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6

    ‘이 시대의 의상은 대체로 무늬가 화려하지 않은걸 선호하더군.’

    루크는 그동안 보아온 행인들의 의상을 떠올리며 대략적인 경향성을 파악했다.

    루크의 시대엔 귀족이라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늬가 특징적인 의상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고, 밋밋한 의상들은 대부분 평민들이 입는 의상이었다.

    하지만 구태여 화려한 무늬를 찾을 필요도 없다.

    과거에도 루크는 무늬의 화려함엔 별로 집착하지 않았기도 했고, 말년엔 귀족직을 내려놓고 은거하기까지 하였으니, 그런 밋밋한 의상에도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으니까.

    루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동자를 쉴새없이 움직이며 옷가게의 의상들을 살폈다.

    전체적으로 기억과 의상들의 형태가 달라지긴 했으나, 그것은 5000년의 세월이 흐르며 나타난 변화이리라.

    “흐음.”

    루크는 그 의상들을 보면서 조건을 생각했다.

    노출도 적어야 하고, 어려보이지 않아야한다.

    이미 어린애취급은 충분하리만치 받는 중이니, 옷이라도 어른스럽게 입는편이 좋겠다는 발상이었다.

    “역시 이 시대의 의상들은 하나같이 부드럽군. 굉장한 면직기술이다.”

    과거에 이런 수준의 옷감을 구매하려면 같은 무게의 금을 값으로 주어야했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토록 품질이 뛰어난 옷감으로 만든 옷을, 이정도로 대량으로 쌓아놓고 팔 수 있다니.

    과거엔 이정도 옷감으로 옷을 입는다면, 이런식으로 완성된 의상을 고르는것이 아니라 일일히 주문을 넣고 완성되기까지 기다려야만했다.

    ‘새삼스럽지만, 정말로 놀라운 시대가 도래했구나.’

    평화롭고 풍요롭다.

    이런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니.

    시대의 흐름은 정말로 놀라웠다.

    ‘좋아. 이정도면 적당하겠군.’

    피팅룸에 들어간 루크는 골라온 의상을 품안에서 살포시 내려놓고는 빠르게, 그러나 정교하게 옷을 갈아입기시작했다.

    머리 옆으로 난 뾰족한 뿔에 옷이 걸려 찢어지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그래서 루크가 고른 의상은 전형적인 귀족적인 의상이었다.

    상류층의 의상은 과거 귀족의 집안에서 자란 루크에겐 이미 익숙한 것이었으니까.

    치마와 스타킹, 그것도 과거엔 귀족을 상징하는 의상중 하나였다.

    ‘역시 이편이 훨씬 안심되는구나.’

    스타킹과 치마를 올려입은 루크는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과거의 사람인 루크에게는 현대의 밋밋하고 단순한, 어린이들이입는 의상이 훨씬 더 수치스러웠던 것이다. 

    능숙하게 옷을 차려입은 루크는 마지막으로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옆에서 그를 바라보는 정령, 파이에게 물었다.

    “파이, 어떤가? 그대가 보기엔 괜찮아보이느냐?”

    -……!

    루크의 물음에 파이는 피리같은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표시이리라.

    “괜찮아보인다니 다행이구나.”

    루크는 괜찮다는 파이의 말에 안심하며 피팅룸에서 나왔다.

    “예르나, 어떤가?”

    “어, 루. 다 입은거…….”

    멈칫.

    예르나는 루크의 모습을 보고는 순간 말을 잃었다.

    ‘루는 저런 옷이 취향이었구나……!’

    매번 옷을 사올때마다 루크가 씁쓸한 표정을 짓는것이 신경쓰여 옷가게에 데려온것이었는데…….

    ‘그동안 저런 옷이 취향이었으면 내가 가져오는 옷은 불만일만도…….’

    기껏해야 마법사 캐릭터가 그려진 의상을 생각하고있었기도 했고, 루크가 저런 어른스러운 스타일을 좋아할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기도 했고…….

    루크는 그런 예르나의 표정을 보며 당황스러웠다.

    “흐음, 그렇게나 별로인가?”

    “아니, 그건 아닌데…….”

    “그렇다면 가격이 문제가 되는게로군. 지금 다시갈아입고 오겠으니 잠시만 기다…….”

    “아니, 아냐. 그걸로 사자!”

    가격이 문제라니, 그건 절대 아니다.

    사실 생각보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충분히 예상범위 안이었고, 루크가 고른 의상이 너무 어울리기도 했으니까.

    ‘애초에 루크한테 안어울리는 의상이 뭐가 있으려나?’

    어떤 의상이든지 어린아이 특유의 어리숙한 분위기와, 루크의 귀여운 모습이 합쳐지면 어울리지 않을 것이 없으리라.

    “저기, 이거 바로 계산되죠?”

    예르나는 곧장 그 의상을 구매했다. 일시불로.

    ——–

    옷을 차려입은 루크와 예르나가 도착한곳은 한 주택가였다.

    예르나가 사는 곳처럼 엄청나게 높은 건물은 아니었지만, 4~5층정도의 집.

    누군가의 집인것일까?

    “예르나, 여기는 어딘가?”

    “아, 루크는 처음이겠구나.”

    예르나는 대답대신에 살짝 미소지으며 먼저 문에 다가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들려오는 소리.

    -띵동-!

    그것은 내부에 확실하게 전해지는 형태의 마력에 소리를 담아 내뿜었다.

    ‘시종의 호출을 위한 마도구인가, 단순하군.’

    단순한 기기인지 마력시로 읽어낸 정보도 단순했다.

    간단한 술식이라 별로 흥미도 생기지 않을 정도.

    하지만 파이는 그 소리가 맘에 들었는지 연신 옆에서 ‘띵동-!’하는 소리를 메아리처럼 반복하며 웃어댔다.

    대체 정령에겐 저 소리가 무슨 뜻이기에 그토록 웃는걸까.

    루크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살짝 고개를 저어대고 있으니,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네에~, 나가요오!”

    안에서 들려오는것은 어린아이의 목소리.

    잠시후 벌컥, 하고 문이 열리며 드러나는 아이의 모습은 편한 티셔츠를 입은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7살정도의 어린이였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더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예르나언니다! 오빠, 예르나 언니가 왔어!”

    그러자 우당탕, 하는 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온다.

    “무, 뭐라고! 들어와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 금방 나갈테니까!”

    ‘다이튼의 집이었는가.’

    안쪽에서 들려온 소리가 다이튼의 목소리였기에, 루크는 고갤 끄덕였다.

    “언니, 오빠가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래요.”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디아나. 그럼 들어갈게?”

    “네!”

    아이의 이름은 디아나인듯 하다. 

    다이튼을 오빠라고 부른것을 보아, 아마도 여동생이리라. 머리색 말고는 다이튼과 별로 닮은 구석이 없는 귀여운 아이였다.

    디아나를 향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은 예르나가 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디아나는 예르나의 뒤에 가려져있던 루크가 그제서야 시야에 들어왔는지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어? 언니는 처음보는 언닌데!”

    “반갑구나, 디아나야. 나는 루크 이루시라고 부르면 된단다.”

    “루크언니구나! 얼른 들어와!”

    디아나의 함박웃음에 루크는 마주웃어주면서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래, 정말로 고맙구나.”

    해맑은 아이의 웃음.

    ‘아아, 그래.’

    그것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이 있었다.

    한적한 시골, 유유자적한 생활…….

    그것은 한 시골 마을의 촌장으로 살아가던 기억.

    루크가 귀족작위를 내려놓고 한 마을의 촌장이 된 이유는 말년에 그 웃음이 진정으로 값진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마왕을 무찌르고 전쟁이 멎자 되찾은 아이들의 미소를, 일상에서 가장 가까이 보고 싶었기 때문에.

    10서클도, 아이가 지을 수 있는 진심어린 웃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것이다.

    귀찮고 골치아픈 정치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을 지키며 가끔 찾아오는 이루시가문의 종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삶.

    그 기억을 떠올린 루크는 마음 한켠이 따듯해지는것이 느껴졌다.

    거실의 소파로 안내받은 루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예르나의 옆에 앉았다.

    “오빠! 언제나와!”

    “잠깐만! 금방 나가!”

    다이튼이 들어있는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문 안쪽으로 고개를 넣어 외치는 디아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예르나와 루크는 동시에 어른의 미소를 지었다.

    “오빠는 아직도 바지 입고 있는 중이에요! 쫌만 더 기다려요!”

    “얌마!”

    “프힛! 히히히!”

    도망치듯이 문에서 떨어져 거실을 뛰어다니기 시작한 디아나를 보며 루크는 생각했다.

    ‘저런 여동생이 있다면 참으로 즐거운 삶이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루크는 살짝 눈을 감았다.

    ‘사탕이라도 갖고있었다면 주었을텐데, 아쉬운 일이로고.’

    루크는 언제나 심부름을 마치고 남은 거스름돈을 들고 가게에 사탕을 사러오던 타엘이라는 아이가 떠올랐다.

    ‘그리운 시절이구나.’

    그녀석, 가끔은 부모 몰래 사러 오기도 했는데 말이다.

    그때마다 부모에게 돌려보내곤 했지만.

    ‘녀석은 어떻게 되었을까.’

    부디 오랫동안 잘 살다가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면 좋을텐데.

    “뭔가 기분좋은일이라도 있는거니?”

    “아, 별거 아니다. 그저, 옛날일이 떠올랐을 뿐이니.”

    “옛날……. 일이라고?”

    예르나는 숨을 들이켰다.

    루크에게 ‘옛날 일’이라는건…….

    “왜 그렇게 굳어있는겐가?”

    “아, 아니야 아무것도.”

    드물게 웃음기가 서린 루크의 표정을 본 예르나는 속으로 안심하면서 생각했다.

    ‘휴우, 다행히 괴로운 기억은 아닌가보네.’

    정말로 다행스럽게도, 루크의 옛날 기억에는 행복한 기억도 있었던 모양이다.

    “루크, 어떤 기억이 떠오른거야?”

    “흠, 별거 아닐세. 저 아이의 웃음을 보니, 옛날에 알던 꼬마가 떠올랐을 뿐이니.”

    “아, 그렇구나. 꽤 친했나보네.”

    “그래, 친했지.”

    “그렇구나. 그 꼬마는 이름이 뭐야? 언니가 나중에 찾아줄까?”

    루크와 친한 아이였다면, 같은 처지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컸다.

    아마도 늦지않게 움직인다면 루크를 납치한 녀석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이름이라도 알 수 있다면 무슨 실마리라도…….

    “아, 고맙긴 하지만, 이제 그대가 신경쓸 필요 없는 일이니 괜찮다.”

    그러나 루크는 손을 저으며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냈다.

    ‘이미 죽었을테니.’

    ……라는 뒷말은 구태여 입 밖으로 낼 필요가 없기에 삼킨 루크였으나, 그것을 유추하지 못할 예르나가 아니었다.

    자신이 추측한 루크의 과거와 연계해 그 말의 숨은 뜻을 추리하는건 예르나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했고, 그것이 실제로 루크가 삼킨 말이 맞기도 했다.

    “…….”

    예르나는 침통한 심정으로 루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루크의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마주친 예르나는 고개를 돌리고 눈가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눈물을 참는다.

    ‘어린나이에 친구의 죽음을 겪고도 이리도 담담하게…….’

    루크가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성숙해진것은, 역시 너무나도 어려운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분명히 어려운 순간을 같이 헤쳐나갔을 친구였을 것이다.

    그야, 그 기억을 떠올린 루크는 그토록 행복한 미소를 지었으니까.

    그런데, 그 끝이…….

    “어? 예르나언니 울어?”

    토도도 달려와 예르나의 앞으로 얼굴을 쏘옥 들이민 디아나가 말했다.

    “안 울어. 안 울거든!”

    ‘루크도 안 우는데, 어른인 내가 울면 되겠냐고!’

    그런 예르나의 추측을 전혀 모르는 루크는 그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황했을 뿐이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제목보고 루크네 가정방문인줄 알았어요?
    유감! 다이튼네 가정방문이었습니다!

    표지 의상을 구매했네요!
    이제는 더이상 표지사기가 아니야!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