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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EP.26

     

   게임이든 영화든 만화든 어떤 판타지적인 서사가 가미된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면 꼭 어느 목적지를 가는 길에는 훼방꾼들이 있기 마련이다.

   던전 속의 괴물이라든가 보스 방을 지키는 문지기 골렘이라든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기고 있는 비밀통로에는 그런 위협적인 방해물은 없었다. 대신.

     

   – 찍찍!

   “흡…!”

     

   조그마한 쥐 한 마리가 옆구리를 스쳐가자 당황한 한가민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다.

     

   “비밀통로라더니… 이건 그냥 환풍 시설이잖아…”

     

   지금 우리는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법한 통로를 줄을 맞추며 열심히 기고 있었다.

     

   “히힛!”

     

   로랑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가 그동안 말한 비밀통로는 참 공교롭게도 성의 환풍 시설.

     

   내가 탑이라는 세계에 너무 빨리 적응을 한 탓에 내 눈앞의 이 아이가 한국에서는 이제 초등학교를 다닐 잼민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좁아…”

     

   그나마 로랑이나 덩치가 작은 한가민은 괜찮아 보였지만 성인 남성인 나나 남궁천호는 한껏 고역을 치르던 중이었다.

     

   나는 로랑을 따라 포복을 하는 틈틈이 성 내부를 관찰했다.

   고작 복도만 슬쩍 보이는 정도라 위치를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병사들이 얼마나 어디로 이동하는지 알 수 있어서 꽤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 모두 잡아들여야 한다.

   – 알겠습니다.

   – 유력 용의자들은 성 밖으로 도주했다. 다른 놈들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 예!!!

     

   바로 아래를 지나가는 병사들이 대화가 들려왔다. 썩 반갑지 않은 대화의 흐름이었다.

     

   ***

     

   “이게 무슨 상황이죠?”

   “사실 저도 정신이 없어서 난감합니다.”

     

   박조철과 서세영.

   숙소가 바로 옆이었던 두 사람은 세뇌가 풀리자마자 방에서 나와 서로를 만났다.

     

   그리고 병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둘은 사람들을 소집하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꽤 많은 사람들이 구조된 상황에서 구석진 조용한 방에 다 같이 숨죽이고 있던 중이었다.

     

   “임무 내용이 바뀐 것 같습니다만… 왤까요?”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누군가의 말에 서세영이 새롭게 변경된 임무를 차분히 확인했다.

     

   2층으로 가는 길을 찾기만 하면 된다던 기존의 임무가 ‘적의 섬멸’이라는 목표로 변경되어 있었다.

     

   사실 이곳에 온 이후로 기억이 잘 나지를 않는다. 뭔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했다는 기억은 있지만 그 기록에 검은 잉크가 끼얹어진 것처럼 흐리기만 할 뿐이었다.

     

   “아마도… 시인 씨가 뭔가를 한 게 아닐까요?”

   “시인 씨요?”

   “늘 그랬잖아요.”

     

   박조철의 말에 서세영이 흠 하는 추임새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김시인이라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도우미에게 막말을 하고 성좌들의 관심을 받고 튜토리얼에서 말도 안 되는 업적을 보여 준 그라면 뭔가 일을 저질렀다고 해서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그가 임무를 변경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설마……”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간 서세영의 입에서 얕은 침음성이 흘러나온다.

     

   임무가 변경된 이유.

     

   “설마 이번에도 사람들을 지키려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신 건 아닐까요?”

   “…그게 무슨?”

   “원래 미션 내용 다들 기억하시죠?”

     

   그녀의 물음에 사람들이 긍정한다.

   미션 내용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너무나도 막연한 2층으로 가는 길을 찾으라는 말만 툭 던져놓고 모든 것이 수수께끼 같았으니 당황스러울 뿐.

     

   하지만, 만약 김시인이 그 수수께끼를 혼자 풀었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오류를 발견했다면?

     

   “원래 적혀 있던 보상이 분명 ‘???’였죠.”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설마 그 보상이 2층으로 혼자 올라간다는 내용은 아니었을까요?”

   “……!”

     

   누군가의 한마디에 사람들이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한 띵한 표정을 지었다.

     

   “서…설마?”

   “아니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정의로울 수가…”

     

   사람들의 말투에 의심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들의 의심은 이어진 박조철의 말에 의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요. 그럴 수 있는 분입니다.”

   “……?”

   “다들 튜토리얼 초반에 괴물들이 나오던 상황을 기억하십니까?”

   “물론…”

     

   박조철의 물음에 사람들의 어깨가 움찔거린다. 다들 당시의 공포가 몸에 각인되어 반사적으로 반응한 듯하다.

     

   “여러분들은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괴물에게 달려들 수 있으십니까?”

   “……네? 말도 안 되죠. 어떻게 그런…”

   “시인 씨는 했습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경악으로 물든다.

     

   정의감.

   사람들의 마음에는 모두 정의라는 것이 있었다.

     

   기본적인 도덕심과 양심.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어떤 것이 옳은 행동인지 그른 행동인지 판단할 능력이 사람에게는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반적인 상황에서나 통용되는 것. 그렇기에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남을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사람들은 안다.

     

   “놀랍군요. 저희를 지하도로 보내고 스스로 희생을 자처했을 때도 평범한 분은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위인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인품인 것 같습니다… 왜 성경에는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만큼 큰 사랑이 어디 있냐고.”

     

   김시인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 하는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추측을 하며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착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늘어지고 있었다.

     

   “설마 그때 건물 20층까지 혼자 뛰어올라갔던 것도 우리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니었다.

     

   “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온몸에 피범벅이 돼서 엘리베이터까지 뛰어내리셨잖아요.”

     

   그럴 수가 없다.

     

   “역시… 대단하신 분. 다른 사람을 위해 그렇게까지…”

     

   그냥 본인이 살아야 하니까 그랬다.

     

   현재의 상황을 김시인의 희생으로 착각한 사람들이 점점 더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그 열기가 최고점에 달했을 때.

     

   “저희도 뭔가 도움을 줍시다.”

   “맞아요! 매번 짐이 될 수는 없죠!”

     

   누군가의 굳은 의지가 담긴 한마디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의, 각오, 다짐, 결의 등.

     

   아주 청춘스럽고 낭만스러운 감정이 그들의 머릿속을 휘어잡는다.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도 분명 시인 씨를 찾으려고 그러는 걸 겁니다. 탑의 1층 끝자락에 가장 근접한 분일 테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놀고먹고 쉬는 동안 혼자서 쓸쓸히 임무를 완수하고 계셨다니……”

     

   사람들이 김시인의 담대함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이윽고.

     

   “저희가 병사들의 이목을 끌어줍시다. 그분이 임무를 완벽히 완수할 수 있도록!”

   “좋습니다! 이번에는 저희도 보여주죠!”

     

   가만히 구석에 숨어서 임무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

     

   그저 한 사람의 넘겨짚기로 만들어진 놀라운 기적이었다.

     

   ***

     

   “여기에요!”

     

   왕궁 복도의 끝자락에 도착한 우리가 환풍구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행한 것은 다름 아닌 스트레칭이었다.

     

   “몸이 너무 결립니다…”

   “어깨 빠지는 줄 알았네.”

     

   환풍구는 좁았다.

   관리는 잘 된 것 같았지만 한 번씩 쥐를 만나기도 했고 역시나 현대의 금속이 아닌 돌로 만들어지다 보니 팔꿈치도 상당히 아팠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도대체 몇 층을 기어서 올라온 거야.”

     

   비스듬한 각도로 우리를 괴롭힌 경사들이 문제였다.

   군대에 있을 당시 산이나 구릉지형에서 각개전투를 해도 이렇게까지 빡센 포복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참 고달픈 기분이 든다.

     

   “슬슬 들어가죠.”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했다.

   성이 넓다고 하지만 결국 실내인 이상 사람들은 언젠가 병사들에게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병사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는 것이긴 했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된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성을 점령해 버리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사람들이 힘을 합칠만한 동기가 없기에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아저씨… 저기 누구 있는 거 같은데요.”

     

   뒤에서 한가민의 속삭임이 들렸다.

     

   정면. 마법사의 연구실 입구.

   환상 속에서 내가 봤던 장소와 똑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문 앞에 익숙한 인영(人影)이 서 있었다.

     

   “그대들이 전하를 시해한 자들인가?”

     

   거칠거칠한 남성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는 한 명의 기사.

     

   “폰 그레고리…”

   “닥쳐라! 감히 암살자 따위가 왕께서 하사하신 영광스러운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나를 성까지 인도하고 연무장에서 대련을 도와줬던 그 기사였다.

     

   “저희가 아닙니다.”

   “헛소리! 그대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그의 분노에 한가민이 짜증이 난다는 듯 소리쳤다.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세뇌? 아무튼, 이상한 마법이나 걸어놓고 우리를 멋대로 조종하려 했으면서 이젠 사람을 살인자로 몰아가기까지 하시네요!”

   “듣고 싶지 않다! 기사의 의무는 주인의 적을 베는 것 그뿐! 전하를 시해한 네놈들에게 더 이상의 볼일은 없다!”

     

   스릉!

     

   폰이 발검했다. 곧장이라도 달려들 듯 분노가 정신을 지배한 듯한 얼굴.

   어차피 저 문을 지나야 했기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싸워야 했다.

     

   나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나의 검을 뽑았다.

   괴물을 상대하고 좀비를 베었던 검. ‘주인 없는 무명검’이라는 투박한 검의 검신이 달빛을 받아 번뜩인다.

     

   “뒤로 빠져 있어.”

     

   나는 한가민을 슬쩍 당겨 내 뒤로 치워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본 기사 폰 그레고리는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는 검을 든 상태로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대들에게 기사단장의 이름으로 사형을 선고한다.”

     

   그것이 한 명의 기사 폰의 마지막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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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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