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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방에 돌아오자마자 문을 걸어 잠갔다.

       

       엘리에게는 흥 요나 삐졌어 같은 말을 하긴 했지만, 정말로 그런 이유 때문인 건 아니다.

       

       이제부터 가챠를 돌려야 하니까 그런 거지.

       

       저번 가챠는 솔직히 말해서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마력을 얻었고, 라이터 대용이지만 마법도 사용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하지만 과연 그게 내 혼신의 가챠 댄스 덕분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겠지.

       

       스킬이 나왔다는 것 자체는 분명 좋은 일이지만, 기껏해야 1성따리 아니었나. 그냥 뽑힐 때가 돼서 뽑혔다에 가까운 것이리라.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전의 가챠 댄스는 결국 전생의 성배전쟁에서 비롯된 의식.

       

       판 대륙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의식이지 않은가.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에 따르라는 말처럼 이 세계의 법칙에 따를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몇 년간 받을 돈을 포기하고서라도 챙긴 행운을 높여주는 마도구 럭키 스트라이크.

       

       여기서 끝나지 않고, 미궁에서 슬쩍 챙긴 나뭇가지 하나를 꺼냈다.

       

       어린아이 손목 정도의 적당한 굵기. 그리 속이 단단한 것도 아니어서 내 힘으로도 충분히 파낼 수 있는 녀석이다.

       

       “사랑의 여신을 조각한다…!”

       

       그냥 조각상을 사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이게 은근 비싸단 말이지.

       

       일단 사랑의 여신 아닌가. 아무리 싸구려 조각이라도 최소한의 아름다움은 구현해야 여신상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일까. 종교적 심볼이라기보다는 여신 굿즈에 가까운 물건으로 수요가 높더라.

       

       …그리고 씹덕은 돈이 된다!

       

       독실한 신자도 있지만, 그냥 사랑의 여신이 좋아서 조각상을 모으는 사람도 상당하거든.

       

       당연히 만드는 사람 쪽에서도 이를 알기에, 여신 조각상에 한해서는 싸구려 재료를 쓰더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제작한다. 그리고 더럽게 비싸게 받는다. 이 아름다움이야말로 신앙의 증거라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판화로 찍어낸 여신의 그림이나, 심볼인 하트 모양 조각만 따로 싼 값에 팔긴 하지만…그런 건 정성이 부족하다는 게 판 대륙의 상식.

       

       그 정성에 값을 매기고, 퀄리티를 따진다는 점이 실로 괘씸하기 짝이 없지만….

       

       아무튼 정성, 다른 말로 신앙심을 담은 물건이 중요하다는 뜻 아닌가.

       

       퀄리티가 떨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면 그걸로 내 진심은 증명된다.

       

       이 세계의 사람들. 특히 사제들이 들었다면 입에 거품을 물었을지도 모르겠으나…애초에 사랑의 여신을 만든 건 나다!

       

       조각 좀 개 같이 했다고 편애하는 여신이 아니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단 말이다…!

       

       “제가 많이 좋아하는 거 알죠??”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리 중얼거리고는 한 손에는 나무토막, 다른 손에는 단검을 들어 올렸다.

       

       ***

       

       좆됐다.

       

       완성된 조각상을 동서남북으로 살펴보고, 위아래로 뒤집어 봤음에도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이를 확인한 뒤에야 한번 내렸던 결론을 번복했다.

       

       앰씹 좆됐다!

       

       그낭 좆된게 아니잖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약 30분에 걸친 노력 끝에 완성된 것은 흉물이었다.

       

       길쭉한 몸통에 돋아난 4개의 촉수. 얼굴은 인간의 악의를 무성의하게 뭉쳐둔 얼굴을 자랑한다.

       

       거기에 저 어정쩡한 포즈는 또 어떤가. 분명 가볍게 양팔을 벌리고 자애로운 표정을 짓는 스탠다드한 포즈를 취하려고 했건만….

       

       눈앞에 있는 것은 먹잇감을 구속하기 위해 촉수로 사방을 점하는 괴물뿐.

       

       소매치기 스킬을 얻으며 손재주가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술적인 감각이 딸려 오는 건 아닌가 보네.

       

       내면의 양심이 속삭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잠시 고민한 끝에 조용히 대답했다.

       

       “뭐, 됐나.”

       

       이게 내 최선이라면 어쩔 수 없지. 결과물이 이렇다고 해서 내가 대충 만든 건 아니잖은가.

       

       여신의 조각상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앞에 무릎 꿇었다.

       

       그리고는 조각상 앞에 오늘 번 돈 전부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올려놓았다. 공물을 바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마석과 몬스터 부산물을 팔아 번 돈 대략 2실버. 게일의 소지품을 팔아 번 돈이 약 50실버. 게일을 팔아 받은 30실버. 그리고 이브에게 받은 2골드.

       

       이 돈이라면 2층 수준의 장비를 풀로 맞출 수도 있고, 여벌의 목숨이라는 상급 포션을 상비할 수도 있으며, 전투의 편의성을 높여주는 각종 마도구를 구입할 수도 있다.

       

       조금 시간을 걸리겠지만 마탑에서 하급 마법 속성 교육 코스를 수강할 수도 있겠지. 마나량이 오리너구리 눈곱만한 수준이지만 분명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성장 가능성을 제치고 내가 선택한 것은.

       

       띠링!

       

       

       

       [통상 뽑기]

       

       -현금 혹은 그에 상응하는 마석을 소모해 1~5성 사이의 아이템과 스킬을 랜덤하게 얻습니다.

       

       [1회 뽑기] [10+1회 뽑기]

       

       

       

       하나만 제대로 떠도 본전은 뽑고도 남는다니까?? 무려 280연챠인데 뭐라도 나오겠지!!

       

       “제발 5성! 제발 5성! 제발 5성!!!”

       

       럭키 스트라이크의 보석 부분을 양손으로 움켜쥐어 깍지 낀 채, 간절히 기도했다.

       

       어쩌면 그냥 우연히 내가 쓴 설정대로의 세상이 존재하고, 우연히 전생의 내가 폭사했으며, 우연히 이 세계에 빙의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이 모든 일이 누군가의 주도로 일어난 것이라면 그 누군가는 사랑의 여신일 확률이 높다. 그녀 외의 모든 신은 죽었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 시스템을 준 것도 사랑의 여신일 터. 그리고 사랑의 여신은 내가 직접 설정한 자식 같은 캐릭터다.

       

       여기서 5성만 띄워준다면 지금까지의 일은 전부 용서해 줄 수 있다…!

       

       이 간절한 마음이 부디 미궁 최심부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여신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연챠 버튼을 눌렀다.

       

       “돌아라 가챠의 별!”

       

       띠링!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

       

       이게 머꼬.

       

       원래 확률이 엿같아서 9할 이상이 1성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마력초가 가장 잘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하지만 이렇게 마력초만 나온 적은 처음이라 순간 당황했다.

       

       “…이 외신의 흉물 때문이 분명해!”

       

       인간을 흉내 낸 끔찍한 무언가의 조각상을 미약한 불꽃으로 불태웠다. 활활 타오르는 사교의 신상을 앞에 두고 당당하게 외쳤다.

       

       “여신이여! 당신을 위한 공물을 받으소서!”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애써 불안함을 외면하며 가챠 버튼을 노려보았다. 제물도 바쳤으니 다음은 분명 다를 터!

       

       “에잇!”

       

       눈 딱 감고 다시 가챠를 돌렸다.

       

       띠링!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큼직한 주머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허술한 나무 방패]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튼튼한 로프]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제련된 철괴]

       [1성: 잘 말린 마력초]

       

       “오….”

       

       같이 뽑힌 주머니에 마력초를 대충 쑤셔 넣고, 방패와 철괴는 침대 밑에 밀어 넣은 뒤에야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역시 방금 건 그 흉물이 문제였나 보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1성이라도 평소보다 더 쓸만한 물건이 잘 나온 것 같고.

       

       촉이 왔다.

       

       “동남풍이 불고 있어.”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에서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인 걸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의 이 기세를 이어 나가기 위해 연속으로 가챠 버튼을 눌러댔다.

       

       빠르게 줄어드는 지갑의 내용물. 그에 비례하듯 알림창이 길게 이어진다.

       

       띠링!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나무 화살]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2성: 다용도 벨트]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

       .

       .

       [2성: 스킬 – 망설이지 않는 길 찾기]

       .

       .

       .

       [2성: 명작 – 팝니다. 몰락영식. 한 번도 안 쓴.]

       .

       .

       .

       [3성: 유니콘의 뿔]

       .

       .

       .

       [2성: 하급 마력 회복 포션]

       .

       .

       .

       [3성: 권능 – 탐식의 위장]

       .

       .

       .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어?”

       

       그 많던 돈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력초는 침대 대용으로 써도 될 만큼 수북이 쌓일 무렵. 무시하지 못할 알람을 발견했다.

       

       “3성이…둘? 거기에 2성 스킬까지?”

       

       얼떨떨한 마음에 알림을 다시 읽어보려던 순간.

       

       “큭!”

       

       꽉 조여오듯이 아파오는 머리. 동시에 몸 깊숙한 곳의 무언가가 변질되는 감각에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머리가 아픈 거야 스킬이겠지만…체내에서 느껴지는 이 괴상한 느낌은 권능이 이식되는 과정인가.

       

       몸을 웅크리고 낑낑대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아팠냐는 듯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그리고 뇌리에 떠오르는 내 것이지만 낯선 기억.

       

       우선 망설이지 않는 길 찾기는 말 그대로 길을 찾는 능력이다. 다만 2성급답게 평범한 수준은 아니네.

       

       단순하게 길을 잃지 않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비밀 통로를 찾는 요령, 위험한 길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단서 수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조해 줄 공간지각 능력까지.

       

       이번에도 직접적인 전투력 향상으로 이어지는 스킬이 아니라는 건 아쉽지만, 미궁 탐사 전반에 유용한 스킬이라는 건 확실하다.

       

       다음은 탐식의 위장. 설마 뽑기에서 권능이 나올 줄은 몰랐지만, 애초에 그렇게 따지면 스킬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닌가.

       

       본능적으로 알게 된 탐식의 위장의 효과는 심플했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완벽히 소화할 수 있다.’

       

       자세한 건 이것저것 시험해 봐야겠지만, 일단 3성이니 절대 쓸모없는 힘은 아니리라.

       

       당장 소매치기 하나도 이렇게 잘 써먹고 있는데 무려 권능 아닌가.

       

       마지막으로 유니콘의 뿔. 이건 고오오급 재료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디다 씀?”

       

       내 손이 닿자 밝게 빛나는 순백의 뿔을 바라보았다.

       

       아다 감별기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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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그거 당첨됐어요!

    끼얏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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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EP.26





       방에 돌아오자마자 문을 걸어 잠갔다.


       


       엘리에게는 흥 요나 삐졌어 같은 말을 하긴 했지만, 정말로 그런 이유 때문인 건 아니다.


       


       이제부터 가챠를 돌려야 하니까 그런 거지.


       


       저번 가챠는 솔직히 말해서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마력을 얻었고, 라이터 대용이지만 마법도 사용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하지만 과연 그게 내 혼신의 가챠 댄스 덕분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겠지.


       


       스킬이 나왔다는 것 자체는 분명 좋은 일이지만, 기껏해야 1성따리 아니었나. 그냥 뽑힐 때가 돼서 뽑혔다에 가까운 것이리라.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전의 가챠 댄스는 결국 전생의 성배전쟁에서 비롯된 의식.


       


       판 대륙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의식이지 않은가.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에 따르라는 말처럼 이 세계의 법칙에 따를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몇 년간 받을 돈을 포기하고서라도 챙긴 행운을 높여주는 마도구 럭키 스트라이크.


       


       여기서 끝나지 않고, 미궁에서 슬쩍 챙긴 나뭇가지 하나를 꺼냈다.


       


       어린아이 손목 정도의 적당한 굵기. 그리 속이 단단한 것도 아니어서 내 힘으로도 충분히 파낼 수 있는 녀석이다.


       


       “사랑의 여신을 조각한다…!”


       


       그냥 조각상을 사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이게 은근 비싸단 말이지.


       


       일단 사랑의 여신 아닌가. 아무리 싸구려 조각이라도 최소한의 아름다움은 구현해야 여신상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일까. 종교적 심볼이라기보다는 여신 굿즈에 가까운 물건으로 수요가 높더라.


       


       …그리고 씹덕은 돈이 된다!


       


       독실한 신자도 있지만, 그냥 사랑의 여신이 좋아서 조각상을 모으는 사람도 상당하거든.


       


       당연히 만드는 사람 쪽에서도 이를 알기에, 여신 조각상에 한해서는 싸구려 재료를 쓰더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제작한다. 그리고 더럽게 비싸게 받는다. 이 아름다움이야말로 신앙의 증거라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판화로 찍어낸 여신의 그림이나, 심볼인 하트 모양 조각만 따로 싼 값에 팔긴 하지만…그런 건 정성이 부족하다는 게 판 대륙의 상식.


       


       그 정성에 값을 매기고, 퀄리티를 따진다는 점이 실로 괘씸하기 짝이 없지만….


       


       아무튼 정성, 다른 말로 신앙심을 담은 물건이 중요하다는 뜻 아닌가.


       


       퀄리티가 떨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면 그걸로 내 진심은 증명된다.


       


       이 세계의 사람들. 특히 사제들이 들었다면 입에 거품을 물었을지도 모르겠으나…애초에 사랑의 여신을 만든 건 나다!


       


       조각 좀 개 같이 했다고 편애하는 여신이 아니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단 말이다…!


       


       “제가 많이 좋아하는 거 알죠??”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리 중얼거리고는 한 손에는 나무토막, 다른 손에는 단검을 들어 올렸다.


       


       ***


       


       좆됐다.


       


       완성된 조각상을 동서남북으로 살펴보고, 위아래로 뒤집어 봤음에도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이를 확인한 뒤에야 한번 내렸던 결론을 번복했다.


       


       앰씹 좆됐다!


       


       그낭 좆된게 아니잖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약 30분에 걸친 노력 끝에 완성된 것은 흉물이었다.


       


       길쭉한 몸통에 돋아난 4개의 촉수. 얼굴은 인간의 악의를 무성의하게 뭉쳐둔 얼굴을 자랑한다.


       


       거기에 저 어정쩡한 포즈는 또 어떤가. 분명 가볍게 양팔을 벌리고 자애로운 표정을 짓는 스탠다드한 포즈를 취하려고 했건만….


       


       눈앞에 있는 것은 먹잇감을 구속하기 위해 촉수로 사방을 점하는 괴물뿐.


       


       소매치기 스킬을 얻으며 손재주가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술적인 감각이 딸려 오는 건 아닌가 보네.


       


       내면의 양심이 속삭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잠시 고민한 끝에 조용히 대답했다.


       


       “뭐, 됐나.”


       


       이게 내 최선이라면 어쩔 수 없지. 결과물이 이렇다고 해서 내가 대충 만든 건 아니잖은가.


       


       여신의 조각상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앞에 무릎 꿇었다.


       


       그리고는 조각상 앞에 오늘 번 돈 전부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올려놓았다. 공물을 바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마석과 몬스터 부산물을 팔아 번 돈 대략 2실버. 게일의 소지품을 팔아 번 돈이 약 50실버. 게일을 팔아 받은 30실버. 그리고 이브에게 받은 2골드.


       


       이 돈이라면 2층 수준의 장비를 풀로 맞출 수도 있고, 여벌의 목숨이라는 상급 포션을 상비할 수도 있으며, 전투의 편의성을 높여주는 각종 마도구를 구입할 수도 있다.


       


       조금 시간을 걸리겠지만 마탑에서 하급 마법 속성 교육 코스를 수강할 수도 있겠지. 마나량이 오리너구리 눈곱만한 수준이지만 분명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성장 가능성을 제치고 내가 선택한 것은.


       


       띠링!


       


       


       


       [통상 뽑기]


       


       -현금 혹은 그에 상응하는 마석을 소모해 1~5성 사이의 아이템과 스킬을 랜덤하게 얻습니다.


       


       [1회 뽑기] [10+1회 뽑기]


       


       


       


       하나만 제대로 떠도 본전은 뽑고도 남는다니까?? 무려 280연챠인데 뭐라도 나오겠지!!


       


       “제발 5성! 제발 5성! 제발 5성!!!”


       


       럭키 스트라이크의 보석 부분을 양손으로 움켜쥐어 깍지 낀 채, 간절히 기도했다.


       


       어쩌면 그냥 우연히 내가 쓴 설정대로의 세상이 존재하고, 우연히 전생의 내가 폭사했으며, 우연히 이 세계에 빙의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이 모든 일이 누군가의 주도로 일어난 것이라면 그 누군가는 사랑의 여신일 확률이 높다. 그녀 외의 모든 신은 죽었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 시스템을 준 것도 사랑의 여신일 터. 그리고 사랑의 여신은 내가 직접 설정한 자식 같은 캐릭터다.


       


       여기서 5성만 띄워준다면 지금까지의 일은 전부 용서해 줄 수 있다…!


       


       이 간절한 마음이 부디 미궁 최심부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여신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연챠 버튼을 눌렀다.


       


       “돌아라 가챠의 별!”


       


       띠링!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


       


       이게 머꼬.


       


       원래 확률이 엿같아서 9할 이상이 1성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마력초가 가장 잘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하지만 이렇게 마력초만 나온 적은 처음이라 순간 당황했다.


       


       “…이 외신의 흉물 때문이 분명해!”


       


       인간을 흉내 낸 끔찍한 무언가의 조각상을 미약한 불꽃으로 불태웠다. 활활 타오르는 사교의 신상을 앞에 두고 당당하게 외쳤다.


       


       “여신이여! 당신을 위한 공물을 받으소서!”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애써 불안함을 외면하며 가챠 버튼을 노려보았다. 제물도 바쳤으니 다음은 분명 다를 터!


       


       “에잇!”


       


       눈 딱 감고 다시 가챠를 돌렸다.


       


       띠링!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큼직한 주머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허술한 나무 방패]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튼튼한 로프]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제련된 철괴]


       [1성: 잘 말린 마력초]


       


       “오….”


       


       같이 뽑힌 주머니에 마력초를 대충 쑤셔 넣고, 방패와 철괴는 침대 밑에 밀어 넣은 뒤에야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역시 방금 건 그 흉물이 문제였나 보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1성이라도 평소보다 더 쓸만한 물건이 잘 나온 것 같고.


       


       촉이 왔다.


       


       “동남풍이 불고 있어.”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에서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인 걸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의 이 기세를 이어 나가기 위해 연속으로 가챠 버튼을 눌러댔다.


       


       빠르게 줄어드는 지갑의 내용물. 그에 비례하듯 알림창이 길게 이어진다.


       


       띠링!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나무 화살]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2성: 다용도 벨트]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


       .


       .


       [2성: 스킬 - 망설이지 않는 길 찾기]


       .


       .


       .


       [2성: 명작 - 팝니다. 몰락영식. 한 번도 안 쓴.]


       .


       .


       .


       [3성: 유니콘의 뿔]


       .


       .


       .


       [2성: 하급 마력 회복 포션]


       .


       .


       .


       [3성: 권능 - 탐식의 위장]


       .


       .


       .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어?”


       


       그 많던 돈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력초는 침대 대용으로 써도 될 만큼 수북이 쌓일 무렵. 무시하지 못할 알람을 발견했다.


       


       “3성이…둘? 거기에 2성 스킬까지?”


       


       얼떨떨한 마음에 알림을 다시 읽어보려던 순간.


       


       “큭!”


       


       꽉 조여오듯이 아파오는 머리. 동시에 몸 깊숙한 곳의 무언가가 변질되는 감각에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머리가 아픈 거야 스킬이겠지만…체내에서 느껴지는 이 괴상한 느낌은 권능이 이식되는 과정인가.


       


       몸을 웅크리고 낑낑대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아팠냐는 듯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그리고 뇌리에 떠오르는 내 것이지만 낯선 기억.


       


       우선 망설이지 않는 길 찾기는 말 그대로 길을 찾는 능력이다. 다만 2성급답게 평범한 수준은 아니네.


       


       단순하게 길을 잃지 않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비밀 통로를 찾는 요령, 위험한 길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단서 수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조해 줄 공간지각 능력까지.


       


       이번에도 직접적인 전투력 향상으로 이어지는 스킬이 아니라는 건 아쉽지만, 미궁 탐사 전반에 유용한 스킬이라는 건 확실하다.


       


       다음은 탐식의 위장. 설마 뽑기에서 권능이 나올 줄은 몰랐지만, 애초에 그렇게 따지면 스킬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닌가.


       


       본능적으로 알게 된 탐식의 위장의 효과는 심플했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완벽히 소화할 수 있다.’


       


       자세한 건 이것저것 시험해 봐야겠지만, 일단 3성이니 절대 쓸모없는 힘은 아니리라.


       


       당장 소매치기 하나도 이렇게 잘 써먹고 있는데 무려 권능 아닌가.


       


       마지막으로 유니콘의 뿔. 이건 고오오급 재료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디다 씀?”


       


       내 손이 닿자 밝게 빛나는 순백의 뿔을 바라보았다.


       


       아다 감별기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블루 아카이브와 이디야가 현재 콜라보 중이라는 사실 아시나요?

    그 중에는 추첨을 통해 데스크 패드를 주는 이벤트도 있습니다.

    저 그거 당첨됐어요!

    끼얏호우!!!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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