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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드라고뉴 강과 알리가 강.

         

       두 강의 발원지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두 강의 도착 지점은 각각 대륙의 북쪽 끝과 남쪽 끝이었다.

         

       전혀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은 두 강은 놀랍게도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허리를 비트는 구간에서 100km 가까이 근접했다.

         

       사람들은 두 구간을 잇는 운하를 건설함으로써 대륙 북부와 남부의 물류를 획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루즈는 그러한 운하 덕분에 번영한 도시 중 하나였다.

         

       원래 드라고뉴 강의 중류에 있던 작은 나루터였던 이곳은 점점 확장을 거듭하더니, 현재는 배들이 정박하고 선원들이 머무르는 무역 위성도시로 발전했다.

         

       원래 이런 종류의 도시에서는 포차에서 소주를 진탕 마시고, 길거리에서 창녀 하나 붙잡고 방으로 들어가는 선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범선의 시대에서 기선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뱃사람 문화에도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기선의 느리고 안정적인 항해에 익숙한 젊은 선원들은 거친 범선을 몰아왔던 나이든 선원들과 유흥을 즐기는 방식이 달랐다.

         

       그들은 독한 소주보다 부드러운 거품의 맥주를 즐겼고, 돈을 던지고 창녀를 사는 것보다 술과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방으로 가는 쪽을 선호했다.

         

       운하는 기본적으로 물이 흐르지 않는 무풍지대.

       범선의 운용이 불가능한 곳이었기에, 운하 인근 도시의 유흥 문화는 처음부터 젊은 취향 위주로 발달했다.

         

       카바레는 그러한 새로운 조류의 변화에 맞춰 등장한 유흥업소였다.

       카바레는 여자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쳤다.

       가수와 배우들은 화려한 가창력과 군무를 선보였다.

       작가를 고용해 뮤지컬이나 연극을 상연하기도 했다.

         

       그 카바레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루즈의 ‘장미 풍차’였다.

       홀 꼭대기의 우뚝 솟은 첨탑에 장미 덩굴로 뒤덮인 커다란 풍차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었다.

       장미 풍차는 배우, 가수, 무용수, 연주자, 작곡가, 작가, 안무가, 지배인, 접대원 등 무려 10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장미풍차가 바로 서커스 그랑프리의 예선전이 열리는 6곳의 극장 중 하나였다.

         

       붉은색의 흙으로 구워진 벽돌과 적갈색의 지붕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도시, 루즈.

         

       내가 루즈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든 느낌은 ‘익숙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즈는 TT2의 메인 스테이지로 등장하는 곳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TT1의 배경이었던 하늘도시 히포드롬은 결말에서 북극 빙해에 추락했다.

       용사들은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자신들도 탈출에 성공했지만, 원더스타인의 시체는 하늘도시와 함께 바닷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

       추락한 공중도시를 인양하던 발굴단이 중요한 유물을 발견했다.

         

       서커스 그랑프리의 성화(聖火)인 ‘키르쿠스의 눈’이라 이름 붙은 보석.

       키르쿠스의 눈은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 예술적 영감을 준다고 알려진 신물이었다.

         

       보석은 6조각으로 쪼개져 세계 각지의 유명한 극장들에 기증됐다.

       여섯 도시의 예술가들은 키르쿠스의 눈이 가진 마력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보석에 홀린 사람들이 광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피와 살점을 물감 삼아 그림을 그리고, 사람을 고문해서 나온 비명 소리를 모아 음악을 만들고, 시체를 줄에 매달아 연극을 공연케 했다.

       

       그러한 증상은 예술가들을 넘어서 도시의 시민들에게도 퍼져 나갔다.

       키르쿠스의 눈에는 죽은 원더스타인의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사람들을 미치게 하고 괴물로 변하게 만드는 것이다.

         

       소문을 들은 TT1의 주인공 3인방.

       그들이 다시 모여, 6개의 보석 조각을 파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바로 TT2의 내용이었다.

         

       이번 서커스 그랑프리의 예선전이 벌어지는 여섯 극장.

       그곳들이 바로 TT2의 스테이지로 나오는 곳들이었다.

         

       나는 루즈의 거리를 둘러보며 추억에 잠겼다.

       게임 속에서 괴물들을 사냥하랴, 퀘스트를 해결하랴 열심히 돌아다녔던 그 장소가 그대로 구현되어 있었다.

         

       물론, 무너져 있거나 불탄 건물은 없었고, 거리에 시체가 널려있지는 않았다.

         

       도시는 무척 활기차고 시끌벅적했다.

       무역 도시이자 유흥 도시에다, 얼마 안 있으면 축제까지 벌어지기 때문이다.

         

       종종 아는 사람을 지나치기도 했다.

         

       서브 퀘스트를 주었던 꽃집의 주인이 가게 앞에 앉아 꽃다발을 만들고 있었다.

       괴물로 변해 필드 정예로 등장했던 기마경찰대의 젊은 장교가 관광객들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비밀 통로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던 카바레의 어린 무용수가 간식거리를 한 아름 안고 뛰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돌로 된 다리를 건너, 붉은 장미꽃으로 뒤덮인 풍차를 마주했을 때, 나는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

         

       장미 풍차의 카바레!

         

       총감독 유그 마로이네, 경영자 브왈레, 소유주 무스탕 후작, 가수 샤일라, 배우 파리스, 안무가 마레, 무용수 솔, 극작가 로메오 등, 여기서 등장하는 네임드 캐릭터들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원더스타인의 악령에게 사로잡혀 괴물로 변해버린 이들.

       아나이스처럼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아나이스와 달리 그들은 이번 생의 나랑은 크게 연관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괴물로 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TT2에서였다.

       지금은 뭐, 예선전을 치를 때 마주칠 가능성이 있는 정도?

         

       이곳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특기, 사연, 약점 등을 복기해보았다.

       그들 중 일부는 예선전의 진행 도우미로 나올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예선전을 통과할 실마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에서 들려오는 부루퉁한 목소리.

         

       “아예 눈을 못 떼시네. 그렇게나 들어가고 싶으신가 봐요?”

         

       돌아보니 차갑게 가라앉은, 아나이스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차 싶었다.

       카바레가 아무리 노래와 춤으로 양지를 지향한다고 해도, 여자들이 웃음을 파는 유흥업소였다.

       그런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히죽대는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한 거 아닌가.

         

       뭔가 억울했다.

       나는 그냥 순수하게 게임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인데…….

         

       “하긴. 단장님 같은 사람은 저런 데를 자주 드나들었겠죠. 그 얼굴로 슬쩍 웃기만 해도 여자들이 많이 달라붙었죠?”

       “자주 드나들긴 했지만…….”

       “방금도 저기 있는 여자들 생각했을 거 아니에요?”

       “음…….”

         

       아니라고 바로 소리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아나이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은 안 하셔서 다행이네요.”

         

       망할 웃는 남자.

       단순한 듯하면서도 제약이 많았다.

         

       이 특성은 내가 반사적인 대꾸나 행동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욕을 내뱉거나 비명을 지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거짓말이나 욕을 하려면 차분하게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여야 할 수 있었다.

         

       장미 풍차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성적인 면모가 과장된 여성들이었다.

         

       치마 아래로 두 다리만 뒤뚱거리다가, 가랑이가 벌어지며 이빨과 혀가 나오는 놈이라든가.

       젖가슴만 수십 개 달고 다니며 굴러다니는 놈이라든가,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한 놈이라든가.

         

       게임 공략을 생각하며 그들을 떠올린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저기 있는 여자들 생각했냐’는 질문에 바로 부정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차분하게 할 말을 정리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작님. 오해십니다. 하하, 저는 그저 예선전을 어떻게 치를까 생각을…….”

       “됐어요, 호색한. 배 위에서도 그렇게……눈꼴신 짓거리를 하더니……. 그냥 단장님은 원래 그런 사람인 거겠죠. 여자라 하면 그저 좋다고…….”

         

       또 시작인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유라크네 씨가 먼저…….”

       “와, 뻔뻔하시네. 이제는 상대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건가요? 안겨들면 자연스레 밀면 그만이지. 단장님이 설마 여인 한 명보다 힘이 없으리라고요.”

         

       루즈에 도착하기 하루 전에 있었던 일이다.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나는 방에서 낮 내내 잤다가, 밤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잠시 바람을 쐬러 갑판에 나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유라크네와 마주치게 되었다.

         

       갑자기 내 품에 안겨든 그녀.

       내가 실종되었을 때, 그녀가 그렇게나 걱정했단다.

         

       누군가 원더스타인을 염려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녀의 호감도가 24라서 그렇구나 싶었다.

         

       가만히 그녀의 포옹을 받아들이고, 등을 토닥이며 그녀의 투정을 들어주었다.

       방 안에서 날아온 잉크병에 머리를 얻어맞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은 밤 새서 일하고 있는데, 팔자 좋으시군요!

         

       이후로 루즈에 도착하고 1주일이나 흘렀는데도, 그녀는 틈만 나면 그 이야기를 꺼냈다.

       오히려 당사자인 유라크네는 분위기를 살피며 일부러 나와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데 말이다.

         

       “접대잖아. 후원자 눈치를 봐야지. 어쩌겠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하며, 오늘의 나들이를 권한 것은 엘라였다.

       항상 내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경계했던 그녀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놀라웠다.

         

       아마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에 진출하는 게 목표라는 내 약속을 믿고, 단원들이나 후원자인 아나이스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 말을 믿어준 건 고마웠다.

       하지만 이런 일에 등 떠밀어 보낸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아나이스를 반겼던 것은 안락한 여행과 편지를 안 써도 된다는 일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귀찮은 데 계속 어울려줘야 한다면, 영 수지가 안 맞는 것이다.

         

       “당신 정말 모르는 거야?”

       “뭐가요?”

       “……아냐. 됐어.”

         

       괜히 알려줄 필요는 없지.

       이 악마가 사람의 감정을 또 어떻게 이용하려고.

         

       엘라가 그런 생각을 하며 물러나는 게 내 눈에 보였다.

         

       나는 속으로 서늘하게 웃었다.

       나라고 모르지 않았다.

         

       아나이스가 왜 나를 신경 쓰는지.

       왜 나와 함께 외출하고 싶어하는지.

         

       나도 한때 품었던 감정이고, 시도했던 일이니까.

         

       -선생님, 안녕하세요. 도우미 교체 건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네. 저희 도우미 분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들었어요. 네. 알죠. 압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저희 고객님들이 자주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어요. 저희는 고객님들을 돕는 게 일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객님들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친절함과 배려를 항상 잊지 않도록 교육합니다. 말 상대 해드리는 것도 그러한 배려의 연장선에서 진행되는 거고요. 네. 우리 복지원의 도움을 받으시는 분들이 다들 몸이 불편한 분들이라……그런 작은 친절에 감동하고 감사해주시는 것은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애정이나 사랑으로 연결 짓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희도 불편하고, 고객님께서도 상처를 받으실 수 있어요. 파견되는 분들은 전부 돈을 받고 일로써 가는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그날 이후로 난 업체를 바꿨다.

       무뚝뚝하고 할 일만 하는 남자 도우미들을 보내주는 곳으로.

       가격도 더 쌌다.

         

       그녀도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친절과 미소는 사랑받는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도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나와 그녀의 관계는 치료와 후원의 교환이었다.

       그저 거래였을 뿐이다.

         

       호감도가 수치상으로 확인되지 않는 그녀.

       시스템의 도움이 없는 인간관계를 진전시키고 싶은 마음은 내게 없었다.

         

       아니, 좀 치사한 표현 방식이군.

       그럴 능력이 없다고 해야 맞는 말이겠지.

         

       숙소로 돌아오는 마차 안.

       화난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는 아나이스의 옆모습을 훔쳐보며 나는 자조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즈 편 스타트!

    4~50화 정도 분량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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