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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26화. 대체 누구길래?
     
     
     
     
     
     
   * * *
     
   평안남도 덕천에서 하루를 보내고 평양까지 들어가는 길에 처음으로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원주민들은 아니었고, 전부 평양에서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쫓겨났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것도 같은 인간한테?”
     
   그들은 ‘그’가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평양에서 살 수 없다고 했다.
   일종의 독재였고, 그만의 왕국이었다.
   그에 맞서보려고 했던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어차피 문명사회와 국가 시스템이 다 무너진 마당에, 독재든 왕이든 안 될 건 없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들이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두려워했어요.”
     
   이미 언데드를 겪어본 사람들이었다.
   그 끔찍함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평양에 머물기를 포기했다.
   그들에게 ‘그’는 언데드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공포인 것이다.
     
   ‘박시연이라.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강호 일행은 예상치 못한 평양의 상황을 알게 돼 어딘가 불편한 마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외각에서 중심부까지는 그런대로 자유로워 보였다.
   이전 마을에서 들은 내용과 달라 살짝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시내로 접어드니 멀리서 보기에도 견고해 보이는 성곽이 공간을 완전히 분리해 놓고 있었다.
   마치 성문처럼 만들어놓은 유일한 입구에는 중화기로 무장되어 있었다.
   모두 들은 그대로였다.
     
   “저건, 뭘 쌓아서 만든 걸까요?”
     
   레이나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강호는 보이는 대로 말했다.
     
   “부서진 차량, 폐가전, 무너진 건물 잔해, 온갖 걸 다 가져다가 잘도 쌓았군.”
     
   단순히 높이만 쌓은 게 아니었다.
   두 겹 세 겹 두텁기까지 해 어지간한 충돌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호는 그걸 보며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을 떠올렸다.
     
   ‘세력 과시. 힘 자랑.’
     
   저건 기계로 쌓아 만든 게 아니다.
   순전히 노동력.
     
     
   “정지, 시동 끄고, 운전자는 차량에서 내리세요.”
     
   강호나 레이나에게는 익숙한 절차 명령에 굳이 묻거나 따지지 않고 그대로 따랐다.
     
   “저희는 백두산에서 왔습니다. 세계 종 보관소의 연구원들이고요.”
     
   운전석에서 내린 레이나와 강호가 나란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사방으로 회전식 게들링포 네 기, 곳곳에 무장한 병력, 그리고 안쪽에는 방사포까지. 무슨, 전쟁이라도 치렀나?’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호는 주변 일대를 빠르게 살피고 파악했다.
   아직 단서가 될 만한 흔적은 찾지 못했지만, 무장 정도만 봐도 무얼 위한 대비인지 추측이 됐다.
     
   그렇게 강호의 눈과 머리가 움직이는 잠깐 사이에 몇 사람이 다가왔다.
   그리고 장갑차의 비무장 상태와 차량 내부의 연구진들을 살피고 돌아갔다.
     
   “대신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운전합니다.”
     
   걱정과 다르게 일단 출입 허가가 떨어졌다.
   그래서 기꺼이 운전대를 넘겼다.
     
   ‘우리가 아니라 장갑차가 탐났을 거다.’
     
   성곽 안쪽은 밖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규모도 규모지만,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멀쩡한 건물들이 그대로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종 보관소를 나와서 지금까지 본 건물들과는 확실히 다르네요.”
     
   리사가 조용히 말했다.
   계속 사람이 살아왔다는 뜻이었다.
     
   강호 일행은 그들이 안내하는 대로 작은 상가주택에서 대기했다.
   일행 사이에서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책임자가 들어왔다.
     
   “자, 방문자분들. 평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훤칠하게 잘생긴 남자가 생글 웃으며 강호와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성주 대리로, 이곳에서의 일 대부분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이정훈이라고 합니다.”
     
   그의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강호의 뒤쪽에서 먼저 반응이 나왔다.
     
   “어? 연예인이다.”
   “그러네. 그, 아이돌 가수네.”
   “와. 실물도 잘생겼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이정훈이 인상을 썼다.
     
   “아, 예의가 없으신 분들이군요.”
     
   금방 활짝 웃는 얼굴로 낯빛을 바꾸더니 경쾌하게 말했다.
     
   “뭐,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은 방문객. 기부 천사. 스쳐 가는 인연, 뭐 그 정도니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손을 휙 들었다.
   그게 명령이나 신호가 됐는지, 뒤에 있던 사내들이 들고 있는 소총류를 견착했다.
     
   척.
   처처척.
     
   “왜, 왜?”
   “꺅!”
     
   사람들이 크게 동요했다.
   괴물을 피해 사람을 찾아왔더니, 총구부터 들이대니 놀란 것이다.
   물론 꼭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우리를 쫓아내거나 죽이면 저 장갑차, 무용지물일 텐데.”
     
   레이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자 이정훈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무슨 소리야. 우리가 직접 몰아서 차고지로 옮겨놨는데. 어디서 수작질…”
   “그거,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터져. 설마 그런 기능도 못 들어본 건 아니지?”
   “…….”
     
   이정훈은 대꾸하지 못했다.
   헷갈리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주변은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모두 두 사람의 대화에 잔뜩 집중했다.
     
   “이 년이, 신사답게 대하니까 사람을 우롱해?!”
     
   잠깐 생각해 본 결과인 것 같았다.
   하지만 레이나는 편안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했다.
     
   “대한민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뀌더니, 와아, 이런 경우가 다 생기는구나.”
     
   그녀는 조금은 과장된 제스쳐를 곁들이며 수선을 떨었고, 그럴수록 주변에선 저게 무슨 소릴까, 집중도가 더 높아졌다.
     
   “당신, 군 미필이지? 가봤어야 뭘 알지. 난 미 해군 항공대 소속 대위 출신이야. 이쪽은 대한민국 육군 특수부대 소령 출신이고.”
     
   그러면서 옆에 있는 강호를 끌어들였다.
   강호는 내심 뜨끔했지만, 워낙 포커페이스다 보니 티도 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레이나와 한번 눈을 마주쳤다.
     
   ‘훌륭한 도발이었어, 레이나.’
     
   그러고는 제 티셔츠 안에서 재래식 군 인식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처렁.
     
   “윽.”
     
   정말 군 미필인지, 이정후가 반걸음 주춤했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령이었데.”
   “소령? 와.”
     
   강호는 눈치가 빠르다.
   그래서 때를 놓치지 않고 점잖게 말했다.
     
   “여기 들어오며 무장을 봤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강호에게 집중됐다.
   겨누고 있던 총구도 강호를 향했다.
     
   처척.
   처억.
     
   강호는 대수롭지 않게 하려던 말을 마저 했다.
     
   “화약 무기로 대응할 수 있는 언데드는 한계가 있다. 곧 그보다 위험한 존재가 나타날 거다. 생존자들, 힘을 합쳐야 산다. 그리고,”
     
   강호는 말미에 살짝 미간을 구겼다.
     
   “어느 누가 비무장인 사람들에게 총구를 겨누나? 총 내려.”
     
   흠칫.
     
   순간, 이정훈을 비롯한 사내들의 몸이 살짝 떨렸다.
   강호의 말에는 어떤 위엄이 서려 있었고, 따라야 할 것만 같은 힘이 느껴졌다.
     
   스윽.
     
   누군가 총구를 내렸다.
     
   “야! 이 미친!”
     
   이정훈이 버럭 화를 내며 강호의 말을 따른 사내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퍽!
   “윽.”
   콰당.
     
   그는 곧바로 돌아서며 허리춤에서 피스톨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처억.
   달칵.
     
   안전장치 푸는 소리가 들렸고, 마치 뭔가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킥.
   타앙.
     
   사람들은 경악했다.
   강호 일행의 뒤쪽에 있던 연구진들은 총소리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꺅!”
   “어머!”
   “아아.”
     
   대신 반대편에 무장한 사람들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떴다.
     
   “……?”
   “…….!”
     
   이정훈이 쏜 총알이 공중에 멈춰 있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 멈춘 건 아니었다.
   탄환의 회전은 계속되고 있었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 어떻게…?”
     
   강호가 미리 전자기력을 방출해 밀도 높은 보호막을 두르고 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이정훈은 기겁했다.
   그는 입만 뻥긋거리며 자신이 쏜 레이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온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쯧쯧.”
     
   그녀의 한심하다는 표현을 강호가 그대로 받아왔다.
     
   “넌 나를 쐈어야 했다.”
     
   강호가 손을 슬쩍 움직이니 탄환이 반대로 방향을 돌렸다.
   회전력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작은 파공성이 울려댔다.
     
   스으으윽.
   피피핑.
     
   탄환이 움직임을 멈췄을 땐 이정훈을 향해 있었다.
     
   “윽!”
     
   그는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뒤로 물러섰다.
     
   “각성자다!”
   “으아아! 각성자였어!”
     
   무장한 사내들이 혼비백산하며 내부 곳곳으로 몸을 숨기느라 바빴다.
     
   ‘각성자? 이능력자를 그렇게 부르나 보네.’
     
   아무래도 그들 또한 이능력자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강호씨, 힘 사용하는 요령이 많이 늘었네.’
     
   레이나는 건방진 어린 녀석을 한 방 먹여준 것이 속으로 무척 흡족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강호는 그만 힘을 거두었다.
     
   후웅.
   툭.
     
   탱그랑.
     
   타일 바닥에 구리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그제야 수선을 피며 꼴사납게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던 사내들이 멈춰 섰다.
   이정훈은 한쪽 구석에 구겨져 있었다.
     
   “소개했던 대로, 우리는 종 보관소에서 생존해 여기까지 왔어. 그리고 이분들은 세계적인 과학자들이고. 소홀함 없이 모셔도 부족할 판에, 뭐가 어쩌고 어째?”
     
   레이나가 잔뜩 핀잔을 줬다.
   하지만 누구 하나 대응하지 못했다.
     
   ‘대체 어떤 이능력자를 봤길래 저렇게 벌벌 떨어?’
     
   고개가 절로 갸웃했다.
   그리고 강호가 말했다.
     
   “박시연이라는 사람을 보고 싶다. 안내해.”
     
   별말 아니었음에도, 이정훈을 비롯한 저들 모두가 헛숨을 삼켰다.
     
   “헙.”
   “히익.”
   “아아.”
     
   레이나는 동일한 반응을 기억했다.
     
   ‘그들, 평양에서 쫓겨났던 사람들의 공포, 그것과 같다.’
     
   빅시연, 대체 누구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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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대체 누구길래?

* * *

평안남도 덕천에서 하루를 보내고 평양까지 들어가는 길에 처음으로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원주민들은 아니었고, 전부 평양에서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쫓겨났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것도 같은 인간한테?”

그들은 ‘그’가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평양에서 살 수 없다고 했다.

일종의 독재였고, 그만의 왕국이었다.

그에 맞서보려고 했던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어차피 문명사회와 국가 시스템이 다 무너진 마당에, 독재든 왕이든 안 될 건 없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들이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두려워했어요.”

이미 언데드를 겪어본 사람들이었다.

그 끔찍함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평양에 머물기를 포기했다.

그들에게 ‘그’는 언데드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공포인 것이다.

‘박시연이라.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강호 일행은 예상치 못한 평양의 상황을 알게 돼 어딘가 불편한 마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외각에서 중심부까지는 그런대로 자유로워 보였다.

이전 마을에서 들은 내용과 달라 살짝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시내로 접어드니 멀리서 보기에도 견고해 보이는 성곽이 공간을 완전히 분리해 놓고 있었다.

마치 성문처럼 만들어놓은 유일한 입구에는 중화기로 무장되어 있었다.

모두 들은 그대로였다.

“저건, 뭘 쌓아서 만든 걸까요?”

레이나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강호는 보이는 대로 말했다.

“부서진 차량, 폐가전, 무너진 건물 잔해, 온갖 걸 다 가져다가 잘도 쌓았군.”

단순히 높이만 쌓은 게 아니었다.

두 겹 세 겹 두텁기까지 해 어지간한 충돌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호는 그걸 보며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을 떠올렸다.

‘세력 과시. 힘 자랑.’

저건 기계로 쌓아 만든 게 아니다.

순전히 노동력.

“정지, 시동 끄고, 운전자는 차량에서 내리세요.”

강호나 레이나에게는 익숙한 절차 명령에 굳이 묻거나 따지지 않고 그대로 따랐다.

“저희는 백두산에서 왔습니다. 세계 종 보관소의 연구원들이고요.”

운전석에서 내린 레이나와 강호가 나란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사방으로 회전식 게들링포 네 기, 곳곳에 무장한 병력, 그리고 안쪽에는 방사포까지. 무슨, 전쟁이라도 치렀나?’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호는 주변 일대를 빠르게 살피고 파악했다.

아직 단서가 될 만한 흔적은 찾지 못했지만, 무장 정도만 봐도 무얼 위한 대비인지 추측이 됐다.

그렇게 강호의 눈과 머리가 움직이는 잠깐 사이에 몇 사람이 다가왔다.

그리고 장갑차의 비무장 상태와 차량 내부의 연구진들을 살피고 돌아갔다.

“대신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운전합니다.”

걱정과 다르게 일단 출입 허가가 떨어졌다.

그래서 기꺼이 운전대를 넘겼다.

‘우리가 아니라 장갑차가 탐났을 거다.’

성곽 안쪽은 밖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규모도 규모지만,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멀쩡한 건물들이 그대로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종 보관소를 나와서 지금까지 본 건물들과는 확실히 다르네요.”

리사가 조용히 말했다.

계속 사람이 살아왔다는 뜻이었다.

강호 일행은 그들이 안내하는 대로 작은 상가주택에서 대기했다.

일행 사이에서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책임자가 들어왔다.

“자, 방문자분들. 평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훤칠하게 잘생긴 남자가 생글 웃으며 강호와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성주 대리로, 이곳에서의 일 대부분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이정훈이라고 합니다.”

그의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강호의 뒤쪽에서 먼저 반응이 나왔다.

“어? 연예인이다.”

“그러네. 그, 아이돌 가수네.”

“와. 실물도 잘생겼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이정훈이 인상을 썼다.

“아, 예의가 없으신 분들이군요.”

금방 활짝 웃는 얼굴로 낯빛을 바꾸더니 경쾌하게 말했다.

“뭐,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은 방문객. 기부 천사. 스쳐 가는 인연, 뭐 그 정도니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손을 휙 들었다.

그게 명령이나 신호가 됐는지, 뒤에 있던 사내들이 들고 있는 소총류를 견착했다.

척.

처처척.

“왜, 왜?”

“꺅!”

사람들이 크게 동요했다.

괴물을 피해 사람을 찾아왔더니, 총구부터 들이대니 놀란 것이다.

물론 꼭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우리를 쫓아내거나 죽이면 저 장갑차, 무용지물일 텐데.”

레이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자 이정훈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무슨 소리야. 우리가 직접 몰아서 차고지로 옮겨놨는데. 어디서 수작질…”

“그거,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터져. 설마 그런 기능도 못 들어본 건 아니지?”

“…….”

이정훈은 대꾸하지 못했다.

헷갈리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주변은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모두 두 사람의 대화에 잔뜩 집중했다.

“이 년이, 신사답게 대하니까 사람을 우롱해?!”

잠깐 생각해 본 결과인 것 같았다.

하지만 레이나는 편안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했다.

“대한민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뀌더니, 와아, 이런 경우가 다 생기는구나.”

그녀는 조금은 과장된 제스쳐를 곁들이며 수선을 떨었고, 그럴수록 주변에선 저게 무슨 소릴까, 집중도가 더 높아졌다.

“당신, 군 미필이지? 가봤어야 뭘 알지. 난 미 해군 항공대 소속 대위 출신이야. 이쪽은 대한민국 육군 특수부대 소령 출신이고.”

그러면서 옆에 있는 강호를 끌어들였다.

강호는 내심 뜨끔했지만, 워낙 포커페이스다 보니 티도 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레이나와 한번 눈을 마주쳤다.

‘훌륭한 도발이었어, 레이나.’

그러고는 제 티셔츠 안에서 재래식 군 인식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처렁.

“윽.”

정말 군 미필인지, 이정후가 반걸음 주춤했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령이었데.”

“소령? 와.”

강호는 눈치가 빠르다.

그래서 때를 놓치지 않고 점잖게 말했다.

“여기 들어오며 무장을 봤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강호에게 집중됐다.

겨누고 있던 총구도 강호를 향했다.

처척.

처억.

강호는 대수롭지 않게 하려던 말을 마저 했다.

“화약 무기로 대응할 수 있는 언데드는 한계가 있다. 곧 그보다 위험한 존재가 나타날 거다. 생존자들, 힘을 합쳐야 산다. 그리고,”

강호는 말미에 살짝 미간을 구겼다.

“어느 누가 비무장인 사람들에게 총구를 겨누나? 총 내려.”

흠칫.

순간, 이정훈을 비롯한 사내들의 몸이 살짝 떨렸다.

강호의 말에는 어떤 위엄이 서려 있었고, 따라야 할 것만 같은 힘이 느껴졌다.

스윽.

누군가 총구를 내렸다.

“야! 이 미친!”

이정훈이 버럭 화를 내며 강호의 말을 따른 사내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퍽!

“윽.”

콰당.

그는 곧바로 돌아서며 허리춤에서 피스톨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처억.

달칵.

안전장치 푸는 소리가 들렸고, 마치 뭔가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킥.

타앙.

사람들은 경악했다.

강호 일행의 뒤쪽에 있던 연구진들은 총소리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꺅!”

“어머!”

“아아.”

대신 반대편에 무장한 사람들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떴다.

“……?”

“…….!”

이정훈이 쏜 총알이 공중에 멈춰 있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 멈춘 건 아니었다.

탄환의 회전은 계속되고 있었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 어떻게…?”

강호가 미리 전자기력을 방출해 밀도 높은 보호막을 두르고 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이정훈은 기겁했다.

그는 입만 뻥긋거리며 자신이 쏜 레이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온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쯧쯧.”

그녀의 한심하다는 표현을 강호가 그대로 받아왔다.

“넌 나를 쐈어야 했다.”

강호가 손을 슬쩍 움직이니 탄환이 반대로 방향을 돌렸다.

회전력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작은 파공성이 울려댔다.

스으으윽.

피피핑.

탄환이 움직임을 멈췄을 땐 이정훈을 향해 있었다.

“윽!”

그는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뒤로 물러섰다.

“각성자다!”

“으아아! 각성자였어!”

무장한 사내들이 혼비백산하며 내부 곳곳으로 몸을 숨기느라 바빴다.

‘각성자? 이능력자를 그렇게 부르나 보네.’

아무래도 그들 또한 이능력자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강호씨, 힘 사용하는 요령이 많이 늘었네.’

레이나는 건방진 어린 녀석을 한 방 먹여준 것이 속으로 무척 흡족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강호는 그만 힘을 거두었다.

후웅.

툭.

탱그랑.

타일 바닥에 구리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그제야 수선을 피며 꼴사납게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던 사내들이 멈춰 섰다.

이정훈은 한쪽 구석에 구겨져 있었다.

“소개했던 대로, 우리는 종 보관소에서 생존해 여기까지 왔어. 그리고 이분들은 세계적인 과학자들이고. 소홀함 없이 모셔도 부족할 판에, 뭐가 어쩌고 어째?”

레이나가 잔뜩 핀잔을 줬다.

하지만 누구 하나 대응하지 못했다.

‘대체 어떤 이능력자를 봤길래 저렇게 벌벌 떨어?’

고개가 절로 갸웃했다.

그리고 강호가 말했다.

“박시연이라는 사람을 보고 싶다. 안내해.”

별말 아니었음에도, 이정훈을 비롯한 저들 모두가 헛숨을 삼켰다.

“헙.”

“히익.”

“아아.”

레이나는 동일한 반응을 기억했다.

‘그들, 평양에서 쫓겨났던 사람들의 공포, 그것과 같다.’

빅시연, 대체 누구길래?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Status: Ongoing
When a disaster strikes, I know what to do. Only I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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