         

       “이건 대체…?”

       “어때요? 대단하지 않나요?”

         

       아나스타시아는 게이밍 오목눈이의 위력에 전율하는 엘라에게 다가갔다.

         

       “자아, 이 파괴적이고 끝내주는 오목눈이가 이제 동생 소유랍니다~”

         

       그녀는 어깨에 얹어있는 오목눈이를 들어 그대로 엘라에게 안겨주었다.

         

       “네?”

       “이 언니가 힘을 좀 썼어요~”

       “힘이요?”

       “이상한 사람한테 관심이나 받고, 밤에는 잠도 잘 못 자고. 그래서 꿈에서 동생을 완벽하게 지켜줄 수 있는 경호원을 데려왔답니다~”

         

       뺘악, 짹.

         

       오목눈이는 그 말이 맞는다는 듯 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그럼 금기어는 왜…?”

       “그거야 경호원의 능력이 궁금할 테니까? 그래서 일부러 그랬어용~”

         

       짹.

         

       오목눈이는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날개를 들어 올려 ‘V’자로 만들었다.

         

       “어때요? 대단하죠? 이 언니가 이렇게나 대단한 사람이랍니다! 이게 바로 언니의 힘이에요!”

         

       아나스타시아는 자신의 대단한 능력을 한껏 뽐냈다.

       한껏 자랑했고, 어서 자신을 칭송하라는 듯 허리에 양손을 얹고 가슴을 쭉 폈다.

         

       짹!

         

       그리고 오목눈이 역시 자기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렇게 위대한 자신에게 지켜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는 듯 거만한 얼굴로 엘라를 바라보았고, 어서 칭찬하라는 듯 엘라를 재촉했다.

         

       그리고 엘라는 재촉 속에서 마침내 제정신을 차렸고.

         

       “놀랐잖아요-!”

         

       품에 안긴 오목눈이를 아나스타시아에게 집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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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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