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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9

   글라이시스 라디우스.

   냉기의 브레스가 모든 걸 집어삼키고 난 뒤.

     

   완전히 얼어붙은 숲속 안.

   자욱한 냉기의 안개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러한 냉기의 안개 속.

   브레스를 세 번이나 쏘아낸 탓에 빙룡 크리마는 종적을 감추고 없었다.

     

   비앙카가 조용히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거기에는 방금전까지 그녀와 맞섰던 달레아가 있었다.

   완전히 얼어붙어 버린 그녀는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비앙카는 주위를 스윽 둘러보았다.

   그러자 응시생 중 일부가 브레스에 휘말려 떨어트린 붉은 팔찌를 하나 발견했다.

     

   비앙카는 달레아의 뻗은 손날에 팔찌를 스윽 걸어 주고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꽤나 쏟아낸 탓일까.

   몸 여기저기가 지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 또한 빙룡의 브레스를 직격 당했다 보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달레아라는 강자를 상대하느라 오러도 상당량 소비하고 말았다.

     

   비앙카는 조금씩 감기려는 눈을 느꼈다.

     

   ‘아직 팔찌를 찾지 못했는데.’

     

   시험 통과를 위해서라면 노란색 팔찌를 찾아야 하는 마당.

   그러나 피로한 정신이 거기까지 생각을 닿게 하지 못했다.

     

   그때, 그녀의 앞에 얼음 여우 한 마리가 열심히 뛰어왔다.

   언제 품 안에서 나갔는지 모를 얼음 여우, 피이의 목에는 노란색의 팔찌가 걸려 있었다.

     

   “피이? 어떻게.”

     

   놀란 비앙카가 묻자 피이는 비앙카의 코앞까지 다가와 꼬리를 열심히 흔들었다.

   그것을 본 비앙카는 천천히 미소 짓더니 이내 피이의 입에서 팔찌를 받아 내었다.

     

   “잘했어.”

     

   비앙카가 칭찬해 주자 피이는 기뻐서 껑충껑충 뛰었다.

   비앙카는 팔찌를 소중히 끌어안고는 숲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나무 곁에 기대어 앉았다.

     

   더 이상 온몸에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비앙카는 자기 주위를 열심히 돌고 있는 피이를 보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피이, 나 잠깐만 눈 붙일게.”

     

   조금이라도 체력 회복을 위해 비앙카가 눈을 감은 순간이었다.

     

   사박-

     

   그녀의 곁에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소리를 듣지 못한 채로 말이다.

     

     

   * * *

     

     

   냉기의 브레스가 세 번이나 이어지며 마법들이 이리저리 붕괴한 터라 어지러운 화면 속.

   아레나의 화면을 크라슈가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당신, 그렇게 눈 바쁘게 찾는 거 없어 보여.”

     

   그 순간 옆에서 아스트리아가 슬쩍 핀잔을 줬다.

     

   그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이걸로 뭐라 할 줄이야.

     

   “딱히 그런 거 아니야.”

   “뭐래. 당신 두 눈을 그렇게 크게 뜬 거 처음 보는데.”

     

   아스트리아가 자기 눈 끝을 삐죽 세우며 크라슈를 따라 하자 크라슈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격식이 없어지는 아스트리아였다.

     

   아스트리아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는지 하던 걸 멈추고 헛기침했다.

   그러고는 이내 크라슈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보다 당신 무언가 신경 쓰이는 게 있어 보이던데.”

     

   하루종일 이쪽만 염탐하고 있기라도 한 걸까.

   크라슈의 표정을 통해 잘도 그 사실을 눈치챈 아스트리아였다.

     

   “조금.”

   “늘 조금이라 말해놓고 일 크게 터트리는 게 당신 장기잖아.”

   “사람을 무슨 취급하는 거냐.”

   “당신이 터트린 일 내가 얼마나 수습했는지 몰라?”

     

   허구한 날 다쳐 오는 걸 고쳐줬더니.

   적반하장으로 나온다며 아스트리아가 다그치자 크라슈가 아스트리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끼앙!”

     

   그녀의 비명에 순간 주위 시선이 이쪽으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아스트리아는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고개를 떨어트리더니 크라슈를 맹렬히 쏘아 보았다.

     

   누가 그렇게 비명 지를 줄 알았나.

     

   “언제는 네가 치료 필요하면 무조건 너부터 찾아오라 했잖냐.”

   “치이, 누가 뭐래.”

     

   아스트리아가 살짝 쀼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크라슈, 저기.”

     

   그때, 하링이 크라슈의 옷깃을 꾹꾹 당기며 위를 가리켰다.

   크라슈가 다시금 화면을 보자 거기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냉기의 안갯속, 달레아가 완전히 얼어붙은 꼴로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붉은 팔찌가 두 개 쥐어져 있었다.

     

   “달레아 쥬논이 진 거야?”

   “쥬논가의 여식이?”

     

   크라슈 말고도 시험을 보러온 아레나의 여러 이들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달레아와 비앙카가 부딪치는 것까지 본 이들이다.

     

   그런데 웬걸.

   비앙카는 없고, 얼어붙은 달레아만 있었으니.

     

   비앙카가 승리했다고 인식한 이들이 저마다 놀란 것이다.

   크라슈는 왜인지 모르게 자기 어깨가 치켜세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비앙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신경 쓰였다.

     

   ‘꽤나 힘을 쏟은 것 같은데.’

     

   크라슈가 걱정스럽게 화면을 보던 찰나였다.

     

   잠시 후 화면에서 곧 비앙카가 비추었다.

   부교수 진들도 달레아와 전투한 비앙카를 찾고자 화면을 돌리던 결과였다.

     

   그리고 곧 크라슈의 얼굴이 굳었다.

     

   왜냐하면 힘을 다해 기절한 비앙카의 앞.

   한 명의 인물이 조용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은색의 덥수룩한 머리카락.

   크라슈의 감이 신경 쓰게 만들었던 이.

     

   크라슈가 무심코 자리를 박차서 일어나려던 때였다.

     

   소년의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화면을 인식하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일종의 경고처럼 비추었다.

   크라슈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언제든지 부숴버릴 수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 크라슈. ]

     

   그때, 크림슨가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소년에 관해 알아내고자 크림슨가든을 보내었던 크라슈였다.

     

   시선을 고정한 채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곧 크림슨가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저놈, 락테아 소속이다. ]

     

   락테아 소속이라는 말을 듣자 크라슈도 몸을 굳혔다.

     

   무법지대, 산골짜기에 덩그러니 세워져 어느 사람도 위치를 모르는 락테아 가문.

   그러나 락테아 가문에는 한 가지 별난 특징이 있다.

     

   ‘세계 침식자 전문 척살 가문.’

     

   이들은 세계 침식자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가문이다.

   그들은 세계 침식자와 연루되었거나 관련된 모든 것들을 이 세상에서 지우려 한다.

     

   “찍찍!”

     

   에벨아스크 또한 시달려 본 적이 있는지 그녀의 시체 쥐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이 설령 조금의 연관성이 있었을 뿐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철저하게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려 하니까.’

     

   세상 사람들은 락테아 가문의 비정함을 때때로 비난하고는 하지만.

   그들 가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결국 이 세상에서 세계 침식자는 적이니까.

     

   ‘익시온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니. 그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소리인가.’

     

   크라슈가 왜 계속 소년을 보며 불안한 감정을 느꼈는지 깨달았다.

   그의 몸에 깃든 세계 침식의 힘이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진짜 문제는.’

     

   락테아의 중심점이자 가주인 인물.

     

   천상사강(天上四强)

   패황(覇皇)

   글라이시스 락테아

     

   락테아가 수많은 세계 침식자들을 사냥하고 다님은 물론.

   본가가 무법지대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세계 침식자들이 감히 락테아와 정면에서 붙지 못한 이유.

     

   그건 바로 글라이시스 락테아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과거, 전 천상사강인 투황 듀란달이 세계 침식자들에게 두려움의 상징이었다면.

   현재에 이르러 세계 침식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글라이시스 락테아였다.

     

   ‘지금 그런 락테아의 일원이 비앙카의 앞에 서 있다.’

     

   크라슈의 눈동자 속에 스산함이 깃들었다.

     

   크라슈는 세계 침식의 힘을 직접 다룬다.

   하물며 지금까지 크라슈와 연관된 세계 침식자들은 수도 없이 많아질 정도다.

     

   ‘락테아에게 나는 지금 적인가. 아닌가.’

     

   그 사실을 크라슈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락테아라 하더라도 비앙카를 건드리는 순간.

   크라슈는 눈에 뵈는 거 없이 엎어 버릴 작정이었다.

     

   [ 눈에서 광선 나오겠으니 그쯤 하거라. ]

     

   크림슨가든의 조언을 들으며 크라슈는 검은 머리 소년을 마주했다.

   크라슈의 기억 속 그는 분명 기억에 없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모습을 바꿨을 수도 있겠으나.

   기억에 없는 인물이라는 건 대부분 시대를 풍미하기 전에 목숨을 잃었다는 뜻과 같았다.

     

   그렇다면 저기 있는 소년은 지금 자신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연이 겹쳤는가.

     

   [ 당장 해칠 것 같은 느낌은 아니지 않느냐. ]

     

   그 말대로 소년은 비앙카의 곁에 서 있을 뿐.

   움직일 기색을 따로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크라슈도 당장 개입하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소년이 수상한 기척을 보였다면 즉시 제지했겠지만.

   소년은 비앙카의 앞에 서 있을 뿐, 더 이상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인지.’

     

   크라슈는 언짢은 기색을 가득 담은 눈으로 화면을 보다가 이내 의자에 다시금 앉았다.

   어느새인가 주변은 크라슈의 눈치를 스리슬쩍 보고 있었다.

     

   “……크라슈 당신 약혼녀, 앞에 다른 남자가 서 있다고 화내는 거야?”

     

   그때 아스트리아가 어이없는 눈빛을 한껏 담아 크라슈를 바라본 채 물었다.

   그 말을 들은 크라슈가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카란디스마저 스리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크라슈, 나는 이해해.”

     

   그러자 왜인지 옆에 있던 하링의 이해를 받았다.

     

   아슬란마저 한차례 쓴웃음을 지을 뿐.

   더 말하지 않았다.

     

   크라슈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당장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그저, 기다랗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런 거 아니다.”

     

   괜한 오해만 쌓여 가는 것 같은데.

   여러모로 머리가 아픈 기분이었다.

     

     

   * * *

     

     

   조금씩 녹기 시작하는 얼음의 숲 안쪽.

     

   백발의 소녀가 서서히 눈을 떴다.

     

   비앙카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느끼고 있었으나 타고난 표정이 무표정한 듯.

   그런 두통에도 불구하고, 덤덤히 주위를 살폈다.

     

   그러는 순간 그녀는 자신을 지켜주고 있어야 할 얼음 여우 환수, 피이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잠시 후, 그녀는 누군가의 품에 안긴 피이를 바라보았다.

   그것을 본 그녀는 놀랐다.

     

   자신 말고는 다른 이들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던 피이가 누군가에게 안긴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로브를 뒤집어쓴 검은 머리의 붉은 눈을 지닌 소년이 있었다.

   그는 피이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는 비앙카를 물끄러미 보았다.

     

   어딘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소년이었다.

     

   “피이를 돌려주세요.”

     

   그가 안고 있는 피이를 돌려달란 말에 소년은 피이를 바닥에 내려 두었다.

   그러자 피이는 소년을 힐끗 돌아보더니 쫑쫑거리는 걸음으로 비앙카에게 다가와 안겼다.

     

   “딱히 해를 끼칠 생각은 없었어.”

     

   소년은 비앙카에게 해코지할 마음이 없음을 보여주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비앙카는 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해칠 생각이 있었다면 피이는 그러고 있지 않았어요.”

   “그건, 다행이네.”

     

   소년은 그리 말하고는 어느 방향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 행동을 따라 비앙카도 그쪽을 의문스레 바라보려 하자 소년이 먼저 입을 뗐다.

     

   “이쪽 목소리는 저쪽에 들리지 않을 테니까. 말할게.”

     

   비앙카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뜬금없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크라슈 발하임은 현재 세계 침식자와 연루되어 있어.”

     

   다음 말을 듣고 비앙카는 일말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의심일 가능성이 있다면 여기서 반응했다간 여지를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머리 좋은 그녀답게 크라슈가 곤란할 수 있는 상황을 바로 캐치하고, 행동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는 일단 그저, 늘 그렇듯 무표정하게 소년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락테아 가문의 소속, 아라시즘 락테아.”

     

   소년이 천천히 붉은 눈동자와 함께 비앙카를 직시했다.

     

   “크라슈 발하임을 구하기 위해 여기 왔어.”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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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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