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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9

     비행선이 역사에 등장한 건-

     노스트럼이 끝난 이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모르가니아로 도망갔다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끌려와 처형당한 이후였다.

     훗날 제국을 통해 입수한 ‘노스트럼 공략 5대 계획’에 따르면, 제국에서 개발한 비행선은 무조건 투입될 예정이었다.

     대규모 인원 수송용 비행선이든, 아니면 용기병 대응을 위해 개발된 소형 비공정이든, 풍석 개발을 통해 하늘을 나는 무언가가 반드시 한 번은 등장할 예정이었다.

     황제 주도로 이루어진 계획이라 보안은 철저했고, 노스트럼에서는 제국에 어떤 관심도 없었다.

     단지 인생이라는 게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며, 황제가 보험으로 들어뒀던 것이 잭팟이 터지며 비행선은 첫 데뷔를 전쟁에서 하지 않게 되었다.

     지브롤터 협곡을 넘어서기 위해 개발된 물건.

     하지만 지브롤터 관문이 세 개 다 열리게 되면서, 제국군은 그냥 제 발로 협곡을 넘어올 수 있었던 것이 회귀 전의 역사.

     즉.

     

     비행선이 등장한 시점은 무능왕이 사망한 이후다.

     황제는 카르멘 총독과 매국노 그레이를 위시한 노스트럼령 관리자들을 부른 자리에서 마지막 하이라이트로서 비행선을 태워줬다.

     당시의 충격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인생에 있어서 세 번째로 가장 큰 충격이었다.

     인간이 마법과 비룡의 도움 없이도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냥 가만히 서 있는데 아래에서 구구구 하는 진동이 느껴지더니, 곧 거대한 배가 하늘을 날며 지브롤터 협곡 사이를 지나가는 모습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예산을 모아, 지브롤터 백작령 자체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소형 비공정을 하나 사들이기도 했다.

     모종의 사유로 예산이 생각보다 여유가 생겨서 몇 대 더 사들이기도 했지만, 소형 비공정을 통해 나는 아스타시아를 데리고 노스트럼 전역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에 죽은 사람들의 수습을 하거나 그런 경우가 생각보다 잦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선을 타는 건 포기할 수 없었다.

     타보면 안다.

     비행선이라는 건, 인간이 하늘을 나는 감각은 여러 번은 해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한 번은 반드시 해볼만 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땅을 보았을 때, 인간은 시야가 넓어지며 새로운 세상을 보는 느낌을 가지게 되니까.

     한 번 비행선을 타려면 열차 10번 정도는 타고다닐만큼 비싼 돈을 모아야 하고, 때로는 열차로 다니는 시간과 비슷하게 도착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호기심 좀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무조건 타보게 된단 말이지.’

     하늘을 나는 배.

     참을 수 있을까?

     전혀.

     한 번 비행선을 타본 사람은 그 경험을 알고 있기에 꼭 다시 안 타봐도 나중에 더 기술이 개발되고 난 뒤에 타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이들은 기대할 수밖에 없다.

     배가 하늘을 난다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다.

     이건 점잖아보이는 크림슨 지브롤터 후작도 참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레이.”

     “예, 아버지.”

     바로 지금처럼.

     “내가 먼저 타자꾸나.”

     “…….”

     아버지에게, 진수식 이후 첫비행을 빼앗기게 생겼다.

     

     * * *

     [지브롤터 후작성, 캐롤라인 성. 후작전용 서재.]

     아버지는 나를 캐롤라인 성으로 호출했다.

     “비행선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예.”

     “시운전을 해봐야겠군. 안전한지 아닌지.”

     “아버지.”

     바토리 소장을 불러 금으로 만든 풍석을 달아두고 난 뒤 지브롤터 후작성의 예산을 통해 비밀리에 내부 소모품을 집어넣으려고 허가를 받으러 왔는데, 졸지에 아버지는 그걸 대외적으로 공개하려고 했다.

     “황금으로 만든 배는 분명 그 망할 무능왕의 죽음을 위한 관이지. 하지만 꼭 그에게 첫 비행을 넘겨줄 필요가 있을까?”

     “첫 비행이 아니라면 그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

     “배는 과거부터 여인으로 비유를 하는 경향이 있었죠. 표현은 좀 어색할 수 있지만, 처녀비행을 빼앗기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비행선을 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아버지는 잠시 침묵했다.

     처녀비행이라는 표현 자체에서 불편함을 느꼈다기보다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실제로 그런 짓을 할 수 있기에.

     “하긴. 그렇게 되면 기껏 준비한 황금의 비행선이 원래 목적과는 다른 용도로만 쓰이게 되겠군.”

     “그렇죠. 모처럼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건데, 그냥 하늘을 나는 배 정도로 쓰이게 될 겁니다.”

     “…쓰여도 되는 거 아닐까?”

     “아니, 아버지.”

     “그레이.”

     아버지와 의견이 갈렸다.

     “비공식적인 첫 비행 정도라면, 우리 가족이 먼저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 네가 그 동안 열심히 노력한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먼저 첫 비행을 누려보기도 전에 세인트 지오에게 넘겨주는 건 조금 그렇구나.”

     “그 비공식 첫 비행마저도 남의 손을 탔다고 불쾌해할 수 있습니다.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존재라.”

     “안전상의 이유로 실제로 시운전을 해봤다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다른 것도 아니고 하늘을 나는 것이다. 비밀을 지키는 것도 정도가 있지, 괜히 하늘을 날았다가 추락이라도 한다면….”

     아버지가 순간 눈썹을 찌푸렸다.

     “추락사시키려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무능왕이 배를 몰고 다니다가 실수로 풍석을 고장내서 추락한다면 그렇게 되겠죠. 하지만 적어도 첫 비행은 아닙니다.”

     “으음….”

     “황금의 비행선을 날아다니는 왕의 무덤으로 만들 계획은 지금 따로 준비되어 있으니, 첫 비행만 어떻게 좀 참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으음….”

     “으음…만 하지 마시고. 아버지답게 왜 그러십니까? 어머니가 혹시 비행선을 타보고 싶다고 하시던가요?”

     “그게.”

     아버지는 너무나도 곤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루비, 마린, 샤피, 그리고 토파즈가 한 번 타보고 싶다고 하더구나.”

     “아.”

     이들이 누군가. 내 동생들이다.

     “아니, 잠시만요. 토파즈는 이제 갓 태어난 아이가 아닙니까.”

     “갓 태어났다니? 요즘은 뛰어다니기도 한단다. 네가 아이를 안 키워봐서 잘 모르겠지만, 아이는 그 정도면 빠르게 크는 거야.”

     “하….”

     그리고 내가 아카데미에 이사장으로 들어간 이후, 토파즈라는 막내 동생이 생겼다.

     정확한 시기는 영지전 이후.

     영지전에서 이기고 난 뒤에 엄청난 선물을 준다고 하더니, 그게 막내여동생의 갱신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이들이 비행선을 타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비룡을 타고 싶어해서 잘 타일렀지. 하지만 나중에는 마도자동선을 보고는 ‘비룡을 여기다가 묶어서 날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하더구나.”

     “…….”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쪽으로 상당히 많은 관심이 있던 모양이더구나. 한 번 이걸 보거라.”

     아버지가 서재 한쪽의 장치를 조작하더니, 곧 서재에 마련된 은닉용 보물창고의 문을 열었다.

     “갑자기 무슨….”

     “잘 그렸지 않느냐?”

     아버지는 두 팔을 쭉 펼쳐서 들어야 할 정도의 거대한 액자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액자에는 샤를로트 후작부인의 초상화-가 아닌, 제국에서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12색 크레용으로 그려진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여기, 네 동생들이 그린 상상화란다. 보이느냐? 비룡 네 마리가 전후좌우에서 마차를 밧줄로 묶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으음….”

     “마린과 샤피에게 풍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줬더니, 그 아이들은 아예 이 캐롤라인 성의 아래에다가 풍석을 대량으로 달아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그렸단다.”

     “무슨 신화시대에 나올 법한, 혹은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천공섬이라도 되는 것 같네요.”

     둥둥 떠다니는 성.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성이든 섬이든 그걸 풍석으로 하늘에 떠있게 하려면 막대한 양의 마나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린 아이의 상상력이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발상이 남다르기는 하군요.”

     “그렇지?”

     “예. 하지만 그렇기에 더 태울 수 없습니다.”

     “…왜?”

     “안전이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어린 동생들을 태울 수 있겠습니까?”

     “…….”

     아버지는 한 방 먹었다는듯 입꼬리를 비틀었으나, 곧 씩 입꼬리를 비틀더니 보물창고 안쪽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렇다고 하는구나, 얘들아.”

     “……!”

     순간, 나는 아버지의 손짓이 아버지 스스로 펼쳐놓은 기막을 거두기 위함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느껴지는 인기척.

     “…안 돼?”

     한쪽에는 레타르가, 그리고 다른 쪽에는 레타르 이하 여동생들이 고개만 빼꼼 내민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니, 아버지.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아니, 그 이전에 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안 되죠.”

     “들려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기막을 펼쳐놓고 있었지.”

     “…….”

     “너와 나의 대화다. 설마 내가 네 동생들에게 위험한 이야기를 들려줄 리가 있겠느냐?”

     아버지가 몸을 숙이며 두 팔을 옆으로 뻗자, 무슨 자석이 달라붙듯 여동생들이 순식간에 아버지에게 달라붙어 안겼다.

     “큰오빠가 아무래도 걱정이 많은 모양이구나. 아쉽지만, 하늘을 나는 배는 다음에 타는 걸로 하자꾸나.”

     “어, 안 되는 거예요…?”

     “…….”

     “히잉….”

     여동생들이 순간적으로 나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그들의 눈빛에는 아주 잠시나마 ‘실망’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 하하.”

     어처구니가 없다.

     “아니, 고작 배가 하늘을 나는 것 뿐인데 왜…?”

     “고작이라니. 혹시 너, 시험 운행으로 타본 적이 있느냐?”

     “…아뇨, 그건 아닙니다.”

     새삼, 나는 다시 깨닫게 되었다.

     회귀자는 비행선을 타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을 가진 사람 이외의 이들은 당대에 만들어진 비행선을 타본 경험이 없다.

     그러니, 아버지도 순수한 마음에서 호기심으로 타보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한 일.

     “알겠습니다. 추진해보도록 하죠. 하지만….”

     “하지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가장 먼저 비행선에 태우는 게 아니라면, 약간의 정치적 절차가 필요하기는 합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죽이기 위해서 비행선에 태우는 게 아니라면, 비행선을 가장 먼저 타는 사람은 세인트 지오가 아닌 다른 사람이어야 하거든요.”

     언어라는 것은 순서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바뀌는 경우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비행선이라는 게 꼭 황금의 비행선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아빠, 큰오빠 이상해. 말 되게 이상하게 하는 것 같아.”

     “원래 저렇게 말하니까, 너희가 이해하렴.”

     “…….”

     좋다.

     이제 막 글자를 읽고 쓰기 시작하는 아이들도 이해하기 쉽게, 하지만 미래에 관한 정보는 최대한 스포일러하지 않는 방향으로 설명하면 되겠지.

     “아버지.”

     “예.”

     “저와 함께, 수도로 가시겠습니까?”

     “수도…?”

     “예.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대신, 한 명 초청을 하도록 하죠.”

     나는 천장을 가리켰다.

     “역사에 기록될, 최초로 비행선을 타고 올 사내를.”

     

     “아빠, 여전히 오빠 말 이상한 것 같아.”

     “이해하렴. 너희 오빠는 사랑한다는 말 말고는 곧이곧대로 말하는 법이 없는 녀석이란다. 속이 꼬여서 그래.”

     “어, 오빠 속이 꼬였어요? 아프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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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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