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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하린은 투정을 부리면서도 자세를 잡았다. 나름 끈기는 있는 모양이야.

       

       그래. 가르침을 청했으면 저런 모습을 보여야지.

       

       그 후 하린을 가지고 놀며 느낀 것이지만 그녀의 무공엔 여러 위화감이 있었다.

       

       우선 그녀의 권은 패도와 거리가 멀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가볍고 끊임없이 흐르는 물처럼 쉼 없이 움직이니 굳이 이름은 붙이자면 풍류의 권이라 할 수 있겠다.

       

       아마 본래 쓰던 무공이 따로 있는 것이겠지. 천마의 몸에 들어왔기에 어쩔 수 없이 천마신공을 쓰는 것일 테고.

       

       저러니 내 몸을 제대로 못 쓰는 게 당연하지.

       

       다른 하나는 그녀가 무공을 펼치는 모습이 기이하다는 것이었다.

       

       무공에 관한 해석이야 다양하다만 결국 근본은 자신의 무공이 가진 이치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하린은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데 이치를 맞추고 있었다.

       

       이치에 따라 움직이니 무공이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동작을 취하면 무공이 나오니 그리 움직인다 해야 할까.

       

       하린에게 무공을 가르친 게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버릇을 잘못 들였구나. 저건 교정하려면 꽤 고생을 해야 할 터인데.

       

       이건 아무리 봐도 하루 이틀 걸릴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느냐?”

       

       대련이 끝나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운 하린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아이에게 무공을 가르친 게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만 내 반드시 그 작자를 알아내야 쓰겠다.

       

       그 따위 어중이떠중이가 무인을 자처하는 꼴을 보면 열불이 날 것 같아서 말이다.

       

       “따로 누군가에게 배운 건 아니구요.”

       “독학을 한 게냐?”

       

       그렇다면 위화감이 이해가 된다. 홀로 무를 수련했다면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

       

       무공에 쌓인 역사를 어찌 사람이 따라가겠는가.

       

       홀로 이만한 경지에 이르렀다면 오히려 그 재능을 칭찬 해주어야겠구나.

       

       “독학이라고 하기도 좀.”

       “알아듣게 이야길 해보거라.”

       

       하린은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VR게임이 나오기 전까지 현대의 사람들에게 무협은 어디까지나 환상 속의 이야기였다.

       

       책이나 영화, 게임으로 즐길 수는 있지만 직접 무를 펼친다는 건 어디까지나 망상에 불과했다.

       

       허나 가상현실게임이 나오며 상황이 바뀌었다. 무협이란 환상은 현실로 끌어 내려졌다. 무협을 즐기던 자들이 제 손으로 무공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무협 속 세상으로 뛰어들었지만 그들은 이내 난관에 봉착했다.

       

       “무공이란 걸 처음으로 접해본 거니까요.”

       

       그들은 갑자기 총을 들게 된 원시인이었다.

       

       심지어 그 총은 자기들이 직접 조립을 해서 쏴야 하는 총이었지.

       

       무협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이치 같은 것을 따지기엔 넘어야 할 벽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정 시스템을 참고하는 걸 택했다.

       

       가상현실 초창기부터 보정 시스템은 존재했고, 보정 시스템 대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무공을 펼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무협 게임에 들어간 이들은 무공의 이치를 연구하는 대신 보정 시스템의 움직임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전후 사정을 알고 나니 어쩔 수 없었음이 이해야 간다만 그래도.

       

       “다들 이딴 식으로 무공을 펼친다는 말이잖느냐.”

       “네에.”

       “무공의 이치를 이해하려 노력한 이는 없었더냐?”

       “예전부터 무협지를 보던 분들이 근본을 찾아야한다고 말하셨지만 이치라는 게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어서.”

       

       다들 벽을 느끼고 포기해 버렸다는 소리구나.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수백년에 걸쳐 쌓아온 진리를 전달해 줄 이가 없는데 어찌 현대의 사람들이 제대로 된 무를 찾아내겠느냐.

       

       당장 나만해도 홀로 무의 길을 걸어야 했다면 기나긴 세월을 헤매야 했음이 분명하니.

       

       물론 언젠가는 무공의 진리를 파악할 이가 나타났겠지만 아직은 때에 이르지 못한 모양이었다.

       

       흐음.

       

       나에게 무림인으로서의 책임감은 없다.

       

       허나 저 따위로 무공을 펼치는 게 정상이라 알려진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나.

       

       저런 엉터리 방식으로 무공을 수련하는 자들 중에 나에게 대적할 자가 나올 리가 없잖느냐! 

       

       “혹여나 해서 묻는 것이다만 하린. 그대는 현대의 무인 중 어느 정도인가?”

       “저요? 그래도 꽤 높은 축일 걸요?”

       “고수라 불릴 만큼?”

       “네.”

       

       그대가? 그대 수준의 무인이?

       

       안 된다. 이래서는 안 돼.

       

       저 정도 수준의 무인이 고수라 불려서는 안 되는 일이다.

       

       강자에게는 그만한 위엄이 있어야 하거늘 지금 그대는 갓난아기나 다름없잖은가.

       

       다른 무인들도 이럴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심지어 그들 중 대다수는 내 몸을 쓰고 있을 예정이었다.

       

       끔찍하구나.

       

       사람들의 상식을 교정할 방법을 찾아야겠어.

       

       최소한 실력 있는 무인이 나올만한 환경을 만들어둬야 해.

       

       “화령님?”

       

       일단은 눈앞의 이 아이부터 고쳐보자꾸나.

       

       이 아이를 가르치며 다른 이들에게 어찌 무공에 대한 정보를 전할 지를 고민해야겠어.

       

       이토록 생각이 많아진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구나.

       

       아니군. 공부를 할 때는 이보다 더 머리가 복잡했으니까.

       

       하아. 현대에 오고나서는 심심할 일이 없구나.

       

       “하린.”

       “네?”

       “내일 일정이 어찌 되느냐?”

       “일요일이라 시간은 넘쳐요. 내일도 가르쳐 주시게요?”

       

       말을 정정하마.

       

       내일도. 가 아니다. 내일 까지. 지.

       

       *

       

       냥냥권법. 이하린은 아피스는 물론이고 여러 무협 게임에서 유명한 유저였다.

       

       VR게임의 여명기부터 무협 게임에 살다시피 하던 그녀는 어느 무협게임에서건 상위권 유저로써 날뛰었으니까.

       

       다만 그녀가 막 대학에 입학한 여자아이라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으려 한 건 아니었다. 단지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을 뿐.

       

       무협 게임에 진심인 여자아이가 있을 리 없잖아! 라는 주장은 다른 아저씨들의 동의를 얻기에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빠의 영향으로 무협에 진심이 된 소녀가 컨셉에 진심인 자칭 여고생으로 여겨지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실 외모에서 약간만 조정한 커마가 귀여우면서도 역겹단 소리를 들었을 때 하린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가.

       

       어쨌건 여러 게임을 즐기며 하린은 본인의 무공 실력이 부족하다 생각한 적 없었다.

       

       그래서 화령이 실력이 보여 보라 했을 때 하린은 작게나마 기대를 했다.

       

       저 분이 자신를 칭찬해 줄 것이라고 여겼기에. 그리고 자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해 주리라 생각했기에.

       

       그녀의 예상은 반만 맞았다.

       

       하린은 자신이 수년 간 수련해 온 결과물을 화령에게 펼쳤다.

       

       조금의 손대중도 없었다. 자신이 모든 걸 퍼부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알았으니까. 상처 하나라도 입혀보잔 생각으로 전력을 다했다.

       

       허나 하린의 무공은 화령에게 조금도 닿지 못했다.

       

       분명 뛰어다니는 건 하린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손발이 묶인 듯 답답함을 느낀 건 하린이었다.

       

       짧고도 긴 대련이 끝난 후 화령은 지쳐서 쓰러진 하린에게 여태 배운 무공을 모두 다 잊으라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무공을 사용해선 발전이 없다. 내 기초부터 잡아 줄 테니 일단 그대가 배운 무공의 심결을 알려주겠느냐.”

       

       무공 심결을 알려준다는 데 거부감이 클 것을 안다는 둥. 뭐라는 둥. 화령이 말을 덧붙였지만 하린은 애초에 별 생각이 없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혼자만 알고 있는 치트 무공 같은 건 소설 속의 이야기였다.

       

       “잠시만요.”

       

       인터넷에서 풍류권의 구절을 찾아 보여주자 화령이 당황을 했다. 이런 식으로 쉽게 보여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듯이.

       

       정말 무협에서 오신 분 같단 말이야. 무공 심결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모르시는 걸까? 연기 같지는 않은데.

       

       하린은 설명을 하려다 그만뒀다. 심각한 표정으로 하린과 무공심결을 번갈아 보는 화령의 표정이 재밌었으니까.

       

       “해석해 드릴까요?”

       “그럴 필요는 없다. 어차피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니.”

       

       그게 되는 건가? 난 보정시스템이 없었다면 저 구절이 무슨 의미인지 평생토록 이해 못했을 텐데.

       

       의아했지만 하린은 말을 더하지 않았다. 화령이라면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침음성을 내며 구절을 읽던 화령은 얼마 안 가 창을 치워버렸다.

       

       그리고는 허공에다 가볍게 주먹을 뻗었고, 그 뒤를 따르듯 가벼운 바람이 불어왔다.

       

       저거 풍류권이잖아. 그 짧은 사이에 심결을 이해하신 거야? 보정 시스템도 없이?!

       

       “나쁘지 않은 무공이구나. 안에 담긴 것이 꽤 괜찮아.”

       “그걸 벌써 다 이해하셨다고요?!”

       “본인은 천마이니 말이다.”

       

       그게 뭐 대수냐는 듯한 발언에 하린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하린. 그대는 이 무공의 이치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느냐.”

       “이치요?”

       “시덥잖은 것이어도 괜찮다. 그대의 생각을 듣고 싶은 것이니.”

       

       하린은 답을 망설였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생각해 본 적이 너무 많아서였다.

       

       한창 중2라는 중증의 병을 앓던 시절에도 하린은 무협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 시절 그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을 했고, 당연히 자신이 쓰는 무공도 특별하다고 여겼다.

       

       풍류권은 절대 평범한 무공이 아니라고.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난 상승의 무공일 것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하루 종일 무공의 심결을 쳐다보면서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멋있을 지를 고민했다.

       

       심결을 억지로 푸는 데 쓰인 노트만 해도 두 개가 넘었으니. 중2 시절 그녀의 열정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갈 무렵 즈음 중2병이 완치된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추했는지를 깨달았다.

       

       볼 때마다 수치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어서 설정 노트를 불에 태워버렸지만 그 때의 기억은 여전히 하린의 머릿 속에 남아있었다.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이면 그녀가 이불을 차게 만드는 주범이 중 2시절의 추억이었으니까.

       

       “하린. 왜 그러느냐?”

       

       우상이나 다름없는 사람 앞에서 흑역사를 까발려야 한다고?!

       

       하린의 머릿속이 혼돈으로 가득 찼지만 그녀는 화령의 눈빛 앞에서 무력했다.

       

       “저는… 풍류권을 끊임없이 흘러가는 바람과 같은 무공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어들어갈 듯 작은 목소리였지만 말에는 끊임이 없었다.

       

       바람이란 허공에서 흘러가는 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홀로 흘러갈 때에는 약하고 볼품없을지 모르나, 그것들이 모이고 쌓이면 폭풍이 되어 그 어떤 거목이라도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바람이었고. 하린의 풍류였다.

       

       중2 시절 생각했던 것을 다 말하고 나니 하린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자신의 수치를 자신의 입으로 말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보라. 이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화령이 조금도 그녀를 비웃지 않았단 점이었다.

       

       화령은 진중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다 듣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그만큼 알고 있으면서 왜 자신의 깨달음을 무공에 싣지 않는 게야?”

       

       농담을 하시는 건가? 놀리시는 건가? 하린은 의아해 했으나 화령의 눈이 진중한 것을 보고 저게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중2 시절에 생각하던 망상이 깨달음이었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 댓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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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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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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