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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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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치? 아냐,아냐. 언데드 계열의 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 그렇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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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과 달리 책과 서적이 한가득 쌓인 방은 실험실이라기보단 서재에 더 어울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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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많은 책이 다 어디서 나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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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쌓여있는 책을 흘긋거리며 묘기를 부리듯 쌓인 책들을 피해 미아에게 도착했다. 그녀의 옆에 샌드위치와 시원한 물을 내려놓자, 미아가 본능적으로 샌드위치를 가져가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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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분명 좀 더 과거의 기록에선..”
    “조금 있다가 수거하러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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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반사적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계속 책을 이리저리 넘겼다. 나는 후다닥 방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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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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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먹을 때가 되었다는 듯 뱃가죽이 진동했다. 배를 슥슥 문지르며 식당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빠르게 이동한 덕분에 식당 입구가 저 멀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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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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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 문 옆에 익숙한 사람이 멍한 얼굴로 서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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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 거기서 뭐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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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름을 부르자 피아가 몸을 흠칫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피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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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래? 무서운 거라도 봤어? 설마 유령?”
    “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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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무언가 설명하고 싶다는 듯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내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무서운 유령을 봤다면 제대로 말하기 힘들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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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도 그렇고, 여기엔 유령이 많나? 막 저주받은 저택 뭐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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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하며 피아에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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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 만약 그런 유령이 찾아온다면 이렇게 말해 ‘어떻게 지평좌표계를 고정하고 계신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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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불쌍한 친구를 돕기 위해 피아의 양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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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따라 해봐. ‘어떻게 지평좌표계를 고정하고 계신 거죠?’”
   “…어떻게 지평…”
    “지평좌표계.”
   “어떻게 지평좌표계를 고정…하고 계신 거죠?”
    “그래! 그렇게만 말하면 유령 따위 도망쳐 버릴 거야! 만약 기억이 안 나면 물구나무서서 발로 박수를 치면서 원숭이 소리를 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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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짓을 하면 유령이 “아 뭐야 저게;”하면서 도망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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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풉,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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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말이 웃겼는지 피아가 웃음을 터뜨리며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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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마 지평좌표계와 물구나무 -…”
    “푸흐흐..큽,그..그만 웃겨 배 아파…”
    “이건 진지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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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웃으며 넘기려는 피아에게 내 의견을 피력하려는 순간, 식당 안쪽에서 노아가 문을 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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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들어오고 뭐해?”
    “아,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
    “푸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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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웃음을 흘리는 피아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미소를 짓긴 하지만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일이 없던 피아가 배를 잡고 웃고있으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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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얘기하는 거면 들어와서 해. 나도 듣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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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와 몸을 단련하며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노아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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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이건 피아만 알고 있을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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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피아의 어깨를 놓아준 후 식당 안으로 향했다. 접시에 샌드위치 두 개를 받아 네로와 릴리가 앉아있는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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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리안.”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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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내게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식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노아에게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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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님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갔는데 왜 그런지 알아?”
    “뭐? 갑자기 도망을?”
    “응, 정말 조금 전에.”
    “이 근처에 위험한 게 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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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식당 앞에서 피아를 붙잡고 열심히 설명했던 ‘유령 퇴치법’이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뭔가 위험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거나, 얼핏 듣게된 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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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아마 금방 돌아오실 거야.”
    “그렇겠지?”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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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볍게 대화를 나무며 원래 앉으려던 자리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아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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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그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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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의 안색은 어느새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조금 전까지 유령 이야기를 했었던지라 피아의 안색이 신경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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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항상 릴리의 곁에 앉았기에 조용히 샌드위치를 먹으며 기다렸다. 내 예상대로 피아는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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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 맛있어?”
    “언니 혹시 어디 아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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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정말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난 손에 들고 있는 샌드위치를 와구와구 먹어버린 후 벌떡 일어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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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전부 유령 때문이야.”
    “유령?”
   “힉?!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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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말에 식사하며 떠들던 아이들의 시선이 전부 나를 향했다. 난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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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유령이 나올지 모르니까 유령 대처법을 알려줄게.”
    “그런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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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지평좌표계와 물구나무서서 손뼉 치며 원숭이 소리내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이 중 체력이 꽤 회복된 아이들이 물구나무를 서서 발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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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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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박수를 치며 칭찬하자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다. 피아는 어느새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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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 이제 무서워하지 말고 연습해보자. 분명 유령 따위 전부 물릴 칠 수 있을 거야.”
   “크흡,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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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는 듯한 소리를 냈다. 감동을 받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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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쮠님 이것 봐!”
    “오! 제스 대단해!”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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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내 말을 따라 하며 물구나무 선 채 마구 돌아다녔다. 노아는 아이들이 식사는 안하고 물구나무 서기를 도전하자 “우선 식사부터 하고 놀자.”라며 아이들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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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망이 된 식사 분위기가 다시 잡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밝은 식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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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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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혼자 울고 또 멀쩡한 척을 하는 거야?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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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조금 전에 보았던 리안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볼에 남은 눈물 자국과 눈가에 고여있는 눈물, 붉게 짓무른 눈가. 울음의 흔적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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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꼴을 한 주제에 피아를 보자마자 웃으며 다가오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피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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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연기겠지. 불쌍한 모습으로 동정받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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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놓인 고정관념이 부서진다. 어쩌면? 사실은? 이란 말이 둥둥 떠오른다. 하지만 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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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나쁜 놈이고 연기를 하고 있다. 우리를 속이고 있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만큼 쉬운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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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작게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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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멍청하게 행동하고 생각하면 안 돼. 동생을 지키려면 더,더,더…의심하고 의심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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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을 제외하곤 별 관심이 없던 피아가 주변을 신경 쓰기 시작한 건 전부 평화에 젖어 들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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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주변에 시선을 둘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잔혹한 세계에서 안이한 마음은 곧 죽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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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몇 번이고 부드럽게 풀리려는 마음을 굳게 닫고, 경계심을 올리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피아는 아직 어렸다. 아무리 경계심을 올린다고 해도 동화에서나 볼법한 평화로운 분위기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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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덕분에 릴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살의를 가지는 일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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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이대로만, 오늘 같은 날만 이어진다면 피아는 점차 안정을 찾아갈 것이다. 난폭한 생각을 끄집어내지도, 트라우마에 잠식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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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그녀의 정신을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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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으…으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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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억눌린 울음소리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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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 반드시 동생을 지켜야 해. }
    { 언니인 네가, 동생을 반드시 지켜줘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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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압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려 퍼졌다. 피아는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트라우마에서 도망치고자 한 행동이었지만, 피아를 더욱 나락으로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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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와 눈을 감자 ‘그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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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 언니..나 추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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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점이 흐려져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눈동자, 제 품 안에서 축 늘어져 온기가 사라지기 시작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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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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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의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피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동생을 품에 안았다. 차가운 몸에 비해 뜨거운 피가 끈적하게 손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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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만 같았다. 머리가 어지럽다. 속이 울렁거렸다. 눈가가 뜨겁게 달아오르다 못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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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나,두고 가지 마. 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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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이 피아의 팔을 꽉 붙잡아 당겼다.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에 온기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마주친 눈동자를 통해 전해지는 건 ‘원망’과 ‘증오’,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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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켜준다고 했잖아. 지켜준다고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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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락같은 소리가 머릿속에 쾅쾅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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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미안해,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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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그랬어? 왜 날 두고 갔어? 왜 지켜주지 않았어? 언니가 지켜준다고 했잖아! 나 추워, 언니 나 너무 추워. 살려줘 언니 제발 살려줘. 살려줘! 살려달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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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동생이 피아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당겼다. 아파,아파,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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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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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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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피아가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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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식..식당! 식당으로 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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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식당이란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듯 말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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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응,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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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방을 떠나고 혼자남은 피아는 얼굴을 더듬었다. 눈물로 흥건했다. 몸이 덜덜 떨리고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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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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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이불에 눈물을 닦아내고 침대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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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거르면 릴리가 걱정..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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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눈물보다 땀을 많이 흘린 듯 창문을 통해 확인한 얼굴은 말끔했다. 피아는 비틀거리며 식당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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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언니 왜 내 말 무시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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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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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침대를 벗어났음에도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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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날 버렸어? 왜 나를 죽게 내버려 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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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입술이 퍼석하게 마르고 숨이 턱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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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이렇게 죽었는데, 어떻게 언니는 계속 살아? 내가 아니라 언니가 죽었어야 했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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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식당 앞에 멈춰서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동생 대신 살아난 내가 감히 편하게 식사를 하고 숨을 쉬는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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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따위가 살아있어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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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뒤덮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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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 거기서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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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환청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마치 마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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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헤르큰님! 익명님! 후원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

위대한 흑마법? 개그 필터 앞에서 허접이 됩니다.

함께 따라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기쁘네요!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리치? 아냐,아냐. 언데드 계열의 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 그렇다면 -…”

전과 달리 책과 서적이 한가득 쌓인 방은 실험실이라기보단 서재에 더 어울려 보였다.

‘이 많은 책이 다 어디서 나온 거지?’

쌓여있는 책을 흘긋거리며 묘기를 부리듯 쌓인 책들을 피해 미아에게 도착했다. 그녀의 옆에 샌드위치와 시원한 물을 내려놓자, 미아가 본능적으로 샌드위치를 가져가 입에 물었다.

“고마워. 분명 좀 더 과거의 기록에선..”

“조금 있다가 수거하러 올게요.”

미아는 반사적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계속 책을 이리저리 넘겼다. 나는 후다닥 방을 빠져나왔다.

꼬르륵.

저녁 먹을 때가 되었다는 듯 뱃가죽이 진동했다. 배를 슥슥 문지르며 식당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빠르게 이동한 덕분에 식당 입구가 저 멀리 보였다.

“응?”

식당 문 옆에 익숙한 사람이 멍한 얼굴로 서 있는 게 보였다.

“피아 거기서 뭐 해?”

“…!”

내가 이름을 부르자 피아가 몸을 흠칫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피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왜 그래? 무서운 거라도 봤어? 설마 유령?”

“아…응.”

피아는 무언가 설명하고 싶다는 듯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내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무서운 유령을 봤다면 제대로 말하기 힘들 터였다.

‘줄리아나도 그렇고, 여기엔 유령이 많나? 막 저주받은 저택 뭐 그런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피아에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피아, 만약 그런 유령이 찾아온다면 이렇게 말해 ‘어떻게 지평좌표계를 고정하고 계신 거죠?’”

“뭐?”

피아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불쌍한 친구를 돕기 위해 피아의 양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자 따라 해봐. ‘어떻게 지평좌표계를 고정하고 계신 거죠?’”

“…어떻게 지평…”

“지평좌표계.”

“어떻게 지평좌표계를 고정…하고 계신 거죠?”

“그래! 그렇게만 말하면 유령 따위 도망쳐 버릴 거야! 만약 기억이 안 나면 물구나무서서 발로 박수를 치면서 원숭이 소리를 내봐.”

그런 짓을 하면 유령이 “아 뭐야 저게;”하면서 도망칠 게 분명하다.

“풉,푸하하!”

내 말이 웃겼는지 피아가 웃음을 터뜨리며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다.

“잊지마 지평좌표계와 물구나무 -…”

“푸흐흐..큽,그..그만 웃겨 배 아파…”

“이건 진지한 얘기..-”

그저 웃으며 넘기려는 피아에게 내 의견을 피력하려는 순간, 식당 안쪽에서 노아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안 들어오고 뭐해?”

“아,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

“푸흐흐…”

노아가 웃음을 흘리는 피아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미소를 짓긴 하지만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일이 없던 피아가 배를 잡고 웃고있으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얘기하는 거면 들어와서 해. 나도 듣고 싶어.”

줄리아나와 몸을 단련하며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노아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이건 피아만 알고 있을게 아니니까.”

나는 피아의 어깨를 놓아준 후 식당 안으로 향했다. 접시에 샌드위치 두 개를 받아 네로와 릴리가 앉아있는 장소로 향했다.

“저기 리안.”

“응?”

노아가 내게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식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노아에게 귀를 기울였다.

“스승님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갔는데 왜 그런지 알아?”

“뭐? 갑자기 도망을?”

“응, 정말 조금 전에.”

“이 근처에 위험한 게 있…아.”

문득 식당 앞에서 피아를 붙잡고 열심히 설명했던 ‘유령 퇴치법’이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뭔가 위험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거나, 얼핏 듣게된 걸지도 몰랐다.

“음, 아마 금방 돌아오실 거야.”

“그렇겠지?”

“응. ”

가볍게 대화를 나무며 원래 앉으려던 자리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아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어? 그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피아의 안색은 어느새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조금 전까지 유령 이야기를 했었던지라 피아의 안색이 신경 쓰였다.

피아는 항상 릴리의 곁에 앉았기에 조용히 샌드위치를 먹으며 기다렸다. 내 예상대로 피아는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릴리 맛있어?”

“언니 혹시 어디 아파?”

“아니?”

피아는 정말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난 손에 들고 있는 샌드위치를 와구와구 먹어버린 후 벌떡 일어나 말했다.

“이건 전부 유령 때문이야.”

“유령?”

“힉?! 유령?!”

내 말에 식사하며 떠들던 아이들의 시선이 전부 나를 향했다. 난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서 유령이 나올지 모르니까 유령 대처법을 알려줄게.”

“그런 게 있어?”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지평좌표계와 물구나무서서 손뼉 치며 원숭이 소리내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이 중 체력이 꽤 회복된 아이들이 물구나무를 서서 발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 그거야!”

내가 박수를 치며 칭찬하자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다. 피아는 어느새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피아 이제 무서워하지 말고 연습해보자. 분명 유령 따위 전부 물릴 칠 수 있을 거야.”

“크흡,응..”

피아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는 듯한 소리를 냈다. 감동을 받은 듯하다.

“쮠님 이것 봐!”

“오! 제스 대단해!”

“대단해!”

제스가 내 말을 따라 하며 물구나무 선 채 마구 돌아다녔다. 노아는 아이들이 식사는 안하고 물구나무 서기를 도전하자 “우선 식사부터 하고 놀자.”라며 아이들을 달랬다.

엉망이 된 식사 분위기가 다시 잡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밝은 식사가 이어졌다.

***

‘…왜 혼자 울고 또 멀쩡한 척을 하는 거야? 일부러?’

피아는 조금 전에 보았던 리안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볼에 남은 눈물 자국과 눈가에 고여있는 눈물, 붉게 짓무른 눈가. 울음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런 꼴을 한 주제에 피아를 보자마자 웃으며 다가오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피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연기..연기겠지. 불쌍한 모습으로 동정받으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놓인 고정관념이 부서진다. 어쩌면? 사실은? 이란 말이 둥둥 떠오른다. 하지만 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리안은 나쁜 놈이고 연기를 하고 있다. 우리를 속이고 있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만큼 쉬운 게 없었다.

피아는 작게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후우… 멍청하게 행동하고 생각하면 안 돼. 동생을 지키려면 더,더,더…의심하고 의심해야 해.’

동생을 제외하곤 별 관심이 없던 피아가 주변을 신경 쓰기 시작한 건 전부 평화에 젖어 들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주변에 시선을 둘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잔혹한 세계에서 안이한 마음은 곧 죽음과 같았다.

피아는 몇 번이고 부드럽게 풀리려는 마음을 굳게 닫고, 경계심을 올리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피아는 아직 어렸다. 아무리 경계심을 올린다고 해도 동화에서나 볼법한 평화로운 분위기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릴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살의를 가지는 일이 없어졌다.

그냥 이대로만, 오늘 같은 날만 이어진다면 피아는 점차 안정을 찾아갈 것이다. 난폭한 생각을 끄집어내지도, 트라우마에 잠식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그녀의 정신을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흐으…으흐흑…”

피아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억눌린 울음소리를 흘렸다.

{ 피아, 반드시 동생을 지켜야 해. }

{ 언니인 네가, 동생을 반드시 지켜줘야 해! }

강압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려 퍼졌다. 피아는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트라우마에서 도망치고자 한 행동이었지만, 피아를 더욱 나락으로 끌어당겼다.

귀와 눈을 감자 ‘그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 언니… 언니..나 추워.. }

초점이 흐려져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눈동자, 제 품 안에서 축 늘어져 온기가 사라지기 시작한 몸.

{ 언,니… }

동생의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피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동생을 품에 안았다. 차가운 몸에 비해 뜨거운 피가 끈적하게 손에 달라붙었다.

머릿속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만 같았다. 머리가 어지럽다. 속이 울렁거렸다. 눈가가 뜨겁게 달아오르다 못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 언니..나,두고 가지 마. 언니… }

동생이 피아의 팔을 꽉 붙잡아 당겼다.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에 온기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마주친 눈동자를 통해 전해지는 건 ‘원망’과 ‘증오’, ‘혐오’.

{ 지,켜준다고 했잖아. 지켜준다고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벼락같은 소리가 머릿속에 쾅쾅 울려 퍼졌다.

“미안해..미안해,미안해.”

{ 왜 그랬어? 왜 날 두고 갔어? 왜 지켜주지 않았어? 언니가 지켜준다고 했잖아! 나 추워, 언니 나 너무 추워. 살려줘 언니 제발 살려줘. 살려줘! 살려달라고! }
살려줘 언니 제발 살려줘. 살려줘! 살려달라고!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동생이 피아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당겼다. 아파,아파,아파.

{ 언 -.. }

“언니!”

“허억..!”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피아가 정신을 차렸다.

“시..식..식당! 식당으로 오래요!”

아이는 식당이란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듯 말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으응,고마워.”

아이가 방을 떠나고 혼자남은 피아는 얼굴을 더듬었다. 눈물로 흥건했다. 몸이 덜덜 떨리고 숨이 막혔다.

“하아,하…”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이불에 눈물을 닦아내고 침대를 빠져나왔다.

‘식사를 거르면 릴리가 걱정..할거야.’

다행히 눈물보다 땀을 많이 흘린 듯 창문을 통해 확인한 얼굴은 말끔했다. 피아는 비틀거리며 식당 쪽으로 향했다.

{ 언니,언니 왜 내 말 무시해? }

움찔.

분명 침대를 벗어났음에도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날 버렸어? 왜 나를 죽게 내버려 뒀어? }

피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입술이 퍼석하게 마르고 숨이 턱턱 막혔다.

{ 나는 이렇게 죽었는데, 어떻게 언니는 계속 살아? 내가 아니라 언니가 죽었어야 했잖아! }
내가 아니라 언니가 죽었어야 했잖아!

피아는 식당 앞에 멈춰서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동생 대신 살아난 내가 감히 편하게 식사를 하고 숨을 쉬는 게 맞을까?

나 따위가 살아있어도 괜찮은 걸까?
나 따위가 살아있어도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뒤덮는 순간.

“피아 거기서 뭐 해?”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환청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마치 마법처럼.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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