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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이틀을 푹 쉬었다.

       

       이제는 눈을 떠도 아프지는 않다.

       

       아직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는 건 좀 안타깝지만.

       

       우리는 남작령을 벗어나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회복이 빨랐네요.”

       

       “다행인 일이지.”

       

       푸르릉 –

       

       타고 있는 말이 푸레질을 했다.

       

       지금이야 천천히 걷고 있다지만 달리기 시작하면 또 지루할 것이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달려왔다.

       

       “잠시만요!”

       

       “음?”

       

       아직 젊어 보이는 여자였다.

       

       아줌마가 되어가는 나이.

       

       일단 나보다는 나이가 많은 게 확실했다.

       

       “점이라는 걸 봐주던 사람이 맞죠?”

       

       “점 봐주는 건 끝났어요.”

       

       표정이 제법 다급해 보였다.

       

       간절하게 바라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그런데 이분 지금은 뛰면 안 좋을 텐데···.

       

       “꼭…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잠깐만 시간을…”

       

       “흐음…”

       

       이렇게 간절해 보이는데 잠깐 시간을 내는 것이 뭐가 대수겠는가.

       

       나는 사뿐히 말에서 내려왔다.

       

       “잠깐이면 괜찮아요. 뭐가 궁금하신데요? 재물운? 애정운은 아닐 테고…”

       

       나의 행동에 여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감정기복이 심할 때긴 하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조금 뜻밖의 질문이었다.

       

       “아기… 아이가 언제 생길지 알고 싶어요.”

       

       솔직히 남작령에서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간절해 보였다.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저런 표정을 지을까···.

       

       이 경우는 방울을 잡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방울을 허리춤에 꽂아 넣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모르셨구나.”

       

       “네?”

       

       “벌써 생겼어요.”

       

       “…네?”

       

       “벌써 아이가 찾아왔어요.”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여자의 아랫배에 자리 잡은 작고 깨끗한 영혼이.

       

       영혼의 상태로 봐선 별문제만 없다면 순산까지 무리가 없을 것이다.

       

       여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럴 리가…그렇게나 안 생겼었는데…!”

       

       “정말이예요. 축하드려요. 방금처럼 뛰지는 마시고.”

       

       아이를 가진 엄마의 표정.

       

       한점의 다른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행복이었다.

       

       사실 이런 표정을 볼 때가 무당으로서 제일 보람찬 순간이다.

       

       망자와 산자의 행복을 찾아 주는 일.

       

       비록 큰 힘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저 미소가 무업의 본질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다.

       

       아이 엄마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복채라는 걸 드려야 한다고….10쿠퍼예요! 괜찮으시면 태어나게 될 아이의 점도 한번…”

       

       “으음…그건 불가능해요.”

       

       되도록 아이의 신점이나 사주는 보지 않는 것이 좋다.

       

       “미래는 삶에 따라 달라져요. 아이의 신점을 보게 되면…그대로 굳어 버릴 수가 있어요.”

       

       “아….!”

       

       “그리고 복채는 안주셔도 됩니다. 어차피 금방 알게 될 일이었으니.”

       

       그대로 말에 올라타려는 나를 아이의 엄마가 붙잡았다.

       

       그리고 억지로 우겨넣듯 5쿠퍼를 건네주었다.

       

       차마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기쁜 마음의 표현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말 안장을 잡고 올라탔다.

       

       출발한지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한스가 입을 열었다.

       

       “무당이란 이런 것이군요. 흐음….”

       

       두 영감과 아이린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마 내 입에도 비슷한 미소가 걸려 있을 것이다.

       

       백발에 벌건눈으로 웃고 있으면 무서우려나···?

       

       괜히 태교에 좋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흐음…”

       

       아이린이 살갑게 입을 열었다.

       

       “엘프의 숲까지는 일주일 정도 남았어요.”

       

       일주일.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뜻밖에도 아스테르 백작령과 엘프의 숲은 멀지 않았다.

       

       제국의 끝에 위치하며 마수와 몬스터들의 영역과 경계선이 된 지역.

       

       그곳이 바로 아이린이 살던 엘프의 숲이었다.

       

       또한 엘프의 수도와 같은 중심이 되는 숲이기도 했다.

       

       말을 타고 계속 달린다는 전제하에 이주 정도면 도착할 거리인 것이다.

       

       “흐음….”

       

       고작 2주.

       

       예지몽과 그 해몽.

       

       신령님께서는 텅 빈 방울을 보여 주며 무업을 갈고 닦으라 했다.

       

       그런데 기간이 너무 짧지 않은가.

       

       “이상하단 말이야…”

       

       그때 꾸었던 예지몽대로 워프도 피했다.

       

       그런데 이 찝찝함은 무엇일까···.

       

       “야, 한스.”

       

       “네 크리스님.”

       

       “일리아님도 꿈으로 뭔가를 보여주시냐?”

       

       “간혹 성자님이나 성녀님들이 꿈을 통해 계시를 받고는 합니다.”

       

       잘된 일이다.

       

       참고할 교보재가 생겼으니.

       

       “어떤 식으로 계시가 내려오는데?”

       

       “뭐라 해야 할까…굉장히 시적입니다.”

       

       “음?”

       

       “대표적으로 대륙전쟁에 대한 신탁이 있지요.”

       

       한스가 경건하게 읊조렸다.

       

       “밤이 왔지만 밤이 아니리라. 여명이 밝았지만 그 또한 밤이니 길을 잃지 말라.”

       

       “음…?”

       

       저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다.

       

       애초에 저런 공수로 뭘 어떻게 해석을 한단 말인가?

       

       수수께끼 같은 신탁이었다.

       

       “크게 내려온 신탁인지라 교단에서도 그 뜻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알아낸 것은 대륙전쟁이 시작되고 난 후였지요. 신탁을 받았던 성녀께서는 세달 동안 의식이 없으셨습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성능이 구리다.

       

       “공수를 희한하게 받네…”

       

       정말 큰 무당들은 국운이 흐려지거나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공수를 받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수수께끼를 받았다는 구전은 없었다.

       

       “쯧…”

       

       신탁이라는게 저런 식으로 내리는 거였다니···.

       

       무당과 비슷한 게 없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심지어 굴락을 제외하고는 영안을 가진 사람도 보지 못했으니···.

       

       신을 담는 그릇을 신가물이라 하는데, 이것이 그렇게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잡귀나 겨우 담을 수 있는 반푼이짜리라도 보였어야 정상이라는 것이다.

       

       어찌 된게 이 세상에는 신가물은커녕 영감이 예민하다 싶은 사람도 없었다.

       

       “혹시 신들이랑 무슨 일이 있었냐?”

       

       “….예?”

       

       “꿈을 꾼 적은 없고?”

       

       “물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보였다고 전해집니다.”

       

       한스가 뿌듯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대단한 업적인양 자랑을 하는 모양인데, 구려도 너무 구리다.

       

       “만나 봐야 알겠지만 제대로 된 신가물이 없을 수도…”

       

       어쩌면 이 생각이 맞을 지도 모른다.

       

       단편적인 정보만 보아도 확실히 이곳의 무속적인 능력은 발달하지 못했다.

       

       두고봐야 알수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너는 신탁을 못 받는 거지?”

       

       “하하, 신의 자식이라 칭송받는 성자들께서도 여러 신관들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한참 모자랍니다.”

       

       “흐음…”

       

       파라몬 영감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걱정되는 게 있으면 자네도 점을 보면 될 일이 아닌가?”

       

       “벌써 봤어요. 계속 애매해서 그렇지.”

       

       구교살이 껴 있었다.

       

       구설수에 오를 일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웃긴 건 이 구교살이 뚝 떨어져 나갔다.

       

       “한스, 너희 스승님 구설수 조심하라 그래.”

       

       “구설수가 뭡니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거야. 아마 이번엔 안 좋은 일일걸?”

       

       “스승님께서는 명망 높은 성직자 이십니다. 거기다 신관들은 함부로 남의 험담을 하지 않지요.”

       

       내 구교살을 떼어간 건 클라인 영감이었다.

       

       그러게 복채를 내라고 했을 때 내고 갈 것이지···.

       

       나니까 5실버만 받고 끝나는 건데 괜히 더 크게 돌려 받게 생겼다.

       

       이것 말고는 저주의 반동으로 몸이 아플 운세 밖에 없었다.

       

       웃기게도 취업운이 하나 붙기는 했다.

       

       “참나…어차피 안 해 줄 거면서.”

       

       파라몬 영감이 싱긋 웃으면서 말을 내뱉었다.

       

       하루하루 미소가 부드러워 지고 있었다.

       

       “자네, 피곤하지는 않은가? 새벽에 인형을 들고 어딘가로 가는걸 보았다네…”

       

       잠시 이 영감이 소드 마스터라는 걸 깜빡했다.

       

       사람 민망하게 그런 걸 왜 훔쳐본 건지···.

       

       “슬슬 달리도록 하지.”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끝없이 달렸다.

       

       말들이 쉬는 시간과 밤에 잠을 자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달렸다.

       

       첫째 날이 지나고 둘째 날이 되었다.

       

       우리는 계속 달렸다.

       

       셋째 날이 지났을 때 이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땅에 있는 지기가 점점 약해졌다.

       

       하지만 정령을 다루는 아이린 조차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노움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을 뿐.

       

       넷째 날.

       

        영혼이 찾아왔다.

       

       그때와 똑같이 유골을 찾아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다섯째 날.

       

       이때부터 횡액이 잔뜩 끼기 시작했다.

       

       예지몽도 아닌 시끄러운 꿈들이 자꾸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엘프의 숲과 가까워질 수록 횡액이 두터워졌다.

       

       여섯째 날.

       

       도착한 영지에서 식량을 구매한 후 바로 달렸다.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엘프의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다.

       

       “빨라도 너무 빨라…”

       

       이렇게 단기간에 도착할 줄이야···.

       

       그동안 수없이 방울에 대고 여쭈어 봤지만 내려온 공수는 단 하나였다.

       

       한스 아저씨의 영혼이 든 술병이 보이며 입에서 계속 저주라는 말이 맴돌았다는 것.

       

       엘프의 숲으로 들어서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공수는 없었다.

       

       “저주랑 연관이 있다는 건데…”

       

       워프를 통해 바로 도착하지 않게 한 것은 이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일단 들어가 보죠.”

       

       숲 안으로 들어갈수록 우중충한 느낌이 강해졌다.

       

       “아이린, 정말 아무 느낌이 안 들어요?”

       

       “떠나기전의 숲과 같아요.”

       

       “이상한데…”

       

       세계수에 대한 점사가 나올 때 보았던 시커먼 기운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몸을 꽁꽁 숨긴 녀석이었으니···.

       

       아마 우중충한 느낌은 내가 영안으로 느끼는 그 녀석의 흔적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한 발을 더 내딛는 순간.

       

       “…음?”

       

       나무 안에서 영혼이 미끄러져 나왔다.

       

       “….엘프?”

       

       한둘이 아니었다.

       

       주변을 한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영혼들이었다.

       

       그들의 한쪽 팔이 들려져 있었다.

       

       한곳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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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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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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