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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진성은 축지를 연달아 사용해 서울로 이동했다. 그리곤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적당한 삼거리를 찾아 자신이 만든 제웅을 집어던지곤, 주언을 외웠다.

       

       “액신을 잡은 처용이 천릿길을 나아가니, 액은 사라지고 경사가 오니라.”

         

       그는 주문을 외우자마자 뒷골목에 몸을 숨긴 채 제웅이 부서지기를 기다렸다.

         

       “어?”

       “야! 이거 이상해!”

       “건드리지 마! 무슨 저주 인형 아냐?”

       “응~ 아니고요~ 저주받은 건 니 깡이고요~”

       “응 아니야~만지면 저주받아~”

         

       마침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었는지 아이들이 우르르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고, 제웅의 생김새 때문인지 호기심이 많은 초등학생에게 금방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인의 장막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게 저주 인형이라느니, 그냥 누가 떨구고 간 주술물품이라든지 각자 자기 의견을 시끄럽게 떠들었다.

         

       “얘들아, 뭐 하는 거…. 어머?”

       “어이구, 이거 오랜만에 보네.”

         

       그리고 그 소란을 들었는지 학교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선생과 수위 아저씨였다. 선생은 인형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아이들을 물리려고 했지만, 수위는 오히려 반갑다는 듯 제웅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디 보자, 옷도 입었고…. 동전도 있고. 이야, 요새도 이런 걸 하는 사람이 있는구먼.”

       “아저씨! 위험하게 뭐 하는 거예요!”

       “아이고 김 선생, 그런 거 아냐. 이거 제웅이야 제웅.”

         

       나 어릴 적에는 말이야~로부터 시작한 수위의 말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어릴적에는 이런 걸 자주 보았다느니, 제웅을 부수고 동전 빼다가 아이스께끼를 사서 나눠먹었다느니, 그러고도 성이 차질 않아서 집에서 부지깽이 하나 갖다가 엿장수한테 주고 엿 바꿔 먹었다가 얻어터졌다느니 하는 말들이었다.

       선생은 모 야구선수처럼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강제로 그의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

         

       “그러니까 안전하다는 이야기죠?”

       “아이고, 물론이지. 저거 다 복 받으려고 하는거여. 삼거리에 저렇게 갖다 놓고 애들이 때려 부수면 복이 온다고 복이. 그리고 동전은 부순 애들끼리 나눠 갖고 말야.”

       “하아….”

         

       선생은 몸이 근질근질한지 제웅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얘들아 말 들었지? 위험한 건 아니니까 마음껏 가지고 놀면서 부수고, 거기 꽂혀있는 동전은 알아서 가져가렴.”

       “네!”

         

       그리곤 애들은 제웅을 끌고 운동장으로 가서 뻥뻥 차거나 집어 던지는 등의 행위를 하며 험하게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제웅은 금방 묶음이 풀려서 군데군데 터져나가고, 곧 제 형체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난 이 500원짜리!”

       “내가 먼저 가져가려고 했는데! 그럼 난 100원!”

       “아…. 이거 장난감 동전 같은데….”

         

       이윽고 꽂혀있는 동전 세 개를 나눠 가진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그제야 진성은 뒷골목에서 나왔다.

         

       “마지막에 은화를 집은 아이에겐 운기가 머물러 있구나. 참으로 좋은 일이로다.”

         

       은화 그 자체만으로도 약 7만 원. 거기에 수직 동굴에서 영혼을 정화하며 파사(破邪)의 힘도 조금이나마 깃든 은화였다. 아마 안목이 있는 이에게 가져간다면 못해도 두 자릿수, 잘하면 세 자릿수의 금액 정도는 받아낼 수 있으리라.

         

       진성은 부서진 제웅으로 걸어가 미리 빼놓았던 테이프 레코더를 꺼내 지푸라기의 잔해 위에 올려놓았다.

         

       “본디 하나였던 것은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법. 여기 가슴에 심장 대신 뛰고 혀 대신 말하던 것이 있으니, 제웅의 백(魄)은 필히 귀환하라.”

         

       감염 주술의 원리에 의해 부서져 버린 제웅에 남은 것, ‘나머지’ 혹은 ‘찌꺼기’에 불과한 것들은 바람이 길을 따라 흘러가듯 자연스레 테이프 레코더에 몰려들었다. 그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어 큰 의미는 없는 것이었으나….

         

       “본디 마지막까지 쥐어짜야 효율적인 법.”

         

       진성은 주술의 효과를 최대로 뽑아내기 위해 마지막까지 손을 썼다. 그는 제웅의 잔해 위에 테이프 레코더를 놓고 틀어놓았다.

         

       “—인찬복성(人讚福盛)하샤 미나거신 탁애 칠보(七寶) 계우샤 숙거신 엇게예 길경(吉慶) 계우샤 늘의어신 사맷길혜—-”

         

       그는 테이프 레코더에서 흘러나오는 처용가를 들으며 다시 축지를 사용했다.

         

       끼익.

         

       목적지는, 저택.

         

         

         

        * * *

         

         

         

       “ॐ स्वभाव सुद्भाः सर्व धर्माः स्वभाव सुद्धोऽहम्.”

         

       저택에 도착한 진성은 돌아오기 무섭게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했다. 이는 목욕재계(沐浴齋戒) 같은 부정을 없애기 위한 행동임과 함께 몸에 묻은 냄새를 지우기 위한 것이었다.

         

       “냄새가 나는 것은 부정한 것이라. 하여 부정한 것은 냄새를 머금고 있음이라.”

         

       이는 수직 동굴에서 몰려들었던 악령 때문에 몸에 악취가 배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강한 악령은 악취를 가지고 있는 법. 빛이 제대로 닿지 않은 깊숙한 수직 동굴에서 악령은 음기와 습기에 노출된 채 오랜 세월 원한을 묵혀왔고, 그 때문에 특유의 시취(屍臭)에 다 썩어버린 피 냄새까지 머금고 있었다.

       그나마 피 냄새가 난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만약 수직 동굴 밑에 물이 고여있었다면 필시 물귀신이 있었을 터이고, 물귀신이 있었으면 반드시 특유의 비린내와 부패한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을 것이다.

         

       그리고 냄새에 생각이 미치자 수직 동굴 바닥에서 맨바닥을 헤엄치고 있을 무인이 떠올랐다.

         

       “귀신 냄새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맡아지거늘. 참으로 코가 괴롭겠구나.”

         

       하지만 어쩌겠는가.

       쓸모가 없었는데.

         

       “쓸모가 조금이나마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소중한 인질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적어도 협상 테이블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가치만 있었어도 충분했을 것을.

         

       ‘망나니는 어디에나 있는 법.’

         

       무인은 아예 일본에서도 쓸모가 없다고 판단돼서 쫓겨나듯이 한국에 온 몸이었다. 사츠마에서 허구한 날 사고를 치고 다니고, 망나니들이랑 몰려다니며 지역 주민들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예쁘장한 여자를 꼬시려고 소동을 일으키는 등 온갖 사고를 치는 몸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몸 담고 있는 유파, 야태도아랑류(野太刀餓狼流)의 큰 손 후원자의 조카를 꾀려다가 사달이 나고 말았다. 예쁘장한 외지인이라고 생각해서 생각 없이 들이대고, 너무 끈질기게 들이대다 신고까지 당한 그는 그 일로 유파에서 완전히 눈 밖으로 나버리게 된 것이다. 눈 밖으로 나버린 그는 은근한 괴롭힘을 받기 시작했고, 그것에 견디지 못해서 한국에 있는 일본계 대부업체에 파견을 오게 된 것이었다.

         

       ‘권력자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 조카의 신력(神力)이라도 알아봐야 했거늘. 참으로 무지하고 나약한 놈이로다.’

         

       다시 돌아가서 자리를 잡을 확률은 없었다. 그가 심기를 어지럽힌 큰 손은 일본 신토(神道)쪽 종교인이었고, 그가 꼬시려고 했던 여자는 신사에서 신을 모시는 무녀였다. 유파에서는 버림받고, 신토 종교계 쪽에서는 눈총을 받고, 온갖 행패를 부리다가 결국엔 무녀까지 건드리려 했다는 소문까지 퍼지니 일반인들에게도 눈총을 받았다.

         

       다른 지역에 가서 살면 되지 않냐고?

       일본인은 배타적이다.

       젊은 나이에 단신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무인을 좋은 눈초리로 보진 않을 것이 분명했으며, 만약 사츠마 지역에서 그가 했던 일이 조금이라도 퍼지는 날에는 무라하치부(村八分, 지역공동체가 행하는 따돌림)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무인은 아예 한국에서 살아가겠다는 마음으로 대부업체로 파견을 나왔고, 운 좋게 그곳 사람들이랑 마음이 맞았다. 무인은 그들을 친구로 여기고 마음을 열었고, 그들과 함께 제2의 고향인 한국에서 살아가려 했지만.

         

       “옴.”

         

       결국엔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만약 그가 본래 있던 곳에서 최소한의 인망(人望)이 있었다면.

       아주 조금, 정말 조금만이라도 인질로서의 가치가 있었다면.

       단련을 열심히 해서 진성이 원하는 ‘마나(Mana)로 행하는 무술’에 대한 정보를 뱉어낼 수 있었다면.

         

       만약.

       만약….

         

       “수많은 ‘만약’이 있었지만 단 하나도 해당하지 않았으니 죽어 마땅하다.”

         

       단지 그뿐인 이야기다.

         

       그래도 쓸모 있는 정보는 충분히 뽑아낼 수 있었고, 제웅 주술을 돕는 도우미가 되기도 했으니 아예 쓰레기는 아니란 점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리라.

         

       “제웅으로 기복 주술을 행했으니 이아린은 필시 일본에 걸릴 것이렷다.”

         

       진성은 무인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일본에 가면 해야 할 일을 천천히 머리로 정리했다.

         

         

       

         

        * * *

         

         

         

       시간이 흐르고, 뺑뺑이 결과가 나오는 날이 되었다.

         

       “응? 러시아네?”

         

       이아린은 해맑게 그렇게 말했고.

         

       “그럼 나, 나도…. 러시아 갈게….”

         

       이세린은 그녀를 따라 목적지를 정했다.

         

       이세린은 마음에 걸리던 것이 해결되었다는 듯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이아린의 곁에 서 있었고, 그 뒤에는 일렁이는 그레모리의 형상이 그 둘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진성은 하나의 의문을 떠올렸다.

         

       ‘어째서?’

         

       제웅 주술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는 의문이나 어째서 그녀가 일본 대신 러시아가 당첨되었느냐는 의문은 아니었다.

       기복 주술이라는 것이 그냥 복을 부르는 것이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게 하는 주술이 아니지 않은가. 그저 운기가 트이게 해주고 행복한 일이 자주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니만큼 일본에 당첨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그의 의문은 조금 더 근원적인 것에 있었다.

         

       ‘지금이 이러하니 회귀 전에도 이러했겠구나!’

         

       그의 의문은 과거이자 미래를 관통하는 것이었다.

       제웅으로 비롯된 주술흔(呪術痕).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기복(起伏)의 힘과 운기의 흐름.

       그 모든 것이 동쪽을, 정확히 말하면 동해를 배제하듯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회귀 전에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주술은 아닐 것이다. 만약 주술이었다면 그것이 거대한들, 그와 수준 차이가 난다 한들 그 티끌이라도 인지를 했을 터.

       아무리 그 당시의 진성이 수준이 낮았다고 한들 아예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술 외의 방법으로 수작을 부려놓은 것일 터.

         

       ‘무지했으면 모르되 알았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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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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