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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요르문간드가 정말 신적 존재인지에 관해 알아보기 위한 조사는 다음 날 부터 이어졌다.

       

       수십 명으로 이어진 정예 성기사들이, 나란히 줄을 이어 요르문간드가 산다던 동굴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왕국의 정문을 가득 메운 휘황찬란한 성기사 부대는, 그것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는 성녀는, 모두의 시선을 단박에 끌어당겼다.

       

       태양이 새겨진 눈동자.

       성녀를 위한 성흔이 새겨진 증거.

       

       그 외에도 신비롭게 생긴 얼굴은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 성녀의 시선을 끄는 이가 있었다.

       

       “음?”

       

       성녀가 되면서.

       그녀에게 강제로 새겨진 이능은 단순한 치유 뿐만이 아니었다.

       

       태양이 새겨진 동공.

       그 문양을 통해, 그녀는 세계에 넓게 펼쳐진 ‘신성’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신이 될 수 있게 해주는 힘.

       그 신성이야 말로 신을 대변해주는 증거이자, 신적 존재라면 필수적으로 가져야만 하는 요소였다.

       

       그렇기에 의외였다.

       그녀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당길 정도로, 꽤나 많은 신성이 한 여인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저분은 누구죠?”

       

       뱀의 형상을 한 동상 앞에서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끝도 없이 두꺼운 책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적어내려가고 있는 여인.

       

       다른 왕국민들과 같은 검은 색 머리를 지녔지만.

       

       특이한 점은 푸른 눈동자였다.

       일반적으로 푸른 눈동자라면 이 대륙에서 흔하지만… 어째서일까.

       

       한없이 신비로운 기운을 품고 있는 눈동자는, 자연스레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제 딸입니다. 요르문간드님의 신녀가 되었지요.”

       

       “신녀?”

       

       성녀의 시선이 그녀를 향한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역시나 신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쯤에서.

       성녀는 요르문간드라는 존재가 정말 신적 존재임을 확신했다.

       

       신녀라 불리는 자가 신성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인간이라 불리는 자가 신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는, 용사 중에서도 위대한 위업을 달성한 극소수의 용사와 성녀인 자신을 제외한 다른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 여인은.

       분명히 신성을 지니고 있었다.

       

       여신이 내려주는 신성과도 다른.

       한없이 푸르고 압도적인 느낌의 신성을.

       

       다만.

       

       ‘…돌아가기 싫어.’

       

       이 사실을 추기경들한테 말하면 어떻게 될까.

       

       다시 신성 제국으로 돌아가겠지.

       숨 막히는 규율에 시달리던 때로 돌아가는 거다.

       

       싫었다.

       자그마한 일탈이라 봐도 좋았다.

       

       정말 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어떤 지 만나보고 싶었다. 사실, 벨리아르는 정말로 신을 마주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에게 성흔을 내려준 여신.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성녀에게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으니까.

       

       아주 옛날.

       고대 문헌으로 나온 성녀들은 여신에게 계시를 받았다고 들었는데, 벨리아르에게 그런 일은 없었다.

       

       그저 무책임하게 성흔이라는 이름의 낙인을 새기고.

       

       자신의 감각을 앗아간 신이었다.

       

       수도 없이 원망하고, 매일 그녀에게 소리쳤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궁금했다. 신이란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성녀는 직접 신이라는 존재를 마주하기 위해 걸음을 떼었다.

       

       동시에 신녀라 불리는 여인에게 동정심을 품었다.

       

       ‘어떤 걸 대가로 바쳤을까?’

       

       무려 신의 대리자이다.

       그런 존재에게 아무런 제약도 없을까?

       

       벨리아르는 당연히 요르문간드라는 존재가 그녀에게 대가를 가져갔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깨어지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녀라 불리는 여인이 왕에게 소식을 듣더니, 제게 쪼르르 달려와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반가워요, 성녀님. 저는 요르문간드님의 신녀, 엘리세르데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혹시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좋아요.”

       

       성녀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녀가 신을 만나는 길에 따라가지 않는 게 더 이상하기도 하고, 내심 자신과 같은 처지라는 사실에 동질감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벨리아르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다가가 귓속말했다.

       

       “혹시, 어떤 걸 대가로 바치셨나요?”

       

       “네?”

       

       “신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대가로 바쳤는 지 궁금해서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성녀는 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런 반응이지?

       

       그녀는 분명 신성을 품고 있었다.

       엘리세르데가 어마어마한 위업을 달성한 용사가 아닌 이상, 신녀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지?

       

       성녀는 순간.

       떠오르는 하나의 가능성에 심장이 쿵 뛰었다.

       

       에이, 설마.

       

       “대가라니… 그게 무슨 소리신가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더 물어볼 수도 있었다.

       자신에게 그저 대가의 존재를 숨기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이지.

       

       하지만 성녀는 침묵을 택했다.

       

       어쩌면.

       그녀가 ‘대가’를 바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무의식적으로 보호해오던 그녀의 심장이 완전히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성녀는 회피를 택했다.

       

       어느새 거세게 쥐어진 손아귀에서 피가 흘렀지만, 그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익숙한 기척이 느껴진다.

       

       요르문간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운에 미소를 머금었다.

       

       [엘리세르데.]

       

       나의 신녀.

       요즈음 종교를 만든다고 바쁜터라 만난 지 꽤나 오래 되었다.

       

       물론 그가 직접 날아가 만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시선을 끌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가만히 동굴에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난다고 생각하니 나름 기쁜 감정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있군.]

       

       꽤나 많았다.

       다만 하나 같이 특이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굉장히 따스한… 온화한 기운.

       적어도 여지껏 그가 마주한 기운들 중에서 가장 온화하고 따스한 기운이었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용사랑 비슷하군.]

       

       용사라 불리는 이와 비슷한 기운이었다.

       

       물론 완전히 똑같진 않았다.

       용사가 품은 기운이 조금 더 패도적이고 사나운 느낌이라면, 지금 다가오는 이의 기운은 더 따스한 기운이라고 해야 할까.

       

       그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기운이 존재했다.

       

       요르문간드는 순간 신이 현현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만큼이나 압도적인 신성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직접 격을 깨닫고 얻은 신성과 달리, 신성이 그 몸에 직접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본인의 기운일 텐데.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오히려 해치는 느낌이었다.

       

       [이상하구나.]

       

       저 정도의 신성을 보유한 자가 다룰 줄도 모르다니?

       

       요르문간드는 자신의 신녀를 떠올렸다.

       

       자신의 신녀가 되면서 자연스레 신성을 가지게 된 여인을.

       

       그녀는 지금 다가오는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똑같이 누군가에게 신성을 받아들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이상했다.

       

       ‘보통 신의 대리자가 된다면, 자연스레 신성과 조화를 이룰 터.’

       

       엘리세르데가 그러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신녀가 될 ‘가능성’을 지녔고.

       

       그렇기에 자신의 신녀가 되었을 때 자연스레 신성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신의 대리자가 되면서도 신성이 반발한다라….

       

       ‘좋은 느낌은 아니군.’

       

       무언가 복잡하게 얽매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 * *

       

       

       엘리세르데는 걱정스러운 눈치로 성녀를 바라보았다.

       

       최초의 신이자, 창조신이기도 한 여신님의 대리인. 눈에 새겨진 태양의 문양이 무척이나 신비롭게 보이는 여인은, 조금 전 부터 무언가 불안정한 느낌이었다.

       

       ‘약간… 정신이 혼미한 느낌.’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표정이 굳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하게 거리를 두었다.

       

       엘리세르데는 처음에 자신이 그녀에게 무언가 잘못을 한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성녀님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손이…….’

       

       성녀님의 손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어찌나 주먹을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프지도 않은 걸까?

       

       더욱 의문인 점은.

       그 주변의 성기사들이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무려 성녀다.

       교단을 대표하는 최고층.

       

       당연히 성녀에게 언제나 관심을 기울이고, 성녀의 안위를 봐주리라 생각했는데.

       

       ‘…무관심해.’

       

       호의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성녀를 존경한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

       

       여신의 대리자이기에 지켜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깃든 느낌이었다. 목숨만 잃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생겨도 신경쓰지 않는….

       

       그런 느낌이 가득했다.

       엘리세르데는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괜히 왔나…?’

       

       어떻게 수십 명의 사람이 오가는데 한 마디 말도 없단 말인가.

       

       후회가 문득 고개를 치켜들지만.

       엘리세르데는 몹시 불안정해보이는 성녀가 눈에 밟혔다.

       

       저런 높으신 분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마치 강가에 나온 아이를 보는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그도 아니면 절벽의 끄트머리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무척이나 불안정해보이는 모습에 신경을 기울일 때였다.

       

       “아, 도착했다!”

       

       드디어 요르문간드님이 있는 동굴에 도착했다.

       

       “이곳이…….”

       

       성녀의 눈이 어둡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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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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