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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26 – 용건을 밝혀>

     

    후드씨는 나무를 타고 순식간에 멀어졌다.

    남은 목표는 자연스럽게 우리들 4인조.

     

    “1차 관문 수석이 있는 팀이잖아.”

    “원숭이 놈 덩치도 심상치 않아.”

    “저건 무리야.”

     

    승점을 얻은 사람을 노리고 찾아온 인간사냥꾼 대부분은 우리를 노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덕분에 이쪽은 잡담 삼매경이다.

     

    “비싼 돈을 주고 호위로 고용했던 보람이 있군요.”

    “으하하! 고마우면 좀 더 쏘라고.”

    “사고 싶은 물건이라도 있으십니까?”

    “좋은 술은 가격이 비싸단 말이지.”

    “술이요?”

     

    귀가 쫑긋 서는 기분이 든다.

    어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식품도감에는 음료도 포함된다.

    음료가 되는데 술이라고 안 될 이유가 없지.

    마실 수 있을 때 마셔두는 편이 좋다!

     

    “오, 뭐냐. 쥐방울 주제에 마셔보고 싶냐?”

    “먹고 마시는 건 다 좋아요!”

    “그럼 이것도 마셔볼 테냐?”

     

    손오천이 허리춤에서 호리병을 내밀었다.

    신정산부터 비행선, 1차 관문에 이르기까지 내내 허리춤에 차고 있던 호리병이다.

     

    “그거 엄청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잖아요. 호리병에 든 게 물 아니었어요?!”

    “무슨 힘 빠지는 소리를 하냐? 당연히 술이지.”

     

    술고래 녀석.

    얼마나 술만 마셔댔던 거야?

     

    “자, 어떠냐.”

    “윽. 냄새.”

     

    술은 수집판정이 얼마나 마셔야 뜨지?

    한 잔? 한 병?

    술병에 들어있으면 술병을 다 비우고 호리병에 들어있으면 호리병을 다 비워야하나?

    솔직히 주량에는 자신이 있다.

    캡슐오작동 돌연사를 겪고 이세계행 티켓을 강제로 끊기 전까지는 종종 소꿉친구 시아와 단 둘이서 진탕 마시고 다녔지.

    술찐이 주제에 오늘만큼은 꼭 취하게 만든다! 같은 말을 하면서 항상 술로 덤벼들던 소꿉친구가 매번 먼저 뻗어버리는 모습은 봐줄만했지.

    가끔 넌 무조건 나보다 주량을 낮게 만들 거라는 영문 모를 술주정도 했었던가?

     

    “…….”

     

    으으음. 조금 불안해지는데.

    게임에서야 <마신다.>를 고르면 알아서 뚝딱 비우고 일정시간이 경과했던 술이었고, 일정확률로 상태이상 <취함>에 걸리는 게임이었지만…….

    순수한 주량으로 승부를 보는 현실에서는 확률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오크노디의 몸은 아이의 몸.

    아이는 보통 술에 약하다.

     

    “아이에게 술을 먹이는 건 참아주시죠. 건강에 좋지도 않을뿐더러 지금은 시합중입니다.”

     

    그래도 술은 식품도감 컬렉션 후보.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한 번 노려봐야겠다.

    음…… 그래.

    이왕이면 저 털보아저씨가 잘 때.

    시험이 끝나면 밤늦게 몰래 훔쳐 마시는 거다.

     

    “쥐방울아. 조난당할 걱정은 안 하냐? 선두는 벌써 보이지도 않는데.”

    “추적하면 되잖아요.”

     

    힌트는 잔뜩 있다.

     

    [선발대의 발자국을 찾았습니다.]

    [관찰 경험치+2]

    [추적 경험치+1]

     

    [흙발로 밟은 나뭇잎을 찾았습니다.]

    [관찰 경험치+3]

    [추적 경험치+1]

     

    [칼로 베인 덤불과 나뭇가지를 찾았습니다.]

    [관찰 경험치+1]

    [추적 경험치+1]

     

    아이트래킹으로 힌트를 발견할 때마다 착착 나아가던 추적 메커니즘 덕분에 힌트를 식별하고 쫓는 속도는 현실에서도 제법 쓸만하다.

    솔직히 말해서 추적 기능도 숨기 기능 못지않게 자신이 있다.

     

    “오. 쥐방울 녀석, 사냥경험이라도 있냐?”

    “당연히 있죠.”

    “네 덩치면 토끼라도 잡았나?”

    “뭐래요. 몬스터도 잡거든요? 가끔은 사람도, 앗.”

    “사람? 농담이지?”

    “다…당연히 농담이죠. 에헤헤.”

     

    휴. 갑분싸 될 뻔했네.

    아니, 이미 되버렸나?

    갑자기 찾아오는 정적에 분위기가 무겁다.

     

    [추적자들이 겁에 질려 도망갑니다.]

    [색적 경험치+1]

    [겁주기 경험치+3]

     

    이런.

    전투 경험치를 올리려고 했는데 말실수 때문에 필요 없는 기능만 올려버렸다.

     

    [위험한 기척이 멀어집니다.]

    [색적 경험치+1]

     

    덕분에 어떻게 쫓아내나 걱정하던 성가신 적도 단독으로 우리를 건드려보기는 포기했다.

    얻어걸리긴 했지만 솔직히 다행이다.

    단독행동하는 습격을 좋아하는 악성향 응시생은 손오천 급이라도 상당히 위험한 편이거든.

     

    “괜찮아. 이젠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고 오해라도 한 걸까.

    어째서인지 이사벨이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런 일이라니요? 아, 사냥? 저희도 습격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해야죠. 그래야 합격하는데.”

    “괜찮아. 그런 건 언니오빠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나야 편하면 좋긴 한데.

    그래도 안 돼!

     

    “그러다 언니가 다치면 어떡해요.”

     

    감동받았다는 얼굴로 가슴팍에 손을 얹고 소리 없이 발을 동동 구르는 이사벨.

    큭큭, 정말 순진한 사람이야.

    식품도감 수집을 도와야 할 요리사가 부상을 핑계로 힘든 요리를 기피하지 못하게 밑밥을 까는 줄도 모르고 감동이나 받기는.

    내 사악한 생각을 알면 깜짝 놀라겠지?

    이사벨은 그 뒤로도 먼 곳을 올려다보거나 가끔 소매로 눈가를 문질렀다.

     

    “이사벨 씨.”

    “언니라고 불러도 돼.”

    “언니. 울어요?”

    “아니.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

    “아아. 힘드시겠다.”

    “응.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이사벨은 바보인데다가 거짓말쟁이기까지 했다.

    여긴 꽃도 안 피는 숲인데.

    이후로도 엄청 눈가를 닦았거든.

     

     

    * *

     

     

    오크노디가 겪은 수련이 점점 구체화되었다.

    독 내성훈련.

    추적훈련.

    검술훈련과 궁술훈련.

    동물사냥은 물론이고 인간사냥 경험까지.

     

    ‘무조건 암살자 훈련이네.’

     

    빼도 박도 못한다.

    이건 무조건 암살자 훈련이다.

     

    “사냥이 뭐 별건가. 나도 그 나이 때에는 오크사냥도 다니고 그랬어.”

    “정말요?”

    “내가 잡은 사슴에 돌도끼 하나 꽂았다고 지가 잡았다고 우겨대지 뭐냐? 건방진 녀석들 골통에 그대로 다시 도끼를 박아줬지.”

     

    손오천이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애썼다.

    긴장이 풀린 오크노디가 웃으며 맞장구쳤다.

     

    “아, 그럴 때 짜증나죠.”

    “…쥐방울아, 너도 몇 놈 보내봤냐?”

    “도끼로는 아니고, 활로요.”

    “…….”

    “노, 농담이에요! 거짓말! 농담!”

    “…그으래애?”

     

    풀리기는커녕 더 어두워졌다.

    이사벨의 머릿속에선 벌써 오크노디의 비극적인 과거사가 한껏 펼쳐졌다.

    외딴 섬.

    함께 잡혀온 노예아이들.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는 아이는 오직 하나.

    함께 먹고 자랐던 아이들이 생존을 위해 서로에게 칼을 겨눠야 했던 비정한 시련.

    살인의 충격을 견뎌내고자 애써 즐거운 척 하며 끔찍했던 살인의 감각을 잊으려 애쓰는 오크노디.

     

    ‘이 아이, 너무 불쌍해…!’

     

    그런 불우한 과거를 겪고도 미처 다 사라지지 못한 천성이 자신을 도왔다.

    실은 사람 같은 거 죽이고 싶지 않은 주제에, 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죽였던 거겠지.

    저 낙천적이고 사람을 잘 따르는 아이의 모습은 그게 아니면 납득이 안 된다.

     

    “다들 이쯤에서 쉬었다가 가자. 냇물도 있고 몽구스 고기로 요리를 해먹기엔 여기가 제격이야.”

     

    고기라는 말에 군침을 흘리며 땔감을 모은다고 흩어지는 손오천과 오크노디.

     

    “지젤. 잠시만.”

    “네?”

    “두 분은 저 아이를 돕기 위해 함께 하는 거죠?”

    “티가 많이 났습니까?”

    “대충 어떤 사정이 있는 아이인지는 알았어. 상당히 불우한 과거를 지녔겠지.”

    “아이 앞에서는 너무 내색하지는 말아주십시오. 모처럼 해맑게 지내려 애쓰는 아이입니다. 웃음만큼은 지켜주고 싶습니다.”

    “이해해. 그러니 나도 돕고 싶어.”

    “진심이십니까?”

    “어차피 한 번 빚진 목숨이야. 소중한 모험단 동료들도 구해줬어. 저 아이의 배후가 두렵긴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도움이 되어주고 싶어.”

    “그렇게까지 각오를 다지셨다면야, 제가 말린다고 물러서지는 않겠군요.”

     

    지젤은 집사와 메이드, 여정 중에 보았던 오크노디의 이상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가…… 비행정에서도 가볍게 경비들을 따돌릴 정도였다니.”

    “그러는 이사벨 씨도 만만찮은 과거를 보내신 것 같군요.”

    “아, 이거?”

     

    대화를 들으면서도 묵묵히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도려내며 고기를 추려낸 이사벨.

    뛰어난 도축솜씨를 눈여겨보는 시선에 이사벨이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그 아이랑은 달라. 난 올해로 18살이나 됐고, 모험단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자발적으로 선배들을 졸라서 배운 기술이니까.”

    “그렇습니까.”

    “내 입장에서는 지젤, 당신이야말로 신기한 사람인데. 그 배낭 안에 아이템을 엄청나게 가지고 있잖아. 모기가 싫다는 말에 벌레퇴치 향을 묻혔지?”

    “으음, 제 과거는 그리 떳떳하지는 못합니다. 티켓암상인이었으니까요.”

    “티켓암상인? 용케도 시험을 볼 생각을 했네. 골드티켓 한 장이면 판매가가 꽤 될 텐데.”

    “하하. 그보단 더 배가 아픕니다. 플래티넘 티켓을 썼으니까요.”

    “플래티넘을?!”

     

    모험단의 모두와 함께 여러 시험관들을 찾아가 티켓을 모았던 이사벨도 플래티넘 티켓은 단 한 번도 입수하지 못했다.

     

    “당신, 설마 해서 묻는 거지만 수상한 꿍꿍이를 품고 그 아이 곁에 머무르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귀족가의 암살영재로 키워진 아이입니다. 거기에 손을 대다니, 암상인에게도 목숨이 몇 개라도 부족할 짓입니다.”

    “…피차 굉장한 아이를 알게 되어서 큰일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과거야 아무렴 어떤가.

    오크노디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같을진대.

    이사벨은 지젤과 사이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둘이 사귀는 걸까요?”

    “나한테 묻지 마라, 쥐방울아.”

    “눈치껏 한 시간쯤 더 돌다가 올까요?”

    “으음, 그래야 하나?”

    “두 분. 장작 모아왔으면 헛소리 그만 하고 얼른 오십쇼.”

     

    덤불 뒤에 숨어 지켜보던 두 사람을 웃는 낯으로 부르는 지젤.

    노골적으로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이사벨도 그만 피식 웃었다.

     

     

    * *

     

     

    [요리도감에 일반요리 <갈색 꼬리 수액절임 몽구스 구이>가 수집되었습니다.]

     

    모험단 활동으로 단련된 이사벨 씨의 요리실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행복해…!”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네.”

     

    흐뭇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이사벨.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이사벨의 얼굴을 역으로 구경하기도 잠시.

     

    “꽤 많이 오는데.”

    “모닥불을 보고 찾아왔나봅니다.”

     

    남자들의 말대로 상당히 많은 응시생들이 우리 쪽으로 모여들었다.

     

    “얘들 봐, 고기를 구워먹었어.”

    “불까지 피웠다고?”

    “크크, 굉장하잖아. 이 여유.”

     

    커다란 키에 고급스러운 복장.

    지난 1차 관문에서 본 적 있는 모습들이었다.

     

    “서부귀족연합 여러분이 이곳에는 무슨 볼일이십니까?”

    “용건은 잘 생각해서 말하라고.”

     

    입으로는 웃지만 눈은 웃지 않는 지젤.

    봉을 들고 일어서며 거대한 덩치를 과시하는 손오천.

    두 남자의 기세에 귀족들이 움찔하며 물러섰다.

     

    “오해다. 우린 싸우러 온 게 아니야.”

    “싸우러 온 게 아니면?”

     

    긴장감 넘치는 대치 끝에 귀족연합 응시생들이 입을 열었다.

     

    “모닥불 피우는 법 좀 알려줘.”

    “우리도 고기 먹고 싶어.”

    “매트리스가 없어서 잠을 못자겠어. 힝.”

    “다 필요없으니까 제발 모기 좀 쫓아줘. 모기 때문에 미칠 것 같아!”

    “…….”

     

    도련님아가씨들의 용건은 ‘도와주세요’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찮지만 커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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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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