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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가슴이 콩닥거렸다. 귀 바로 옆에다 심장을 가져다 대고 있는 듯 크게 울렸다. 멍하니 가슴에 손을 올리자 소리가 더욱 강해졌다.

     

    에이든은 멍하니 손잡이만 남은 검과 널브러진 검날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직 현실이 인지되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스스로가 왜 졌는지 이해가 안 가는 모습. 이해야 간다. 자기 입장에서는 질 리가 없는 싸움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이건 원래라면 내가 질 싸움이었다. 스펙상으로도, 단순 기량으로도 내가 지는 게 당연한 싸움이었다.

     

    만약 에이든이 처음부터 전력으로 덤볐다면… 아니, 이것까지 갈 필요도 없다.

     

    강기를 쓰지 않고, 강체도 쓰지 않은 채로, 그냥 단순 신체능력과 기량을 앞세웠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계속 수세에 몰리다가 패배했을 거다.

     

    강체와 강기. 둘 모두를 정상적으로 운용하기에는 내 마력량이 부족하다. 방금 전의 대련만 해도 그렇다. 강기를 잠깐 발현한 것뿐인데도, 상당한 마력이 소모됐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손자병법에 나오던 구절 중 하나였던가.

     

    적과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는 뜻이라고 기억했다.

     

    이 대련에서 에이든은 나를 몰랐다.

     

    내가 아트라 교수에게 어떤 훈련을 받으며 얼마나 성장했는지, 내 공간지각이 어디까지 파악할 수 있는지를, 내가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를, 강체와 강기를 사용할 수 있는지를 몰랐다.

     

    물론 모르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에이든의 신체수준을 몰랐다. 고유능력의 유무도, 존재한다면 어떤 계열인지, 얼마나 강력한 능력인지, 강체와 강기는 체득했겠지만 얼마나 강력한지를 몰랐다.

     

    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나는 나름 원작의 지식이 있었고, 에이든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에이든이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알았다. 손대중하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고유능력, 강체와 강기를 쓰지 않을 거로 예측했고 들어맞았다.

     

    그래서 나를 숨겼고, 방심하고 있을 때, 한순간에 드러내 몰아쳤다.

     

    그 결과 이겼다. 에이든은 방심하고 손대중을 한 탓에, 한순간의 실수로 당연한 승리를 상납했다.

     

    다시 싸운다면 무조건 질 거다. 지금 상태로 백번 싸우면 아마 백번 질 거다.

     

    그만큼 나와 에이든 사이에 실력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겼다.

     

    설계한 대로 흘러갔다. 예상한 것이 적중하여 승리했다. 패배해도 괜찮았지만, 그래도 승리했다.

     

    그래서인지 기분이 쪼오끔 좋았다. 그래도 나도 사람인지라, 지는 것보다는 이기는 것이 좋은 것일까.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에이든을 뒤로하고 공간지각을 정상적으로 넓혔다. 그제야 대련장 주변에 포진해있는 생도들이 보였다.

     

    그들도 에이든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뭐랄까, 바보 같은 표정? 충격받은 표정?

     

    놀랍다는 듯 눈을 반짝이는 백아린도 보였다. 저 사람은… 조금 부담스럽다.

     

    홍연화도 보였다.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아름다운 빨간색 눈이 깜빡거렸다. 입은 날벌레라도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벌어져 있었다.

     

    그만큼 충격받은 듯한 모습이다.

     

    자뭇 유쾌한 기분이다.

     

    내가 계속 주변을 배회하며 배려해 줄 필요 없다고, 고유능력 덕분에 앞뒤좌우 잘 보인다고 거듭 말해도 딱히 귀담아듣지 않아 불만이었는데,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방금 전까지는 감정을 가라앉혀서 서늘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가슴이 붕 뜨는 기분이다.

     

    입꼬리가 씰룩였다. 입가에 히죽 웃음이 걸렸다.

     

    ‘히히.’

     

    기분이 고양돼서 그런지, 평소에는 하지 않을 행동을 취했다.

     

    홍연화를 향해 한쪽 손을 들었다. 검지와 중지를 활짝 펼치고, 남은 손가락을 접었다.

    ‘브이.’

     

    말을 할 수는 없어, 입 모양으로 전했다. 이런 식으로 소통하는 것은 어렵지만, 홍연화 정도 되는 초인이라면 입 모양으로도 알아듣지 않을까.

     

    홍연화의 반응이 변했다.

     

    입이 더 벌어졌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뺨이 빨갛게 물들었다.

     

    …왜 저래?

     

    .

    .

    .

     

     

    『실용검술기초』 시간이 끝나고 점심은 적당히 때웠다.

     

    오늘은 홍연화가 따로 일이 있다기에 혼자서 영양바로 끼니를 해결했다.

    간편하고 영양도 충족할 수 있다. 양이 부족한 것은 개수를 늘리는 것으로 커버가 가능하다. 영양소가 부족하다면 다른 영양제를 챙겨 먹으면 된다.

     

    홍연화가 점심을 같이 먹자며 식당에 데려가면, 먹기야 먹는다. 먹어봤자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아 불쾌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이니 열심히 먹는다.

     

    미각에 대해서는 아직도 말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도저히 정답을 모르겠다.

     

    사실 굳이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얀 거짓말처럼 내가 삼키고 있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까.

     

    …아니, 사실은 그냥 말하는 것이 불편할 뿐이었다. 홍연화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지만, 자신을 지금까지 속인 거냐며 내게 실망할까 말하기 두려웠다.

     

    게다가 이건 엄밀히 말해서 장애가 아니라 저주다.

     

    감각봉인의 저주. 이것만 풀면 해결되는 일이다. 내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도, 단명과 감각봉인은 언젠가는 해주(解呪) 할 거다.

     

    그때가서 뻘쭘하게 이제 맛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숨기고 있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터덜터덜 구식 연무장으로 걸어가며 점심을 해결했다.

     

    “……”

     

    짐꾸러미에 가득 담긴 영양바를 우물거리며 도착한 연무장. 미리 도착해있는 아트라 교수와 마주쳤다.

     

    시선이 오물거리는 내 입과 손에 쥔 영양바, 짐꾸러미에서 삐져나온 영양바 껍데기를 오갔다.

     

    .

    .

    .

     

    “식사는 제대로 챙겨 먹어라. 몸을 쓰는 초인이 밥을 그렇게 대충 해결하는 게 말이나 되겠나.”

     

    [네]

     

    그리고 꾸중을 들었다.

     

    눈썹을 찌푸린 아트라 교수에게 꾸중과 조언을 들었다. 몸을 만드는데 재료가 그렇게 들어가면 몸이 만들어 지겠냐, 챙겨 먹을 때는 이런 것도 챙겨 먹어라.

     

    꾸중 뒤로 꽤 그럴듯한 조언도 함께했다.

     

    아트라 교수의 훈련은 대부분 이런 방식이다.

        

    아트라 교수의 방식은 험하고 힘들었다. 태도도 무뚝뚝한 탓에 사람의 미움을 받기 좋은 유형이었다.

     

    하지만 나는 딱히 아트라 교수를 미워하지 않았다.

     

    태도는 저래도, 나를 대충 가르치지는 않았다. 투박하기는 하지만 교육에 성실히 임하고 있었다.

     

    뭔가 못마땅한 감정은 있었지만, 그것이 크지도 않았고 내게만 향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악감정을 가지고 회복수련이라는 명목으로 나를 두들겨 팬 것이 아닐지 의심이 있었지만, 실제로 몸의 회복력이 늘고 있는 걸 체감하고 있다.

     

    – 까가각…!

     

    오늘의 무기는 장도(長刀)였다.

     

    이전의 쓰던 검은 날이 양쪽으로 달려있었는데, 지금은 날이 한쪽으로만 서 있고 비교적 길쭉했다.

     

    검을 휘둘렀다. 손잡이를 잡고, 힘을 주어 움직인다. 검날이 길게 그어진다. 선이 끝나기 전에 또 다른 선을 그린다.

     

    까가각! 땅에 길죽한 검상을 남긴 장도가 솟구친다. 미약하게 발현한 강체술로 가속한 움직임.

    – 까앙!

     

    손이 거칠게 튕겨 나왔다. 장도가 핑그르르 회전하며 땅에 푹 박혔다. 어느새 목에는 투박한 나무 장도가 겨눠져 있었다.

     

    “방어에 비해 공격이 서툴다. 계속 지적해온 부분이지. 착실히 늘어나고는 있다만, 계속 신경 쓰고 있도록.”

     

    무심하게 말하는 아트라 교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로 만든 장도를 회수하는 아트라 교수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철푸덕 엎어졌다.

     

    오늘도 엉망진창으로 털렸다. 기량이 상승하면서 두들겨 맞는 일은 줄었지만, 그 이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탓에 피로는 여전했다.

     

    “시끌벅적하더군, 특례입학생이 전투 전공 생도를 검으로 꺾었다고.”

     

    멍하니 호흡을 가다듬고 있자 힐끔 이쪽을 훑은 아트라 교수가 무심하게 말했다.

     

    누은채로 귀를 쫑긋 세우자 아트라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느낀 바가 있나?”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말하기 전에 네가 생각하고 말해보라는 뜻인가 보다.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지금 내 수준은 감을 잡았어.’

     

    아직 부족하기는 하지만, 전투 전공 생도의 발끝까지는 따라붙었다.

     

    놀라운 일이다.

     

    팔방미인. 만능계열의 고유능력.

     

    팔방미인(八方美人)을 직접 써본 적은 없지만, 비슷하게 만능계열 고유능력을 사용한 회차는 있었다.

     

    때문에 만능계열의 단점을 잘 알고 있다.

     

    장점은 다양한 분야의 숙련도 보정 및 성장.

    단점은 다양한 분야의 한계치가 어정쩡하다는 것.

     

    검과 창, 도, 도끼, 둔기. 다양한 무기를 다룰 줄 안다고 해도, 그중 하나에만 투자한 이에게는 결국 진다.

     

    만능계열이 여럿에 숙련도를 분산하는 동안, 단일 기술계열 고유능력은 고유성을 성립시키고 끝내 확장능력을 이루어 일반적인 법칙에서 벗어나고는 한다.

     

    그래서 팔방미인은 어중간한 고유능력이라고 깠다. 팔방미인을 굳이 가져온 이유는, 공간지각과 마력친화라는 두 가지의 고유능력이 추가로 있기 때문이다.

     

    하나만 가져올 수 있었다면, 절대로 팔방미인은 가져오지 않았을 거다.

     

    대련이 끝난 뒤 에이든의 고유능력을 들었다.

     

    검술기예… 요컨대 기술, 검술계열의 고유능력.

     

    이상한 일이다. 팔방미인으로 익힌 검으로 검술계열 고유능력이 쥐고 있는 검을 이긴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숙련도마저 저쪽이 압도적으로 높다. 검을 잡아온 시간도 그렇다.

     

    요행이 있었다. 하지만 그를 고려해도 이상했다. 내가 벌써 에이든의 발끝까지 따라잡았다는 것이니까.

     

    ‘시너지.’

     

    공간지각, 마력친화, 팔방미인.

     

    세 가지 고유능력이 함께 존재하며, 서로에게 주는 긍정적인 영향.

     

    이유는 그것밖에 없지. 요행도 큰 요소지만, 시너지 덕분에 발끝까지 성장하지 못했다면 요행은 의미를 잃었을 것이다.

     

    [운이 좋아 이겼지만, 애당초 기본기가 달랐습니다. 다시 싸우면 무조건 질 것 같습니다.]

     

    “들었다. 상대의 방심을 연이어 찔러 승리했다고. 전략은 훌륭했다. 상대의 빈틈을 파고든 것도 괜찮았다.”

     

    웬일로 칭찬이 돌아왔다. 요행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승리했다는 부분이 기꺼운 모양이다.

     

    나는 힐끔 공간지각으로 아트라 교수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의 무심한 표정이다. 이젠 아트라 교수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하지만 방금 한순간 표정 아래로 감정이 꿈틀거린 순간이 있었다.

     

    방심이라고 말한 부분.

     

    “하지만 오늘의 결과는 결국 방심으로 일어난 결과다. 상대가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이번과 같은 결과는 불가능했을 거다.”

     

    아트라 교수와 만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지만, 하루의 상당 시간을 계속 부대끼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대화하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아트라 교수는 철저히 가르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에, 살가움과는 거리가 먼, 초인과 전투 따위와 관련된 주제가 주로 입에 올라왔다.

     

    아트라 교수는 방심을 극히 혐오했다. 만약 나중에 내가 방심 탓에 대련에서 패배한다면, 아트라 교수가 손수 나를 패 죽일지도 모른다.

     

    방심이라는 키워드에 미약하게 얼굴을 구긴 아트라 교수에게 몇 시간 전 대련의 피드백을 받았다.

     

    에이든과 벌였던 대련의 전개를 말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조금 전 아트라 교수 본인과의 대련에 대한 평가와 지적도 함께였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어느새 전공강의가 끝날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군. 오늘은 여기까지다.”

     

    시간을 확인한 아트라 교수가 강의의 종료를 선언했다. 그리고 물병을 머리맡에 놓은 뒤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아트라 교수 나름의 배려다. 정말 끝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뜻이다.

     

    나는 할 말 없다며 고개를 저으려다가, 혹시나 싶어 스마트워치를 두드렸다.

     

    [다음 주 월, 화는 던전공략 실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못 나옵니다.]

     

    “…그래.”

     

    미세한 차이였지만, 아트라 교수의 표정이 변화했다.

     

    아트라 교수는 던전이라는 주제를 정말 싫어한다. 정확히는 내게 티를 내지 않았지만, 공간지각이 멋대로 잡아낸 거다.

     

    혹시나 싶어 말해봤다. 개설한 강의는 없지만, 명색이 교수다. 아마 일정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그렇게 전달한 뒤 다시 몸을 뉘었다. 잠시만 휴식을 취한 뒤에 도서관으로 향할 생각이다.

     

    “…?”

     

    조용히 마력을 조율하며 멍하니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작 떠났어야 할 아트라 교수가 제자리에서 서 있었다.

     

    뭔가 싶어 공간지각으로 보자, 무언가 고민에 잠긴 기색이 훤히 보이는 아트라 교수가 있었다.

     

    [교수님?]

     

    “…아무것도 아니다.”

     

    의아해하며 묻자 잠시 이쪽을 힐끗 쳐다본 아트라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내 등을 돌려 공간지각의 범위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왜 저러신담.

     

    잠시 추리해봤지만, 어찌 알 도리가 없다. 나는 고개를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서관에서 마법 서적을 탐닉할 차례였다.

     

    .

    .

    .

     

    다음날. 전공강의 시간.

     

    “받아라.”

     

    아트라 교수는 수십 권은 가뿐히 될법한 양의 도서를 내게 넘겼다. 모두 던전과 관련된 도서였다.

     

    다른 한쪽 짐꾸러미에는 온갖 마도구가 담겨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던전에서 사용하는 마도구였다.

     

    “오늘과 내일은 던전에 관한 강의를 진행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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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아카데미 장애인 전형 생도가 되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created a game character.
Instead of taking several perks, I added restrictions.

▶Restriction (I): “Curse of Sensory Seal”
─Permanently seals a chosen sense.
─Choice: Sight, Taste, Smell

▶Restriction (II): “Curse of Short Life”
─You are born with a body doomed to a short life.

▶Restriction (III): “Curse of Silence”
─Speaking causes you pain.

When the next day came, I couldn’t se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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