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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카자르와 세이렐 백작가에 무사히 들어오는 데 성공하고, 우리는 파티장 앞에 섰다. 입구를 지키는 백작가의 기사가 말했다.

         

       ―레이디 유플레인께서 입장하십니다!

         

       덜컥! 아치형 문이 갈라지며 파티의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천장에 달린 화려한 샹들리에. 곳곳에 놓인 최상의 요리들. 그리고 거기서 샴페인을 들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귀족들까지.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카자르가 입장했다는 건 그들이 별로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군.”

       “저희 가문은 별로 영향력이 없거든요.”

       “백작가에서 일하는 지방 남작가인데?”

       “돈이 없잖아요.”

         

       아, 그런 문제였군. 나는 이 백작령이 익숙하다. 끝도 없는 자본주의. 돈이 없는 자에겐 관심이 없고 돈이 되는 자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돈이 곧 힘인 곳.’

         

       뭐, 그렇다고 다른 곳은 다르겠나. 형태만 다를 뿐이지, 자신만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게 이 세계의 사회다.

         

       “세이렐 백작이 누군지 알려줘.”

       “저기, 2층에서 떠들고 있는 사람들 보이세요?”

         

       카자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한 손에는 샴페인을 들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아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중에서 남색 정장을 입은 사람 보이시죠?”

       “그래.”

       “저 사람이 세이렐 백작이에요.”

         

       하는 짓만 듣고 생각해보면 탐욕이 겉으로 드러나 돼지를 연상시키게 하는 외모일 줄 알았는데, 비교적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중년이라고 해야 하나.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하지. 파티나 즐기고 있어라.”

       “네. 근데 아쉽네요. 저 사람은 꼭 제 손으로 죽이고 싶었는데.”

         

       카자르의 눈빛이 살벌하다. 대체 얼마나 쌓인 게 많았던 거야?

         

       “저 몸에 커다란 구멍을 하나 만들어주고 올 테니 열 좀 식히고 있어.”

       “절대로 실패하시면 안 돼요?”

       “알고 있다.”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카자르를 뒤로하고, 나는 토끼 가면으로 바꿔 쓴 뒤,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세이렐 백작 앞에 섰다.

         

       “세이렐 백작님.”

       “…자넨 누군가?”

         

       어, 누구라고 소개하지? 그냥 대충 서브 남주 이름 걸어야겠다.

         

       “프리아덴 후작 영식의 명을 받고 온 사자입니다.”

       “호오, 아실 프라이덴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세이렐 백작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프라이덴 영식이 여기에는 무슨 일로 사자를?”

       “세이렐 백작님과 사업을 하나 하고 싶으시답니다.”

       “사업…?”

       “예. 세이렐 백작령을 통해서 가능한 사업이라고 전하셨습니다.”

       “여기를 통해서 가능한 사업이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일그러트리는 세이렐 백작. 아무래도 많이 의심스러운가 보다. 나는 말을 덧붙였다.

         

       “백작님께서 굳이 손을 쓰지 않으셔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입니다. 통행료 비슷한 거지요.”

         

       그제야 세이렐 백작이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세한 얘기는 휴게실로 가서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여기는 보는 눈이 좀 많아서…….”

       “좋네. 돈이 되는 이야기라고 하니 내 들어보도록 하지.”

         

       진짜 돈에 미친놈이 맞긴 하구나. 내가 정말 프라이덴 후작가에서 보낸 사자인지 의심도 하지 않고 바로 휴게실로 향하다니.

         

       ‘여기서 누군가 자신을 죽일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거겠지.’

         

       그게 네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실수이자 마지막이 될 거다.

         

       “들어가지.”

         

       나와 세이렐 백작은 빈 휴게실을 찾아 들어왔다. 쿵. 방음을 위한 두꺼운 문이 닫혔다. 세이렐 백작은 소파에 앉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이제 제대로 된 이야기를 시작하지.”

         

       나는 소파에 앉지 않고 씨익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앉지 않고 뭐 하는 건가?”

         

       주머니에 있던 깃털 펜을 꺼냈다.

         

       “세이렐 백작. 지금부터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할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썹을 좁히는 백작. 나는 말을 이었다.

         

       “백작령의 사람들을 착취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웠다. 맞나?”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여색을 밝혀 무고한 여성에게 누명을 씌우고 강제로 탐했다. 맞나?”

         

       백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대체 어디서…!”

         

       아무래도 카자르의 말은 진실이었던 거 같다. 사실 조금 의심스러워서 찔러본 건데, 저렇게 대놓고 반응이 나올 줄이야.

         

       “어디서 보낸 놈이냐! 이 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네가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어. 여기는 휴게실이잖아.”

         

       뭔가 깨달았다는 듯 움찔거리는 세이렐 백작.

         

       파티장의 휴게실은 대개 남녀 관계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 방음이 철저하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나한테 죽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카자르와는 달리 한 방에 보내줄 테니까.”

       “카자르…? 설마 유플레인 가문에서 보낸 것이냐?!”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주머니에서 꺼낸 깃털 펜에 오러를 흘려 넣었다. 차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푸른빛이 펜을 감싸 안았다.

         

       “오, 오러?!”

       “잘 아는군.”

       “말도 안 돼.”

         

       망연자실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세이렐 백작. 그를 향해 가볍게 카드를 날리듯이 펜을 던졌다. 쐐애액!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깃털 펜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소리 없이 세이렐 백작의 복부가 관통되었다. 뒤에 있던 벽에도 주먹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생겨있었다.

         

       “커허억…!”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복부를 부여잡고 고개를 내려보는 세이렐 백작. 뒤늦게 피가 터져 나온다. 이윽고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빨리 튀어야지.’

         

       나는 다시 고양이 가면으로 바꿔 쓰곤 휴게실을 나왔다.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혹시라도 누가 올까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갔다.

         

       파티장을 둘러봤다. 카자르는 접시에 여러 음식을 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향했다.

         

       “카자르.”

       “어, 오셨네. 어떻게 됐어요?”

       “성공했다. 이제 빠져나가야 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카자르. 우리는 조용히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저택의 입구를 나오며, 카자르가 물었다.

         

       “펜 어디에 던지셨어요?”

       “배.”

       “에, 재미없어라.”

       “그럼 어디에 던져주길 원했는데?”

       “말 안 해도 아시잖아요?”

         

       생각보다 무서운 여자였군.

         

       “그래서, 이제 공작저로 같이 가줄 건가?”

       “네. 아, 그 전에 해야 하는 일이 있어요.”

       “뭐지?”

       “따라오세요.”

         

       카자르를 따라 걸었다. 도착한 곳은 백작저의 옆에 있는 작은 창고였다.

         

       “여기엔 뭔 일로?”

       “보시면 알아요.”

         

       철컥.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창고의 자물쇠를 마법으로 해제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먼지만 푹푹 쌓여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카자르는 말없이 쭈그려 앉아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잡아당겼다.

         

       드르르륵.

         

       지하로 통하는 문이었다.

         

       “여긴?”

       “세이렐 백작에게 당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에요.”

         

       생각보다 더 더러운 새끼였군. 미친 새끼, 잘 죽였다.

         

       “가시죠.”

         

       카자르는 빛을 밝히기 위해 손에 불꽃을 둘렀다. 그렇게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철창으로 만들어진 감옥들이 나왔다.

         

       ‘내가 노예로 잡혀 왔을 때랑 비슷한 곳이군.’

         

       괜히 그때가 생각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카자르가 말했다.

         

       “이게 세이렐 백작의 취미예요.”

         

       카자르는 돌아다니며 감옥의 자물쇠를 마법으로 풀어주었다. 안에는 나이를 불문하고 벌거벗은 여성들로 가득했다.

         

       “여러분! 세이렐 백작은 죽었습니다! 다들 자유에요!”

         

       그녀가 소리쳤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무덤덤했다.

         

       카자르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좀 더 빨리 구해줬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었잖나.”

       “그건 맞지만요.”

         

       감옥 바깥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사람들. 하나 같이 얼굴이 초췌하고 생기가 없었다.

         

       “이분들은 후계자분이 잘 돌봐주실 거예요.”

       “그 사람도 이걸 알고 있나?”

       “네. 애초에 이 감옥을 보여준 게 그분이셨으니까요.”

         

       그 세이렐 백작가의 후계자는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건가? 나는 카자르에게 물었다.

         

       “혹시 백작 암살 계획도 그 사람이 세운 계획인가?”

       “네. 더이상 이런 만행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제게 부탁하셨어요.”

         

       카자르의 독단으로 진행된 건 아니군. 그나저나, 그런 아비에게서 그런 아들이 태어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대개 자식은 부모를 따라가는 법인데.

         

       “이제 할 일은 끝난 건가?”

       “그분께 보고는 드려야죠.”

       “빨리 부탁하지. 이쪽은 시간이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카자르.

         

       “그럼 당장 만나러 가죠.”

         

         

       * * *

         

         

       나와 카자르는 비행 마법을 통해 백작저의 창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어떤 한 남성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카자르인가?”

       “네.”

       “계획은.”

       “성공입니다.”

         

       그제야 뒤를 돌아보는 남성. 세이렐 백작의 자식답게 닮아있었다. 저 사람이 그 후계자인가.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이번 계획을 도와주신 분입니다.”

       “어디서 온 사람인데?”

       “그건…….”

         

       힐끔. 고개를 돌려 내 눈치를 보는 카자르. 내가 대신 대답했다.

         

       “데카르트 공작령에서 왔습니다.”

       “…데카르트? 그런 곳에서 여긴 무슨 일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요.”

       “그런가.”

         

       그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데카르트 공작령에서 왔다 하니 인맥이라도 쌓아두려는 건가.

         

       “이든 세이렐이라고 하네.”

         

       음, 그런 이름이시군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저는 노예거든요.

         

       “그대는 말해주지 않을 건가?”

       “여기에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요.”

       “비밀이 가득한 사내로군.”

         

       이든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대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지. 덕분에 아버님의 횡포를 막을 수 있었어.”

       “아닙니다. 백작령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카자르와 이든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나를 병풍 삼고 지금 뭐 하는 거지? 나는 카자르를 재촉했다.

         

       “카자르. 빨리 목적이나 말해라.”

       “아,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든 님. 알려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뭔가?”

       “저는 세이렐 백작령에서 떠날 생각입니다.”

       “뭐…?”

         

       눈이 휘둥그레진 이든.

         

       “어째서인가? 이제야 모든 게 다시 시작될 참인데…….”

       “이분과 약속을 하나 했거든요.”

         

       이든이 나를 째려본다. 왜 그러는데? 사랑이라도 속삭였나?

         

       “잠시 떠나는 것이니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목표를 이루고 나면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올 겁니다.”

         

       후우, 이든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게 그대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 세이렐 백작령은 내가 다시 좋은 곳으로 만들 거야. 그대가 돌아오는 날만을 기다리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카자르. 나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타고 갈 마차 없어. 하나 빌려달라고 해라.”

         

       카자르가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나를 바라봤다. 아니 돈 없는데 어떡하라고. 이내 그녀는 고개를 휘젓고선 이든에게 말했다.

         

       “이든 님. 실례합니다만, 마차를 하나 빌릴 수 있겠습니까?”

       “마차?”

       “예. 꽤 먼 곳으로 이동해야 하기에…….”

         

       이든은 흔쾌히 승낙했다.

         

       “좋네. 바로 갈 텐가?”

       “네.”

       “그래. 바로 마차를 하나 준비하지.”

       “감사합니다.”

         

       이걸로 됐군.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남기고, 우리는 이든 세이렐이 준비해준 마차에 탑승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데카르트 공작령으로.”

       “예이.”

         

       덜컹. 마차가 움직였다. 프란체가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네. 내가 없는 틈을 타 뭔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얼굴에 걱정이 많으신데요?”

         

       카자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별거 아니야.”

       “공녀님이 걱정이신가?”

       “…….”

       “충신이시네요.”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있잖아요.”

       “뭐지?”

       “정말 단순히 마법을 가르치기 위해 저를 데려가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목적도 있으신가요?”

       “나중에 말해줄게.”

       “사람 또 궁금하게 하시네.”

         

       나는 피식 웃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밤하늘을 보니 프란체가 떠올랐다.

         

       지금 카자르를 데려가는 이유도, 프란체가 마법을 배우게 하는 이유도. 모든 것은 그녀를 위해서이자 나를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걸 만들 수 있겠지.

         

       제국의 시대를 바꿀 새로운 발명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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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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