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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종기사는 악명 높은 관습이다.

       악명이 높은 이유?

       간단하다. 불합리함이 아득한 관습이기 때문에.

         

       시작은 자유기사들이 거둬들인 제자에게 붙이는 명칭 따위였으나, 요즘 시대에 누가 자유기사의 제자가 되겠는가?

       말만 자유기사지 양아치나 다름없는 범죄자가 그들이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어리숙한 농촌 마을의 소년들은 자신을 제자로 삼아주겠다는 자유기사의 말에 홀딱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말만 종자인 노예생활이 시작되는 거고.

         

       청소와 빨래, 밥 짓기는 물론이요.

       기사의 여흥을 위해 돈도 벌어야 하며, 품위유지비를 위해 사채도 써야 할 때도 있다.

       다름 아닌 종기사의 명의로.

       이렇다 보니 종기사가 된 이들은 대부분 빚쟁이다.

         

       물론 빚쟁이가 되기 전 도망치는 이들이 대부분이나, 도망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자유기사라 한들 기사임은 맞고, 양아치인 만큼 사람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니.

       그렇기에 자유기사 제도는 폐지(廢止)되었다.

         

       악인도 이런 악인이 없으니까.

         

       한데도 이상하게 종기사 제도는 여전히 폐지되지 않았다.

       귀족들 말로는 자유기사가 잘못한 거지, 다른 명문가의 기사들은 그러하지 않는다나?

         

       …개소리더라.

         

       저가 본 명문가의 기사들, 그리고 그 기사들이 거느린 종기사가 하인보다 못한….

       그래, 노예 취급당하는 광경을 얼마나 수없이 봤는데.

       그렇기에 그는 만약 종기사가 되고 싶다고 희망하는 무지한 어린 양이 있으면 기꺼이 가르침을 줬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한데.

         

       ‘알 거 다 아는 녀석이 종기사가 되겠다는 건 과연 무슨 의미일까?’

         

       1번, 미쳤다.

       2번, 고통과 고난을 즐기는 변태다.

       3번, 혹은 둘 다다.

         

       ……으음, 어렵다.

       어려운 문제다.

         

       하여.

         

       “…어딜 때려줄까?”

       “예에?”

       “어딜 때려야 네가 나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말해라. 내가 고장 낸 것 같으니 기꺼이 고쳐주도록 하마.”

       “…….”

         

       뚜둑, 뚝.

         

       이한은 주먹을 가볍게 풀며 놈의 뒤통수든 앞통수든 때릴 준비를 했다.

       전날 교탁으로 때린 게 문제라면 다르게 때리면 된다.

         

       교탁 날릴 때 커브로 던졌으니, 이번엔 슬라이더로 던지면 되려나?

         

       악연이긴 하지만, 이놈도 검술학부 소속이다.

       무늬만 교관일지언정 생도의 정신머리를 차리게 해줄 의무가 있지 않겠는가.

         

       ‘안 되면 말고.’

         

       이한이 그렇게 적당한 짱돌을 찾아 주변을 슬쩍 훑고 있으니 여전히 무릎 꿇던 놈은.

         

       “그, 그런 게 아닙니다, 경. 아,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전 미친 게 아닙니다!”

       “미친 게 아닌데 이런다고? …그럼 더 문제 아닌가?”

       “그, 그건….”

         

       지가 생각해도 좀 구차한 변명인 건 맞다 싶은지, 데미안은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선.

         

       “제, 제가 말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급한 마음에 뒷사정 설명도 안 하고 종기사가 된다고 했으니, 이런 취급받아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겸허히 이를 인정하며 데미안은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아버지, 아, 아니 가주님께서 명하셨습니다. 리한 경을 보필하라고.”

       “…?”

         

       …왜?

         

       이한은 눈으로 물음을 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많은 얘기를 들었다.

         

       하루아침에 백작이 달라졌다는 얘기부터, 백작에게 언성을 높이던 기사단과 백작의 장남 등이 살얼음판 속에서 산다는 얘기.

       그밖에도 원로들이 직접 나서 가문의 기강을 새롭게 다잡고 있다는 얘기.

       백작가의 위신을 떨어트린 막내 공자는 기어이 호적, 아니 가적(家籍)에서 파였다는 얘기.

         

       그리고 다시 가문으로 복귀하고 싶으면 어느 기사에게 용서부터 받고 오라는 얘기까지.

         

       뭐,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결론적으로.

         

       “용서 받고 싶으면 시건방지기 그지없는 네 혀를 자르던가, 그것도 아니면 나한테 덤볐던 기사의 머리를 가지고 와라. 그 정도면 용서해주마.”

       “…….”

       “둘 중 아무거나 선택해도 된다.”

       “…….”

       “싫어? 싫으면 마. 그냥 꺼져.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역하니까.”

         

       이한은 가차 없는 경멸과 함께 조소를 내뱉었다.

       어차피 못할 줄 알았다는 듯이.

         

       …그때.

         

       “자, 자르겠습니다.”

       “…뭘?”

       “제, 제 혀를 자르겠습니다. 그, 그거면 종자로 삼아주실 겁니까?”

       “…….”

       “긍정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사악.

         

       순간 데미안은 언제부터 챙기고 있던 건지 제 품 안에서 가위를 꺼냈다.

       제법 날이 바싹 선 가위였고, 그것으로 곧장…!

         

       퍼억!

         

       “케헥!”

       “그렇게 무작정 자르면 출혈로 죽는 수가 있다. 누굴 살인마로 만들려고.”

       “케헥! 으으윽!”

         

       얼굴이 걷어차인 데미안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가까스로 일어섰다.

       허나 이한은 미안한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쯧, 가문에서 이런 당연한 것도 안 배우냐?”

       “…그런 걸 누가 가르쳐줍니까.”

         

       데미안은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입에는 피가 고여 있었는데, 혀가 조금 잘린 상태여서 그랬다.

       그런 데미안에게 이한은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저급 포션 하나를 던져줬다.

         

       “마, 마셔도 됩니까?”

         

       얼떨결에 병을 잡은 데미안이었고, 이한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물론 저급 포션인지라 혀가 단번에 낫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응급처치는 될 터였고, 투기법을 익힌 녀석이니 일주일만 놔둬도 알아서 회복되리라.

       그리고 그런 놈을 보며.

         

       “동정심 자극하려고 그랬으면 백작이랑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네 몸이랑 머리부터 분리시켰을 거다. 날 다시 조롱하려고 그랬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예에.”

         

       즉, 그가 진심으로 혀를 자르려고 했기에 구해줬다는 뜻도 되었다.

         

       “가위는 왜 가지고 다니냐?”

       “경께서 어떤 식으로든 저에게 대가를 요구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손가락이나 귀 중 하나는 각오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냐?”

       “가문에 복귀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냐.”

       “예에.”

         

       …우스운 놈이다.

         

       전만 해도 그냥 입만 놀릴 줄 아는 양아치인 줄 알았는데, 제법 배짱이 있지 않은가.

       싫은 타입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새끼가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지만.’

         

       한 번 싫어진 인간을 긍정적으로 다시 보게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또한, 결국 이놈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생각이 없고, 그저 귀족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니까.

       그래서 여전히 좋게 볼 이유도 없다.

         

       그래도 경멸하진 않는다.

         

       당장 어느 아무것도 없는 시골만 해도, 별것도 아닌 촌장 자리를 얻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혹은 촌장 자리를 빼앗기자 목을 매는 노인도 있는 판국이다.

       돈도 많고 부족할 거 없는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권력을 빼앗기는 게 무엇보다 괴로웠다는 뜻일 터.

         

       그렇기에 권력이란 건 무서운 것이고, 동시에 자신 같은 인간이.

         

       ‘가까이 다가가선 안 되는 것이겠지.’

         

       이한은 물끄러미 놈을 내려다보았고, 데미안의 동공은 쉼 없이 떨리고 있었다.

       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은 상태.

         

       그런 그에게.

         

       “그냥 가도 좋다. 종자든 보필이든 안 해도 좋으니 용서해주지.”

       “…….”

       “…잘했다.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난 백작을 찾아갔을 거다. 널 절대 용서해주지 말라고.”

       “…예에.”

         

       놈의 안색이 유독 창백해진 걸 보니 마음이 동했었나 보다.

       한데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유혹을 억누른 게 다행이었다.

       혹시나 싶은 생각이 가까스로 놈을 살린 셈.

         

       다시금 데미안에게 우스움을 느끼면서도 이한은 입 꼬리를 올리지 않았고, 대신 손가락 세 개를 폈다.

         

       “3년, 3년만 나를 보필해라. 아카데미 안이든 밖이든 내가 필요할 때가 있으면 부르겠다.”

       “조, 종기사로 받아들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내가 제자를 받을 처지는 아니라서. 대신 ‘조교’로 받지. 그 정도면 만족하겠지? 어차피 너도 내 종자가 된다는 건 마음에 안 들 테니까.”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솔직한 건 마음에 드네. -따라와라, 조교. 오늘부터 당장 수업 시작이니까.”

       “알겠습니다, 경!”

       “경이 아니라 교관님이라고 불러, 난 널 3년 동안 이름이 아니라 조교로만 부를 거니까.”

       “……끙.”

       “대답.”

       “…예, 교관님.”

       “말은 잘 알아들어서 좋네.”

         

       이한은 뒤돌아섰고, 기어이 생명줄을 잡는 데 성공한 데미안은 울상과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며 생각한다.

         

       ‘…아아, 입학식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의 나를 흠씬 두들겨 패고 싶다.

       데미안 폴렛, 아니 이제 이한의 조교가 된 남자의 눈가는 갈수록 촉촉해져만 갔다.

         

       벌써부터 앞날이 캄캄한 것 같다며.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80명 인원이 넉넉하게 마실 물과 수건을 챙겨 와라. 그밖에 눈치껏 필요한 물품도 챙겨 와라.”

       “도, 돈은….”

       “내 이름을 대고 아카데미에서 지원받던가. 아니면 네 돈으로 해결해.”

       “…….”

       “불만 있냐?”

       “…없습니다, 빌어먹을.”

       “한 마디가 많다, 조교야.”

       “……흑.”

         

       데미안은 결국 흐느꼈다.

         

       * * *

         

       …데미안을 보고 잠시 당황한 생도들이 있었으나, 관심은 금세 사라졌다.

         

       생도 중 반은 대충 어떻게 상황이 굴러가는지를 판별했고, 또 반은 그냥 관심이 없었다.

       자기 일만 해도 바쁜 거다.

         

       이한도 이기적인 생도들이 마음에 들었다.

       쓸데없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좋았으니까.

         

       그러면서 슬쩍 생도들의 면면을 확인한 이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나같이 말 더럽게 안 들을 관상이군.’

         

       누군가 그랬던가, 관상은 과학이라고.

       이는 이한도 수긍하는 쪽이었다.

       저것들 얼굴 좀 봐라, 군대에서 봤던 폐급의 향기가 풀풀 풍긴다.

         

       말을 절대 순순히 듣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

         

       이해한다.

       나 같아도 기사단에서 좌천되고, 입학식에서 사고 친 교관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일단, 본 교관의 소개와 인사에 앞서 생도들에게 제안할 게 있다.”

         

       -…?

         

       “교관의 실력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생도들은 지금 이 순간 무기를 뽑아라. 얼마든지 상대해줄 테니, 아, 그리고 참고로.”

         

       -…….

         

       “만약 본 교관을 이기는 생도가 있다면, 발타르 그레이스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주도록 하마. 이는 백은사자의 이름을 걸고 공증하는 맹세다.”

         

       채애앵!

         

       “훌륭하다.”

         

       다음 순간 생도 중 반이 망설임 없이 각자의 병장기를 뽑았고, 이한을 향해 기세를 쏟아냈다.

         

       “흐.”

         

       ─그래, 하지만이다.

         

       저들이 그를 마음에 안 들어 하듯, 그를 싫어하는 놈들을 자신이라고 마음에 들어 할 리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그가 이놈들이랑 시간 진득하게 두며 친해질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에 있다.

         

       도리어.

         

       ‘인형들이 많아서 좋네.’

         

       이용해먹을 마음만이 가득하면 가득했지.

         

       오늘 아침. 안타깝게도 운명을 마감한 대련용 인형을 대신할 ‘인형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확인하는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하나같이 자신이 만든 누더기 인형보단 더 튼튼해 보였으니 말이다.

       

       

       이한은 흐뭇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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