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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일어나자마자 나를 향해 달려드는 벌레떼들.

         

        내 실책이다.

         

        숨이 확실히 끊어진 걸 확인하고 들어왔어야 하는데.

         

        아니, 그래도 그리 큰 위협은 아니다.

         

        놈들은 기껏해야 벌레다.

         

        지네, 그리마, 노래기.

         

        그린 바실리스크였을 때도 놈들을 사냥했다.

         

        지금의 내게 놈들이 피해를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오히려 진화된 이 몸에 적응할 좋은 기회일 거다.

         

        정면에서 몰려드는 건 지네 세 마리.

         

        먼저 보내버린 지네 씨가 생각나지만, 잡념은 잠시 접어두자.

         

        날카로운 턱이 나를 노린다.

         

        떠덩!

         

        하지만 내 갑주를 파고들 순 없었다.

         

        쾅!

         

        왼손으로 용조수를 휘둘러 지네 세 마리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커엉!”

         

        한순간에 셋의 목숨을 앗아갔다.

         

        아무리 벌레라고 해도 나와의 차이를 알 것이다.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위엄 있는 울음소리까지 내보임으로써 적들의 의지를 깎았다.

         

        기선을 제압한 격이다.

         

        이 정도면 쉽게 달려들진 못하겠지.

         

        “키에에에에엑!”

         

        녀석들은 선발대가 분쇄된 걸 봤음에도 내게 달려들었다.

         

        마치 이지를 상실한 좀비 떼처럼.

         

        흐름이 좋지 않다.

         

        아니, 그래도 놈들이 내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건 변하지 않는 법.

         

        쿠웅!

         

        거대한 앞발로 땅을 내리쳤다.

         

        녀석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효과는 내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것이다.

         

        두웅!

         

        바닥에 붙어 있던 놈들이 하늘을 날 듯 공중에 떴다.

         

        내 힘이 그 정도로 강하단 말인가.

         

        아니, 그 정도는 아니다.

         

        이 녀석들의 무게가 가벼운 탓이다.

         

        그것도 비정상적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몸을 놀렸다.

         

        맨 앞에 있는 두 놈을 용조수로 처리하고, 기다란 꼬리를 휘둘러 후방에 있는 적까지 휩쓸었다.

         

        파바박!

         

        놈들의 몸은 한꺼번에 바스러졌다.

         

        그래, 터지는 게 아니라 바스러졌다.

         

        무언가 이상하다.

         

        하지만 지금은 앞에 있는 적부터 신경 쓸 때다.

         

        이제 내게 달려드는 건 거대한 노래기 하나였다.

         

        날 습격했던 그것과 비슷한 크기.

         

        갑주들의 행진이 온다.

         

        쿠구우!

         

        진화 하기 전이었다면 스치기만 해도 큰 피해를 받았겠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콰앙!

         

        놈의 돌진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냈다.

         

        지이이익.

         

        뒷다리에 힘을 주어 박치기를 버텨냈다. 그 상태 그대로 입을 벌려 놈의 목 부근을 베어 물었다.

         

        콰드득!

         

        마치 오래된 나무판자처럼 쉽게 바스러지는 노래기의 갑주.

         

        입맛이 텁텁했다.

         

        …이제 선발대는 다 처리한 건가?

         

        “키에엑!”

         

        옆에서 날아드는 지네의 턱.

         

        터덩!

         

        내 갑주에 부딪혀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지만, 놈의 잘린 머리는 계속해서 씹는 동작을 취했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 내가 곤죽으로 만들었을 텐데.

         

        어떻게 움직인 거지?

         

        지네뿐만 아니었다.

         

        용조수로 직접 끝장낸 녀석들이 모조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거, 뭔가 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하얀색 버섯이 놈들의 몸에 붙어 있을 거다.

         

        그게 놈들의 본체겠지.

         

        이미 죽은 벌레.

         

        그걸 조종하는 버섯.

         

        …동충하초!

         

        눈에 힘을 집중하니 신체 마디 사이 사이에 얇게 붙어 있는 하얀 실이 보였다.

         

        “그르르르….”

         

        해법을 찾았다.

         

        빠직!

         

        나를 향해 덤벼드는 그리마를 꼬리로 날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노래기에게 몸을 날렸다.

         

        콰앙!

         

        거대한 몸이 충돌해 일어나려는 놈을 다시 넘어트렸다.

         

        콰직!

         

        심장 부근에 용조수를 한 번 꽂아 넣었다.

         

        아무리 본체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움직이지 못해야 한다.

         

        안에 들어 있는 동충하초마저도 한 번에 죽인 셈이니까.

         

        그러나 놈은 죽지 않았다.

         

        스스스.

         

        다시 멀쩡히 일어나는 노래기.

         

        거기에 다시 살이 붙어버린 지네와 그리마.

         

        그리고 굴 뒤편에서 이곳으로 달려오는 다른 벌레 무리.

         

        본체가 따로 있다는 사실은 알아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쾅!

         

        빠직!

         

        가루가 날 정도로 몸을 부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

         

        콰악!

         

        아예 삼켜버리기도 했다.

         

        당장은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디선가 튀어나온 동충하초가 다른 개체의 몸에 들어갈 뿐이었다.

         

        이 수많은 벌레를 전부 잡아먹던가, 내가 죽어야지 끝나는 싸움이 되었다.

         

        …사실 전부 잡아먹는 선택지도 힘들다.

         

        동충하초가 서로 합쳐져, 최후의 하나가 돼버린다면 내가 역으로 놈에게 조종당할 수도 있으니까.

         

        쉽지 않다.

         

        정말 쉽지 않아.

         

        하필이면 석문도 닫혀버려서 도망도 못 치고.

         

        …….

         

        또 도망가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럴 수 없지.

         

        똑바로 고개를 쳐들고 상황을 직시했다.

         

        거대 노래기만 해도 셋으로 수가 불어났다.

         

        그 외에도 나를 향해 계속해서 달려드는 벌레들.

         

        위험하다.

         

        그러나 겁이 나진 않았다.

         

        난 백연영을 봤으니까.

         

        그녀의 위압감에 비하면, 이것들은 귀여운 수준이다.

         

        백연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래, 이렇게 했겠지.

         

        발을 땅에 내디뎠다.

         

        쿠웅!

         

        발걸음 하나에 내 무게가 온전히 실렸다.

         

        쿠구구.

         

        심후하다고까진 말할 수 없는 내 내공이 벌레들을 짓눌렀다.

         

        내공을 다루는 법을 잘 알지 못해, 일반적인 적에겐 통하지 않을 수였다.

         

        하지만 놈들은 이미 시체인 상황.

         

        놈을 조종하는 버섯 정도는 내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벌레들은 몸을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상태에선 나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의 나는 더욱 집중해서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모두의 움직임이 멈춘 순간, 내 눈에 익숙한 모양이 보였다.

         

        【엔트로페자이트 LV7】

        【상태】

        「억눌림」「숙주」

         

        __________________________

        【엔트로페자이트】

         

        가장 오래된 기생 버섯입니다.

        포자를 멀리 흩뿌려 이미 죽어버린 시체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네가 본체구나.

         

        곧바로 지면을 박차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몸을 움직이는 순간 놈들을 제압하고 있는 기운이 사라졌다.

         

        수많은 벌레가 내게 달려들었다.

         

        본체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날 막아 세우려 했다.

         

        몇 마리는 내 꼬리를 물고 몇 마리는 나와 본체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르르….”

         

        꾸드득.

         

        발톱에 내공을 싣는다.

         

        온 힘을 집중한 후, 크게 휘둘렀다.

         

        콰직!

         

        날카로운 발톱이 나를 막아 세운 벌레를 한 번에 베어버렸다.

         

        내공이 실린 내 일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콰가가가가각!

         

        엔트로페자이트를 바위 벽체로 갈아버렸다.

         

        투두둑.

         

        나를 어떻게든 막아 세우려던 벌레들은 동시에 움직임을 멈추고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후.

         

        본체를 잡으니 한 번에 정리되는구나.

         

        까다로운 상대였어.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이 고생을 했는데, 1레벨만 올라가?

         

        아니다. 진화하면 할수록 레벨을 올리기 어려워지는 건 상식이다.

         

        악어왕도마뱀인 내가 이해하자.

         

        “게겍… 컹컹!”

         

        자꾸 옛날 울음소리가 나네. 이러면 내 위압감이 사라지는데.

         

        일단 식사부터 하자.

         

        커다란 동충하초를 한입 베어 물었다.

         

        우적.

         

        나쁘지 않네.

         

        약간 쌉싸름하기 한데, 맛은 새송이랑 비슷하다.

         

        잘 구운 다음에 고기랑 같이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뚝뚝.

         

        씁, 침 나오네.

         

        근데 뭐 주는 거 없나?

         

        동충하초면 나름 영약 취급 받아야 하는 거 아냐?

         

        띠링.

         

        그렇지.

         

        [「미식 LV2」의 레벨이 올라갑니다.]

         

        응?

         

        뭐야, 뭐 주는 줄 알았네.

         

        그냥 맛있는 거 먹어서 오르는 거잖아.

         

        하긴 영약이 쉽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단 조금 훔쳐 먹은 걸로 만족해야지.

         

        그래도 맛은 있으니까 봐줄게.

         

        우걱.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본격적인 탐방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네 발보단 두 발이 편하다니까.

         

        이곳은 봉인된 장소다.

         

        부적이랑 짚 인형 같은 게 있는 걸 보면, 주술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동충하초 보고 그런 건가?

         

        알 수 없는 힘으로 죽은 시체를 되살리고 그래서?

         

        하긴, 무림인들이라면 그럴 만도 하다.

         

        나같이 명석한 도마뱀이 아니라면 당황할 만하지.

         

        …그런데 너무 과한 거 아니야?

         

        저 버섯이 크긴 크다만 인간에 비해선 작을 텐데.

         

        끽해봐야 노래기를 조종하는 게 최대로 보이고.

         

        뭐가 더 있으려나?

         

        뚝.

         

        그 순간,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단 한 방울.

         

        그러나 너무나 생뚱맞은 소리기에 근원지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작은 굴의 중앙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봤다.

         

        작은 제단처럼 생긴 석재 건축물이 있었다.

         

        내가 읽을 수 없는 한자들이 잔뜩 있었고.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작은 그릇.

         

        호리병과 같이 생긴 그릇에 우유처럼 생긴 액체 몇 방울이 들어 있었다.

         

        동굴.

         

        그리고 우유처럼 생긴 액체.

         

        양이 적음.

         

        설마….

         

        [공청석유(흑)]

         

        공청석유다!

         

        세상에.

         

        만년화리와 금봉황조에 버금간다는 전설의 영약.

         

        범인이 먹는다고 해도 절세 고수가 된다는 그 영약!

         

        게다가 다른 영약과 달리 몸이 터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선물!

         

        착하게 살아서 그런가, 이런 영약을 눈으로 보게 되는 날이 오다니.

         

       그런데 흑은 뭐지?

         

        약간 우윳빛이면서도 살짝 까만데.

         

        킁.

         

        씁, 냄새도 별론데.

         

        약간 기름 냄새가 나는 기분이야.

         

        에이, 그래도 상태창이 공청석유라고 하는데, 별일 있겠어?

         

        누가 훔쳐 가기 전에 빨리 먹어야지.

         

        후다닥.

         

        빠르게 공청석유가 든 호리병을 채갔다.

         

        보통의 도마뱀이었다면 슬픈 여우처럼 호리병에 든 이 액체를 마시지 못할 거다.

         

        그러나 나는 보통의 도마뱀이 아니라는 말씀.

         

        한 번 먹어보자.

         

        쉬릭.

         

        호리병을 최대한 기울인 후, 혓바닥으로 바닥에 고인 공청석유를 핥았다.

         

        흡.

         

        이 맛은?

         

        “그에에엑….”

         

        그냥 기름이잖아!

         

        아냐, 상태창이 거짓말할 리가 없지.

         

        당장 뱉어내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참아야 한다.

         

        꿀꺽.

         

        겨우 액체를 목구멍 안으로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후우….

         

        제발.

         

        상태창아.

         

        나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아.

         

        늪지대에서 쫓겨나고, 백연영에게 마구 쓰다듬어지고, 무공도 배우고.

         

        …고생을 덜 했나?

         

        악어왕도마뱀의 비기, 실눈을 뜨기를 유지한 상태로 상태창의 메시지를 기다렸다.

         

        띠링.

         

        [지고의 영약을 섭취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공청석유(흑)】

         

        자연의 기운이 오랜 세월 응축되어 만들어진 액체. 영물의 사체가 쌓이고 쌓여 한 방울의 액체가 되었습니다. 보통의 공청석유보단 효과가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지고의 영약이라 불리기에 손색없습니다.

         

        효과: 무작위 스킬의 성능을 대폭 상향시켜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무작위?

         

       무작위요?

         

        제발.

         

        상태창님.

         

        한 번만 더 도와주세요!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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