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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0

       “윌버 피어바인이라고 합니다.”

       

       세계수 입구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이곳에서 사제 겸 안내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세계수 견학을 도와드릴 예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에테르가 나서서 윌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사제라더니 과연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목도리처럼 생긴 케이프를 두른 것이 제법 더워 보였다.

       

       “현재 정령계는 많이 춥습니다.”

       

       윌버가 설명을 시작했다.

       

       “정령계는 카우렐리아와 정확히 반대되는 기후를 지닙니다. 카우렐리아가 여름이면, 정령계는 겨울이지요.”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겨울철 옷은 가져오셨나요?”

       “학생들에게 미리 일러두었습니다.”

       

       윌버는 흐뭇하게 웃었다.

       

       “좋습니다. 갈아입으시지요.”

       

       겨울철 옷이라서 뭘 벗거나 할 일은 없었다. 에테르는 가져온 옷들을 캐리어에서 꺼내 대충 둘러입었다.

       

       싸구려 코트 하나에, 흰색 목도리 하나. 단출한 차림이었다.

       

       결리는 곳은 없는지, 보풀이 인 곳은 없는지 확인하던 도중이었다. 누군가가 다가오며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그렇게만 입으면 춥지 않아요?”

       

       붉은 단발에, 홍옥과도 같은 눈동자.

       

       상당한 미모의 소녀였다. 에테르는 이 소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살리에르.”

       “성씨 말고 이름으로 불러주셔도 좋아요.”

       

       로테는 봄날에 핀 꽃처럼 화사하게 웃었다. 에테르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윽,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여기요.”

       

       로테가 무언가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제가 직접 만든 손난로예요. 부디 써주세요.”

       “…그래, 고마워.”

       

       에테르는 마지못해 손난로를 받았다. 소녀의 마음씨만큼이나 따뜻했다. 그러나 그 따스함에서 한기를 느껴야만 했다.

       

       생존본능이 아우성치고 있다.

       

       이 소녀, 로테 살리에르와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고.

       

       로테는 자신이 마수인 줄 아직 모르는 듯하였다. 신문 기사 내용을 전혀 믿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만에 하나, 자신의 정체를 확신하게 된다면?

       

       그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길이 없었다. 에테르는 그 점이 두려워서 로테를 의식적으로 피해다녔다.

       

       “…….”

       

       문득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세계수 이파리가 하늘을 다 덮을 정도로 무성히 자라있다. 가증스러운 나무. 죽기 전에 반드시 불살라 버리리라.

       

       본래 목표를 떠올리고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받은 손난로는 주머니에 대충 욱여넣었다. 

       

       돌발 상황은 그때 벌어졌다.

       

       “선생님, 여전히 칠칠맞으세요.”

       “……!”

       

       딴 생각을 하던 중, 로테가 자신의 품으로 파고든 것이다.

       

       “이렇게 허술하게 묶으면 쉽게 풀리잖아요. 자, 여기 이런 식으로….”

       

       로테는 에테르의 목도리에 손을 댔다. 에테르는 반사적으로 몸을 홱 돌렸다.

       

       “…선생님?”

       “됐다, 선생님이 알아서 여맬게.”

       

       미치겠다. 숨을 못 쉬겠다.

       

       일종의 공포감이었다. 내기에서 져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얼마 전 첫 패배를 겪었을 땐 미련이 없었다. 그때는 졌으면 졌지, 추하게 더 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지금은 사라진다는 것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이건 앞으로의 존망이 걸린 문제였다. 오늘 로테와는 두 번 다시 말을 섞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던 참이었다.

       

       “그럼 여러분, 절 따라오시길 바랍니다.”

       

       윌버의 안내가 시작되었다.

       

       에테르는 일부러 로테와 거리를 두고 걸었다. 로테는 자신의 뒤를 슬슬 쫓아왔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한 번 고개를 돌릴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세계수 입구는 다소 번잡스러웠다. 내부에 비해 들어가는 곳이 비좁아서 병목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인솔자께선 학생들을 두 명씩 짝짓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두 들었지? 근처에 있는 사람과 짝을 맺으렴!”

       

       학생들이 에테르의 말을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인파가 흩어졌다가 모이길 반복하며 정렬되었다.

       

       짝을 지어놓고 나니 눈에 띄는 쌍들이 몇몇 있었다.

       

       우선 유피엘과 레니냐. 저 둘은 예상했던 조합이다.

       

       다음으로 아카샤와 프레이. 미묘한 조합이었지만 그럭저럭 잘 맺은 듯하다.

       

       아카샤는 생각 외로 프레이를 잘 챙겨주고 있었다. 쟤네 둘이 원래 친했었나?

       

       “선생님, 전체 학생 수가 홀수라서 전부 짝을 맺을 수 없습니다.”

       “남은 학생 한 명이 나와 짝을 맺으렴. 누가 남았니?”

       “저예요.”

       

       부름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음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어쩌다 보니 제가 남아버렸어요.”

       “…….”

       “선생님과 같이 걸어도 될까요?”

       

       에테르는 이마를 탁 소리나게 짚었다.

       

       “…아, 살리에르. 그래. 그러렴….”

       

       하필이면 남은 사람이 로테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친구관계가 원만한 로테 살리에르가 혼자 남았다?

       

       뭔가 이상했다. 에테르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로테를 떠 보았다.

       

       “짝을 지을 친구가 없었니?”

       

       로테는 웃음을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세계수 내부는 축축하고 습한 곳이었다.

       

       위쪽 부분은 컴컴했다. 그 모습이 꼭 속이 빈 나무와도 같았다.

       

       – 뚝뚝

       

       하늘에선 가끔가다 점액질의 액체가 떨어졌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분위기는 몽환적으로 변해갔다. 요정들이 나오는 동화 속 세상처럼 말랑말랑한 장소였다.

       

       거기에, 호롱불이 떠다니는 광경이 신비감을 더했다. 곳곳에 비치된 호롱불들이 공중을 활공하며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금 세계수 내부는 대부분 공사중입니다. 바닥을 보시면 마법진이 깔려있죠? 아는 사람은 아는 지대공 요격진입니다. 아직 미완성이지만요.”

       

       윌버는 가는 곳마다 궁금해 할 만한 것들을 설명했다. 

       

       에테르는 윌버가 하는 설명 대부분이 지루했다. 그렇게 멍을 떄리며 한참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였다.

       

       웬 거대한 방이 나타났다.

       

       “이곳이 로드스톤이 있는 방입니다.”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들어갈 수 있는 곳인가요?”

       “네, 상관없습니다.”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너도나도 먼저 들어가겠다고 고개를 기웃거렸다. 에테르는 학생들을 줄세운 뒤 천천히 들여보냈다. 자신은 의심을 사지 않도록 마음을 차분히 하고 중간에서 대기했다.

       

       “다들 들어왔나요? 여기 보이는 것이 로드스톤입니다.”

       

       윌버는 옥색으로 빛나는 돌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마왕의 혼 일부가 봉인되어 있습니다. 보시면 쇠사슬과 여러 안전장치로 묶여 있는 모습이죠? 마왕의 부활을 막기 위해 조치한 것들이랍니다.”

       

       학생들이 감탄했다. 반면 에테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을 보면서 1천년 전 대전쟁에서 용감히 싸우셨던 선조들을 기억합시다.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니까요.”

       

       로드스톤을 보면 꼭 해야할 것이 있다.

       

       무명용사에 대한 묵상. 학생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마왕군에 희생된 영웅들을 추모했다.

       

       – 텅, 텅, 텅.

       

       “응?”

       “무슨 일이냐!”

       

       주변을 밝히고 있던 호롱불 열댓 개가 갑자기 꺼졌다.

       

       “마력회로에 누수가 있는 모양입니다!”

       “뭐야? 빨리 고쳐!”

       

       시설 인력들이 우당탕탕 돌아다니는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뭐, 뭐야?”

       “왜 갑자기 불이 꺼졌지?”

       

       학생들이 우왕좌왕했다.

       

       “무슨 일이죠?”

       “호롱에 공급되는 마력이 떨어진 모양입니다!”

       

       에테르는 침음을 삼켰다.

       

       – 호롱불, 그리고 그림자를 조심하라.

       

       “혹시 모르니 학생들을 방 밖으로 내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현명하십니다.”

       

       윌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를 활짝 열었다. 화계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손가락을 튕겨 불씨를 지폈다. 학생들은 그 불씨에 의존하여 천천히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선생님,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어느새 로테가 곁으로 다가오며 불편을 호소했다. 에테르는 그 말을 묵묵히 수긍했다.

       

       – 파앗!

       

       “다행히 별다른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호롱불에 다시 마력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학생 여러분, 당황하실 필요 없어요. 단순한 소등 현상이었다고 합니다.”

       

       윌버는 학생들을 안심시키는 한편, 시설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핀잔을 주었다.

       

       “견학하는 날 이래서야 쓰겠나. 구체적인 원인을 찾는대로 윗선에 보고하게.”

       

       시설 인력들이 나가고 얼마 후.

       

       에테르는 멀찍이서 로드스톤을 재감상했다.

       

       “저게 공(空)의 로드스톤이로군요. 태어나서 처음 보았습니다.”

       “네, 바람의 로드스톤이라고 하죠. 저 안에는 마왕 파르켈수스의 영혼 조각이 담겨 있습니다.”

       

       파르켈수스라.

       

       그 이름, 정말로 오랜만에 들어본다. 에테르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화 주제를 전환했다.

       

       “뭔가 이상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습니다.”

       

       정령마도사가 정령의 기척을 감지하듯이, 마왕군 고참들도 마왕의 마력파장을 감지할 수 있다.

       

       바람의 로드스톤 내부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껍데기만 남고 속은 텅 빈 항아리 같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뭔가 삿된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겉보기로는 그냥저냥 평범한 보석 같은데요.” 

       “하하, 그런 감상을 하고 가시는 분도 계시죠. 며칠 전 저희 총책임자 분께서도 비슷한 평가를 하셨답니다.”

       

       윌버는 머리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 로드스톤은 다들 보신 것 같군요.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다음은 어디인가요?”

       “정령계로 향하는 포탈 위치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에테르는 학생들을 긁어모은 뒤 인수를 세었다. 결원은 없었다.

       

       “포탈 근처에 제단이 있습니다. 우선 그곳부터 둘러보도록 하죠.”

       

       이제 일행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 깜빡, 깜빡, 깜빡

       

       벽에 설치된 호롱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윌버는 설비 인력을 나무랐다.

       

       모든 호롱불을 고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중간부터는 시야를 포기하고 속도를 택했다.

       

       랜턴으로 앞을 밝히며 걷던 윌버가 입을 열었다.

       

       “다 왔습니다. 이곳이 세계수의 중심부입니다.”

       

       그가 슬쩍 몸을 비키자 거대한 제단이 눈에 들어왔다.

       

       돌과 황금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높이는 20미터 정도였고, 둘레는 1백 미터가 조금 안 되는 듯했다.

       

       웅장한 크기와 세련된 무늬에 학생들은 너도나도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이곳 제단에선 흔히 말하는 신탁과 세례를 받습니다. 신탁은 여신님의 말씀이시고, 세례는 곧 정령과의 계약입니다.”

       

       보통 정령은 계약자를 직접 선별하고 찾아간다.

       

       하지만 예외는 존재한다. 아주 가끔, 이곳으로 들어와 정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도 계약할 수 있었다. 소설로 비유하자면 전자는 컨택이고, 후자는 투고인 셈이다.

       

       엘프는 대부분 컨택으로 계약한다. 반면에 인간은 컨택은커녕 투고도 어렵다. 에테르는 이 점이 마음에 안 들었다.

       

       “혹시 계약한 정령이 없으신 학생 계신가요? 그런 학생은 제단에 올라가 보셔도 좋습니다.”

       

       윌버의 말은 틸레트 학생들에게 꿀물처럼 달콤했다. 정령과 계약할 수 있다면, 마법을 다루는 수준도 한층 성장할 테니까.

       

       “나, 나, 나! 나 해볼래요!”

       

       프레이가 낑낑거리며 손을 번쩍 들었다.

       

       뒤이어 지원자들이 차례대로 올라갔다 내려오길 반복했다.

       

       “…전부 응답이 없군요.”

       

       로테까지 해서 전부 꽝이었다.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기는커녕, 재단에서 빛무리 하나 떨어진 적 없다.

       

       “아무래도 덕이 부족한가 봐요.”

       

       로테는 씁쓸하게 웃으며 에테르 곁으로 돌아왔다.

       

       “선생님도 올라가 보시겠어요?”

       “아뇨. 전 괜찮으니…….”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윌버가 제단을 가리키며 환히 웃었다. 악의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미소에 속이 바베큐 숯처럼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 별 일 없겠지. 에테르는 최대한 속을 비워냈다. 

       

       착한 생각, 착한 생각만 하자. 악의 따위 품지 않는 모습 그대로….

       

       – 척

       

       심호흡을 하며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 화아악!

       

       제단 정상에서 빛무리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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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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