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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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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망 있는 기업의 연구실에서는 항상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그건 마치 곡소리로 들리기도, 종소리도 들리기도, 때로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로도 들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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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랍게도 이 소리에 대해서 조사하러 떠난 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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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와 시대를 불문하고 나타나는 이 소리는 모두 한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비는 공돌이들의 한이 담긴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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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밀레- 공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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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 과학자 씨. 괜찮으세요……?”

    “……차라리 죽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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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실을 찾아온 아일레가 퍽 걱정스럽다는 듯 내게 물었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에서 구지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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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아일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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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괘, 괜찮아요! 죄를 많이 지으셨지만 금방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저, 저도 소년원 갈 뻔 했으니까 알아요……!”

    “……아일레 네가 소년원 갈 뻔한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네? 과학자 씨는 대학원생이라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가는 곳이 대학원 아닌,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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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졸빡통음침아싸 아일레에게 당한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좌절을 느끼며 침몰했다. 딱히 반박할 수 없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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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레야. 사람 긁는 솜씨가 제법이구나. 이걸로 먹고 살아도 되겠어.”

    “에, 에헤헤-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그래그래…… 우리 아일레는 평생 그렇게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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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아일레와 농땡이를 부리기를 10분. 연구실 안쪽에 설치된 사이렌이 마구 울리며 경보음을 내기 시작했다. 아일레가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냐며 화들짝 놀라는 가운데, 나는 다시금 연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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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어-? 과학자 씨…? 무슨 큰일 생긴 거 아닌, 가요?”

    “이건 쉬는 시간이 끝났다는 알람이란다…….”

    “……네, 네? 쉬는 시간이라니- 그게 무슨.”

    “벌이니까. 자유롭게 움직이지는 못 하게 하겠다는 거지.”

    “그, 그런…! 저 때문에 이런…!”

    “그럼 아일레도 옆에서 같이 공부나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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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말을 들은 아일레는 잠시 멈칫하더니, 손가락을 지분거리며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

    “아, 음, 그…… 버, 벌은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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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한 마디를 남긴 아일레는 그대로 연구실을 빠져 나갔다. 아무리 먹고 살 걱정은 없다지만 저래도 괜찮은 걸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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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간부요 마법소녀 아닌가. 학생 기준으로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무한의 지갑과 그 누구도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을 갖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고등학교로 복귀해 내면적 우월감을 즐기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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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랍게도 아일레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 돈도 있고 자아실현도 충분히 하고 있으니 굳이 학교를 다닐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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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는 다니는 편이 더 좋을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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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능력자라는 딱지가 문제라면 얼마든지 해결해줄 수 있었다. 초능력으로 오해할 법한 기계를 만들어준다거나, 레갈리아에게 부탁해 서류를 위조하거나 하는 식으로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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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본인이 고등학교에 미련이 없다면 대학교라도 가길 바랐다. 중졸빡통음침아싸로 끝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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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레 너도 대학원에서 한 번 고생 좀 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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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생각을 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지인을 대학원으로 보낼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마음이 없는 괴물이나 저지를 법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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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연구가 너무 지루하고 짜증나서 이런 악독한 감정에 물든 모양이었다.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눈앞에 있는 연구 장비와 서류들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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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렇게 안 되냐…… 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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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가 내게 명령한 건 아일레의 바이크. 위치크래프트에 들어간 반중력장치요 비행 장치를 ‘이곳 기술로’ ‘양산’ 하라는 것이었다.

    ​

    전자는 어렵지 않았다. 당장 내가 수제작으로 둘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이곳의 기술 인프라가 무작정 부족하지만은 않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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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양산으로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나만 아는 지식으로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물건을 만들어달라는 뜻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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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냥 지식이고 뭐고 다 풀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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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그런 욕망이 생겼을 정도로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개 저어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낸 나는 다시금 이곳 기술로 양산할 방법에 대해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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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정말이지 지루하고 고되고 보람 없는…….

    그러니까 벌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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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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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뒤.

    레갈리아는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연구를 끝냈으니 휴가를 가겠다는 과학자의 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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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으음…… 벌써 완성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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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라도 너무 빠르다. 이쯤 되면 자신이 과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그냥 대충 비스무리 한 걸 만들어놓고 어물쩍 넘어가려고 한 게 아닌가 의심될 수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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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레갈리아는 과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지만 다행히 그녀 아래에 있는 이들마저 그렇지는 않았다. 이블스 기업은 E 시 전체를 아우르는 초공룡기업이요 그 휘하의 연구소에는 이름난 대학에서 수행한 뛰어난 석박사들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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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갈리아는 에이트에게서 받은 연구 자료를 그 연구원들에게 넘겼다. 어디 한 번 분석해보라는 의미에서. 그러자 연구원들은 역으로 레갈리아를 찾아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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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 회장님! 이건 대체 어디서…….”

    “음- 왜 그러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엉터리인가?”

    “엉터리라니, 그럴 리가…! 정반대입니다. 회장님! 이건 발표한 순간 온갖 상을 쓸어담을 수 있는 지식입니다!”

    ​

    연구원들이 말하길, 이건 ABC 상. 그러니까 에이트 기준으로 노벨상을 모조리 쓸어담을 수 있는 연구라고 하였다. 물리학상은 물론이요 화학상까지 받아낼 수 있는 물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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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든 건지. 최소 현대 기술을 30년은 앞선 기술이라고 하였다.

    ​

    “……30년이라.”

    “예…! 최소 30년은 앞선 기술입니다. 물론 이걸 기반으로 실물을 만들어서 판매하면, 그걸 역설계해서 10년이나 20년 뒤에는 다른 기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지금 이만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10년 뒤에는 대체 어떤 물건을 만들어낼지. 상상만 해도 두렵군요.”

    “쉽게 말해서. 지금 당장 상용화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는 건가?”

    ​

    과학도가 아닌 레갈리아는 연구원이 말하는 ABC 상이요 30년 앞선 기술이요 그런 건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기업가인 그녀가 신경 써야 하는 건 오직 한 가지. 이윤뿐이었다.

    ​

    당장 팔아재낄 수 있는가. 그리고 다음에 더 비싼 값에 팔아먹기 위해 발전할 여지가 있는가.

    ​

    이 기술은 그런 관점에서 무척이나 적합한 기술이었다. 발전 가능성은 물론이요 당장 상용화까지 가능한 물건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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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놀랍게도 이 기술은 저희 공장에 있는 제작 설비를 이용해 만드는 걸 가정하고 설계되었더군요. 회장님. 대체 무얼 숨기고 계신 겁니까? 정말로 외계인이라도 데리고 계신 겁니까?”

    “외계인은 아닐세. 우리랑 똑같은 인간이지.”

    “정말로 데리고 계셨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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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소장은 충격받았다는 듯 회장을 바라보다가, 한시라도 빨리 이 기술을 현실에 구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채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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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연구원들이 돌아간 이후, 회장은 꽤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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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이렇게나 잘 해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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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농땡이라도 부리는 줄 알았더니 성실하게 벌에 임한 듯 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제 말쯤은 얼마든지 무시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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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의 만족스러운 행태에 미소 지은 레갈리아는 그를 위해 내려줄 포상을 생각하며 업무로 돌아갔다. 연구 자료는 이미 넘겼으니, 얼마 안 있으면 다른 이들이 알아서 결과물을 만들어 가져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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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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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블스 기업에서 새로이 발표한 ‘하늘 나는 자동차’ 벌써부터 예약으로 가득 차……]

    [E 시의 자랑! 이블스 기업. 사실상 ABC 상 수상이 확실시 되어─]

    [세간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과 이블스 기업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는 반응으로 나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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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뉴스에선 이블스 기업에 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쏟아내고 있었다. 뉴스에서 할 말이 그렇게나 없는가 싶다가도,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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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능 좀 낮춰서 줬는데…… 안 들킨 모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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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레의 바이크에 들어간 수준의 반중력장치를 양산화 하는 건 제아무리 나라고 할 지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몇 달 정도 더 갈갈 갈리다보면 어찌어찌 될 거 같기는 했지만…… 내가 거기까지 버티질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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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모른 척 다운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았다. 이곳 기술로도 얼마든지 양산할 수 있는 수준의 반중력 장치를. 걸리지 않을까 불안불안했지만 다행히 보스는 내가 다운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았단 사실을 눈치채지 못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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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켰으면 이번엔 또 얼마나 잔소리를 해댔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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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공식적으로 보스가 내린 벌을 마무리한 나는 재빠르게 연구실을 벗어났다. 연구실 특유의 냄새는 이제 더 맡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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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연구실을 나와 악의 조직 본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으니,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아일레가 후다닥 달려왔다.

    ​

    “과, 과학자 씨!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숙제가 다 끝났으니까.”

    “그, 그럼! 저랑 같이 밥이라도 드시러 가실래요? 요 앞에 새로운 가게가 생겨서─.”

    ​

    드물게 아일레가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해왔기에, 얼마든지 좋다는 듯 그녀를 따라 본부를 나섰다. 비라, 아일레 셋이서 함께 이블스 기업 앞에 새로 생겼다는 가게로 향했다.

    ​

    과연 새로 생긴 가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겉보기와는 다르게 맛집이라는 걸까. 밥을 먹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은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

    “─어서오십시오!”

    ​

    가게 주인의 힘찬 인사를 받으며 가게 안쪽으로 들어간 우리는 이 가게의 시그니쳐 메뉴로 보이는 음식을 3개 주문한 뒤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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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기다리기를 한참, 아일레가 화들짝 놀라며 옆구리를 쿡쿡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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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 과학자 씨…!”

    “왜?”

    “저, 저기- 저기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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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레의 말을 들으며 고개 돌린 곳에는 웃으면서 손님을 받고 있는 가게 주인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가 문제냐는 듯 아일레를 돌아보았다.

    ​

    아일레는 퍽 답답하다는 듯 손을 떨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

    “저, 저 사람…… 모스피드에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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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나는 가게 주인을 다시금 돌아보았다. 짙은 썬팅이 새겨진 차량을 타고 다니기에, 모스피드의 얼굴은 그 누구도 알지 못 했다. 하물며 모스피드는 시속 삼백 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움직이는 빌런 아닌가? 썬팅이 아니더라도 얼굴을 알아보기가 퍽 힘들만 했다.

    ​

    그러나 그게 마법소녀요 모스피드와 비슷한 속도로 주행했을 아일레의 시야를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일레가 저 사람이 모스피드라고 한다면 정말로 저 사람이 모스피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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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로 빌런 짓은 그만뒀다더니…….”

    ​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며 폭주를 즐기던 속도광이 이런 슬로우 푸드를 만드는 가게를 차려서 운영하고 있을 줄이야.

    ​

    세상 일 아무도 모른다고 하더니, 그게 정말이었다.

    ​

    멍하니 한참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얼마 가지 않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빛깔이 좋았다. 겉모습이 좋다면 맛이 평범해도 절반은 가는 법. 나는 천천히 음식을 음미했다.

    ​

    ‘아……!’

    ​

    그리고 한 입 먹은 순간.

    입안에서 펑펑 터지는 조미료와 향신료의 폭풍을 느낀 나는 아까 전 했던 생각을 취소했다. 그는 빌런을 포기했을 뿐 속도광을 포기한 게 아니었다.

    ​

    보아라- 이 음식에서 느껴지는 맛의 질주를.

    혓바닥을 마구 희롱하는 조미료의 속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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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네.’

    ​

    맛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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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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