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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히어로 아카데미, S급 히어로 84위. <운동량 보존>의 강찬석은 황당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잠에서 깨어난 그가 본 것은 낯선 천장이다.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지었나? 싶은 그에게 간호사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귀환자가 의식이 되찾은 것을 확인.’

       

        그게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이다. 듣기로는 그가 무려 일주일만에 잠에서 깨어났단다. ‘빌런’의 공작이라나 뭐라나.

       

        딱히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그야 개운히 잠을 잔 기분이었다. 그저 평소와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면 아무 문제도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서 나갈 수 없었다. 병원측에서는 혹시모를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어이.”

       

        적막이 감도는 병원의 2인실. 강찬석은 그의 맞은편 병석에 앉은 한 남자를 불렀다.

       

        척 보기에도 위험한 놈이다.

       

        무언가 권태가 가득한 눈빛과 무뚝뚝한 표정을 보고있으면 분명 강찬석 못지않은 상위 랭크의 능력자처럼 보였다.

       

        “왜.”

        “…….”

       

        곧장 짧은, 아주 짧은 대답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일었으나, 강찬석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프라이드.

       

        보통 상위 등급의 히어로가 갖는 프라이드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분명 그역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자이니 저런 프라이드를 가진 거겠지.

       

        “나는 S급 84위. 강찬석이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강찬석은 자신을 소개했다.

       

        이 따분한 병실에서 대화를 나눌 사람은 그가 전부니 한 행동이었다.

       

        “D등급, 임혜성.”

        “……?”

       

        그런데.

       

        곧장 믿기지 않는 소리가 강찬석의 귀에 울렸다.

       

        “D등급? 하! 이런 버러지 새끼가…….”

       

        강찬석의 면상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풍기는 분위기만 보았을 때는 무슨 랭커라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D등급이라고? 그 ‘순위’조차 없는 쓰레기가 자신에게 그런 말투를 썼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네가 죽고 싶어서 아주 환장을…….”

       

        똑똑똑!

       

        “……?”

       

        강찬석의 서슬퍼런 경고는 끝내 그에게 닿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적막한 병실 문에 대뜸 노크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끼이익!

       

        문이 열린다.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은 지적인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사내였다.

       

        “반갑습니다. 임혜성 님.”

        “……누구시죠?”

       

        면회인가?

       

        번듯한 브라운 계통의 양복에 금테 안경. 척 보기에도 ‘엘리트’ 같은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사내가 곧장 강찬석 앞의 ‘놈’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뭐야? 이 상황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작해야 D등급이다. 도대체 저런 무지렁이에게 고개를 숙일 이유가 있을까?

       

        “저는 협회 소속의 직원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승천전’에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찬석은 귀를 의심했다.

       

        승천전?

       

        그러니까 히어로와 히어로가 능력을 사용해 결투를 치르는, 그 행사에 저 D등급의 쓰레기를 참여시킬 생각인가?

       

        강찬석의 표정이 금새 허물어졌다.

       

        푸흡, 하고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걸 참아냈다. 저 남자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제대로 잘못 찾았다. 

       

        이 세상에 D등급에게 ‘승천전’ 참여를 제의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승천전?”

       

        더욱 황당한 것은 그 D등급이라던 임혜성이 턱을 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시원하게 욕을 한사발 박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매해 랭커마저 출전하는 행사에 제까짓게 뭐라고?

       

        “예. 협회에선 당신의 출전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협회, 협회라…….”

        “……?”

       

        헌데 무언가 이상했다.

       

        잠자코 대화를 들으면 저 안경잡이 사내는 무려 ‘히어로 협회’의 인물인 모양이다. 그런 그가 어째서 D등급의 능력자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거지……?

       

        콰아아앙!

       

        심각한 표정으로 병원 침대에 앉은 강찬석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내 문을 부술듯이 젖히며 나타나는 사람이 있었다.

       

        “허어억!”

       

        강찬석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온몸에 착 달라붙는 점프슈트.

        올백 머리에 얹은 고글.

        허리춤의 검집.

       

        과거의 그가 멀리서나 모았던, ‘근접전투계열’ 히어로의 꿈과 같은 존재.

       

        “시, 신속?!”

       

        <신속>의 최영웅이 나타났다.

       

        대뜸 예고없는 등장에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이 피어났으나,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히어로 세계에서 ‘랭커’는 그만큼 입지전적인 존재니까!

       

        문을 박차고 들어온 그가 무심하게 임혜성을 훑는다. 그러더니.

       

        “크하하하하!”

        “……!”

       

        병실에 쩌렁쩌렁 울리는 광소를 터뜨렸다.

       

        “아주 꼴이 좋군! 네놈이 언젠가 이런 꼴을 당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개소리 집어치워. 아픈게 아니라 혹시모를 변수를 예방하기 위해 입원한 거니까.”

        “큭큭! 과연 그럴까? 네 오만방자한 성격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네 덕분에 치유계열 능력자들이 아주 피곤하겠구나.”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꺼져.”

       

        나름 친근한 사이인 걸까?

       

        <신속>과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는 D등급 히어로, 임혜성의 모습에 입이 꾹 다물어졌다.

       

        ‘새,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인가?’

       

        웃기지 않나?

       

        D등급의 히어로는 이 히어로 아카데미에서도 최하층…… 아니, 그 최하층 보다 더 아래의 밑바닥인 존재다.

       

        그런 놈이 도대체 무슨 인연이 있었기에 <신속>과 저리 친근히 대화를 나누는 것인가!

       

        “음, 다른 면회객이 오실줄은 몰랐군요.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이곳에 온 이유는 그저 ‘승천전’ 참가를 부탁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진지하게 고민하겠습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앞서 나타났던 안경잡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병실을 나선다.

       

        이제 병실에 남은 사람은 D급의 임혜성, S급의 강찬석, <신속>이 유일한 상태.

       

        찰나간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으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건 뭐야?”

       

        <신속>의 무심한 시선이 강찬석을 향한다.

       

        무슨 물건 부르듯하는 목소리다. 하지만 강찬석은 불만을 표출할 생각도 못하고 크게 답했다.

       

        “저, 저는 S급 히어로인 강찬석입니다아악!”

        “그래. 열심히 하고.”

       

        툭툭.

       

        “……!”

       

        <신속>이 격려하듯, 강찬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에 감격의 눈물이 흐를것만 같은 기분이다. 랭커가… 그에게 직접 힘내라는 말을 전한 것이다……!

       

        “감사합니다아악!”

       

        군기가 바짝 든 훈련병처럼, 강찬석이 포효했다.

       

        도대체 저 D급과 <신속>이 무슨 사이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랭커’와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 아닌가.

       

        “큭큭! 이몸은 이만 가보겠다. 오늘 방문은 네놈을 비웃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냥 좀 가라. 귀찮으니까.”

        “임혜성, 네놈을 처치… 아니 조사할 놈은 바로 이몸이다. 목 깨끗히 씻고 기다리고 있어라!”

        “개소리.”

       

        친근한 대화 끝에, <신속>이 병실을 떠난다.

       

        마치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고 난 후의 해안가처럼 조용해진 병실.

       

        “제법 숨겨둔 수가 있는 놈인 모양이군!”

       

        강찬석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임혜성을 쏘아보았다.

       

        ‘협회’의 사람과 ‘랭커’. 그제야 저놈이 왜 저리 기세등등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도 되는 건가?’

       

        D등급의 히어로라기엔 저 놈, 인맥이 대단하다. 아마 자신의 뒷배경이 자신감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인정한다. 인맥은 히어로 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수단 중 하나니까.”

       

        <랭커>의 격려를 받은 강찬석은 마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자연히 이전보다 훨씬 누그러진 말이 튀어나왔다.

       

        “보아하니, 인맥은 훌륭하나 눈치가 없는 녀석 같은데…… 내가 충고 하나 하겠어. 자신보다 상위 레벨의 히어로에겐 살갑게 구는 편이 네 신상에 좋을 거야.”

       

        그게 현실이고, 이 사회의 법칙이다.

       

        ‘등급’으로 나누어진 히어로 세계는 보이지 않는 신분이 존재한다. 그것이 저마다 히어로, 히어로 지망생이 가진 등급에 따라 나뉘고.

       

        따라서…… ‘인맥’이 아주 중요하긴 하나, 히어로의 인생이 달라질 수는 없는 법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길러야한다.

       

        “너나 잘해.”

        “……네가 진짜 죽고싶은 모양이구나. 네 친구들이 언제고 너를 지킬 수 있을까?”

       

        진심 어린 충고에 짧디 짧은 단답이 돌아온다. 강찬석은 슬슬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것을 깨달았다. 

       

        이놈의 버릇을 지금 당장 고치지 않으면, 후에 분명 경을 칠 것 같았다.

       

        스윽!

       

        강찬석은 ’놈’에게 다가가기 위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릇없는 녀석에게 S급 히어로의 위상을 몸소 깨우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콰아아앙-!

       

        ‘시발, 또?’

       

        그때, 문이 부서질듯 열렸다. 순간 불안한 기분이 든 강찬석은 서둘러 소음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혜서어어어엉!”

        “커억!”

       

        자리에서 일어났던 강찬석이 공기를 토해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부들부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신속>처럼, 소음과 함께 나타난 불청객의 얼굴을 보니 문득 든 생각이었다.

       

        ‘또, 또 랭커……!’

       

        랭커, <비를 내리는> 송수아. 그녀가 다정다감하게 D급의 이름을 외치며 나타난 것이다!

       

        “나, 나는 여기서 나가야겠어.”

       

        강찬석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직도 꿈을 꾸는 건가? 

       

        상식이 붕괴하는 느낌에 절로 손발이 후들거렸다. 그 비틀대는 걸음으로 병실을 나서려는데.

       

        “현상거절.”

       

        달칵!

       

        문이 열리지 않는다. 손잡이를 잡고 힘차게 돌려보아도, 강철로 문고리를 용접한 것처럼 요지부동이다.

       

        “아, 안 되잖아……?!”

        “앉아있어라. 아직 퇴원 허가가 나지 않았으니까.”

       

        강찬석의 눈가가 촉촉하게 물들었다.

       

        그의 앞에 앉은 남자. 그의 정체가 지독히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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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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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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