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59

       

       

       

       

       

       259화. 심연 ( 1 )

       

       

       

       

       

       이베르는 떠났다. 깊은 밤 중을 틈타 조용히 떠난 이베르는 요란하게 열린 성지의 문을 통해 다시 돌아갔다.

       

       용왕에게 안식을 안겨달라는 커다란 짐을 두고서.

       

       꼬박 밤을 새운 케니스는 해가 뜨자마자 안토니오 대사제에게 찾아가 급히 대사제들을 소집했다.

       간밤에 있던 일을 전해 들은 대사제들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졌다. 

       

       “심연, 심연이라… 거기에 용들의 왕이 타락하고 있다니. 허어. 이거 보통 큰 문제가 아니군요.”

       

       “용사님. 정말 죄송하지만, 심연에 대해서는 제 전공이 아니라 큰 도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이단 심문관들을 찾아가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매일 악마와 악마 숭배자들을 ‘교화’ 시키는 그들이라면, 심연에 대해서 뭔가 알지도 모릅니다.”

       

       난색을 보이는 대사제들. 

       평생을 신학에 바쳤기에 전공에 대해서는 으뜸가는 이들이었지만, 전공이 아닌 분야에서는 조금 약한 모습을 보였다.

       

       더군다나 심연은 악마가 끊임없이 태어나는 온갖 부정적인 것들의 하수구라는 것 외에는 더더욱 알려진 것이 적었다.

       

       “끄응… 이거 참 부끄럽군요. 대신 저희도 뭔가 자료를 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사제들의 조언에 따라 케니스는 이단 심문관들의 구역 ‘대화의 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또 혼자 재밌는 거 하러 가네 이거.”

       

       “따라오라고 해서 오기는 했는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어느새 뒤에는 프리가와 에스텔이 따라오고 있었다.

       

       “공녀님? 에스텔? 굳이 따라오지 않으셔도 되는데.”

       

       “잘 됐지, 뭐. 딱히 할 것도 없던 참이야.”

       

       “나는 도대체 왜…”

       

       잘 쉬고 있다가 잡혀 나온 에스텔이 미간을 구겼다. 투덜거리는 것과는 반대로, 걸음은 착실하게 케니스를 따라가고 있었다.

       

       지난 밤, 연푸른빛의 비룡이 급히 떠나기 전.

       에스텔은 비룡을 살짝 붙잡아 성지에서 지내는 일족에 대해 물었다.

       

       잘 지내고는 있는지, 무얼 하고 사는지, 다른 형제자매들이 말썽부리는 건 아닌지.

       

       에스텔의 말을 들은 비룡이 피식 웃었다.

       

       – “머리가 꽃밭인 녀석들이라면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세상에서 그렇게 태평하고 걱정 없는 놈들도 드물 지경이더군.”

       

       잘 지내고 있구나.

       짧게라도 일족의 근황을 들은 에스텔이 작게 미소 지었다.

       

       다들 건강하게 잘 있구나.

       

       에스텔의 미소를 본 이베르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 “너도 성지로 함께 갈 테냐? 위대하신 분께서도 반기실 거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잠시 흔들렸다. 아는 이 아무도 없는 인간들 사이에서 홀로 지낸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외로웠으니까.

       

       그럼에도 비룡을 따라가지 않은 이유는… 아직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다.

       

       꽈악.

       

       ‘내 손으로 황금 나무의 원수를 갚지 못했다면…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악마를 죽이고 돌아가겠어.’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황금 나무의 원수를 갚으리라. 

       

       비록 복수의 대상인 대악마는 한스의 손에 죽었지만, 그렇게라도 남은 원한을 풀어야 가슴의 응어리가 풀릴 것 같다.

       

       “어이! 에스… 타? 뭐였지? 아무튼. 빨리 와! 여기는 복잡하다고.”

       

       “…에스텔, 이야. 이제 좀 외워.”

       

       어느새 저만치 앞서간 프리가와 케니스가 에스텔을 재촉했다. 

       

       벌써 몇 번이나 이름을 알려줬는데도 저 야만… 괄괄한 여자는 외울 기미도 없었다.

       

       따각따닥- 나막신 소리를 울리며, 에스텔은 각오를 다졌다.

       

       ‘황금 나무시여… 제가 그대의 원한을 모두 갚는 날. 일족에게 돌아가겠습니다.’

       

       그녀는 아직, 처참하게 무너진 황금 나무를 기억하고 있었다.

       

       

       

       *****

       

       

       

       파르르ㅡ!

       

       성지에서 유유히 바람을 만끽하던 작은 황금 나무가 돌연 가지를 가늘게 떨었다. 길게 뻗은 나뭇가지 한쪽이 슬금슬금 간지러웠다.

       

       애벌레가 있나? 아니면, 또 아이들이 몰래 숨어들었나?

       

       …아무도 없었다.

       

       누가 내 이야기를 했나…? 

       

       그리 생각하며, 작은 황금 나무는 다시 가지를 길게 뻗으며 한껏 바람을 만끽했다. 

       

       오늘따라 지상에서 홀로 지낼 막내 아이의 얼굴이 그리웠다.

       

       

       

       *****

       

       

       

       “심연… 말씀이십니까?”

       

       “네. 대사제분들께서는 심연에 관한 것이라면 이단 심문관분들을 찾아가 보라고 하셨거든요. 혹시 뭐라도 자료가 있을까요?”

       

       이단 심문관의 수장은 까마귀의 가면을 덮어쓴 모습이었다.

       

       가면 속에서 기묘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성별을 구분하기 힘들었고, 방금까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 가죽 장갑에 피가 살짝 묻어 있었다.

       

       “…심연이라. 위험한 곳에 대해 찾으시는군요.”

       

       까마귀 가면 속 눈동자가 음울하게 빛났다.

       

       “악마와 모든 삿된 것들의 둥지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니…”

       

       “심연에 대해 꼭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지난밤ㅡ”

       

       이단 심문관 수장이 손을 들어 케니스의 말을 막았다.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용사님께서 필요하다고 판단하셨다면 틀림없는 것이겠죠. 심연에 대한 자료를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수장이 앞장서며 케니스와 프리가, 에스텔을 심문소 내부로 안내했다.

       

       “끄그그ㅡ 크하아아아아아아악!”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릅니ㅡ!! 부그르릅…”

       

        “히, 크히힛… 우히히힛! 오, 온다! 왕께서! 왕께서 오실 것이다!! 쿠히히히!!”

       

       심문소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대화’와 ‘교화’의 소리. 유달리 청각이 예민한 에스텔은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꼭 막으며 걸어야 했다.

       

       “이게 여기 어디쯤 있을 텐데… 분명히 아마… 아, 여기 있군요.”

       

       책과 서류가 잔뜩 꽂힌 방에 도착한 수장이 어딘가를 뒤적이더니 이내 두툼한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이게 지금까지 이단 심문소에서 모은 심연에 대한 자료입니다. 어디에 쓰실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행운을 빌겠습니다. 용사님께서 가시는 길에 빛이 있기를.”

       

       “귀중한 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꼬부랑거리는 글씨가 가득했다. 슬쩍 종이를 바라본 케니스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아.”

       

       전부 고어였다.

       

       …케니스는 아직 고어를 배우는 중이었다.

       

       

       

       

       

       *****

       

       

       

       

       

       이베르의 우당탕탕 가출 쇼는 나름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천만다행으로 내 마음을 알아준 이베르가 스스로 돌아왔기에 다행이지, 만약 내 신호를 못 봤거나 무시했다면ㅡ

       

       “…음.”

       

       생각하지 말자. 

       어쨌든 이베르가 무사히 돌아온 게 중요하니까.

       

       – “삑…”

       

       그런데 가출 사건 이후로.

       이베르의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그렇게 좋아하던 온천에 발길을 뚝 끊더니, 통통한 꼬리와 날개를 축 늘이고 다니는 것이다. 거기에 축축 늘어지는 울음소리까지.

       

       – “이, 이베르야@… 도대체 왜& 그러냐. 응? 어디 아픈 거냐?”

       

       – “말을 좀 해봐라•, 말을! 고민이 있다면¡ 말을 해다오! 우린 가족이나£ 다름 없지 않냐!”

       

       – “삐… 삐이익…”

       

       귀여운 행동거지와 발랄한 성격으로 분위기를 띄우던 이베르가 저 지경이 되니.

       당장 난리가 난건 드워프들이었다.

       

       풀밭에 드러누운 이베르 주변을 둘러싸며 주점에서 먹을 것도 가져오고, 따뜻하게 해준다며 어디선가 이불도 까는 둥 호들갑을 떨었다.

       

       ‘이거… 내가 다시 돌아오라고 해서 그런 건가?’

       

       이베르가 신전에 돌아온 다음부터 저 지경이 됐다.

       설마 싶지만, 정말 내가 이베르를 돌아오라고 해서 그런 걸까?

       

       “혹시 내가 잘못한 거야…?”

       

       난 그저 방황하는 가출 청소년을 올바른 길로 인도했을 뿐인데.

       왜 이런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거지.

       

       – 뽀짝… 뽀짝…

       

       – “아이고@ 이베르야! 누워! 누워 있거라!”

       

       – “…삐이ㅡ”

       

       비틀비틀 몸을 일으킨 이베르가 비척비척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이베르의 뒷모습은 세상 모든 고민을 다 짊어진 그것이었다.

       

       호들갑 떠는 드워프들을 뚫고 이베르가 향한 곳은, 커다란 ‘차원 관문’ 앞이었다.

       

       초원의 변두리에 위치한 관문.

       그 주변은 오가는 이 하나 없어 인기척이 없었다.

       

       

       관문 주변에 도착한 이베르가 철푸덕 엎어졌다.

       

       아니, 엎어진 것이 아니라… 절을 하고 있었다.

       

       짧은 팔다리와 유아기 특유의 커다란 머리 때문에 엎어진 것처럼 보였다. 

       

       “아, 아니… 이게 도대체 뭔…”

       

       풀밭에 붙은 찹쌀떡 같은 형태가 됐다.

       그 자세 그대로 이베르가 고개를 올려 화면을 똑바로 바라봤다.

       

       화면 너머로 어쩐지 이베르와 눈이 마주쳤다는 기분이 들어 조금 오묘하다.

       

       – “삐…”

       

       가냘프게 우는 이베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유라도 알아야 내가 뭘 해주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렇게 죽어가는 모습만 보여주면 뭘 해줄 수가 없다.

       

       이런 답답한 마음을 눈치챈걸까.

       

       – “…삐ㅡ, 위대하신@ 분께 감히 ¡바라옵니다…”

       

       이베르의 입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자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삐, 삐익, 삐히ㅡ를 제외한.

       내가 읽을 수 있는 단어를 이베르가 말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았다. 어느 영화에서 절름발이가 멀쩡하게 걷는 걸 봤을 때, 거의 그 정도의 충격이 나를 강타했다.

       

       “이이이베르가! 말을…!”

       

       말을 할 수 있었어?

       언제부터? 처음부터인가? 아니면, 지금부터? 

       

       – “당신의€ 가장 낮은 종이 이리* 바라옵건디… 부디 저의 청을 외면하지# 말아주옵소서.”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솟아난다.

       

       이베르가, 이베르가!

       말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매우 유창하게! 어휘 구사력 수준을 보면 어린애가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 “부디, 부디… 저희의▪︎ 쇠락한 왕°을 구하시옵소서. 그에게 안식과… 평온을£ 허락하소서. 그대의 종$이 감히 청하옵니다.”

       

       이베르가 절하면서 계속 뭐라고 떠드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간 이베르의 모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드워프와 엘프 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춤을 추던 모습, 온천에서 드워프와 물장구치던 모습, 귀여운 울음소리와 애교로 보는 이의 심장을 녹이던…

       

       그런 이베르가… 응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니 이베르야…?”

       

       지금까지 나를 속인 거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독서567’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연…참…!! 저도 마음 같아서는 매일매일 연참할 수 있는, 초ㅡ슈퍼ㅡ울트라 작가가 되고 싶지만…!! 현실은… 열심히 뛰어오는 잉어킹…!!!
    연참보다 더 좋은… 작가의 하트는 어떠십니까…??

    하트 뿅뿅♡♡!!!

    – ‘신선우’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지구 작가님의 개연성 없는 진행…!! 연중하면 아쉬운건 저희들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중도 하차가 불가능한 소설이라니…!! 이 무슨 횡포…!!!
    극한의 효율충은…!! 극한의 애정과도 같습니다…!! 본디 애정이란… 외모 혹은 성능에서 나오는 것…!! 극에 다다른 효율충은… 애정충입니다…!!

    다음화 보기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