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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사신이가 떠나간 쓸쓸한 세희 연구소. 

    때 아닌 대 공사를 하고 있는 연구소 부지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사실 조사팀이랑 같이 사신이를 찾아나서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김중뢰 선배 선에서 반려되었다.

    안전모까지 쓰고 못질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누구도 연구원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작은 연구소라도 연구원을 이렇게 가혹하게 대하다니!

    뭔가 새로 반입하는 오브젝트를 위한 준비라는데, 우리 연구소가 이런 대형 공사가 필요한 오브젝트를 받아올 만한 역량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회색 사신 격리 지원금’만 뜯어 먹고 사는 연구소라고 생각했는데, 세희 언니가 연구소 확장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와, 선배. 저거 다 황금이에요?”

    “그래, 통째로 황금이야.”

    연구소로 거대한 황금 덩어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저 정도 크기의 황금이면 가격이 억대 아닐까?

    “선배, 그런데 저게 뭐에요?”

    “개집.”

    “네?”

    “거대하고 비싼 개집.”

    뭐라고요?

    ***

    서울을 강타한 송파구 이재민 캠프 참사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마무리 되었다.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며, 한창 벌어지고 있는 추모 행사를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었다.

    정부에서 한 의뢰는 깔끔하게 마쳤다.

    임시로 직책을 받아서 의뢰를 수행한 만큼, 의뢰를 마친 지금은 더 이상 관련이 없는 곳이었다.

    저 현장에서 영감의 시신을 빼내서,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두 했다.

    다만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이렇게 멀리서나마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캠프는 여전히 봉쇄되어있었다.

    이미 사건은 끝난 지 오래인데 말이다.

    ***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이재민 캠프에서 하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들은 3개의 연구소가 연합해서 만든 연구소, 트리니티 연구소 소속의 연구원들이었다.

    그들은 피에 절은 나비 시체를 하나하나 골라내서, 밀폐용기에 넣고 있었다.

    그렇게 모아둔 나비의 사체만 해도 엄청난 양이었다.

    핏물에서 사람 가죽과 그들의 소지품, 그리고 나비의 사체를 분류해서 소지품은 유실물로 분류하고 가죽은 모두 그 자리에서 태워버렸다.

    바로 근처에서는 참사를 기리는 합동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가죽밖에 남지 않았지만, 유가족들도 보지 못한 시신들이 이곳에서는 쓰레기 취급이었다.

    분향소 옆에서 사건 피해자의 가죽을 모아서 태워버리다니, 현시대의 위태로움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캠프에 설치된 컨테이너 파괴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사하고, 흙도 잔뜩 퍼내는 등 거침없이 현장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현장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여기는 C-2.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두께가 존재하지 않는 유리 조각 같은 것이다. 그림자 속에서만 물리적 성질을 갖는 것으로 보아 오브젝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는 A-1. 잘했다. C-2. 그것이 우리가 목표로 했던 오브젝트로 보인다. 관리팀을 보낼 때까지 현장을 보존하라.>

    두께가 없는 유리 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빛을 쬐면 사라지고 두께조차 없어서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물체였다. 

    다만 그 유리조각은 이미 산산조각이 난 상태라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하얀 방호복과는 다른 검푸른색 방호복을 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유리조각을 발견한 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진 어느 새벽에 벌어진 일이었다.

    ***

    중앙 연구소의 해산과 3개 연구소의 연합으로 명실 공히 한국 최대 규모의 연구소가 된 트리니티 연구소.

    그 안쪽에 마련된 흡연실에서 두 명의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뭘 그렇게 재밌게 읽는 거야?”

    “폐기된 회색 사신 소통 능력 보고서. 이게 좀 웃기네.”

    “뭐가 그렇게 웃기는데?”

    “보통은 이런 보고서는 연구소에서 제출하는 게 보통인데, 이건 탐정이 낸 보고서더라고. 너도 한번 봐봐.”

    <회색 사신 소통 능력 보고서.>

    <폐기됨 – 형식 불충분. 근거 불충분.> 

    <이 보고서의 내용을 신뢰하지 마십시오.>

    <이 보고서는 상기한 이유로 폐기된 보고서입니다.>

    <회색 사신은 인간의 말, 적어도 한국어는 100% 완벽하게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소통을 원하지 않는다.>

    <회색 사신이 소통을 원하지 않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는가?>

    <안타까워하든, 화를 내든, 협박을 하든, 사신에게 영향을 줄 수 없는데.>

    <회색 사신과의 소통은 그것이 원하는 순간에만 이루어질 것이다.>

    “확실히 재미있는 내용이네. 오브젝트들이 보통 생각을 읽어서 소통을 한다는 것도 모르고 쓴 보고서 같아. 하긴 탐정 나부랭이가 뭘 알겠어? 오브젝트가 한국어를 안다고? 차라리 초등학교도 나왔다고 하지?”

    큭큭큭, 하고 웃는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흡연실에서 울려 퍼졌다.

    ***

    서울 외곽, 이면 도로에 위치한 조그마한 사무실.

    “선배! 저거 왜 계속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당연히 버릴 줄 알았는데.”

    후배라는 녀석은 망치를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닦으면서 전혀 맥락도 없이 물음을 던졌다.

    “뭣?”

    내가 뒤를 돌아서 확인해보자, 근처 연구소 격리실에 기부형식으로 보내버린 왓슨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어쩐지 이럴 거 같아서 이번에는 연구소 격리실에다가 처박아 버린 건데, 결국 또 돌아와 버렸군.

    평범한 격리실 정도로는 못 막는 건가.

    “꽤 많이 버렸다. 매번 돌아올 뿐이지.”

    “와 처치 곤란이네요. 아직도 캠프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살짝 무서운데, 버릴 수도 없다니….”

    후우, 하고 한숨을 쉬고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 말했다.

    “이번에도 돌아오면 포기하고, 왓슨을 가지고 다니기로 했으니까 너도 익숙해져야 할 거야.”

    “네? 왜요? 저거 수틀리면 선배 목을 꽈배기로 만들어 버릴껄요?”

    “버릴 수 없으면 써먹어야지. 3번은 도와줄 거 아냐.”

    “엑, 제가 있을 땐 쓰지 마세요.”

    식겁한 표정을 지은 후배는 리모컨으로 TV를 틀었다.

    TV에서는 나와 후배가 해결한 사건이 나오고 있었다.

    사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서, 요즘 어딜 가든 저 나비 사태 이야기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정부에서 숨길 법한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너무 화제가 돼서 어쩔 수 없이 공개된 느낌이었다.

    캠프에서의 일보다 더욱 화제가 된 사건이 서울에서 몇 건이나 발생한 덕분이다.

    거울이 부서지고 나비가 죽어나갈 때는 ‘아, 이제 사건 해결이구나!’ 라는 감상에 젖어 있었는데, 사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었다면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사건 해결을 하고 기뻐하고 있을 때, 서울에서는 옆에 있던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갑자기 칠공에서 피를 토하면서 죽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다른 지역의 나비 감염자들이 그렇게 죽어나간 것이다.

    다만 칠공에서 피를 뿜어가며 죽은 시체를 확인한 사람들은 더욱 끔찍한 꼴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사실 가죽만 남아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속에는 핏물만 가득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람 머리통만한 죽은 나비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는 사실.

    그런 끔찍한 사건 때문인지, TV에서는 24시간 그 이야기만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다.

    “요즘 볼 게 없네요.”

    채널을 마구 돌리던 후배는 나와 비슷한 감상을 말했다. 

    “아 맞다! 선배! 이재민 캠프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제가 거기 도착하기 전에요.”

    후배는 TV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도대체 뭘 묻는 건데?”

    “저거요. 저거. 데일리 오브젝트 소속 수습기자가 실종됐대요. 데일리 오브젝트 사장이 이건 회색 사신의 짓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던데, 선배 뭐 아는 거 있지 않아요?”

    입으로 휙휙 소리를 내며 권투자세를 취했다.

    “사진으로 봐도 그 수습기자 성격 더러워 보이던데, 선배 성격이면 가만두지 않았을 거 아녜요. 선배가 막 패줘서 도망간 거 아니에요?”

    “미행한 건 알고 있었지. 근데 그 기자 얼굴도 못 봤어.”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심심해서 헛소리를 하는 녀석의 머리 위로 서류 한 장을 올렸다.

    “심심하면 이거라도 조사해 보는 게 어때? 보수는 꽤 괜찮은 편이야.”

    후배가 펼쳐든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브젝트를 만든다는 사이비 제작자, 통칭 메이커에 대한 조사.>

    <황금뿔을 잔뜩 수집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음.>

    <범죄와 연관성이 다수 의심되므로 주의 요망.>

    ***

    아직 나비가 창궐하지 않았던 때, 아귀가 싱크홀 너머로 사라진지 겨우 3일이 지났던 그때.

    아직은 그 상흔이 남아, 곳곳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폐허에서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탁. 탁.

    지팡이가 바닥을 두 번 치는 소리였다. 

    그 순간 허공에서 녹아들듯이 한 명의 인영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드디어, 드디어. 돌아왔군. 서울에, 한국에, 그리고 이 지구에.”

    나무로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지팡이를 한손에 든 그 남자는 중앙 연구소의 소장이었다.

    “역시 아귀는 지하로 숨어들어 가버렸는가. 미래를 몇 번이고 봐도 아귀가 도망치는 이유는 전혀 짐작이 가질 않는군. 뭐, 그걸 포함해서 우리가 밝혀야 할 일들이 많다는 뜻이겠지.”

    흥겨운 걸음걸이로 소장이 걸어 나가자, 그 뒤로 반투명한 연구원들이 유령처럼 잔뜩 따라붙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는 드디어 돌아왔다. 자, 가자. 우리들의 새로운 연구소로!”

    양팔을 한껏 벌리고 과장스러운 표정으로 웃는 소장의 얼굴은 기괴한 환희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뒤로는 음울한 대학원생 같은 표정의 연구원들이 그림자 속으로 스르륵 빨려들었다.

    소장은 경쾌한 걸음걸이로 북쪽으로, 북쪽으로 계속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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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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