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6

       마치 어디 유명 관광지에서나 볼 법한 낙서들.

       

       그런데 여기는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고원지대. 게다가 과거 마족들이 모종의 이유로 몰살당한 곳이다.

       

       발랄한 분위기의 내용으로 보아 일단 마족이 쓴 건 아닌 듯하고….

       

       ‘최강특임대 여기 왔다감!’

       

       특임대라면 역시 마왕군에 맞서던 인간연합 쪽.

       

       ‘뿔쟁이 공동묘지 조성 기념’

       

       이것은 이 특임대가 야생마를 포획하러 온 마족들을 몰살시킨 장본인들이라는 뜻인가.

       

       ‘우리 우정 영원히 함께!’

       

       서로 사이가 굉장히 좋았나 보네.

       

       ‘라이너스♡셀린느 제발 결혼해라’

       

       이건 무슨 뜻일까. 특임대 중에 서로 좋아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인가.

       

       그런데 어째 이름이 굉장히 낯이 익다.

       

       라이너스, 라이너스, 라이너스….

       

       헉?! 설마 마왕을 죽인 대륙의 영웅 라이너스 경?!

       

       드래곤이 아니라 라이너스 경이 여기 왔던 거였어!

       

       그거라면 모든 상황이 다 이해가 된다. 라이너스 경이라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마족들을 몰살시킬 수 있었겠지.

       

       “교수님들, 여기 좀 보세요. 여기에…!”

       “쉿! 나타났다!”

       

       막 나이틀리가 교수들에게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말하려는데 오렌디 교수가 손을 들었다.

       

       저기 초원과 산맥 사이의 어두운 숲. 그 경계에 브룬 고원 야생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나이틀리는 저 유명한 용사파티의 낙서는 까맣게 잊은 채 입을 벌렸다.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을 맞으며 나타난 야생마들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강대하게 꿈틀대는 근육과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매끄러운 털. 영원을 달리듯 초원을 가뿐히 박차는 곧게 뻗은 다리.

       

       그 아름다운 말들이 대략 서른 마리로 아카데미에서 필요로 하는 수와 대략 일치한다.

       

       한동안 야생마의 우아한 움직임에 매료되어 있던 나이틀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급작스러운 의문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걸 어떻게 포획하나요? 설마 이 수레를 재활용하는 계획은 아니겠죠?”

       “내가 그렇게 황당무계한 놈은 아니야.”

       

       디안이 웃자 나이틀리는 계속 의문을 표했다.

       

       “교수님이 세 분이나 계시니 어떻게든 저것들을 아카데미로 끌고 간다고 쳐요. 그 다음은요?”

       

       디안이 묻는 눈빛을 보내자 나이틀리가 말을 이었다.

       

       “진짜 야생마는 사람을 태우도록 교육하는 과정이 굉장히 험난해요. 경주마를 예로 들면 망아지 시절부터 마구를 익숙케 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치죠.”

       

       말의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전투승마교수 애나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 것도 없이 대뜸 야생마에 올라타면 강하게 거부하며 몸부림을 치기에 감당이 불가능해요. 그리고 학생들이 전문 구무원이나 조련사도 아닌데 야생마로 실습이라니.”

       “계, 계속해. 나이틀리 학생….”

       

       마치 야한 냄새를 풍기는 학부생을 본 것마냥 애나 교수가 다음 말을 종용했다.

       

       “망아지를 잡아서 용도에 맞게 전문적으로 훈련을 시키는 게 상식이에요. 훈련없이 성장한 개체는 써먹을 수가 없어요. 말은 고집이 굉장히 강한 동물이고 한번 습관이 굳어지면 고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요.”

       

       말이 끝나자 애나 교수가 ‘스으읍’하고 입맛을 다셨다.

       

       “너… 말에 대해 굉장히 잘 아는구나…? 원래 이쪽에 관심이 많은 거야…?”

       “어렸을 때부터 승마를 배우면서 마굿간지기들에게 들은 것들이에요. 이쪽으로 나갈 생각은 전혀 없고요.”

       “아, 그래…. 그런데 네가 한 가지 간과하는 게 있어….”

       

       아쉬운 듯 도로 의기소침 웅크린 애나 교수가 말했다.

       

       “여기 브룬 고원 야생마들은 보통의 말과는 좀 달라….”

       “다르다뇨?”

       “우두머리 말을 중심으로 강하게 뭉쳐 무리생활을 해…. 그 유대감과 우두머리에 대한 복종심이 상상을 초월하지…. 아마 고립되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닐까…? 여튼… 그래서 오히려 다른 야생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들이기가 쉬워…. 왜냐면….”

       

       그 말을 들은 나이틀리가 자신의 추측을 내놓았다.

       

       “설마 우두머리만 제압하면 나머지도 고분고분해진다거나 뭐 그런 건가요?”

       “마, 맞아…!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질 좋은 말들이 여태껏 야생에 있다는 건….”

       “여기까지 올라와서 우두머리를 제압하는 데에 드는 수고와 노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겠죠.”

       “히익?! 너 진짜로 이쪽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졸업 후에….”

       “혹시 저게 그 우두머리입니까?”

       

       그때 오렌디가 팔을 뻗어 저쪽을 가리켰다.

       

       야생마들 사이에 만년설처럼 새하얀 말 한 필이 우뚝 서있었다.

       

       다른 말들보다 월등히 큰 체구에 길게 늘어뜨린 갈기는 말들의 왕에게만 허락된 왕관처럼 보인다.

       

       “저놈이 우두머리다.”

       

       수레 사이로 눈을 내민 디안 교수가 입을 열었다.

       

       “저놈만 주저앉히면 다른 놈들은 절로 굴복해.”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겠는데요? 저거 발에 채이면 그대로 즉사하겠어요. 세상에, 무슨 말이 저렇게 커?”

       

       고고하게 서서 무리를 통제하는 우두머리를 보면 오렌디가 물었다.

       

       “마법을 써볼까요?”

       “그건 안 돼…. 말이 다칠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몸으로 부딪혀서 완력으로 눌러야만 해….”

       “그럼 역시 전투승마 전문가인 애나 교수님께서 나설 시간이군요.”

       “아니. 나이틀리가 한다.”

       

       디안 교수의 말에 모두의 황당한 시선이 쏠렸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 우두머리 말은 나이틀리가 제압한다. 그게 오늘의 개인교습이야.”

       “수, 수석교수님…. 너무 위험해요….”

       

       교수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당사자인 나이틀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디안을 쳐다보기만 했다.

       

       “제가… 저기 타야 한다고요…?”

       “그래, 나이틀리. 네가 타는 거다.”

       “하지만 저건….”

       

       나이틀리는 디안의 어깨 너머로 우두머리 말을 다시 봤다.

       

       어느 말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마치 오거나 트롤과의 교배종처럼 보이는 거대한 야생마.

       

       나이틀리는 입술을 달싹이다 낮게 외쳤다.

       

       “갑자기 저런 걸 탈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너는 이미 기본적인 승마술을 모두 익힌 상태야. 특임대원이 되고 싶다고 했지? 현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말을 훔쳐 타기도 하고 오늘처럼 야생마를 잡아야 할 때도 있어.”

       

       디안이 진지하게 말했다.

       

       “저 우두머리를 제압할 수 있다면 너는 이 세상 모든 말을 탈 수 있게 된다. 저 말이 네 애마가 된다고 생각해 봐.”

       “그렇지만….”

       “애마에 타라, 나이틀리.”

       

       디안의 말에 나이틀리는 고개를 떨궜다.

       

       “역시 무리예요….”

       “내가 옆에서 봐줄게. 그럼 되잖아?”

       “아뇨….”

       

       제아무리 자존감이 강한 나이틀리였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만약 낙마해서 저 거체의 발굽에 밟히기라도 한다면 온몸이 으깨질 것이다. 운 좋으면 사망, 운 나쁘면 평생 불구로 살게 되겠지.

       

       그건 너무 무서워.

       

       “놈이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눈치챈 것 같은데요?”

       

       오렌디의 말에 돌아보니 우두머리 말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타지 않을 거면 돌아가라, 나이틀리.”

       

       디안의 단호한 말에 오렌디가 나이틀리를 돌아봤다.

       

       “나이틀리. 네가 왜 여기에 왔는지를 생각해 봐. 심화과정을 배우고 싶어서잖아.”

       “하지만….”

       

       주저하는 나이틀리를 보던 디안이 교수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애나, 오렌디. 준비하자.”

       “알겠습니다.”

       

       애나가 가방에서 밧줄을 꺼내 사리는 동안 오렌디와 디안은 우두머리 말 위로 애나를 순간도약시키는 방안을 빠르게 토의했다.

       

       그 사이 홀로 남겨진 나이틀리는 지독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큰소리쳤지만 이런 것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저번에 야간침투 때 말도 안 되는 곳으로 밀어넣을 때 예상을 했어야 했는데….

       

       입술을 깨물던 나이틀리의 시야에 문득 아까의 그 낙서가 들어왔다.

       

       라이너스 경의 용사파티가 쓴 낙서. 어릴 적 오빠들에게 듣고 가슴 설레며 특임대원의 꿈을 키우게 된 영웅의 이야기.

       

       만약 여기서 포기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그저그런 공무원이 되어 보통의 삶을 살다 결국 가문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타겠습니다.”

       

       나이틀리가 입을 열자 분주히 준비하던 교수들이 그녀를 돌아봤다.

       

       “까짓것, 한번 해보죠.”

       

       

       # # # # #

       

       

       “잘 들어, 나이틀리…. 등에 올라타자마자 목에 밧줄을 걸어….”

       

       애나가 나이틀리에게 밧줄을 건네며 설명했다.

       

       “그게 네 생명줄이야…. 가능하다면 배 아래쪽으로도 걸면 좋겠지만 그건 어려울 거야…. 일단 목에 걸어 조이면서 최대한 등에 붙어 있어…. 떨어지지 않고 버티기만 하면 돼….”

       “알겠어요.”

       “수석교수님께서 말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힘을 빼시겠지만 핵심은 너야…. 무조건 등에 타고 있어야만 해…. 그래야 브룬 고원의 야생마는 복종하거든….”

       “버텨 볼게요.”

       

       애나가 나이틀리에게 신신당부하는 동안 오렌디가 디안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진짜 괜찮은 건가요, 이거?”

       “괜찮아. 직접 말 꿇리는 것도 아니고 버티는 건 나이틀리도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러다 혹시나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인데요.”

       “한 십 분 정도면 끝날 것 같으니 그럴 일 없을 거다.”

       

       그 말에 애나가 끼어 들었다.

       

       “그건 어떻게 장담하세요…? 최소 한 시간은 걸릴 텐데….”

       “수없이 사선을 넘나든 베테랑의 직감이다. 시작하자.”

       

       모든 준비가 끝나자 오렌디가 양손에 파란 마력을 피워 올렸다.

       

       “나이틀리. 셋을 세면 바로 말의 위에 떨어져. 대비할 시간은 없어. 바로 행동에 들어가야 해.”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간다. 하나, 둘, 셋!”

       

       갑자기 눈앞에 말의 희고 커다란 등판이 나타났다.

       

       나이틀리는 곧바로 밧줄을 풀어 말의 목에 걸며 두 다리로 몸통을 꽉 조였다.

       

       갑작스러운 탑승에 우두머리 말이 소리를 내지르며 앞뒤로 무자비하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말이라는 동물은 힘이 센데 하물며 덩치가 큰 우두머리 말이 작정하고 날뛰니 나이틀리는 거의 허공에서 휘둘러지는 모양새.

       

       우두머리 말이 흥분하자 무리의 말들이 겁에 질려 우두두두 도망가는 가운데 디안은 팔짱을 끼고 나이틀리를 지켜보기만 했다.

       

       “수석교수님! 뭐하십니까! 올가미를 던져요!”

       

       그 모습을 본 애나와 오렌디가 소리를 쳤지만 디안은 여전히 올가미를 어깨에 걸친 채로 요지부동.

       

       나이틀리는 이를 악물며 우두머리 말의 목과 등에 찰싹 달라 붙었다.

       

       빌어먹을 교수가! 왜 빨리 올가미를 걸지 않는 거야!!

       

       뭐?! 도와주겠다고? 그래놓고 어째서 팔짱만 끼고 있는 건데!!

       

       “빨리 해요, 교수님!!”

       “힘내라, 나이틀리~~~!”

       

       저 미친 인간 같으니!!!!!!

       

       두 번 속은 내가 병신이지!!!!!!!!!!!!!!

       

       

       

       

       

       

    다음화 보기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