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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갤러리가 망하는 데는 수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어떤 것이 가장 치명적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바로 좆목, 즉 유저들끼리의 친목질이다.

       

        나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데 있어 닉언이나 저격에 대해 유하게 대처하는 편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익명성을 더 선호한다.

        다른 이들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친목질이나 개인적으로 선을 넘으려는 놈들이 보인다?

        그럴 땐 부계정으로 슬쩍 그들 사이에 끼어서 구성원들이 서로를 영구차단할 정도로 이간질 하여 모임을 사분오열 내놓곤 했다.

       

        절대 나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희희덕거리는 꼴을 보고 있자니 배알이 꼴려서가 아니다.

        위치노트가 만남어플인 줄 아는 인싸들을 상대로 훌륭하게 갤러리를 사수한 것이었다.

       

        “정령들이 감지할만한 마나의 움직임은 일체 없었어.”

        “기청도 아니었는데요…….”

        “이 주변엔 우리뿐이다. 내 감지범위 밖의 대상을 치료한 거라면 최소 5계층은 넘겠군.”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여, 파딱들과 필요 이상으로 친해지는 건 지양하고 싶었다.

        이름도, 사는 곳도, 학파도 굳이 캐묻지 않는다.

        못난 놈들끼린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데 얘들 얼굴을 보면 주딱으로서의 체면도 집어던지고 그 자리에서 포복절도할 자신이 있었다.

       

        “다들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전 아직 여러분의 소개도 듣지 못했는데.”

        “……!!”

       

        나의 한 마디에 수군거리던 세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테이블 위로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위치노트를 올려놓았다.

        이제 그들의 아이디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늑대, 사슴, 부엉이의 형상을 한 여인들은 차례대로 벽력뇌제霹靂雷帝, 당신께축복을, 부엉부엉부엉이였다.

       

        “나, 나는 칼레이도스의…….”

        “뇌절이.”

        “뭐, 뭐라고?”

       

        가장 먼저 자신을 소개하려던 ‘벽력뇌제霹靂雷帝’의 말을 나는 곧장 잘라먹었다.

        길어, 그리고 쓸데없어.

        현실에서 만나니 도킹하고 싶어하는 듯한데 고작 10층따리인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해봤자 구내식당에서 마주치면 뻘쭘하기만 할뿐이다.

        곧장 다음으로 넘어갔다.

       

        “뇌절이, 그 옆은요?”

        “저는 세실리…….”

        “당축이.”

        “다, 당축이에요…….”

       

        그래도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지 신성학파로 보이는 ‘당신께축복을’은 곧장 수긍했다.

        마지막 컨셉충 하나는 굳이 소개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부엉이까지. 모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아니거든! 나는 칠ㅎ…….”

        “부엉아.”

        “왜, 왜?”

        “탕!”

        “……수?”

        “넌 부엉이라고 해야지.”

       

        나의 손짓에 얼어버린 부엉이는 또륵또륵 눈을 굴렸다.

        갤러리에서의 컨셉이냐 아니면 현실에서의 자신이냐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셋 중에 가장 나에 대해 적대적이었지만, 마리엘이 잠들고 나서는 다소 위축된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싫어?”

        “큭…… 부, 부엉.”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부엉이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내가 하는 말을 따르는 것을 본 파딱들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세상에, 살면서 린…… 부엉이가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계약도 안 한 상대에게 상하관계를 인정한다는 건 정령사에게 있어 견줄 데 없는 굴욕인데 말이지.”

       

        부엉이는 정령학파였나? 어쨌거나 다들 자기소개도 했겠다, 이걸로 교통정리가 모두 끝났다.

        나는 이번 연회의 주 목적이자 사실상 파딱들을 직접 보기로 한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지만, 오늘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현생에서의 일을 끌어들여 닦달할 생각까진 없었지만, 이것만큼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테이블에 놓인 모두의 위치노트. 그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다들 바쁜 것은 알지만, 이것에 대해 좀 더 신경 쓸 생각은 없나요?”

       

        너희는 대체 왜 갤 관리를 안 하니?

       

       

       

        *

       

        칼레이도스 학파의 원로이자 전(前) 칠현자.

        현재 마탑의 최상층이라 할 수 있는 117층을 공략 중인 클라우디아 아네스코트는 주딱의 손끝을 시선으로 따라갔다.

       

        뇌절이라는 별명이 붙어버린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족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었다.

        잿가루가 묻어나오는 거뭇한 파편은 본래 망자를 소환하는 명계의 문이었을 터.

        그것을 보란듯이 테이블로 만들어 자신들에게 들이미는 주딱의 의도는 명확했다.

       

        ‘너희는 마탑에 마족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었냐는 뜻이군.’

       

        당초 누구도 정체를 모르는 주딱이 과연 탑주인가에 대해 부엉이는 부정, 당축이는 긍정의 의사를 나타냈었다.

        유일하게 클라우디아만이 보류를 표명했으나 지금 그의 질문으로 확신했다.

       

        주딱은 묻고 있었다.

        너희는 어째서 ‘내 마탑’에 이런 마족들이 설치는 것을 놔두는 것이냐고.

       

        “신경쓰겠다.”

        “말로만 하지 말고.”

        “이곳에서 나가는 즉시 시행하지.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또 부계정 파게?”

       

        한심한 마탑 행정부와 아랫것들 때문에 칠현자 직에서도 물러난 자신이 내리 갈굼을 당해야 한다니.

        그녀는 등반을 잠시 멈추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사태의 배후를 철저히 벌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

       

        클라우디아가 노선을 정하자 처음부터 주딱을 탑주라 생각했던 한 사람이 기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쵸! 사실 지금까지 너무 소홀한 것 같긴 했어요. 저도 당분간 원정은 멈추고 방비에 집중하려고요!”

       

        당축이, 세실리아 페이지.

        살가운 미소와 함께 마리엘의 반대편으로 슬금슬금 이동하던 그녀는 곧이어 주딱의 제지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급한 일 있으면 잠깐 비우는 건 괜찮아. 그리고 당축아, 좀 떨어질래?”

        “과, 관리자님은 제가 싫으신가요?”

        “뿔 때문에 걸리적거려. 가서 자리에 앉아.”

        “…….”

       

        이유도 하필 저주로 변한 모습이 하필 사슴이었기 때문.

        푸는 게 어렵진 않겠으나 그게 주딱의 심기를 건드릴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주위만 맴돌았다.

       

        교국의 성녀마저 도움을 청하는 신성학파의 칠현자가 고작 미궁의 안개를 풀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이라니.

        코웃음을 치던 정령학파의 칠현자, 린지 스트리블링은 자신을 부르는 주딱의 말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부엉아, 넌 이리 와 봐.”

       

        나? 갑자기?

       

        마도의 끝자락에 다다른 세 명의 마법사 앞에서도 전혀 주저함 없는 절대자로서의 위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 실력.

        그 두 가지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차마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던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경계심 가득한 옆으로 다가가자, 주딱의 손이 머리 위로 올라왔다.

        그 순간 온몸에 깃든 모든 정령들이 마치 감전된 것처럼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정령들은 생명의 죽음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한다.

        많은 피를 손에 묻히거나, 세상 밖의 홍진(紅塵)에 물들수록 계약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정령학파는 마탑의 모든 학파들 중에서도 순혈 가문의 위세가 가장 강한 편이었다.

        세상의 때가 타지 않은 마법사를 요람에서 정성껏 길러내기 때문이다.

       

        “옛날 영화 같은 데 보면 꼭 이런 동물 하나씩 옆에 두면서 편지 받더라.”

       

        그의 손이 귀를 타고 내려와 목덜미를 쓰다듬을 때도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정령들이 일제히 문양 안으로 숨어버리자 린지는 마치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이었다.

       

        “넌 앞으로도 계속 옆에 있어.”

       

        이제 더 이상 주딱이 탑주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그녀에게 없었다.

        아니, 차라리 탑주라고 믿는 편이 나았다.

       

        “부, 부엉……!”

       

        여섯 속성을 대표하는 정령계의 대공(大公)들조차 숨을 죽이며 긴장하는 상대가.

        대체 어떤 생물을 죽여왔는지 도저히 떠올리고 싶지 않았으므로.

       

       

       

        *

       

        준비가 다소 미흡했지만 첫 번째 연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뇌절자판기, 가면분탕, 컨셉충 같은 갤러리에서의 모습에 반해 실제로 만나보니 말도 잘 통하고 다들 좋은 녀석들이었다.

       

        첫인상이 좋아야 이후로도 계속 나올 마음이 생기기 마련.

        미궁에 오래 있으면 녀석들도 피곤할 테니 다음에 또 만나자는 말을 끝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두 사람이 떠난 뒤, 마리엘을 들쳐업고 출구로 나가려던 내게 뇌절이가 물었다.

       

        “주딱.”

        “응?”

        “네게 갤러리는 어떤 의미지?”

       

        다른 두 사람에 비해 매사 진지한 녀석의 질문인지라 적당히 흘려넘기기엔 미안했다.

       

        지금은 위치노트에 깃든 갤러리는 본래 내가 전생하며 얻게 된 상태창의 일종이었다.

        마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모험가 시절 동료들과 시덥잖은 연락을 주고받는데 썼었다.

       

        포인트가 90억이나 쌓여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나라도 5년 동안 그렇게나 많이 모을 수는 없을 테니까.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이죠.”

        “그런가.”

       

        내 대답을 들은 뇌절이는 잠시 고민하다 이번엔 다른 걸 물었다.

       

        “그러면 마탑은?”

        “…….”

       

        오늘은 내가 대미궁에 들어온 지 3일차가 되는 날이었다.

        첫째 날에는 사람과 마수가 구분이 안 되었으며 둘째 날부터는 환청이 들렸다.

        이제 곧 눈이 멀게 되면 프리나의 인형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상이 마치 어둠이 내린 듯이 깜깜해질 것이다.

        지금도 빛이 없는 천장을 올려다 보면 그리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곤 했다.

       

        ‘성주께서 승하하셨어. 모험가들을 지키는 횃불이 꺼졌다는 뜻이야.’

       

        ‘우리는 새 시대를 열어야만 해. 이제 대륙에 주인(主人)의 자격을 갖춘 이들은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해야만 해.’

       

        ‘미안해, 클락.’

       

        ‘너에게 너무 가혹한 짐을 지게 해서 미안해.’

       

        ‘총성’은 필담으로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으니 이건 전부 ‘섬광’의 것이었다.

        마룡의 심장에 창을 꽂은 직후.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마법사가 내게 한 말이었다.

        당시의 나는 마법에는 문외한이라 어려운 말은 잘 몰랐지만, 그녀를 떠나보낸 후 어디로 가면 좋을지는 곧장 알았다.

       

        “제 전부요.”

       

        지금처럼 창을 쥐고 있으면 창끝이 가리키는 어두운 천장 너머.

        수백 년 전 불현듯 세워진 거대한 탑의 꼭대기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전 화의 번잡한 서술이 작은 혼란을 불러왔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역량이 부족해 죄송합니다.
    이번화에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셨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갤러리가 상태창이었다는 설정은 1화에 나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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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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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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