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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다음날 아침, 서준은 기녀들을 이끌고 청하문으로 향했다.

   

    기녀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불안과 설렘, 미지에 대한 공포가 어우러져 오묘한 표정이 그녀들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중 추령은 유독 심했다.

   

    그녀는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도 서준과 눈이 마주치면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제는 싸가지가 없다는 생각보다도 안쓰럽다는 생각이 강했다. 저 정도면 뭐 방어기제의 일환이 아닐까?

   

    “자, 도착했어요.”

   

    서준이 청하문을 가리키자 기녀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처, 청하문 말씀이신가요…?”

    “정말…, 로?”

   

    반응이 격하다.

   

    눈물은 기본이요, 주저앉거나 엉엉 우는 이도 있었다.

   

    “아니, 뭔…. 청하문에서 사람이라도 잡아먹는대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얘기를 들어보니 이런 출세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청하문의 식모나 하인이 무슨 출세인가 싶었지만.

   

    “나름 엄청난 출세지. 청하문 정도면 이 근방의 지배자라 해도 될 정도니까.”

    “지배자? 세금도 걷고 그러나?”

    “걷지. 도시를 운영하려면 당연한 일이고.”

    “넹? 도시를 운영이요?”

   

    이건 또 무슨 소릴까. 국가가 있고 황제가 있을 텐데 멋대로 도시를 운영해도 되는 건가?

   

    춘봉에게 묻자 오히려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뭔 소리야? 아무리 황제라도 중원을 통치하진 못하지. 가만 있어봐. 너 그러고 보니까 옛날에도 나한테 황제가 아빠니 뭐니 하지 않았었냐?”

    “응.”

   

    주변을 스윽 둘러본 춘봉이 서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야, 잠깐 얘기 좀 하자.”

    “그래.”

   

    기녀들을 잠시 청하문의 대문 앞에 세워두고 몇 걸음 떨어졌다.

   

    “아니, 좀 멀리 가자고.”

   

    춘봉이 소매를 쭉쭉 잡아당겼지만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아, 모르는 건가.”

   

    따악-! 서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춘봉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기, 기막氣幕…?”

    “그렇게 놀랄 일인가? 검막도 썼었는데.”

    “그거랑 이게 같냐!?”

   

    버럭 소리친 춘봉이 고개를 홱홱 저었다.

   

    “아, 아니지.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 기막을 쳤으니 외부로 말소리가 새어나가는 일은 없을 터.

   

    춘봉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전에 이세계 출신이니 뭐니 했던 거. 그거 진심으로 했던 소리냐?”

    “당연하지. 아니! 지금까지 안 믿고 있었어!?”

    “그걸 누가 믿어!”

    “금춘봉 이 자식! 너는 믿어줘야지!”

   

    그 말에 춘봉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슬그머니 다가와 소매를 꼭 붙들고는, 눈을 새초롬하니 치켜뜨고 헤헤 웃는다.

   

    “이제 믿잖아. 그치 오빠?”

    “이 자식….”

   

    오빠를 무슨 만능으로 아는 건가?

   

    놀랍게도 정확하다.

   

    그 위에 애교 어린 태도까지 더해지니 이건 뭐 용서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용서하지, 금춘봉.”

    “흐흥.”

   

    저 만족스러워 보이는 표정이 괜히 열받는다. 그래도 귀여우니까 봐주도록 하지.

   

    “아무튼 뭐…. 믿긴 하는데 그래도 쉽게 믿어지진 않네. 이세계라니.”

   

    미간을 찌푸린 춘봉이가 중얼거렸다.

   

    “아니지. 선계도 따지고 보면 이세계 같은 거잖아. 그런 느낌인가?”

    “잘은 몰라도 그렇지 않을까?”

    “으음….”

   

    춘봉이가 어딘가 찝찝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튼 알겠어. 그러면 상식이 없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이 새끼. 지금까지 상식도 없는 놈이라 생각하고 있었구나!”

    “당연한 거 아닌가…?”

   

    아무튼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뚱한 표정으로 춘봉이를 쳐다보자 그녀가 스리슬쩍 본론으로 돌아갔다.

   

    “아무튼 너, 지금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황제는 딱히 중원의 지배자가 아니야.”

    “그러면?”

    “뭐긴 뭐야. 한 문파의 수장이지.”

    “뭣.”

   

    황제가 문파의 수장…?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기분이다.

   

    “아니, 중원에도 나라가 있을 거 아니야.”

    “그렇지?”

    “무림인이 있고 양민들도 있고.”

    “맞지.”

    “보통 양민들을 다스리는 황제가 있지 않나? 그래서 관무불가침이라는 말도 있잖아. 관과 무림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고.”

    “아, 그거.”

   

    춘봉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역사책에서 보긴 했네. 옛날에 아주 잠깐 황실이 중원을 통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잠깐 그랬다더라.”

   

    근데 지금은 아니다.

   

    황실이라 해봐야 그냥 대문파 중 하나. 그 위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 육대세가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그게 뭔….”

    “아, 그럼 이것도 모르겠네. 황실이 전에 중원을 통일했다 했지? 그때 황제가 무신武神 주운천이야.”

    “와우.”

   

    춘봉이의 상식 강의는 조금 더 이어졌다.

   

    “중원은 크게 하나의 나라로 볼 수도 있고, 작게는 여러 나라의 연합이라 볼 수도 있어.”

   

    크게는 당연히 중원 자체가 하나의 나라고, 작게는 육대세가나 구파일방이라 불리는 대문파들을 각각 하나의 나라로 친다는 모양이다.

   

    “남궁세가로 예를 들어보자면 안휘성이 걔네 나라인 거고, 그 안에 있는 자그마한 문파들은 도시나 마을인 셈이지.”

    “아하…. 그러니까 여기는 청하문이 다스리는 도시나 마찬가지다 이 소린가?”

    “응. 그거야.”

   

    한 마디로 이곳에 있는 기녀들은 시장 직속 공무원이 되었다는 소린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대충 그런 느낌으로 생각해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잠깐. 그러면 나는 시장을 두드려 팬 거라고?”

    “그렇지.”

    “오…. 완전 인생 업적인데? 신난다!”

   

    춘봉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해주렴. 그런 반응은 마음이 아파요.

   

    아무튼 상식 주입을 받고 난 뒤 기녀들에게 돌아왔다.

   

    춘봉이도 내가 뭘 모르고 뭘 아는지를 모르니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말해주겠다 했고, 애초에 몰라도 잘만 살고 있었으니 천천히 알아가기로 했다.

   

    “자, 그러면 드갈까요?”

   

    쿵쿵-!

   

    서준이 청하문의 대문을 두드렸다.

   

    “게 누구 없소!”

   

    끼익-,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슬슬 올 거라 생각했소.”

   

    청운이 포권을 취했다.

   

    “다시 만나 반갑소, 소협. 지난번에는 큰 은혜를 입었소.”

    “어…. 갑자기 반응이 달라져서 반응하기 힘든데요?”

    “축생조차 은혜는 아는 법. 소협의 조언 덕에 자그마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것은 말 몇 마디로 갚지 못할 대은大恩이외다.”

   

    서준이 그의 말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확인해보니 확실히 기의 흐름이 부드러워진 것이 눈에 띄었다.

   

    솔직히 그대로 무시할 수도 있다 생각했는데, 조언을 따른 걸 보니 괜히 뿌듯하고 그렇다.

   

    “아이, 거참. 뭘 은혜까지야. 절정도 조만간이겠네요. 화이팅!”

    “화이팅…. 그렇지. 화이팅하겠소.”

   

    청운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림인이 화이팅. 이거 진짜 뭔가뭔가네.

   

    보니까 조금 배운 놈들일수록 영어를 잘 안다. 춘봉이는 어려서 영어까지는 진도가 덜 나간 것 같고, 청하문주 정도면 영어로 회화도 하지 않을까?

   

    ‘미친 사이비 무협 같으니.’

   

    현대 사회에서 이런 무협지를 봤으면 바로 각혈하고 작가한테 5700자 댓글 하나 남겼다.

   

    ‘님 씨발 사문난적임? 전 하차할 테니 님은 상하차나 하세요.’

   

    그랬으면 바로 빙의됐겠지? 어차피 결과는 똑같네. 옘병.

   

    서준이 입맛을 다시며 안내를 자청하는 청운의 뒤를 따랐다.

   

    그런 그를 기녀들이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추령의 경우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흐음….”

   

    춘봉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

   

   

    서준은 곧바로 문주전으로 향해 문주를 만났다.

   

    “거 오랜만입니다?”

    “며칠 되지도 않았네.”

    “우리 째째한 건 신경 쓰지 맙시다.”

    “끄응….”

   

    문주가 서준의 뒤에 나열한 기녀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들이 그대가 말한 이들인가?”

    “네, 뭐.”

    “알겠네. 요리를 할 줄 안다면 숙수에게 보내고, 할 줄 모른다면 하녀로 쓰지.”

    “굿.”

   

    서준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일단 그 전에.

   

    “그래도 제가 또 양심은 있으니까. 청하문에 맡기기 전에 서비스는 해드릴게요.”

    “써비쓰라…. 양놈들 말을 꽤 잘 아는군.”

    “어…, 혹시 인종차별주의자신가?”

    “레이씨쓰트는 아니네.”

    “오우 쉣.”

   

    이 새끼 영어 좀 치네. 서준이 감탄하며 박수 쳤다.

   

    “아무튼 그러니까 연무장 좀 하루만 빌립시다. 남는 데 있죠?”

    “알겠네. 운아, 안내해주거라.”

    “예, 문주님.”

   

    청운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내하겠소.”

   

   

    *

   

   

    목적지에 도착한 서준은 연무장을 주욱 훑어보았다.

   

    ‘괜찮네.’

   

    남는 연무장일 텐데 넓고 깨끗하다. 이정도면 지금부터 할 일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터.

   

    “자, 여러분. 지금부터 본 조교는 여러분께 존대하지 않을 겁니다.”

    “네, 네…? 조교요?”

    “대답은 다나까로 통일…, 쓰읍…. 이건 좀 그렇네. 아무튼 편하게 말할 거니까 그리 알고.”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은 여성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어라? 야스도 운동인가?’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기녀한테 이 발언은 너무 개새끼 같다.

   

    아무튼 좋은 게 하나 생각났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 도수체조라고 들어본 적 있나?”

    “아뇨….”

    “그렇다면 본 조교의 구령에 맞춰서 따라하면 된다. 우선….”

   

    잠깐만. 처음이 팔다리 운동이었던가? 아닌가? 다리 운동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 사소한 찐빠가 발생한 관계로 일정을 급히 바꿨다.

   

    “우리 그냥 삼재검법이나 할까요? 생각해보니까 이거면 충분할 거 같네요.”

    “네, 네에….”

   

   

    *

   

   

    기녀들에게 도수체조니 삼재검법이니 이상한 걸 시키는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일단 내가 청하문에 소개시켜준 인력들 아닌가.

   

    그런데 기녀들이 청하문에 들어가서 얼빠진 짓만 하고 있으면 괜히 청하문에 미안해지잖아.

   

    그래서 좀 빡세게 굴렸더니 기녀들이 흐물흐물하게 녹아 바닥에 축 늘어졌다.

   

    서준은 픽 웃으며 헥헥거리는 기녀들의 안색을 살폈다.

   

    힘들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다들 표정이 밝다.

   

    청하문이라는 이름에는 이런 훈련조차 즐겁게 받을 수 있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뭐 할 말 있어요?”

   

    그리고 또다시 추령과 눈이 마주쳤다.

   

    어찌 보자면 무림에 떨어져 만난 첫 인연.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의 눈이 데구르르 굴러간다.

   

    “왜…, 저한테 이런 기회를 주신 거죠?”

   

    그래, 너도 니가 싸가지 없게 군 건 아는구나?

   

    그렇다고 또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라 기분이 크게 나쁜 건 아니었다.

   

    “궁금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헤마 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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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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