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망 있는 기업의 연구실에서는 항상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그건 마치 곡소리로 들리기도, 종소리도 들리기도, 때로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로도 들린다고.
놀랍게도 이 소리에 대해서 조사하러 떠난 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한다.
국가와 시대를 불문하고 나타나는 이 소리는 모두 한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비는 공돌이들의 한이 담긴 목소리.
공밀레- 공밀레-.
“과, 과학자 씨. 괜찮으세요……?”
“……차라리 죽여줘.”
연구실을 찾아온 아일레가 퍽 걱정스럽다는 듯 내게 물었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에서 구지가를 불렀다.
그러자 아일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내었다.
“괘, 괜찮아요! 죄를 많이 지으셨지만 금방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저, 저도 소년원 갈 뻔 했으니까 알아요……!”
“……아일레 네가 소년원 갈 뻔한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네? 과학자 씨는 대학원생이라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가는 곳이 대학원 아닌, 가요?”
중졸빡통음침아싸 아일레에게 당한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좌절을 느끼며 침몰했다. 딱히 반박할 수 없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일레야. 사람 긁는 솜씨가 제법이구나. 이걸로 먹고 살아도 되겠어.”
“에, 에헤헤-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그래그래…… 우리 아일레는 평생 그렇게 살아야한다…….”
그렇게 아일레와 농땡이를 부리기를 10분. 연구실 안쪽에 설치된 사이렌이 마구 울리며 경보음을 내기 시작했다. 아일레가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냐며 화들짝 놀라는 가운데, 나는 다시금 연구를 시작했다.
“어, 어어-? 과학자 씨…? 무슨 큰일 생긴 거 아닌, 가요?”
“이건 쉬는 시간이 끝났다는 알람이란다…….”
“……네, 네? 쉬는 시간이라니- 그게 무슨.”
“벌이니까. 자유롭게 움직이지는 못 하게 하겠다는 거지.”
“그, 그런…! 저 때문에 이런…!”
“그럼 아일레도 옆에서 같이 공부나 할래?”
내 말을 들은 아일레는 잠시 멈칫하더니, 손가락을 지분거리며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 음, 그…… 버, 벌은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한 마디를 남긴 아일레는 그대로 연구실을 빠져 나갔다. 아무리 먹고 살 걱정은 없다지만 저래도 괜찮은 걸까 싶었다.
악의 간부요 마법소녀 아닌가. 학생 기준으로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무한의 지갑과 그 누구도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을 갖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고등학교로 복귀해 내면적 우월감을 즐기리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아일레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 돈도 있고 자아실현도 충분히 하고 있으니 굳이 학교를 다닐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학교는 다니는 편이 더 좋을 텐데 말이야.’
무능력자라는 딱지가 문제라면 얼마든지 해결해줄 수 있었다. 초능력으로 오해할 법한 기계를 만들어준다거나, 레갈리아에게 부탁해 서류를 위조하거나 하는 식으로 얼마든지…….
뭐, 본인이 고등학교에 미련이 없다면 대학교라도 가길 바랐다. 중졸빡통음침아싸로 끝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아일레 너도 대학원에서 한 번 고생 좀 해봐야…….’
순간, 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생각을 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지인을 대학원으로 보낼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마음이 없는 괴물이나 저지를 법한 일이지.
아무래도 연구가 너무 지루하고 짜증나서 이런 악독한 감정에 물든 모양이었다.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눈앞에 있는 연구 장비와 서류들로 고개를 돌렸다.
‘왜 이렇게 안 되냐…… 좀 돼라.’
보스가 내게 명령한 건 아일레의 바이크. 위치크래프트에 들어간 반중력장치요 비행 장치를 ‘이곳 기술로’ ‘양산’ 하라는 것이었다.
전자는 어렵지 않았다. 당장 내가 수제작으로 둘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이곳의 기술 인프라가 무작정 부족하지만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양산으로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나만 아는 지식으로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물건을 만들어달라는 뜻이었으니.
‘아…… 그냥 지식이고 뭐고 다 풀어버릴까-.’
순간 그런 욕망이 생겼을 정도로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개 저어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낸 나는 다시금 이곳 기술로 양산할 방법에 대해 찾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이지 지루하고 고되고 보람 없는…….
그러니까 벌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 * *
일주일 뒤.
레갈리아는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연구를 끝냈으니 휴가를 가겠다는 과학자의 문자였다.
‘흐으음…… 벌써 완성했나?’
빨라도 너무 빠르다. 이쯤 되면 자신이 과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그냥 대충 비스무리 한 걸 만들어놓고 어물쩍 넘어가려고 한 게 아닌가 의심될 수준으로.
물론 레갈리아는 과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지만 다행히 그녀 아래에 있는 이들마저 그렇지는 않았다. 이블스 기업은 E 시 전체를 아우르는 초공룡기업이요 그 휘하의 연구소에는 이름난 대학에서 수행한 뛰어난 석박사들이 즐비했다.
레갈리아는 에이트에게서 받은 연구 자료를 그 연구원들에게 넘겼다. 어디 한 번 분석해보라는 의미에서. 그러자 연구원들은 역으로 레갈리아를 찾아와 물었다.
“회, 회장님! 이건 대체 어디서…….”
“음- 왜 그러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엉터리인가?”
“엉터리라니, 그럴 리가…! 정반대입니다. 회장님! 이건 발표한 순간 온갖 상을 쓸어담을 수 있는 지식입니다!”
연구원들이 말하길, 이건 ABC 상. 그러니까 에이트 기준으로 노벨상을 모조리 쓸어담을 수 있는 연구라고 하였다. 물리학상은 물론이요 화학상까지 받아낼 수 있는 물건이라고.
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든 건지. 최소 현대 기술을 30년은 앞선 기술이라고 하였다.
“……30년이라.”
“예…! 최소 30년은 앞선 기술입니다. 물론 이걸 기반으로 실물을 만들어서 판매하면, 그걸 역설계해서 10년이나 20년 뒤에는 다른 기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지금 이만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10년 뒤에는 대체 어떤 물건을 만들어낼지. 상상만 해도 두렵군요.”
“쉽게 말해서. 지금 당장 상용화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는 건가?”
과학도가 아닌 레갈리아는 연구원이 말하는 ABC 상이요 30년 앞선 기술이요 그런 건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기업가인 그녀가 신경 써야 하는 건 오직 한 가지. 이윤뿐이었다.
당장 팔아재낄 수 있는가. 그리고 다음에 더 비싼 값에 팔아먹기 위해 발전할 여지가 있는가.
이 기술은 그런 관점에서 무척이나 적합한 기술이었다. 발전 가능성은 물론이요 당장 상용화까지 가능한 물건이었으니.
“─예. 놀랍게도 이 기술은 저희 공장에 있는 제작 설비를 이용해 만드는 걸 가정하고 설계되었더군요. 회장님. 대체 무얼 숨기고 계신 겁니까? 정말로 외계인이라도 데리고 계신 겁니까?”
“외계인은 아닐세. 우리랑 똑같은 인간이지.”
“정말로 데리고 계셨을 줄이야……!”
연구소장은 충격받았다는 듯 회장을 바라보다가, 한시라도 빨리 이 기술을 현실에 구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채 되돌아갔다.
그리 연구원들이 돌아간 이후, 회장은 꽤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설마 이렇게나 잘 해줄 줄이야?’
어디서 농땡이라도 부리는 줄 알았더니 성실하게 벌에 임한 듯 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제 말쯤은 얼마든지 무시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과학자의 만족스러운 행태에 미소 지은 레갈리아는 그를 위해 내려줄 포상을 생각하며 업무로 돌아갔다. 연구 자료는 이미 넘겼으니, 얼마 안 있으면 다른 이들이 알아서 결과물을 만들어 가져올 것이었다.
* * *
[이블스 기업에서 새로이 발표한 ‘하늘 나는 자동차’ 벌써부터 예약으로 가득 차……]
[E 시의 자랑! 이블스 기업. 사실상 ABC 상 수상이 확실시 되어─]
[세간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과 이블스 기업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는 반응으로 나뉘어……]
연일 뉴스에선 이블스 기업에 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쏟아내고 있었다. 뉴스에서 할 말이 그렇게나 없는가 싶다가도,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성능 좀 낮춰서 줬는데…… 안 들킨 모양이네.’
아일레의 바이크에 들어간 수준의 반중력장치를 양산화 하는 건 제아무리 나라고 할 지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몇 달 정도 더 갈갈 갈리다보면 어찌어찌 될 거 같기는 했지만…… 내가 거기까지 버티질 못 했다.
그래서 모른 척 다운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았다. 이곳 기술로도 얼마든지 양산할 수 있는 수준의 반중력 장치를. 걸리지 않을까 불안불안했지만 다행히 보스는 내가 다운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았단 사실을 눈치채지 못 한 모양이었다.
‘들켰으면 이번엔 또 얼마나 잔소리를 해댔을지…….’
아무튼 공식적으로 보스가 내린 벌을 마무리한 나는 재빠르게 연구실을 벗어났다. 연구실 특유의 냄새는 이제 더 맡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 연구실을 나와 악의 조직 본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으니,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아일레가 후다닥 달려왔다.
“과, 과학자 씨!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숙제가 다 끝났으니까.”
“그, 그럼! 저랑 같이 밥이라도 드시러 가실래요? 요 앞에 새로운 가게가 생겨서─.”
드물게 아일레가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해왔기에, 얼마든지 좋다는 듯 그녀를 따라 본부를 나섰다. 비라, 아일레 셋이서 함께 이블스 기업 앞에 새로 생겼다는 가게로 향했다.
과연 새로 생긴 가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겉보기와는 다르게 맛집이라는 걸까. 밥을 먹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은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어서오십시오!”
가게 주인의 힘찬 인사를 받으며 가게 안쪽으로 들어간 우리는 이 가게의 시그니쳐 메뉴로 보이는 음식을 3개 주문한 뒤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 기다리기를 한참, 아일레가 화들짝 놀라며 옆구리를 쿡쿡 두들겼다.
“과, 과학자 씨…!”
“왜?”
“저, 저기- 저기 좀 보세요…!”
아일레의 말을 들으며 고개 돌린 곳에는 웃으면서 손님을 받고 있는 가게 주인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가 문제냐는 듯 아일레를 돌아보았다.
아일레는 퍽 답답하다는 듯 손을 떨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저, 저 사람…… 모스피드에요…!”
“……뭐?”
그 말에 나는 가게 주인을 다시금 돌아보았다. 짙은 썬팅이 새겨진 차량을 타고 다니기에, 모스피드의 얼굴은 그 누구도 알지 못 했다. 하물며 모스피드는 시속 삼백 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움직이는 빌런 아닌가? 썬팅이 아니더라도 얼굴을 알아보기가 퍽 힘들만 했다.
그러나 그게 마법소녀요 모스피드와 비슷한 속도로 주행했을 아일레의 시야를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일레가 저 사람이 모스피드라고 한다면 정말로 저 사람이 모스피드인 것이다.
“그 뒤로 빌런 짓은 그만뒀다더니…….”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며 폭주를 즐기던 속도광이 이런 슬로우 푸드를 만드는 가게를 차려서 운영하고 있을 줄이야.
세상 일 아무도 모른다고 하더니, 그게 정말이었다.
멍하니 한참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얼마 가지 않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빛깔이 좋았다. 겉모습이 좋다면 맛이 평범해도 절반은 가는 법. 나는 천천히 음식을 음미했다.
‘아……!’
그리고 한 입 먹은 순간.
입안에서 펑펑 터지는 조미료와 향신료의 폭풍을 느낀 나는 아까 전 했던 생각을 취소했다. 그는 빌런을 포기했을 뿐 속도광을 포기한 게 아니었다.
보아라- 이 음식에서 느껴지는 맛의 질주를.
혓바닥을 마구 희롱하는 조미료의 속도를.
‘……맛있네.’
맛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