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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뒤통수가 따갑다.

        

       사실 사람의 시선을 보고 느끼는 감각은 그 감각을 느끼는 사람의 주관적인 해석일 뿐이다. 사람의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가지 않는다. 눈빛이라고 해봐야 자기 눈에서 나가는 빛이 아니라, 그냥 햇빛 등 빛을 받아 반사하는 빛일 뿐이다.

        

       한밤중의 맹금류나 고양잇과 동물이 아닌 이상, 사람의 눈에서 그런 빛이 보일 일은 없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자면 내 뒤통수가 따가운 이유는 그냥 내 생각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나란히 앉은 나와 앨리스의 저 뒤쪽에 앉아있는 클레어의 존재를 내가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클레어가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면 이렇게까지 신경 쓰이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 우울하기는 했겠지만, 그뿐, 클레어가 잘 성장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그냥 넘어갔을지 모른다. 친해질 기회는 앞으로도 있을 테니까.

        

       물론 무표정 캐릭터인 내가 뜬금없이 친한 척을 할 수는 없지만, 보통 이렇게 하나씩 있는 무표정, 무감정 캐릭터의 클리셰가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남들의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안 하던 캐릭터가 친구들 사이에 섞여 지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표정이 무너지고 나중에는 웃기까지 하는 클리셰.

        

       아, 완벽하다.

        

       내가 좋아하던 캐릭터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고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레었다. 게다가 내가 처음 웃어 보였을 때 애들이 놀라는 표정까지도.

        

       그러기 위해서 한동안은 무표정 캐릭터로 지내야 하긴 하겠지만.

        

       그거야 10년 넘게 유지한 컨셉이니 그렇게까지 어려울 건 없었다.

        

       “…….”

        

       반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아까 복도에서 있었던 일 때문일 거다. 앨리스가 ‘황녀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지적한 일.

        

       그 뒤에 있었던 일도 다들 보긴 했겠지만, 이 애들은 이전에 교장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 앨리스 또한 보았다.

        

       그러니 당장은 둘 중 하나를 골라 앨리스를 대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금 더 지켜보면서 ‘앨리스가 더 좋아하는 방식’을 선택하려는 생각이겠지.

        

       그리고 지나치게 경박한 태도를 보이면 차기 황제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에게 별로 좋지 못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아마 다른 반에서는 공작가, 백작가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떠들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공작, 백작과 황제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앨리스는 무도회나 연회에 거의 나오지 않아서 앨리스를 개인적으로 아는 애가 없다. 반 전체의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마 차라리 평민 반이 훨씬 더 화기애애하리라.

        

       틱 틱 틱 틱.

        

       내 품 안에 있는 회중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던 교실은,

        

       드륵, 하고 열리는 미닫이문 소리가 날 때까지 그 침묵을 유지했다.

        

       ……참고로 교실 문이 미닫이문인 이유도, 교실 안의 책상 배치가 묘하게 일본 만화에 나오는 일본식 교실 배치가 생각나는 이유도, 모두 이 세계의 원작뻘 되는 게임의 개발사가 일본 회사인 탓이다. 복도는 그럭저럭 스팀펑크 느낌 나는 빅토리아풍인데 교실만 이러니 위화감이 어마어마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이지만.

        

       “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교사는 꽝꽝 얼어붙은 것 같은 분위기에 다소 당황한 듯 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가, 이내 자기가 그렇게 놀랐다는 것이 민망하기라도 한 듯 크흠, 하고 헛기침하며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젊은 여교사였다.

        

       실제로도 이 반을 맡은 것이 교사 인생의 처음인 사람이었다. 다른 귀족 반인 B반을 맡은 윈터필드의 손녀와는 다르게, 이 유순한 인상의 여교사는 딱히 군인 출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어중이떠중이도 아니다. 무려 공작가의 차녀니까.

        

       캐롤린 노스우드. 제도와는 다소 떨어진 곳에 있는 공작령을 다스리는 공작가다. 중앙권력에서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황가의 피가 섞인 공작가.

        

       조금 연한 갈색 단발머리에 비슷하게 연한 갈색 눈동자, 그리고 조금 처진 눈꼬리. 안 그래도 인상이 다소 둔해 보이는데, 입고 있는 옷도 중학교 입학생 교복 입은 것마냥 묘하게 펑퍼짐하다. 사실 저 안에는 굉장한 몸매가 숨어있긴 하지만, 평소에는 그런 펑퍼짐한 정장으로 가리고 다닌다, 라는 게 이 캐롤린이라는 선생 캐릭터의 설정이었다.

        

       참고로 조종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주인공과의 연애 루트는 있다. 나름대로 메인 스토리에 이바지하는 히로인……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비중으로 보면 ‘연인이 되는 것도 가능한 조연’에 가깝긴 했다.

        

       유독 고위 귀족과 황가와 가까운 가문이 몰려있는 A반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적하는 권력을 가진 가문의 일원이 담임을 맡아야 한다. 물론 윈터필드도 A반을 맡기에는 손색이 없는 교사였지만, ‘어쨌거나 할아버지 말은 안 들을 거다’라고 몹시 반항적으로 나오는 그 성격 때문에 캐롤린이 A반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 원작의 설정이었다.

        

       나름대로 공작가의 피를 이어받은 교사였지만, 우리와 열 살도 채 차이가 나지 않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부임한 사람이다.

        

       교실을 들어오자마자 제일 앞자리, 그것도 교탁 제일 가까운 곳에 황녀 두 명이 나란히 앉아있는 것을 보면 기가 질리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그 황녀 두 명 탓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교실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어 있고, 심지어 뒤쪽의 여학생 한 명은 황녀 중 한 명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대충 상상만 해봐도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분위기인데,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한 캐롤린은 어떤 심정일까.

        

       “…….”

        

       열린 교문 앞에 딱딱하게 굳어있던 캐롤린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걷는 그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어떻게든 두 황녀와 눈이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애석하게도, 교탁에 서서 출석부를 향해 시선을 내리려면 우리와 한순간은 눈이 마주쳐야 했다.

        

       “여러부흔?”

        

       아.

        

       입을 열다가 음정이 엇나갔다.

        

       하지만 교실의 그 누구도 웃지 않았다. 차라리 한 사람이라도 웃음을 터뜨렸으면 캐롤린이 좀 부끄럽긴 했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누구도 웃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의 노스우드 양을 점점 더 구석진 곳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저는…… 저는!”

        

       하지만 그렇다고 교사가 되어서 물러설 수는 없다.

        

       아무리 초임이라고 하더라도 아카데미 교사를 하는 시점에서 나름대로 가문 이름을 걸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학생한테 밀렸다는 말이 들리면 노스우드 공작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셈이다.

        

       캐롤린은 어떻게든 정신을 다잡고 외치긴 했지만, 목소리가 가늘고 높은 편이라서 딱히 고함을 지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는, 캐롤린 노스우드라고 합니다! 노스우드 공작가의 차녀입니다!”

        

       “…….”

        

       물론 대단한 대답은 없었다.

        

       제국에 공작가는 열둘이나 존재하니까.

        

       메인 스토리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히로인 중 둘이 무려 공작이었고, 전 학년을 다 따지면 공작가의 아이만 열여섯이다.

        

       그렇다.

        

       ‘공작가’만으로도 서열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제국은 방대한 국가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공작가라는 직위를 내세우는 것은 그럭저럭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의 반에 공작가를 내세우는 건 시큰둥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노스우드 공작 영애의 앞에 황녀가 둘씩이나 앉아있으니까.

        

       “마,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캐롤린을 보면서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모든 히로인을 전부 공략해서 ‘굳이 전부 공략하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한 영상’을 만들어 올렸던 사람이다.

        

       당연히 레오와 캐롤린의 키스신도 본 적 있었다.

        

       B반 담임 윈터필드에게 속아 학생 수영장에 비키니를 입고 나오는 이벤트 장면도 봤고.

        

       여러모로 빈틈투성이인 인물이었지만, 게임에서는 긍정적인 인물상이기도 했다.

        

       캐롤린이 교사로서 가진 마음가짐은 한없이 진심이다.

        

       후반에 황제의 세계대전 개전에 반발하여 제국이 내전으로 갈라질 때, 캐롤린은 목숨을 걸고 학생을 보호하려 한다. 아니, 아카데미의 학생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미성년자는 모두 노스우드의 이름으로 보호하고자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지켜냈다. 적어도 최신작까지는.

        

       교사라는 직업을 처음으로 가져서 다소 어리바리해 보이지만, 인격적으로는 흠잡을 수 없는 캐릭터. 그게 내가 캐롤린이라는 캐릭터에게 가진 이미지였다.

        

       그러니 첫인상도 좋게 보일 수밖에.

        

       물론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을 뿐, 표정은 어디까지나 무표정이었다.

        

       “…….”

        

       캐롤린의 인사에도 반은 한동안 침묵에 잠겨있다가,

        

       짝, 짝.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고 나서야 그 침묵에서 해방되었다.

        

       박수 소리는 내 옆자리에서 들렸다.

        

       그렇다. 앨리스가 치기 시작한 박수였다.

        

       천천히 치는 박수 소리를 듣고, 나도 앨리스의 박수를 따라 하기 시작했고, 이내 반의 아이들도 한두 명씩 따라 하기 시작해 이내 반 전체가 열광적인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앨리스의 얼굴을 보니, 입가에 조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캐롤린 노스우드는 그런 앨리스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놓인 모양인지,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음, 뭐.

        

       그래도 담임한테 박힌 앨리스 첫인상이 ‘무서움’은 아닐 것 같아 다행이다.

        

       *

        

       아카데미가 4년제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대학교를 모티브로 한 곳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중학교 3학년에 고등학교 3년을 합쳐둔 것 같은 분위기의 구성이다. 이 세계관에서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은 따로 있다.

        

       그러니, 첫 수업이라고 몇 분 동안 자기소개만 하고 수업을 끝내주는 교사 따위는 없다.

        

       특히 앞에 있는 사람이 한없이 정열적인 역사 교사라면 더욱 그렇다.

        

       캐롤린 노스우드는 그런 교사였다.

        

       마침 1교시가 담임인 캐롤린의 담당 수업이었던 건 학생들에게는 다소 불행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캐롤린을 만만하게 보고 수업을 듣지 않고 떠든다던가, 아니면 대놓고 졸고 있다든가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제일 앞자리에 앉은 황녀께서 열심히 공부 중이었으니까.

        

       면학 분위기라는 것은 그 반을 주도하는 학생에게 달린 법이다. 만약 반의 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공부 따위 포기한 개망나니라면 학생들은 수업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이 아카데미에서는 제국의 신분제가 그사이에 끼어있으니 또 어떻게 굴러갈지는 알 수 없지만.

        

       원작에서도 A반은 면학 분위기가 좋은 편이었으니까.

        

       “……그렇게, 아제르나 제국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첫 수업은 가벼운 내용이다. 거의 모두가 알고 있을 제국의 건국 신화에서 시작해 제국이 주변 왕국을 어떻게 병합하였는지, 최초로 제국이 성립하였을 때의 제국의 영토는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한 이야기.

        

       사실 여기 앉아있는 대부분은 알고 있을 거다. 이미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포함된 범위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봐야 아직 만 15세의 어린 아이들.

        

       뒤에 이어질 더 심화한 내용을 배우기 위해서는 앞부분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법이다. 게다가 입학생 중에는 외국인도 있었으니까.

        

       캐롤린이 막 말을 끝내자, 그에 맞춰서 종소리가 울렸다.

        

       원작에서는 그냥 대사를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추려고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캐롤린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절묘하게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보면 학교 오기 전에 수업을 어떻게 할지 엄청나게 고민했던 것이 아닐까.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요. 혹시 질문 있으신 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10분밖에 되지 않는 쉬는 시간을 날려 먹고 싶지는 않겠지.

        

       “그럼, 오늘 수업은 이만 마칠게요. 오후에 다시 봐요.”

        

       수업을 하는 내내 긴장이 많이 풀어진 것인지, 캐롤린은 우리에게 살짝 웃어보인 뒤 반을 나갔다.

        

       ……그래도 차렷, 경례 같은 건 안 하네. 그래도 어울릴 것 같은 곳인데.

        

       하긴 원작에서도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았으니. 어쩌면 제작진이 생각한 ‘서양스러운 프리함’의 기준이 그 경직된 인사시간의 유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학교 시스템은 완전히 일본 학원물인데 말이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네.”

        

       아까보다는 훨씬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앨리스가 안도하듯 나에게 말했다.

        

       “학기 초이니,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시험에서 제국사를 거의 다 틀린 학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카데미 입학시험에는 과락이 없으니까.

        

       “흐응, 그런가.”

        

       그래도 자기가 충분히 따라갈만한 분위기라고 생각했는지, 앨리스의 표정은 꽤 풀어져보였다.

        

       ……사실 따라가는 수준이 아니라, 이 학교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겠지만.

        

       역시 내가 평소에 능력을 좀 과하게 사용한걸까?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속으로 고민중인데, 문득 누군가가 그런 고색창연한 인사를 건넸다.

        

       이 목소리는—

        

       “아, 샬럿!”

        

       샤를— 엑.

        

       나는 엄청나게 활달한 목소리로 샤를로트를 부른 앨리스를 경악해서 쳐다봤다.

        

       그래도 표정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아니, 잠깐만.

        

       샬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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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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