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났네.”
아카데미로 들어가는 입구 중 하나인 동쪽 문에 도착하니 상태가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마수는 땅속에서 연성되어 나왔다. 그 때문에 도로 여기저기가 파여있는 채였다. 복구작업을 하려면 거진 일주일은 써야 할 듯싶었다.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로테의 보호를 받으며 동쪽 문으로부터 노천극장까지 달렸다. 숨이 가빠왔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씨발, 내 등록금.
도서관 열람실에서 죽치려고 했던 내 아름다운 첫날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이래서야 학술 동아리를 알아보려던 예정도 더 뒤로 미뤄지게 생겼다.
그만큼의 시간 손실이 있다고 생각하니 이 사달을 일으킨 장본인을 한 대 때려먹여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려는 분노를 최대한 진정시키며 로테의 말에 집중했다.
“호르데 군이 널 반드시 데려오라고 얘기했어.”
“호르데? 그게 누군데?”
“버멜 호르데, 이번에 수석으로 입학한 엘프 남학생이야.”
설마 필기시험장에서 잠깐 눈 마주쳤던 걘가…?
우리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의 분수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교정 한가운데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어느 곳이 피해가 가장 큰지 알 수 있었다. 마수의 출몰이 가장 많은 지역은 노천극장이 있는 북쪽이리라.
분수대가 있는 중앙광장에는 헤를라인 선생님이 학생들을 모아 보호하는 중이었다.
사방에서 기갑공룡이 들이닥쳤다. 기껏해야 중급에서 상급에 해당하는 마수였기에 헤를라인 선생님의 골렘으로 다 때려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중요한 건 이들이 몰려오는 수와 방향이었다.
녀석들은 끊임없이, 팔방에서 다가온다. 그래도 퇴로 하나 없는 구석에서 막아내는 것보다는 이 편이 나았다.
‘인사치레’ 치고는 깽판이 심했다. 처음에는 수십 마리에 불과했던 강철의 산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백에서 수천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헤를라인을 포함한 현 교수진의 역할은 ‘부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전투교리에선 전자보다 후자가 어려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만일 수백 명에 달하는 학생 중 하나라도 상해를 입는다면 큰 문제로 번지리라.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있어선 안 된다. 그 점이 헤를라인 선생님에게는 큰 짐일 것이다.
다행히도 그 짐을 덜어줄 학생이 없는 건 아니었다.
“고개 숙여, 멍청이들아!”
대전차무기를 손에 쥐고 있던 꼬맹이가 후방에서 뛰어오는 드레이크 세 마리를 순식간에 시체로 만들어버렸다.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폭음과 함께 드레이크는 두 동강이 났다.
“저건 또 어디서 난 거야?”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반으로 갈라진 사체에 손을 뻗은 프레이가 그 시체를 매개로 또 다른 대전차무기를 만들어냈으니까.
저런 식으로 화기를 연성하는 것으로 보아 일단 지계마도에 속하기는 할 텐데…. 무언가 이질적이었다.
“헤를라인 선생님!”
엘프 남학생이 중앙광장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 옆에는 눈매가 사나운 여학생 한 명이 커다란 고드름을 들고 쫓아왔다.
[저 학생이 버멜 호르데인가 보네요.]
버멜과 나의 시선처리는 똑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한 번 흘겨본 뒤, 중앙 분수대로 눈길을 돌렸다.
지체할 시간 없었다. 이 사태를 멈추려면 당장 말해야 했다.
“분수대가 축조진의 중심이에요!”
“지금 분수대를 박살내야 해요!”
[어?]
얘 뭐야.
**
“너희들, 그게 정말이니?”
“네. 이쪽에 중심부가 있어요. 마수가 뜸한 지금 바로 물을 퍼내고 지반을 드러내야 해요.”
버멜 호르데는 일전의 필기시험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던 엘프 남학생이 맞았다. 붙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는데, 설마 얘가 수석 자리를 가져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엘프는 분수대에 축조진의 중심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축조진은 만든 사람이 알려주지 않으면 탐지마법으로도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다. 나도 구축자 본인에게 들어서 안 건데 얘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 점이 의문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일단은 넘어가고 원래의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수석과 차석이 동시에 같은 말을 하다니…. 좋아. 시도해 볼 만 하겠는걸.”
우리의 말을 들은 헤를라인 선생님은 골렘을 동원해 분수대째로 날려보냈다. 지반이 살짝 내려앉았고,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깊게 파인 홈으로 실제 축조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있었잖아!”
분수대를 파낸 곳에선 탄화수소 타는 냄새가 났다. 열기가 순식간에 뿜어져나왔는지라 얼굴이 후끈거렸다. 계속된 축조로 발열이 심해서 이런 것이다.
[과연, 냉각을 위해 일부러 분수대 밑에 중심부를 둔 거로군요.]
그때 버멜이 한 가지를 요청해왔다.
“네가 이걸 좀 해결해줘.”
그 말뜻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다.
축조진 같은 다중 연성식을 해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연성식을 시한폭탄 해체하듯 조심스레 해석해서 제거하는 방법이 첫 번째였고, 아예 회로를 외부에서부터 파괴해서 기능 자체를 못 하게 만드는 방법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안전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면에 두 번째는 빠르지만 위험성이 크다. 숙련되지 않은 사람이 축조진을 강제로 해체하려다가 잘못하면 폭발한다.
그러나 축조진 또한 어디까지나 회로.
[이 축조진을 해체하는데 두 개 정도만 알면 충분해요.]
[□ 제반 이론]
[키르히호프 전기회로 법칙 (조건 충족)]
[테브난 정리 (조건 충족)]
복잡한 회로를 등가회로로 간단히 만든 뒤 여기서 마류를 조작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아까 쓰려다 만 마력 받아가세요.]
나는 양장본으로부터 100시버트에 달하는 마력을 인가받아 스태프로 모았다.
차징(Charging)은 길지 않았다. 오히려 로테와 싸울 때보다 시간이 훨 단축되었을 정도로 운용 효율이 높아진 것이 느껴졌다.
근래 한 달간 아르바이트만 한 건 아니었다. 그동안 기술을 더 가다듬었다. 이제 와서는 원하는 방향에만 원하는 만큼 마력으로 된 EMP를 먹일 수 있는 수준까지 올랐다.
그러니 예전처럼 아이들의 마나 회로가 정지한다거나, 멀쩡히 돌아다니던 골렘이 기능을 멈춘다거나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는다.
체감상 시간은 짧았다. 불과 3초도 되지 않은 시간으로부터 모든 마소를 스태프의 첨단으로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는 그대로 스태프의 끝을 마수가 만든 축조진에 내리꽂았다.
팔정도(八正道) 제1식(式).
“쇼트(Short Circuit).”
그 주문을 영창하면서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은 하나였다.
등록금 환불 좀 해줬으면.
**
축조진을 파괴한 뒤로 더 스폰되는 녀석은 없었다.
남아있는 마수를 교수진이 소탕하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다행히도 재산손괴와 경상자만 생겼을 뿐, 그 이상의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잠재적인 위협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사회의 판단으로 인해 우린 입학날부터 귀가조치를 받게 되었다.
학교에선 일처리를 개판으로 한 보상으로 학생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그나마 행정까지 최악인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틸레트는 재정난에 쪼들리는 상황이었는데,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일부 뱉어낸 것도 모자라 북부 섹터의 보수공사까지 해야 할 판이었다.
동부 5지구에 침입한 드레이크가 낸 피해 보상 여부는…. 뭐, 알아서들 하겠지.
결국 헤를라인 선생님의 집에서 하루를 더 묵게 되었다.
[오늘 진짜 다사다난했어요. 교실엔 발도 못 들였는데 왜 이리 피곤하죠?]
얼씨구. 책 주제에 피곤하시단다.
[그래도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죠. 주인님도 오늘 일로 새로운 사실을 아셨잖아요?]
“그래.”
오늘 아침 등교하려고 했을 때 내 앞을 막아선 변종 드레이크에 달린 스피커. 그 스피커로부터 전해져 온 목소리는 사람을 공포로 물들이는 힘을 지녔다.
아직까지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절멸급 마수라는 걸 반쯤 확신한다.
그 마수는 나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 모든 상황이 장난이라는 뉘앙스로 말을 이어나갔었다. 심지어 오늘의 일 전부를 ‘인사차 들린 것이다’라고까지 표현했다.
쉽게 말해 ‘이딴 건 시작에 불과하다’라는 협박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 제국은 반쯤 우리 수중에 떨어졌어.
“그 말이 제일 거슬리는데.”
제국은 절대군주제다. 모든 권력은 황제로부터 나와서, 황실과 귀족을 위해 쓰인다.
틸레트 아카데미라는 신분제의 틈새가 존재하지만, 그건 기이하게 돌아가고 있는 이 나라 내외의 정치구조를 떠받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 마수의 말대로라면 지금 제국은 사상누각의 상황이었다.
[이럴 가능성도 있어요. 사실 황실이나 그 측근 중에 마수가 숨어들었다든지.]
“그게 가능이나 해?”
[마수 중엔 인간형도 있어요. 그런 애들은 보통 재앙급 이상인데, 의태실력이 장난 아니죠. 인간 사회에 숨어들기 위해서라면 뭔 짓을 해서라도 알리바이를 만들어내는 애들이에요.]
그동안엔 무지성으로 돌아다니는 애들만 봐서 몰랐는데, 대화가 가능한 마수를 처음 만나자마자 이들이 쉽게 이길 수 있는 세력으로는 보이질 않았다. 상상 이상으로 똑똑한 녀석들이더라.
그냥 기계로만 볼 게 아니었다. 최첨단 인공지능이 탑재된 미래풍의 괴생명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 낫겠다.
문제는…. 그리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는 거.
진짜 인생 난이도 헬이다. 이거, 나 죽기 전에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기는 한 건가?
[가장 긴박한 건 절멸급을 격퇴할 방법을 찾는 거예요. 재앙급은 현직 마도사들이 어떻게든 쓰러뜨린다 쳐도, 걔들이 나타나면 대응할 수단이 현재로선 아예 없으니까요.]
제국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말이 허세가 아니라면, 절멸급 마수들은 인류를 얼마든지 멸망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적이 있어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포였다. 미지에 대한 공포. 당장의 마도공학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격퇴할 수 없는 상대가 여유롭게 다리를 꼰 채 어딘가에서 우릴 내려다보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스펠트 교수가 왜 플레어 개발에 미쳐 있었는지 전 좀 와닿네요. 그렇다고 그 년이 주인님에게 한 짓까지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요.]
살려면, 살아남아서 돌아가려면 절멸급에 대비할 방법 하나가 필요하다.
내가 지닌 지식을 총동원했을 때 떠오른 방법은 당장 한 가지였다.
“야, 중급 마도서부터는 쓰기 기능도 지원한다고 했지?”
[네. 자기가 원하는 마법을 개발하실 수 있어요. 화상 키보드를 띄울 테니 원하는 거 있으면 메모해 놓으세요.]
눈앞에 반투명한 가상 인터페이스가 띄워졌다. 판타지 세계에서 이런 걸 볼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이제 와서 놀랍지는 않았다. 이 또한 여신의 권능일 테니까.
[* 관리자 모드로 전환합니다.]
[부팅 중…….]
[TOOL : 현재 개발환경에서 새 고유마도를 개발합니다.]
[제반 이론 작성]
이하의 개발환경에서 첫 문단을 타이핑해 넣었다.
[□ 제반 이론 :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
[물질의 총 에너지 E는 로런츠 인자 γ와 질량 m, 그리고 빛의 속력 c를 제곱한 것의 곱과 동등하다. 에너지는 질량으로, 질량은 에너지로 환원할 수 있으며 물리학적 과정에서 결손된 질량만큼 에너지가 생성된다.]
[TIP : 핵무기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정리다.]
이 이론을 ‘마소─에너지 교환성 정리’로 확장하는 연구개발을 시도할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절멸에는 절멸로써 상대해야 하는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