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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하렌 왕실에서 호메로스 작가가 하렌 왕국 출신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전통적인 관점에서─, 호메로스 작가의 위대한 작품에서 하렌 왕국의 문화적 정신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했을뿐이다. 위대한 작가를 향한 나름의 경의를 표한 것이다.

       

       호메로스 작가 왕족설에 대해서는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라며 무시했고 말이다.

       

       그리고, 그 대답이 기자를 만나며 이렇게 왜곡되었다.

       

       

       [하렌 왕실 대변인, ‘호메로스’ 작가의 작품에서는 하렌 왕국의 전통과 문화 정신이 숨 쉬고 있어. 호메로스 작가 왕족설에 대해서는 묵묵부답.]

       

       

       사실, 언론을 통해 어떠한 발언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이 정도의 ‘재해석’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것이 제국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였다는 것이다.

       

       뒤늦게 킨더슬리 출판사에서 헛소문에 대해 정정하는 기사를 내보냈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해명조차 입맛에 맞추어 재해석했다.

       

       

       “하렌 왕국 출신이라는 걸 강렬하게 부정하는 걸 보니, 역시 출신을 숨겨야하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요! 설마, 하렌 왕국 왕실의 피를 이었다는 소문이 사실인 걸까요?”

       

       

       이러한 종류의 ‘왕실’과 관련된 소문에 대해, 하렌 왕실의 대변인 측이 무시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다.

       

       정말로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하렌 왕국 자체가 ‘왕실’의 일에 대해 무척 폐쇄적인 편이었다. 의회가 존재하는 입헌군주국인 제국과는 달리, 하렌 왕국은 왕이 동방 교회의 주교를 겸하는 종교적 지도자이자 국가의 세속적 주인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왕실’의 현 국왕은 나태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왕국을 방치하고 있었다.

       

       그러한 내외적인 사정들로 인해, 하렌 왕실은 외부의 소문 따위에 대응할 어떠한 역량도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의 체급과는 별개로, 외교적 여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게 이 참사의 원인이었다.

       

       킨더슬링 사장님이 면목이 없다는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자, 작가님, 이거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요. 방치해야지….”

       

       

       결국, 나는 이 소문에 대해 어떠한 대응을 하는 대신 사안 자체를 유기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내 ‘진짜’ 신분─, 프리덴 가주의 차남 에드라는 신분을 밝히면 이 소문 자체를 종식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건 아버지께서 기겁하실 것 같으니까.’

       

       

       나 자신이 귀찮아지는 건 별로 상관 없었지만, 아버지는 관심이 쏠리는 순간 본가를 버리고 탈주해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패륜아가 되고싶은 생각은 없으니 웬만하면 내 정체는 숨길 생각이다.

       

       어쩌면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몰랐다. 터무니없는 소문들이 몸집을 불릴수록, ‘진짜’ 내 정체가 알려질 가능성을 줄어들 테니까.

       

       

       “그럼, 사장님. 하렌 왕국 얘기는 이걸로 마치고, 다른 할 말이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아앗! 네! 그게 ‘하이덴 마법극단’에서 작가님의 작품을 공연으로 만들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요!”

       

       “공연이요?”

       “네! 사실, 다른 극단에서도 몇 가지 제안이 오기는 했는데, 하이덴 극단이 가장 규모도 크고 제안 내용도 가장 좋아서… 작가님께 일단을 말씀드려야할 것 같아서요.”

       

       

       하이덴 극단이라면 나도 공연을 몇 번 정도 본 적이 있었다.

       

       제국의 수도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극단이니까. 마법을 이용한 화려한 연출들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정작 극의 내용은… 음, 그리 좋은 평가를 주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그 부분은 평소처럼 사장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믿고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닷!”

       

       .

       .

       .

       

       나에 대한 소문─, 그러니까 ‘호메로스’라는 작가에 대한 여러 소문들과는 별개로.

       

       내가 표절한 작품들의 영향을 받은 소설들이 세상에 출판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받은─,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분위기의 소설들이 여럿 출판되기도 했다. 현실의 합리에서 벗어난 상징적이고 본성적인 예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문학이 꽃필 징조가 보이기도 했다.

       

       물론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나 문명적인 진보가 함께 이루어지지는 않은만큼, 어디까지나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변화에 불과했다.

       

       시적 언어에 집착하는 몇몇 소설들은 오히려 고전적인 ‘서사시’로의 회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건 그것대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오, 직접 새로운 소설을 썼다고요?”

       “네네네넷! 제, 제가 옛날부터 생각하던 이야기, 그, 애들한테 동화를 들려줬는데, 그게, 그, 글로 써서…. 헤헤….”

       

       

       롤스 카멜이 쓴 신기한 동화였다.

       

       

       “분량이 엄청 기네요?”

       “네, 네에…. 항상 아이들한테 들려주던 이야기를 전부 글로 적은 거라서요…. 요즘은 아이들이랑은 못 만났지만….”

       

       

       롤스 카멜의 동화에서는 반짝이는 지성과 아이 특유의 순수함이 느껴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는 조금 달랐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어떠한─, 이야기적 방향성이 느껴졌다. 주인공 중심 소설들처럼, 롤스 카멜의 이야기 속 아이는 여러 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모험과 충돌을 경험했다.

       

       너무 장황한 느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글이 무겁거나 현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를 위한 대하소설…이라는 느낌이네요.”

       “그, 그런가요? 헤헤….”

       

       “좋은 것 같아요. 굉장히.”

       

       

       이 소설이 내가 표절한 고전들처럼 성공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 글에 담겨있는 영감의 위대함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롤스 카멜’이라는 작가에게 해야할 말이란 분명했다.

       

       

       “이거, 출판하죠.”

       “네, 네네넷!”

       

       

       이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야했다.

       

       그 어떤 위대한 영감이 담긴 글이라고한들, 작가의 서랍 안에만 존재한다면 그건 작품이 될 수 없으니까.

       

       

       ‘킨더슬리 사장님이 좋아하시겠네.’

       

       

       나만큼이나 독서를 사랑하는 킨더슬리 사장님이다.

       

       그분께서 이 동화를 보고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눈에 보이는듯 선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좋아할 거다. 굉장히.

       

       .

       .

       .

       

       “연극을 보러가자고?”

       

       

       프리덴 본가.

       

       식사 자리에서, 형이 뜬금없는 제안을 해왔다.

       

       

       “어어. 네가 쓴 소설들이 죄다 연극이나 공연으로 만들어지는데, 정작 너는 관심도 없고 글만 쓰잖냐. 가끔씩은 기분 전환도 해야지.”

       “음, 연극에는 딱히 관심이 없어서….”

       

       “그래도 네 소설 원작인데 한번 보면 좋지 않겠어? 특히 요즘 하이덴 극단에서 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공연이, 굉장히 멋지기로 유명하더라.”

       “흐음….”

       

       

       확실히, 다른 문화예술계에서 내가 표절한 소설이 어떤 영향을 주고있는지 보는 것도 꽤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기분 전환도 될 테고.

       

       생각해보면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느낌이 없지 않았다. 문학을 발전시키겠다는 욕구가 너무 강했던 나머지 다른 일에는 소홀해졌던 것이다.

       

       즐길거리가 문학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참에 다른 취미를 만드는 것도 좋겠지.

       

       

       “그래. 같이 보러 가자.”

       “표는 내가 이미 예약해놨어. 너랑 같이 외출하는 거 되게 오랜만인 거 알아?”

       

       “…그런가?”

       

       

       아.

       

       아니, 음.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기 전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거의 없었구나….

       

       저녁 식사 자리를 빼면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따로 시간을 보낸 적이….

       

       어….

       

       그….

       

       없나…?

       

       

       “…아버지랑 어머니도 같이 가실래요?”

       “나는 됐다. 이 나이에 무슨 연극이냐. 너희들끼리 보러 가거라.”

       “후후, 나도 되었단다. 형제들끼리 좋은 시간 보내렴.”

       

       “아, 네.”

       

       

       …반성해야겠다.

       

       문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앞으로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야지.

       

       .

       .

       .

       

       마법 연극은 확실히 재미있었다.

       

       마치 정말로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환상 마법으로 만들어낸 풍경, 향기, 모든 것들이 마치 꿈처럼 몽환적이면서도 현실처럼 선명했다.

       

       어떤 장면은 기록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서, 그저 인상으로만 남기도 했다.

       

       고양이 없는 웃음같은 것들 말이다.

       

       이 세계가 ‘마법’이 실존하는 세계라는 사실을, 오늘처럼 강렬하게 실감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이 이어지며 배우들이 무대 위에 섰다. 배우들의 뒤로 지금까지 사용된 마법적 연출들이 파노라마처럼 왜곡된 모습으로 전시되었다.

       

       

       “연극 재미있었다. 그렇지?”

       “어…. 꼭 영화같더라.”

       

       “영화?”

       “아, 아니. 그런 게 있어.”

       

       “그런데 연극 중간에 난입했던 그 노인은 뭐였을까? 돈키호테 복장을 하고있던데.”

       “글쎄….”

       

       “좀 웃기더라. 지팡이로 환상을 베어내던데 그것도 연출이었나? 아무튼 되게 재미있었어.”

       “그치….”

       

       

       옆에서 에릭 형이 뭐라뭐라 감상을 늘어놓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충동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떠돌았다.

       

       결정은 빨랐다.

       

       

       “형, 나….”

       “응?”

       

       “희곡을 써야겠어…!”

       “…응?”

       

       

       바로 몇 시간 전에 문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반성한 참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저런 걸 보게 되면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문학사의 절반을 지배했던 전생의 희곡들…. 그 위대한 작품들을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취미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인생의 절반… 아니, 3분의 2 정도는 차지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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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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