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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

       중세의 전쟁터를 구른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열악한 보급과 마주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풍족한 식사는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

       

       말라비틀어진 야채.

       

       이빨이 깨질 정도로 딱딱해 침을 묻혀가며 먹어야 하는 빵.

       

       누린내 나는, 이빨에 오러를 씌워야 겨우 뜯어먹을 수 있는 육포.

       

       그는 전장에서 살아남기위해 거들떠 보지 않던 것들을 꾸역꾸역 먹어치우며 살아남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눈 앞에서 산해진미가 못 먹을 음식이 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

        그는 사람을 떨어트린 개만도 못한 놈을 찾아 2층으로 올라갔다.

        ​

        “형씨, 여기서 이…러…지나가십쇼!”

        ​

        살기를 풀풀 날리며 올라오는 윌리엄의 모습에 객잔의 점소이들이 그를 제지하고자 나섰지만, 윌리엄의 눈빛 한 번에 꼬리말은 개처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괜히 앞을 막아섰다간 저 숟가락이 정수리에 꽂힐 것 같았으니까.

        ​

        ‘저놈인가.’

        ​

        그의 시선이 객잔 2층 구석에 닿았다. 얇은 천으로 가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특등석이 있는 자리. 지금 그 특등석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지고 있었다.

        ​

        윌리엄은 그곳에 시선을 못 박아둔 채로 걷기 시작했다.

        ​

        터벅 터벅 터벅…

        ​

        소란스러운 특등석과는 다르게, 바깥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

        윌리엄이 뿜어내고 있는 진득한 살기 때문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과호흡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숨을 헐떡이기까지 하는 상태.

        ​

        그가 소란을 피우는 특등석으로 향하는 것을 눈치챈 손님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반으로 갈려져서 눈치를 보았다. 개중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보는 자도 있었다.

        ​

        ‘색목인…?’

        ​

        ‘기도가 무시무시하군.’

        ​

        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윌리엄은 그런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채,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 천을 휙 걷어냈다.

        ​

        그는 숟가락을 굳게 쥔 채로 아직도 눈치 없이 싸움을 벌이는 손놈들을 노려보았다. 이제 막 약관이 지난 청년 여섯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

        그들은 서로 뒤엉켜 주먹질을 벌이고 있었다.

        ​

        윌리엄은 눈을 굴려 상황을 살폈다.

        ​

        ‘2대 4인가.’

        ​

        “넌 또 뭐야?”

        ​

        여섯은 흥분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반쯤 풀린 것이 영락없이 주정뱅이의 모습이었기에 윌리엄은 혀를 찼다.

        ​

        ‘술 먹고 난동을 피운 건가.’

        ​

        “이 덩치만 큰 원숭이 새끼가, 내가 물었잖-”

        ​

        그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윌리엄이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으니까.

        ​

        “네가 사람을 날려버린 놈이냐?”

        ​

        “야, 야! 이 멀대 새끼가, 이거 안놔? 내가 누군 줄 알고? 너도 그 새끼처럼 날려줄까?”

        ​

        윌리엄의 시선이 멱살이 잡힌 양아치가 들어 올린 손으로 향했다. 미세하지만 내공이 느껴지니, 양아치 주제에 꽤 배웠다고 윌리엄은 생각했다.

        ​

        “네가 누군지는 관심 없다. 지금부터 넌 나한테 밥상머리 교육을 받을 놈이 될 테니까.”

        ​

        “뭐?”

        ​

        윌리엄의 팔이 순식간에 잔상을 그리며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졌다. 자연스럽게 그의 손에 멱살이 잡혀있던 양아치의 얼굴이 식탁에 처박혔다.

        ​

        “양건아!”

        ​

        “이 새꺄! 뒤지고 싶어? 우리가 누군 줄 알고-”

        ​

        “말이 많다.”

        ​

        윌리엄이 입을 나불거리는 놈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신묘한 무리 따위는 없는, 단순한 손짓. 양아치의 친구는 곧바로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냈다.

        ​

        ‘이 색목인 새끼가 분수도 모르고…’

        ​

        정상적인 사고였다면 그의 친구가 손도 못 쓰고 식탁에 얼굴을 처박은 신세가 됐을 때 눈치를 챘겠지만, 이미 개가 된 그에게는 그런 사고회로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

        이윽고, 친구의 손에서 금나수법이 펼쳐졌다.

        ​

        은형수.

        ​

        그가 장기로 여기는 수법이었다. 그의 손이 곡선을 그리며 회전하며 윌리엄의 손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

        ‘잔재주를 부리는군.’

        ​

        잔재주는 강한 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

        ​

        윌리엄은 손에 오러를 둘러 그에게 다가오는 손을 손등으로 쳐냈다.

        ​

        당연하게도, 오러에 휩싸인 손을 한낱 양아치의 실력으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아악! 내 손!”

        ​

        그가 손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은 마치 몽둥이로 맞은 듯 퉁퉁 부어올라서 한눈에 보기에도 부러졌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

        “하나같이 버릇이 없군.”

        ​

        “저, 저는 아닙니다! 대, 대협!”

        ​

        “저, 저도 아닙니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치를 보던 비교적 멀쩡한 양아치들이 기립하며 외쳤다. 흡사 군기가 잘 든 신병 같은 모습이었다.

        ​

        윌리엄은 관심 없다는 듯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그가 가장 먼저 식탁에 얼굴을 박아버린 청년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렸다.

        ​

        양건이라는 이름의 양아치는 양 콧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눈을 까뒤집은 채였다. 

        ​

        “버릇없는 놈 버릇은 고쳐줘야겠지.”

        ​

        “그, 그렇습죠! 대협!”

        ​

        양건의 친구인 뚱뚱한 양아치가 눈 밖에 나갈 세라 손을 비비며 오랜 세월 단련한 아부를 펼쳤다.

        ​

        양아치들의 대장인 석양건과 부대끼며 자연스럽게 늘어난 삶의 지혜는 다행스럽게도 그를 생명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

        “저, 저희는 이제-”

        ​

        “착석.”

        ​

        “예!”

        ​

        서로 싸우던 양아치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순한 양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가장 먼저 입을 열었던 뚱뚱한 양아치에게 명령했다.

        ​

        “너.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라.”

        ​

        윌리엄은 그렇게 말하곤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양건을 뒤집더니, 식탁 위에 그의 머리가 올라가게 했다. 그 행동에 모두가 의아함을 느낄 찰나, 윌리엄이 품에서 숟가락을 꺼내 약건의 이마에 갖다 댔다.

        ​

        ‘저걸로 뭘 하려는…?’

        ​

        딱!

        ​

        “으악!”

        ​

        양건의 비명이 객잔 2층에 울려 퍼졌다. 1층에까지 비명이 들릴 정도라, 해남검문 일행은 급하게 2층으로 올라와 윌리엄을 찾았다.

        ​

        그러거나 말거나 윌리엄은 숟가락으로 양건의 이마를 연거푸 내려치기 시작했다.

        ​

        “아악! 내 이마! 그만! 그만해! 난 석가장의 석양…으악!”

        ​

        딱!

        ​

        딱!

        ​

        딱!

        ​

        윌리엄은 그가 뭐라고 지껄이건 간에 움직이지 못하게 가슴을 왼손으로 짓누른 채 이마를 숟가락으로 두들겼다.

       

       숟가락이 이마를 후려칠 때마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석양건의 머릿속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

        다른 것도 아니고 때린 물건이 고작 숟가락이었기에 이마가 벌겋게 변하는 것 외의 부상은 없다지만, 통증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기에 규칙적인 딱!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양건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

        윌리엄은 그가 비명을 지르든 말든 뚱뚱한 양아치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

        “무슨 일이 있었지?”

       

       

       딱!

       ​

        “아악!”

        ​

        ‘빨리 안 말하면 다음은 내가 될지도 몰라!’

        ​

        뚱뚱한 양아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겨우 입을 열어 사람을 2층에서 내던진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

        “어, 그게…”

       

       딱!

        ​

        뚱뚱한 양아치의 설명은 장황했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어서, 윌리엄은 리듬감 넘치는 숟가락 타격 100회를 막 넘어섰을 즈음에 모든 사정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

        “그러니까 너희들이 서문현에서 알아주는 가문인 석가장과 백가장의 자제와 그 친구들이고, 술을 먹다 시비가 붙어 쌈박질을 했다는 건가?”

        ​

        “마, 맞습니다!”

        ​

        “자랑이다 이 새끼들아.”

        ​

        “내 아버지가 이걸 알면…”

        ​

        “몇 대 더 맞고 싶나?”

        ​

        윌리엄이 양건의 눈앞에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그의 이마를 사정없이 두드리던 숟가락이 들이밀어지자, 양건은 기겁하며 외쳤다.

        ​

        “아, 아닙니다!”

        ​

        ‘더 맞으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

        “…위 대협?”

        ​

        상황이 얼추 정리된 것을 확인한 백 장로가 넌지시 그를 불렀다. 윌리엄은 그제야 화가 풀린 얼굴로 그를 돌아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 백장로님. 제가 분노를 주체하지 실례를 했군요.”

        ​

        “아닐세. 원래 젊은이들 버르장머리 고쳐주는 게 어른들이 할 일이지 않나?”

        ​

        ‘백, 백현 장로? 해남검문의 무인들도 같이? 해남검문이 왜 색목인이랑 같이…그리고 대협?’

        ​

        백장로의 시선이 석가장과 백가장의 사고뭉치들에게로 향했다. 윌리엄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소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던 백장로의 매서운 시선이 그들을 훑고 들어가자, 양아치들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

        “이 일은 백가장과 석가장에 정식으로 항의 할걸세.”

        ​

        “예?”

        ​

        “자네 아버지들이 이러라고 자네들을 키운 줄 아나?”

        ​

        “그, 그것만은!”

        ​

        손놈들의 얼굴이 시퍼래졌다.

        ​

        객잔에서 항의를 받는 것과, 서문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구파일방의 일각인 해남검문의 장로가 직접 항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으니까.

        ​

        심지어 백장로는 그들의 아버지와도 어느 정도 일면식이 있었다.

        ​

        ‘망했다!’

        ​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그들이 아무리 있는 집 자제라도 완벽하게 책을 잡힌 상황.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 처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돌아가서 처벌을 기다리거라. 황사장에게 수리비도 지불하고.”

        ​

        “예…”

        ​

        서문현의 양아치들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청류객잔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닐세. 모처럼의 만찬을 방해받아 화난 것은 나도 마찬가지니 말일세.”

        ​

        백장로는 허허 웃으며 그에게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제안을 건넸다. 윌리엄은 그의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이제 평화로운 식사를 할 수 있을 터.

        ​

        “색목인 고수라, 어디서 저런 사람이 튀어나온 거지? 이봐, 자네는 뭐 아는 거 있나?”

       

       “내가 알면 입을 다물고 있겠나? 내가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입이 근질거려서 못 참는 거 다 알지 않나?”

       

       “하긴, 그랬었지.”

        ​

       “해남검문이랑 연이 있는 색목인이라니, 신기하구먼.”

       ​

        “백장로께서 대협이라 했으니 해남검문에 은을 입힌 거 아닐까?”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2층의 손님들이 1층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색목인을 흘끔거리며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서문현에 해남검문의 무인들과 함께 나타난 색목인에 대한 소문이 바람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서역의 숟가락 살인마(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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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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