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아아악! 이, 이 미친 애새끼가!!”
벌떡 일어난 빌런이 길길이 날뛰며 제 이마에서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돌조각을 털어냈다.
전차가 밀고 들어와도 금 하나 가지 않을 석화 피부가…!
겨우, 그 한 발의 총격으로 박살 나 버렸다고?
심지어 돌조각 사이사이에 붉은 핏자국이 선명한 걸 보아 운이 나빴더라면 그 한 발로 즉사했을지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꼬마의 능력은 알 수 없어도 몸으로 맞으며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
더 이상 우습게 볼 수 없었다.
딱 봐도 귀하게 자랐음이 분명한 꼬맹이기에 보란 듯 길게 데리고 놀아주려 했는데.
…안 돼.
이건 위험하다.
덩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무리 소리치고 날뛰어봤자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빤한 시선을 유지하는 소녀.
그 짐승 같은 샛노란 시선에 소름 끼칠 지경이다.
“역시 악마. 질기네요.”
소녀의 중얼거림에 더 생각할 새는 없었다.
빌런은 곧바로 이마의 석화 갑옷을 덧씌우며 쾅! 자리를 박차고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쿵, 쿵, 쿵 쿵!
석화되어 묵직한 몸뚱이에 요란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린다.
마치 코뿔소가 달려드는 것만 같은 모습.
– 와 씨, C급 각성자가 왜 저렇게 세냐?
– 원래 저런 게임임
– ㅇㅇ 튜토리얼 레이드라 난이도 스케일링 된 것도 있고
“이것도 어디 한번 받아봐라!”
실제로 석화된 그의 힘은 코뿔소 이상이었다.
어지간한 각성자들조차 꽁지를 말고 도망갈 돌격이었고.
빌런은 당연하게도 상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소녀의 두 다리를 석화하려 했다.
그런데.
분명 두 다리가 돌이 되어 굳어있어야 하는데….
“뭐야 어디 갔어?”
한순간. 분명 눈앞에 있던 소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후두둑- 빌런의 머리 위로 묵직한 뭔가가 떨어져 내린다.
녹색? 솔방울…?
아, 이런 씨발.
콰과과광!!
수류탄이었다.
“얍! 신벌의 맛이 어때요?”
악마가 아무리 튼튼해봤자.
한 대로 안 죽으면 두 대 때리고.
두 대로 안 죽으면 네 대 때리면 되는 게 아닌가?
그렇게 배워왔고, 실행해 왔으니, 소녀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소원 능력으로 빌런의 머리 위에서 창조해 낸 것이니 신님께서 악마를 처벌하기 위함이라.
소녀가 말하길 이것은 수류탄이 아니라 신벌이다.
콰광! 쾅! 콰과광!
은행 떨어지듯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리는 수류탄이 사방을 엉망으로 뒤집었다.
누가 보면 폭격이라도 쏟아낸 줄 알 법한 상황.
“내가, 굳이 따라 올 필요가 있었나…?”
모두가 힘을 합쳐 싸워야 할 빌런을 혼자서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소녀를 따라온 사내는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이 넋을 놓고 싸움 구경 모드로 돌입했다.
“씨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미친년아!”
수류탄에 얻어맞아 죽을 뻔한 빌런으로서는 복장이 뒤집히는 정신 나간 헛소리였다.
지금 이게 현실이 아니라 무협이었더라면 주화입마에 빠져 죽었을지도 모를 도발.
정작 소녀는 땅 아래 어디선가 들려온 대답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 살아 있으면 안 되는데? 어떻게 살아 있어요?”
콘크리트 바닥이 완전히 사라지고 흙바닥이 드러날 정도인데 살아 있다니!
이번 악마는 생각보다 더 바퀴벌레처럼 질긴 녀석이구나!
선각자님께서 이르시길.
그럴 땐 더 많은 화력을 쏟아부으면 된다!
소녀의 두 눈이 번득였다.
그러나, 자존심도 내려놓고 땅을 파고 숨어든 빌런은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없었다.
“넌, 내가 다시 돌아와서 어떻게든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그렇다면 역시 이게 제일 쓰기 편하겠지?
고심하던 소녀가 결국 익숙한 그것을 꺼내 들었다.
양조야 강사와 길드장은 이미 한 번 본 적 있는 크고 웅장한 새까만 자태.
– …아니 미친 진짜 별걸 다 소환하네?
– 뭐 웨폰마스터 같은 건가?
– 아공간 아이템일 듯
– 뭐가 됐든 낭만은 오지네 ㅋㅋㅋㅋㅋ
– 그런데 이걸 10살짜리 애가 저러고 있는 게 좀… 뭔가 뭔가임…
소녀가 달칵 발사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푸슛-! 하늘로 솟아오른 재블린이 곧바로 빌런을 추적해 땅속에 숨어든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콰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들썩이는 땅.
박살 난 콘크리트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구덩이에서 솟아오른 후폭풍이 마치 버섯구름처럼 기나긴 궤적을 남겼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먼지에 소녀가 엣츄- 코를 훌쩍였다.
스윽 손끝으로 코를 닦으며 힐끔, 고개를 내밀어 깜깜한 땅굴 속을 바라봤다.
“죽었나?”
– 이런 플래그를!!
시청자들과 플레이어들이 기겁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진짜 죽었나 보다.
“헤헤… 이겼다!”
그제야 소녀는 방긋- 평소 같은 헤실헤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슬그머니 앙증맞은 주먹을 꽉 쥐어 보이는 게 어지간히도 신난 모양이었다.
– ㅋㅋㅋㅋㅋ아니 샷건에도 뒤질뻔했는데, 재블린 미사일을 대가리로 맞고 살아 있을 리 없지
– 진짜 딸깍 한 번으로 이겼네 ㄷ
– 아까까지는 C급 빌런이 왜 이렇게 쎈가 했더니 진짜 인자강인 건 방장이었고……
누가 봐도 오해할 여지 없는 확실한 소녀의 승리에 채팅창이 요란스레 밀려 올라갔다.
방송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채팅을 읽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의 엄청난 속도였다.
그중에는 기껏 해 봤자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체구의 소녀가 빌런을 압승했다는 놀라움, 그리고 그 능력을 추측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와, 어디 길드에서 키운 영재인가?”
“일단 우리가 다 덤벼도 못 이기겠는데요…?”
길드장은 그제야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안심했다.
‘적어도 우리 길드 내에서 아이의 능력을 악용하려 하거나, 아이를 나쁘게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군.’
이러면 굳이 소녀의 정체를 숨기고자 할 필요는 없으리라.
[튜토리얼 클리어!]
그러나 소녀는 클리어 문구가 떠올랐음에도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가상현실 세계이니 저 글자가 해주듯 악마 들린 각성자가 무력화되긴 했겠지만….
만약에라도 놈이 살아있다면?
그렇게 다시 죄를 저지를 기회를 얻는다면?
교만한 것만큼이나 안일함은 죄악이다.
적어도 확실히 죽었다는 걸 확인해야 해.
훗- 소녀가 기세등등한 미소를 지은 채 빌런이 파고 들어갔던 땅굴을 향해 다가갔다.
문제는 그런 의욕과 달리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무기 소환은 물론, 순간이동에 가속과 치료까지.
짧은 순간에 온갖 소원을 빈 탓에 손톱과 발톱이 텅 비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고.
심지어 혈액과 지방의 일부마저 대가로 사용해 겉모습마저 눈에 띄게 초췌했다.
이마저도 미아의 몸이라고 아껴가면서, 나름 장기 같은 중요한 부위는 바치지 않은 수준이었으니.
[하아…….]
속에서 그 꼴을 지켜보는 미아로써는 속이 답답한 걸 넘어서 정말 온갖 쌍욕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제발 제 인생을 살아달라고, 내 몸을 아껴달라고 하면 뭣하나.
결국 세뇌에 미쳐서 악마 얘기만 나오면 눈 까뒤집고 나 죽고 너 죽자며 덤벼드니.
그나마 미아가 나서지 않는 건, 처음 목각인형을 상대하던 때처럼 지금 이게 가상현실이라는 걸 알게 된 덕이었다.
이래 놓고 또 현실로 돌아가서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내, 내가 미아의 몸을 이렇게 만들었다고…?’라면서 엉엉 울 게 뻔하다.
그래서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 어… 혹시 접속 종료하는 법을 모르나?
– 능력까지 구현된 시뮬레이션이라 피곤할 텐데
– 아가는 아가야 지켜줘야 해.
소녀의 뜬금없는 행동에 시청자들의 의문 어린 반응이 돌아왔다.
그만큼이나 미아 역시 세뇌당한 소녀가 어디까지 할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궁금했다.
어디까지나 미아가 알고 있는 건 세뇌되지 않은 상태와 세뇌가 채 끝나기 전의 소녀였으니.
“…잠깐. 혹시 모르니 아이를 개인 세션으로 옮겨두지.”
이 상황을 걱정하는 건 길드장 뿐이었다.
언제고 소녀에게 말 한 번 붙여보고자 눈치를 살피던 플레이어들이 스르륵 귀신처럼 투명해지며 사라졌다.
‘더 히어로’의 스토리 모드를 활성화해서 개인 세션으로 넘어온 탓이었다.
그렇게 소녀는 누구의 방해조차 없이 제 할 일에 집중했다.
터벅, 터벅.
뻥 뚫린 구덩이로 다가간 소녀가 망설임 없이 뛰어내린다.
번쩍! 소원으로 불을 밝히자, 위에서 볼 때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던 땅굴 내부의 모습이 선명히 비친다.
“…꺼어어억.”
석화 능력으로 막아내려 했던 건지, 땅굴 바닥과 천장이 쩌적쩌적 갈라진 채 파스스 돌가루를 흘렸고.
그 가운데 머리가 박살 난 빌런이 꺽꺽대며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두 눈알은 툭 튀어나오고, 코와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핏물이 쏟아져 내리고.
– …미친 이게 전체이용가?
적나라한 광경이 시청자들이 기함하며 화면을 가렸다.
그러나 정작.
“헤, 역시 안 죽었을 줄 알았어요.”
소녀는 그런 빌런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여태까지 보였던 수줍던 미소와 달리, 악귀처럼 소름끼치는 미소.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기꺼워함이 가득한 반응에 일순간 시간이 멈춘 듯 채팅창에 싸늘한 침묵이 내리 앉았다.
“이래서 악마는 시체조차 남기지 않는 게 규칙이거든요. 지옥에서 받을 벌을 미리 체험해 보는 셈 치세요.”
소녀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뭔지 모를 투명한 액체가 졸졸 차올라 땅굴을 메웠고.
치이이이익-!!!
“끄아아아아아악!!”
빌런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새하얀 연기와 함께 팍! 하고 터져 나는 핏물.
삐빅!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렇게 소녀의 첫 방송이자 가상현실 체험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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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악! 이, 이 미친 애새끼가!!”
벌떡 일어난 빌런이 길길이 날뛰며 제 이마에서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돌조각을 털어냈다.
전차가 밀고 들어와도 금 하나 가지 않을 석화 피부가…!
겨우, 그 한 발의 총격으로 박살 나 버렸다고?
심지어 돌조각 사이사이에 붉은 핏자국이 선명한 걸 보아 운이 나빴더라면 그 한 발로 즉사했을지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꼬마의 능력은 알 수 없어도 몸으로 맞으며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
더 이상 우습게 볼 수 없었다.
딱 봐도 귀하게 자랐음이 분명한 꼬맹이기에 보란 듯 길게 데리고 놀아주려 했는데.
…안 돼.
이건 위험하다.
덩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무리 소리치고 날뛰어봤자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빤한 시선을 유지하는 소녀.
그 짐승 같은 샛노란 시선에 소름 끼칠 지경이다.
“역시 악마. 질기네요.”
소녀의 중얼거림에 더 생각할 새는 없었다.
빌런은 곧바로 이마의 석화 갑옷을 덧씌우며 쾅! 자리를 박차고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쿵, 쿵, 쿵 쿵!
석화되어 묵직한 몸뚱이에 요란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린다.
마치 코뿔소가 달려드는 것만 같은 모습.
– 와 씨, C급 각성자가 왜 저렇게 세냐?
– 원래 저런 게임임
– ㅇㅇ 튜토리얼 레이드라 난이도 스케일링 된 것도 있고
“이것도 어디 한번 받아봐라!”
실제로 석화된 그의 힘은 코뿔소 이상이었다.
어지간한 각성자들조차 꽁지를 말고 도망갈 돌격이었고.
빌런은 당연하게도 상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소녀의 두 다리를 석화하려 했다.
그런데.
분명 두 다리가 돌이 되어 굳어있어야 하는데….
“뭐야 어디 갔어?”
한순간. 분명 눈앞에 있던 소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후두둑- 빌런의 머리 위로 묵직한 뭔가가 떨어져 내린다.
녹색? 솔방울…?
아, 이런 씨발.
콰과과광!!
수류탄이었다.
“얍! 신벌의 맛이 어때요?”
악마가 아무리 튼튼해봤자.
한 대로 안 죽으면 두 대 때리고.
두 대로 안 죽으면 네 대 때리면 되는 게 아닌가?
그렇게 배워왔고, 실행해 왔으니, 소녀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소원 능력으로 빌런의 머리 위에서 창조해 낸 것이니 신님께서 악마를 처벌하기 위함이라.
소녀가 말하길 이것은 수류탄이 아니라 신벌이다.
콰광! 쾅! 콰과광!
은행 떨어지듯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리는 수류탄이 사방을 엉망으로 뒤집었다.
누가 보면 폭격이라도 쏟아낸 줄 알 법한 상황.
“내가, 굳이 따라 올 필요가 있었나…?”
모두가 힘을 합쳐 싸워야 할 빌런을 혼자서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소녀를 따라온 사내는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이 넋을 놓고 싸움 구경 모드로 돌입했다.
“씨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미친년아!”
수류탄에 얻어맞아 죽을 뻔한 빌런으로서는 복장이 뒤집히는 정신 나간 헛소리였다.
지금 이게 현실이 아니라 무협이었더라면 주화입마에 빠져 죽었을지도 모를 도발.
정작 소녀는 땅 아래 어디선가 들려온 대답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 살아 있으면 안 되는데? 어떻게 살아 있어요?”
콘크리트 바닥이 완전히 사라지고 흙바닥이 드러날 정도인데 살아 있다니!
이번 악마는 생각보다 더 바퀴벌레처럼 질긴 녀석이구나!
선각자님께서 이르시길.
그럴 땐 더 많은 화력을 쏟아부으면 된다!
소녀의 두 눈이 번득였다.
그러나, 자존심도 내려놓고 땅을 파고 숨어든 빌런은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없었다.
“넌, 내가 다시 돌아와서 어떻게든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그렇다면 역시 이게 제일 쓰기 편하겠지?
고심하던 소녀가 결국 익숙한 그것을 꺼내 들었다.
양조야 강사와 길드장은 이미 한 번 본 적 있는 크고 웅장한 새까만 자태.
– …아니 미친 진짜 별걸 다 소환하네?
– 뭐 웨폰마스터 같은 건가?
– 아공간 아이템일 듯
– 뭐가 됐든 낭만은 오지네 ㅋㅋㅋㅋㅋ
– 그런데 이걸 10살짜리 애가 저러고 있는 게 좀… 뭔가 뭔가임…
소녀가 달칵 발사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푸슛-! 하늘로 솟아오른 재블린이 곧바로 빌런을 추적해 땅속에 숨어든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콰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들썩이는 땅.
박살 난 콘크리트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구덩이에서 솟아오른 후폭풍이 마치 버섯구름처럼 기나긴 궤적을 남겼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먼지에 소녀가 엣츄- 코를 훌쩍였다.
스윽 손끝으로 코를 닦으며 힐끔, 고개를 내밀어 깜깜한 땅굴 속을 바라봤다.
“죽었나?”
– 이런 플래그를!!
시청자들과 플레이어들이 기겁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진짜 죽었나 보다.
“헤헤… 이겼다!”
그제야 소녀는 방긋- 평소 같은 헤실헤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슬그머니 앙증맞은 주먹을 꽉 쥐어 보이는 게 어지간히도 신난 모양이었다.
– ㅋㅋㅋㅋㅋ아니 샷건에도 뒤질뻔했는데, 재블린 미사일을 대가리로 맞고 살아 있을 리 없지
– 진짜 딸깍 한 번으로 이겼네 ㄷ
– 아까까지는 C급 빌런이 왜 이렇게 쎈가 했더니 진짜 인자강인 건 방장이었고……
누가 봐도 오해할 여지 없는 확실한 소녀의 승리에 채팅창이 요란스레 밀려 올라갔다.
방송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채팅을 읽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의 엄청난 속도였다.
그중에는 기껏 해 봤자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체구의 소녀가 빌런을 압승했다는 놀라움, 그리고 그 능력을 추측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와, 어디 길드에서 키운 영재인가?”
“일단 우리가 다 덤벼도 못 이기겠는데요…?”
길드장은 그제야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안심했다.
‘적어도 우리 길드 내에서 아이의 능력을 악용하려 하거나, 아이를 나쁘게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군.’
이러면 굳이 소녀의 정체를 숨기고자 할 필요는 없으리라.
[튜토리얼 클리어!]
그러나 소녀는 클리어 문구가 떠올랐음에도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가상현실 세계이니 저 글자가 해주듯 악마 들린 각성자가 무력화되긴 했겠지만….
만약에라도 놈이 살아있다면?
그렇게 다시 죄를 저지를 기회를 얻는다면?
교만한 것만큼이나 안일함은 죄악이다.
적어도 확실히 죽었다는 걸 확인해야 해.
훗- 소녀가 기세등등한 미소를 지은 채 빌런이 파고 들어갔던 땅굴을 향해 다가갔다.
문제는 그런 의욕과 달리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무기 소환은 물론, 순간이동에 가속과 치료까지.
짧은 순간에 온갖 소원을 빈 탓에 손톱과 발톱이 텅 비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고.
심지어 혈액과 지방의 일부마저 대가로 사용해 겉모습마저 눈에 띄게 초췌했다.
이마저도 미아의 몸이라고 아껴가면서, 나름 장기 같은 중요한 부위는 바치지 않은 수준이었으니.
[하아…….]
속에서 그 꼴을 지켜보는 미아로써는 속이 답답한 걸 넘어서 정말 온갖 쌍욕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제발 제 인생을 살아달라고, 내 몸을 아껴달라고 하면 뭣하나.
결국 세뇌에 미쳐서 악마 얘기만 나오면 눈 까뒤집고 나 죽고 너 죽자며 덤벼드니.
그나마 미아가 나서지 않는 건, 처음 목각인형을 상대하던 때처럼 지금 이게 가상현실이라는 걸 알게 된 덕이었다.
이래 놓고 또 현실로 돌아가서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내, 내가 미아의 몸을 이렇게 만들었다고…?’라면서 엉엉 울 게 뻔하다.
그래서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 어… 혹시 접속 종료하는 법을 모르나?
– 능력까지 구현된 시뮬레이션이라 피곤할 텐데
– 아가는 아가야 지켜줘야 해.
소녀의 뜬금없는 행동에 시청자들의 의문 어린 반응이 돌아왔다.
그만큼이나 미아 역시 세뇌당한 소녀가 어디까지 할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궁금했다.
어디까지나 미아가 알고 있는 건 세뇌되지 않은 상태와 세뇌가 채 끝나기 전의 소녀였으니.
“…잠깐. 혹시 모르니 아이를 개인 세션으로 옮겨두지.”
이 상황을 걱정하는 건 길드장 뿐이었다.
언제고 소녀에게 말 한 번 붙여보고자 눈치를 살피던 플레이어들이 스르륵 귀신처럼 투명해지며 사라졌다.
‘더 히어로’의 스토리 모드를 활성화해서 개인 세션으로 넘어온 탓이었다.
그렇게 소녀는 누구의 방해조차 없이 제 할 일에 집중했다.
터벅, 터벅.
뻥 뚫린 구덩이로 다가간 소녀가 망설임 없이 뛰어내린다.
번쩍! 소원으로 불을 밝히자, 위에서 볼 때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던 땅굴 내부의 모습이 선명히 비친다.
“…꺼어어억.”
석화 능력으로 막아내려 했던 건지, 땅굴 바닥과 천장이 쩌적쩌적 갈라진 채 파스스 돌가루를 흘렸고.
그 가운데 머리가 박살 난 빌런이 꺽꺽대며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두 눈알은 툭 튀어나오고, 코와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핏물이 쏟아져 내리고.
– …미친 이게 전체이용가?
적나라한 광경이 시청자들이 기함하며 화면을 가렸다.
그러나 정작.
“헤, 역시 안 죽었을 줄 알았어요.”
소녀는 그런 빌런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여태까지 보였던 수줍던 미소와 달리, 악귀처럼 소름끼치는 미소.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기꺼워함이 가득한 반응에 일순간 시간이 멈춘 듯 채팅창에 싸늘한 침묵이 내리 앉았다.
“이래서 악마는 시체조차 남기지 않는 게 규칙이거든요. 지옥에서 받을 벌을 미리 체험해 보는 셈 치세요.”
소녀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뭔지 모를 투명한 액체가 졸졸 차올라 땅굴을 메웠고.
치이이이익-!!!
“끄아아아아아악!!”
빌런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새하얀 연기와 함께 팍! 하고 터져 나는 핏물.
삐빅!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렇게 소녀의 첫 방송이자 가상현실 체험이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