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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9

        

         허어, 으음….

         그래, 플랜 B. 공적으로는 미처 통성명도 안 한 예쁘장한 정체불명의 갑부 아가씨에게 자비를 구걸하기. 즉흥적이지만 괜찮은 방법이 될 지도.

         

         “그. 저기, 먼저 저로 인해 피곤하고 번거롭게 움직이셔야 했던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혹시 지금이라도 얌전히 따라가면 어떻겠.  서걱!!  네, 힘들겠죠!? 예입…!!”

         

         고분자 코팅된 주요 도로나 탄소강을 함유한 대로(Main Street)와 다르게 옛날에 깔아 둔 구식 충전재로 가득한 바닥이 무슨 과일 쪼개지듯 동강나는 걸 코앞에서 직관한 그가 허겁지겁 말을 주워담으며 얼른 몸을 굴렸다.

         

         방금 이쪽으로 들어오는데 쓴 샛길…은 친숙한 멍멍이로 가득하네. 빠르기도 하지.

         

         21세기였다면 정육점에서도 위험하다고 취직 거부당했을 살인 거미보다야 전갈 꼬리 사냥개가 낫겠지만, 저 품에 뛰어들었다간 ‘착한 아이로구나. 상을 전부 주겠노라~’를 당할 수도 있는 만큼 선뜻 호감이 가진 않았다.

         

         캉캉캉캉캉캉!!!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우선은 저게 자유롭게 튀어 오를 수 있는 공간을 주느니, 아예 비좁은 곳이 눈곱만큼이라도 더 이점을 가지지 않을까 하고 어깨가 간신히 들어갈 것 같은 건물 틈새로 뛰어들자.

         

         지면에 그 많은 칼날을 내딛는 대신 수직 좌우로 길게 뻗어 평행한 두 면 사이에 사뿐히 안착한 슬래셔가 미친듯이 다리를 놀리며 따라붙었다.

         

         일부 공포 게임의 테마가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함에서 나오는 걸 고려한다면 과연 이건 과연 이건 사이버펑크가 아니라 호러 게임이나 다름없었다. 아니지, 총 한 자루 못 쓰는 상태의 FPS 게임이라면 공포 장르 쪽에 더 가까운 게 어찌 보면 당연한가.

         

         텅, 터엉!

         

         “으헥. 으아악!!”

         

         진행을 가로막는 파이프라인이나, 소방법을 준수해서 설치된 외부 비상 대피로를 이루는 철골 구조물이 숭덩숭덩 잘려 나간다.

         

         진동 칼날의 절삭력이 상상이상이다. 총이 아니라 전신에다 두를 방어구 생각이 더 간절해질 정도로, 도려내진 합금 파편들이 지면에 떨어져 충격파를 내뿜을 때마다 생명의 위협이라는 녀석이 피부에 닿아 흘러드는 게 느껴졌다.

         

         당장 얼마 남지 않은 숨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게 망할 방독면을 벗어 던지고 싶었으나, 붙잡혀서 억지로 벗겨질지언정 선뜻 신원을 특정할 수단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돈 문제도 있었지만 성형이 흔한 세상이라 해도 수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본능적 거부감은 여전해서…. 아, 임플란트는 예외다. 존나 멋진 사이보그 업그레이드는 못 참지.

         

         캉캉캉!!

         

         “헉… 허억….”

         

         하지만 실없는 상상으로 현실의 고통과 고단함을 잊는 것도 슬슬 막바지.

         장시간 혹사당한 사지가 연기없이 이번엔 실사로 넘어져도 괜찮냐며 일분 일초마다 주인을 타박해왔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개고생을. 그렇지만 아나스타샤를 궁극적으로 설득하려면 가급적 관계를 맺는 방식도 게임과 똑같이 따라하는 편이 유리한 게 당연….

         

         ‘……자꾸 이런 잔머리나 굴리다 그녀를 제대로 빡치게 만든 건 아니고?’

         

         원래 온갖 허튼 생각은 몸이 구르다 보면 자연히 사라진다고.

         하나의 지침(Guide Line)에 불과했어야 할 신기루 같은 메시지에 과몰입해서 생긴 가짜 우월감, 플레이어로서 가졌던 미묘한 허영심이 한여름 무더위에 얼음이 녹아내리듯 스러졌다.

         

         특별하지만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한 번 갔던 길을 단순히 더듬는 게 아니라 지표로 삼아 새로이 개척하는 것이다.

         여기에 떨어진 건 무한히 재시도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본인이지 않나.

         

         거기까지 상념이 닿았을 때, 한계에 달한 그의 시야가 서서히 흐려졌다.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대로변에서 나온 빛이 눈을 괴롭혔지만 한편으론 더럽게 반가웠다.

         자신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 게 아니라, 설마 아무리 화가 났어도 슬래셔를 대놓고 공공장소에서 굴리지는 않을 거라는 그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건재했으니까.

         

         그러나 터덕, 하고.

         스텝이 꼬인 다리가, 균형을 잃은 상반신이 기울어진다.

         

         여기까지 와서 배드 엔딩…이라는 바보 같은 소리가 얼핏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실체화한 악몽은 찾아왔던 것처럼 떠나는 것도 갑작스럽게 폐막을 고해왔다.

         

         “으, 어?”

         

         천지사방을 살벌하게 도려내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진동을 멈춘 거미 다리가 넘어지려는 몸을 살포시 지지해서 부드럽게 지면에 내려놔 주고는.

         

         야간 조명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저녁 그늘 속으로 한 마리의 유령처럼 흔적도 없이 그 형태를 감췄다.

         

         간신히 눈꺼풀을 똑바로 들어올리자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앙증맞지만 단단해 보이는 부츠가.

         그 위로는 어벙하게 끔뻑이는 자신과는 다르게 오연하고 기품 있게 감고 있던 두 눈을 치켜 뜨는 하얗고 까만 갑부 소녀께서.

         

         한 쪽은 조심스럽게 마련된 자리의 주인을 올려다보고, 다른 쪽은 깊은 한숨과 함께 땅바닥에 널브러진 말썽꾸러기를 내려다본다.

         

         “……그래, 이제는 좀 쳐다볼 마음이 들었나 봐?”

         

         침묵은 그다지 길게 가지 않았다.

         

         

         

         ★ ☆ ★ ☆ ★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한데, 가끔 길 가다 골목 입구 부근에 껄렁해 보이는 인간들이 잔뜩 서있어서 일부러 피해 간 경험. 살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꼭 거기서 담소를 나누고 계신 분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시비를 걸거나 해코지를 한다는 게 아니라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장소에는 아예 접근을 꺼린다는 의미에서.

         

         피곤해질 상황은 미연에 방지하는 게 피차 편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인도 한 귀퉁이, 좁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입구 부근을 다수의 드로이드로 둘러쳐 버리고 행인의 접근과 시야를 차단한 건. 불량배 코스프레를 한 게 아닌, 내 섬세한 배려였다는 소리가 되시겠다.

         

         반박하는 분이 계신다면… 아직 슬래셔 드로이드가 격납고로 안 들어갔거든요? 저기 가서 다시 얘기를 나누시겠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습니다. 예.

         

         ……뭐요, 뭘 보는데요. 콱 씨.

         

         “하아….”

         

         삼천포,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로 빠지려던 정신을 얼른 정상 궤도로 되돌렸다.

         

         졸지에 짧고 굵은 한방이 아니라, 가늘고 길게 능력을 계속 사용하며 멀티태스킹을 유지한다는 새로운 응용을 실전에서 죽어라 써본 걸로 인해 머리가 아픈 걸로도 모자라.

         일일 운동은 물론이고 간식 챙겨 먹을 시기도 걸러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는 한이 있었지만 결국엔 우리 추정 한국인 친구를 결국 앞에다 앉혀 놓는데 성공했으니까.

         

         온 신경을 다 쏟아도 모자랄 판에 한정된 시간과 기력을 더 낭비하는 건 안 될 노릇이지.

         

         “…스읍, 꿀꺽.”

         “…….”

         

         그러나저러나, 멀리서 각종 관측 장비의 눈을 빌려 구경했던 것보다 가까이서 보니 남자의 상태는 더욱 엉망이었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건 물론이고, 쓰레기통에 숨는 깜찍한 흉내도 망설이지 않은 탓에 기발하게 구겨진 옷가지와 행색이라던가. 여기저기 긁히고 망가진 정도가 심해진 방독면…이라기보단 이젠 숫제 얼굴 뚜껑에 가까운 상태네.

         

         와중에도 미래 밥줄을 걸고 있다는 건 잊지 않았는지, 가슴팍에 고정한 PDA는 흠집 하나 없이 잘 지킨 게 헛웃음을 자아냈다.

         

         허나 확인할 거리는 아직 남아있었다. 짚고 넘어갈 점이라고 하는 게 맞나.

         

         챙!!

         

         “왁!? 선생님, 누님! 제가 잘못했으니 할 말이 있으면 저희 대화로 좀…!!”

         “시끄러워 이 바보 멍청아.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대? 가만 있어. 그렇게 난리치다간 진짜로 더 다친다?”

         

         내 곁에 차마 둘 수 없는 상태라며 외곽 경비로 빠진 1호기 대신, 여태 찰떡같이 붙어있던 제로 0호기의 팔뚝에서 블레이드가 튀어나오자마자 난리 부르스를 떨려는 그의 곁에 다가가 어깨를 짚고 진정시켰다.

         

         누가 찌르거나 찢어 버리기라도 한댔냐?

         ……아니, 그 찢는 건 맞는데. 옷만 찢을 거야 옷만!

         

          부우욱! 더 쓸데없는 유난을 부릴라. 외투 앞섶을 펼치고, 살짝 붉게 물든 셔츠를 조심스럽게 갈라내자 상반신 일부를 감은 붕대와 배어 나온 피의 쇠냄새가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술래잡기 중간에 약올라서 기어이 한 방 쐈냐고? 에이, 그럴 리가.

         

         내가 실수를 해서 꼬챙이를 찌르거나, 어느 파편에 다친 건 아니지만… 과한 운동을 강제해서 봉합된 부위가 덧나게 만든 건 사실일 것이다. 아마도.

         

         그가 가게에 들고 나타났던 최초 예산이 얼마였지? 그러니까 15만 크레딧??

         

         막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은 당연히 아니지만, 또 제대로 영어 회화조차 통하지 않는 동양계 남자가 손에 쥐었다고 하기엔 분명 구체적인 출처가 의심되는 액수이다.

         

         예에에전에. 내가 한창 돈벌이 수단을 고민할 때, 게임에서 그나마 편하게 초기 자금을 마련했던 방법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았었나?

         

         자존심을 접고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에 잠시 종사하는 것, 쉽게 말해 몸을 파는 게 첫번째 선택지이고.

         

         두번째 선택지도… 딱히 놀라울 것 없이 몸을 파는 것이다.

         단, 이 경우에는 문자 그대로 칼을 대고 신체 일부를 물리적으로 쪼개서 판다는 뜻이지만.

         

         “…뭐야, 제법 강단이 있잖아?”

         “어…… 감사합니다?”

         

         행여 진짜로 닿기라도 하면 고통이 심해질라, 무심코 옆구리 부근으로 뻗었던 손을 얼른 거두어들였다.

         

         그는 내가 비꼬는 건지, 황당하다 감탄하는 건지 확신하기 어려워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정말 순수하게 그 용기를 칭찬하고 있는 거였고.

         

         인간의 장기는 싸다. 인구수에 의한 공급도 공급이지만, 특히나 초회복 약물이나 신체 재생 기술이 에나마에 의해 민간에 본격적으로 보급되는 마당에 더는 비쌀 이유가 없다.

         

         그래서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왕 노릇을 하는 파라다이스조차 외부 황무지 인간들을 재분류할 때, 순수한 단백질 그릇으로서의 가치는 진짜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잡았었으니까.

         

         마취된 상태에서 쓱싹해버리는 위험한 조직들을 거른다면, 아마 ‘미식 클럽’ 같은 역겹지만 신용은 확실한 새끼들에게 가서 선불 카드를 지급받는 형태로 거래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 동네에 얼마나 오래 머물었는지는 그가 직접 알려주지 않는 이상 내가 알아내기는 힘들겠지만.

         

         이런 아찔한 결정을 내려서 쥔 돈을 그대로 걸고 다시 한 번 미래에 투자하기 위해 일부러 서킷 리파이너리까지 모험을 하러 찾아왔다?

         

         마음 같아선 그대로 껴안고 고생했다며 같이 등이라도 두드려주고 싶은데 누군지도 모를 년에게 그런 짓을 당해봐야 동정밖에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위로를 할 거라면…… 다른 식으로 곡해할 여지가 전혀 없게 해야지.

         

         스르륵.

         

         외투 안주머니에 있던 그의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선불 카드를 조심스럽게 빼냈다.

         관점에 따라서는 눈뜨고 코 베이는 도중이나 다름없거늘, 그는 저항할 생각조차 없는듯 멍하니 이쪽을 응시하느라 바빴다.

         

         그야… 제로가 다른 쪽 어깨를 무심하게 누르고 있으면 못 움직일 법도 하겠네. 음.

         

         잠시 액수를 고민하다가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엇비슷한 수준의 몰골을 재차 보고, 조용히 내 계좌와 카드 마그넷을 이어 붙여서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양의 크레딧을 송금했다.

         

         헤프게 쓰면 금방 바닥나는 게 저금이지만 얘는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셈이니까, 자리를 잡은 내가 이만큼은 챙겨주는 게 맞으리라.  

         

         “1억 크레딧, 넣어 놨어. 치사하게 갚으라는 말 같은 건 안 할 테니까. 찌질하게 목에다 번역기 같은 거 차고 다니는 걸로 어쭙잖게 해결하려 하지 말고, 이걸로 가서 ID 만들고 임플란트부터 박아서 영어부터 익혀. 남은 돈으론 숙소를 구하던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데 쓰던 알아서 하고!”

         

         “!!”

         

         방독면 렌즈 너머로 보일 듯 말 듯한 검은 눈이 크게 떠진 것 같았다.

         

         하, 얼굴도 모르는 놈에게 1억을 쾌척했다고 호구라 소문나는 건 아닌가 몰라. 만약 그러면 얘를 잡아다 주리를 틀면 되려나.

         

         나는 방금 급조한 무대에서 장황한 모의전을 치르며 그를 충분히 들여다봤다.

         

         그렇지만 그는 나를 들여다볼 여유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거의 뭐 쳇바퀴 안의 햄스터 수준으로 굴려 댔으니 오히려 읽어낸 부분이 있다면 그것도 칭찬해주겠다. 정말로.

         

         툭툭, 무릎을 털고 쭈그려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 같아선 저 구질구질한 방독면을 벗겨버리고 얼굴을 마주한 채, 정식으로 자기 소개와 통성명 정도는 하고 싶었는데…. 

       

         “………후우.”

         

       

       

        심장이 욱신거렸다.

        발 밑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사위四圍가 멀어지고 머리속에서 벼락이 내리 꽂혔다.

        천상의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한 두통이 이어지니 그 고통이 뜻하는 바는… ‘아직, 아직이야’.

         

       

       

         ‘이런… 씹.’

         

         자유 의지를 반강제로 제지당했다라.

         굉장히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에 불쾌함이 치솟았지만, 충격으로 인해 떨리는 팔을 보여 주는 건 약한 모습을 내보이는 것 같아서 애써 억눌렀다.

         

         친구도 되지 못한 협상 대상에게 그런 기색을 드러낼 수야 없지. 암.

         

         결국 객사 방지 대책으로 주기로 했던 돈도 주었고, 비록 엉망인 마스크 때문에 제대로 보진 못했으나. 한국인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눈동자를 가까이서 본 덕분에 향수도 좀 가셨으니… 나머지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자.

         

         어차피 신비로운 초상의 힘이 ‘대면’한다는 행위 자체를 방해하고 있을 정도로 이 남자가 중요한 무언가라면,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게 맞다.

         

         그래서 심문은 다음으로 미뤘다. 실체를 확인할 여유 기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헌데 얘는 실전 같은 훈련을 한바탕 겪었으니 앙상한 고목처럼 느껴지던 처음보다 다 죽어가는 지금이 더 기운이 없어야 정상인데, 묘하게 생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

         

         집요하게 날 바라보네.

       

         역시 돈인가? 보통 뜻밖의 용돈은 없던 힘도 솟구치게 만들긴 하지.

       

         하여간 통제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심장이 진정될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다른 접근이라도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자리를 비웠던 감시자가 슬슬 돌아올 마감 시감이 되었다는 보고를 들은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은 더 좋은 자리에서 재회하기 위해 작별 인사를 건넬 때다.

       

         그렇지만 이 뻔히 보이는 연극을 계속 하려는 답답이에게 무조건 분노를 담은 한 마디는 찌르고 가고픈데.

         

         아, 얘는 못 알아듣는 건 물론이요 기억하기도 힘들어 할 언어를 써서 어디 한바탕 고민하게 만들어줄까.

       

         “그럼 다음에 보자? Ты невежественный ублюдок.(이 눈치 없는 바보야.)”

         

         대답을 미처 듣기도 전에, 괜히 어색한 아이 컨택을 하기 전에 몸을 돌려서 앞에 대기시켜 놨던… 여지껏 할증 요금 계산을 하고 있던 크루즈 택시에 훌쩍 제로와 함께 올라탄 나는.

         

         텅! 하고 문을 닫고, 진짜로 쿨하게. 현장에서 떠났다.

         

         뭐, 실제로는 감시 겸 호위 목적으로 붙인 일부 드론을 제외하고는 전부 창고와 격납고로 제대로 귀환하는 것과.

         아슬아슬하게 돌아온 마사나리가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제로의 보고까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지만!

         

         따라오는 사람, 떠나는 사람. 끝까지 모두를 확인하다가, 지천에 널린 눈에 접속되어 있던 사이버웨어를 다시 통상 모드로 되돌리고는 제로에게 임무 바통을 넘겼다.

       

         “좋아. 어떻게 탐지는 잘 돼?”

         

         – 민간 판매용 그라운드 제로 넘버링 #1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공용 네트워크가 닿는 장소라면 실시간으로 계속 추적 가능합니다. –

         

         “그래~ 혹시나 명의 변경을 하거나, 양도하는 게 탐지되면 바로 그냥 낚아채 버리고~”

         

         응…? 이게 다 무슨 말이냐고?

         아무리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기로 마음먹었어도 설마 최소한의 목줄…이 아니라. 크흠! 추적 수단도 생각 안 했겠는가?

         

         헤멧 씨를 대리인으로 삼길 정말 잘했다. 역시 이 아저씨, 처세술이나 행동력이 평균 언저리가 아니다.

         

         본래는 정착 지원금(?)을 넣어주면서 은근슬쩍 PDA에 스파이웨어를 심으려고 했는데, 아까 일대에 해킹 전파를 날리면서 벌써 그가 ‘챙겨주라’는 내 뜻에 따라 백신의 기념비적인 첫 손님으로 대접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얘기는 한결 간단해졌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빈 해자를 메워 나가면 된다. 날 보는 그 친구의 눈초리나 기색이 영 색달랐던 연유도 차츰 알아가면 되고.

         

         “으으응…♪”

         

         결과적으로 완벽한 하루였다는 만족감을 가지고 기지개를 폈다.

         

         바이러스를 뒷수습해줄 백신도 풀었지. 기웃거리던 엘리시움 방문 판매원도 잘 내보냈지.

         

         마지막으로 이르기 그지없는… 혹은 반대로 늦어도 한참 늦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미래의 동지까지 얻었으니, 기쁘지 않다면 그건 정신 이상자가 틀림없다. 암 그렇고 말고.

         

         

         

         ……그리고 옛말에 높이 올라간 기분은 떨어질 때도 배로 아픈 법이라 하였으니.

         얼마 후에 맞이하게 된 아주, 아주아주 비극적인 소식에 나는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간략히 요약해서, 이 망할 새끼가 남의 돈만 홀랑 집어먹고는 계획적으로 잠수를 탔다는 말씀인데.

         

         안 갚아도 된다고 친절히 말하지 않았었냐고? 아니, 사람이 경우나 도리가 있으면 적어도 어디에 어떻게 잘 썼다고 연락은 해야 할 거 아니야!?

         

         어떻게 깔끔하게 잔고를 다 비우고 튈 궁리부터 해서 이리 완벽하게 실행하냐고! 마치 내가 꼬리를 붙일 방식이라도 다 아는 것처럼!!

         

         아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머나먼 타지에서는 동향 사람을 더욱 조심하거라.
    열심히 써봤는데 한 발자국 차이로 닿질 못했네요. 으윽.

    다음 화로 에피소드가 마무리 될 예정입니다.

    언제나 재밌게 봐주시고, 댓글 남겨 주시고, 추천 누르고 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영광입니다.

    23/12/01 03:25 지나치게 간략화 되었던 일부 묘사가 수정되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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