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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어머님께서 이 편지를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하실까요. 어떤 기분을 느끼실까요.

       

       슬픔? 괴로움? 분함? 어쩌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도 어머님을 잘 모르겠으니까요. 아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알기가 힘들어집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기억하던 어머님과 지금의 어머님은 너무 달라서, 사실은 정말로 제게 두 명의 새어머니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고민했던 적도 있으니까요.

       

       제가 어렸던 시절에는 어머님께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걸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행복했던 시절의 어머님은 지금과 같은 근심, 걱정이 없으셨기에 달랐던 걸까요?

       

       저는 친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어머님에 대한 추억은 한가득 가지고 있습니다. 네, 공원에서 뛰어노는 저를 불러 도시락을 열어주시던 어머님을 기억합니다. 제 손을 잡고 놀이공원을 함께 걷던 어머님을 기억합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흥분해서 잠들지 못하는 제 옆에 앉아 가만히 가슴을 토닥거려주셨던 것도 기억합니다.

       

       어린이날에도, 생일에도, 새해 마지막 날과 첫날에도. 바쁜 아버지께서 저와 함께하지 못하는 날에는 언제나 어머님께서 제 곁에 있어 주셨습니다. 저는 그러기에 외롭지 않은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아버님의 유산을 받아 경영권을 얻은 뒤부터, 어머님께서 저를 대하시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저를 보고 웃어주시는 어머님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제 손을 잡고 함께 걸어주시는 어머님은 없었습니다.

       

       아니, 어머님께서는 제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네,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러하셨듯, 어머님께서 이어받은 일들을 제대로 하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실 테니까요. 두 분이었던 부모님이 한 분으로 줄었으니,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을 둘로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어머님과 제가 함께 살던 집에서, 저의 거처를 이곳으로 옮기셨을 때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원래 살던 집에는 손님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지나가던 손님들은 아직 어렸던 저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아마 제가 상속받을 재산을 노렸던 거겠죠. 어떻게든 잘 구슬리고, 하다못해 어린 저와 친해지려고 하는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께서 저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네, 노력했습니다. 계속, 계속…… 어머님께서 이 넓고 휑한 공간에 제발 한 번이라도 찾아오기를 빌면서.

       

       어느 순간부터, 저는 바깥에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사용인들은 제가 너무 어려 혼자 돌아다녀선 안 된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차가운 사용인들은 예전의 어머님처럼 제 손을 잡아주지도, 함께 밖으로 나가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뭔가를 바랄 때마다, 안 됩니다, 아가씨, 하며 거절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 저를 사랑하는 어머님의 생각이 있으셨기 때문이겠죠. 그렇죠?

       

       저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아직 어렸던 제가 사용인에게 놀아나는 것을 막으려고 사용인들에게 엄하게 명하셨던 거겠죠. 그렇지 않은가요?

       

       하지만, 죄송합니다. 그 시절의 저는 그런 깊은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습니다.

       

       내면에서 해소되지 않은 분노는 결국 밖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옷을 갈아입히려는 사용인을 깨물고, 메이드를 할퀴고, 물건을 집어 던졌습니다. 베개와 이불을 찢고, 커튼을 뜯어냈습니다.

       

       이런 행동은 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때문에 크고 작게 다친 아이들에게는 이제 와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물론 제가 미안하다고 해도 더 이상 사과할 기회는 없겠죠.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이제는 제 곁에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으니까요.

       

       사실, 그 시절에도 제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긴 했습니다.

       

       저보다 한 학년이 높은 오빠였어요.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르는 저에게, 그는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마음이 아프구나, 하고.

       

       오빠는 제 곁에 앉아서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해선 아무도 근처에 오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의 어머니도, 저처럼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이해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고작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려면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많은 상처를 겪어야 했을지,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제 곁에 접근한 그 아이를, 어머님은 모종의 방법으로 저와 떨어지게 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저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를 두고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들어봤습니다.

       

       저와 가까이 지냈기에, 그 아이 아버지의 회사가 도산했다고.

       

       저와 가까이 지내면, 자신들도 그 비슷한 일을 겪을 거라고.

       

       등록비가 비싼 초등학교였기 때문일까요. 저와 늘 정겹게 대화해주던 그 오빠는 어느 순간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학이라도 간 걸까요.

       

       그렇게, 저는 다시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쯤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버둥거려도, 수업 중에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복도 밖으로 뛰쳐나가 보아도, 교사들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 버려도, 학교에 나가지 않더라도, 저는 결석 처리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개근상을 받고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요. 물론 상은 우편으로 받았습니다. 저는 졸업식에서도 그저 혼자 서 있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동안 저는 원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말하지 않는 법, 말없이 사람을 부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엇 하나 누구에게 배운 것은 아닙니다. 전부,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제가 스스로 터득한 것입니다.

       

       그저 조용하게, 얌전하게, 그곳에 없는 것처럼.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에는, 저는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처음 보는 사용인이 저의 방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했습니다. 자신을 소개하고, 앞으로 저를 돌볼 사람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 사람도 사용인일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이 어머님께서 아래층에 와 계신다고 했을 때, 어찌나 놀랐던지.

       

       어머님, 어머님은 아마, 제가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을 절대로 알지 못하실 겁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드디어 어머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노래라도 부르고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그렇게 기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뒤였습니다.

       

       조용히 일어나, 메이드의 뒤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어머님은 손님방에 앉아계셨습니다.

       

       저를 보신 어머니는, 양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리 온, 우리 딸.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 뒤로 하나도 늙지 않은 것만 어머님의 품에 그대로 달려들어 안겼습니다. 아아, 네,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저도 잊어버렸던 것을 기억해낼 수 있을 만큼 기뻤습니다. 어머님의 품은 어린 시절에 느꼈던 것만큼이나 따뜻했습니다. 너무나 포근했습니다.

       

       어머님과 저는 무슨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억은 잘 나지 않아요. 저는 그때 저를 바라보는 어머님의 얼굴만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앞으로 어머님께서 나와 함께 살아주는 것은 아닐까, 하고 헛된 희망을 품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 짧게 끝났습니다.

       

       어머님은 울면서 매달리는 저를 부드럽게 밀어내고, 마치 미련 없다는 듯 저택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석 달 동안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제게 그런 일을 하시는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봤습니다.

       

       아마, 저를 진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저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너무 사랑하셔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려고 생각했나요?

       

       갑작스러운 저의 약혼은 어떻게 된 걸까요? 혹시 상대방의 회사를 저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던 걸까요? 저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제가 상속받을 유산보다 더 많은 재산을 남겨주려고 하신 걸까요?

       

       모두 저를 사랑하기 때문이겠죠? 그만큼 사랑하니까, 눈에도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니까, 저를 당신만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신 것이 아닌가요?

       

       이것도 혼자 있는 저의 망상일 뿐일까요? 요즘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노트에 저의 망상을 적으며 시간을 보낸답니다. 다행히 사용인들은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존중해줘요. 아니면 관심도 없는 걸까요?

       

       네, 저는 당신이 저를 사랑한다고 믿겠습니다.

       

       사랑한다고 믿으니까, 이렇게 편지를 남깁니다.

       

       어머님, 저도 어머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너무 증오스러워.

       

       사랑한다면, 어째서 그런 방법을 사용했던 걸까요? 제 주변의 모든 것을 멀리 떨어뜨려 버리고,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어머님 자신만이 제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을까요? 꼭 그렇게 하셔야만 했나요? 사랑하는 딸이 행복하게 자라는 것이 그렇게 싫으셨나요? 그 행복을 오로지 자신에게서만 찾아야만 했나요?

       

       아아, 네, 그렇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떠올라서 미칠 것만 같아. 나를 어린 시절부터 사랑해준 어머님과, 저를 이토록 괴롭게 만드는 괴물의 이미지가 한데 섞여서, 이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망가뜨리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어머님은 완벽히 성공하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편지를 남기는 이유는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당신이 증오스럽기에. 저도 당신을 괴롭히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제가 어떻게 당신을 괴롭힐 수 있을까요? 당신이 제게 하는 것처럼 감정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솔직히,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매달리겠습니다.

       

       부디 어머님께서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셨길.

       

       그래서 나를 정말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셨길.

       

       처음에는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완전히 망가져 버릴까 생각도 했어.

       

       그냥 다 놓아버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처럼, 옆에 있는 모두에게 상처 주고, 나도 상처받고, 그래서 피 흘리며 죽어갈까 생각도 해봤어.

       

       하지만, 역시 그건 아닌 것 같아.

       

       어린 시절에 너무 많은 사람을 아프게 했으니까. 이제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지쳤으니까.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어머님, 그거 아세요? 아버지는 어머님이 이렇게 행동할 거라는 것을 조금은 예상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몇 가지 법적인 방법으로, 제가 상속받을 유산을 미리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해두셨어요. 제가 미성년자는 살 수 없는, 현대에는 처방되지 않는 바르비탈 성분의 수면제를 불법적인 경로로 살 수 있었던 것도 그 방법 덕분이겠죠.

       

       네, 이 방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이건 어머님을 위한 깜짝 이벤트니까요. 한 번 알아맞혀 보세요.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제가 어째서 목숨을 끊었는지 짐작이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상속받은 유산 중 어머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물건은, 아무래도 ‘저’인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물건의 주인으로서, 어머님의 손으로부터 그 물건을 거두어갈까 합니다.

       

       어머님께서 이 편지를 읽으실 때쯤에는 저는 이미 먼 곳으로 가 있겠죠. 어머님께서 이 편지를 읽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낄까요? 슬픔? 괴로움? 아니, 어쩌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한가지 소망합니다. 부디 어머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길. 제가 어린 시절 어머님을 사랑했던 것만큼이나 저를 사랑하시길.

       

       그리고, 그리하여. 어머님, 부디.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절대로 저를 잊지 말아 주시길.

       

       절대로. 잊지 말아 주시길.

       

       이렇게 부탁할게요.

       

       

       

       추신.

       

       그래도 조금 아쉽긴 해요.

       

       짧은 생의 단 일주일이라도,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는데.

       

       이제 그건 못하겠네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전작을 쓸 때, 평일에는 오후 5시~6시 사이에, 그리고 주말엔 1시~2시 사이에 업로드를 했습니다. 어느 정도 퇴근 시간에 맞춘 연재 타이밍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전날에 써서 미리 업로드를 하는 입장에서, 주말에는 조금 일찍 올라와도 안정적으로 연재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작에서 했던 것처럼 토요일, 일요일은 1시에 공개해볼 생각인데, 어떠신가요?

    =

    헤엄치는새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렇게 자주 후원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뿌듯하게 느껴질 때가 독자 여러분께서 남겨주신 댓글을 읽을 때인데, 후원으로 오는 메세지도 마찬가지로 저를 응원해주시는 내용이니까요. 월정액으로 볼 수 있는 소설에 이렇게 따로 후원을 해주신다는 것은 그만큼 저의 소설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독자님이 계시다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굉장한 행운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혼자 글을 열심히 썼다고 생각해도, 그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계시지 않다면 그만큼 맥빠지는 일도 없으니까요. 제가 이곳에 글을 쓰고, 이렇게 독자 여러분과 만나 제 글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행운이 헛된 일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독자 여러분께서 제 글을 선택하고 읽어주신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저에게 따로 해주신 후원이 아깝지 않도록, 언제나 정진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소설을 완결 내는 날까지, 독자 여러분의 즐거움이 계속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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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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