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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0

       이전에는 내가 학생회에 불려갔던 이유가 ‘황녀였기에’ 였지만, 지금은 내가 ‘명사라서’인 모양이다.

        

       다른 작위 없이 공작-백작-남작-기타 작위 없는 귀족으로 간단하게 나뉘는 제국의 계급에서 사실 명사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은 숫자 자체가 극소수인 황족을 제외하면 거의 다 공작과 백작에 몰려있다. 공작가만 해도 열 두 개나 되는 곳이다. 당연히 백작은 그보다 수가 더 많고, 남작은 발에 치일 만큼 있다.

        

       그러니 남작이 ‘명사’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어중간한 백작가의 애들보다 더 쟁점이 될만하다는 뜻이다.

        

       뭐, ‘남작가 녀석이 나댄다’라고 하려는 애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래봐야 내 바로 옆에 황녀 둘이 붙어 다닐 텐데 무슨 걱정이겠는가.

        

       “아, 그레이스 영애!”

        

       학생회장은 나를 이상하게 반겼다.

        

       “지난번에 보았을 때보다 더 아름다워진 것 같군. 편지를 몇 통 보냈는데 읽지 못했나?”

        

       “…….”

        

       어.

        

       만난 적이 있던가.

        

       연회에 가면 남자가 자꾸 꼬이는 바람에 대충 인사만 나누고 레오와 같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잘 모르겠다.

        

       내가 주로 말을 거는 사람들은 나이 많은 여인들이나 콧대 높은 고위 귀족들이었다. 손녀뻘 되는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다는 듯 허허 웃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다른 귀족들 앞에서 나를 좋게 말해주니까.

        

       주로 그런 귀족 중에 남자 귀족들은 나를 그렇고 그런 눈으로 보는 이도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평민도 아닌 남작가 여식을 함부로 범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나는 언제나 당당하게 굴었다. 게다가 이미 황녀 두 사람이랑 대화했다는 사실도 사방에 퍼졌고.

        

       앨리스와 클레어가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까지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잖아? 무도회에서 나와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꽤 화젯거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게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는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회장 개인의 사심이라던가.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내가 이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그렇게까지 해로운 이미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황녀님들도, 방문해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리고 벨부르 왕녀님도요.”

        

       크흠, 하고 학생회장은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래, 실례이기는 하지. 나보다 지위가 더 높은 이가 몇 명이나 있는데도 나한테 제일 먼저 반응했으니까.

        

       사실 앨리스나 클레어, 샤를로트의 외모가 나보다 못하지는 않다. 다만 세 사람 모두 회장과는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나는 셈이었으니, 회장으로서는 바로 반갑다는 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격조 높은 집안의 자식인 것 치고는 좀 칠칠찮은 반응이긴 했지만.

        

       *

        

       “저희 모두를 학생회에 초대하고 싶다고요.”

        

       샤를로트가 침착하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론다리움 아카데미 안에서는 외국인이나 내국인의 구분이 없으니까요. 함께 같은 것을 배우고,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 목표이니 국적이나 계급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거짓말이다.

        

       애초에 국적을 따지기에는 외국인 입학생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고, 그런 식으로 입학하는 외국인들도 대부분은 애초에 격조 높은 집안의 아이들이다.

        

       나는 남작가 영애이면서도 여기 끼어있긴 했지만 그건 예외 중의 예외다. ‘그레이스 가’보다는 ‘실비아 그레이스’, 그러니까…… 그, ‘그레이스 가의—’ 아무튼 그 칭호 때문에 불려온 거다.

        

       실제로도 학생회 내의 일부 여학생들은 나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못한 시선을 내비치고 있었다. 나쁜 소문이라면 얼마든 돌 수 있겠지. 내가 말 걸고 다닌 귀족들 대부분이 나이가 많았으니 괜히 꼬리치고 다닌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남학생들의 눈에서는 호의가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몸을 부르르 떨던 때와는 다르다.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나에 대한 ‘이전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이는 아마도 우리 주변의 사람들 뿐일 거라고. 확실히 그 상황에서 유적과 장치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을 사람들은 법국 안에 있던 사람들 뿐이겠지.

        

       “그리고…… 한 사람이 더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아.”

        

       학생회장이 품 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보면서 중얼거리다가, 마침 학생회실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크로우필드 영애!”

        

       학생회장의 그 말에 나, 앨리스, 클레어의 고개가 바로 문 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내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훨씬 더 음침한 이미지의— 아니지, 음침하다기보다는 소심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분위기의 미아가 서 있었다.

        

       게다가 그 미아를 환영한 사람은 회장 한 명뿐이었다. 미아가 들어오는 순간 학생회실이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내가 들어온 뒤에 끊임없이 속닥거리던 몇몇 여자애들조차 입을 다물었을 정도로.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황제의 아이 중 하나였던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루카스가 사람을 제대로 골라갔다.

        

       아무래도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적극적인 성격인 클레어가 앞장서서 다른 아이들을 구하다 보니 루카스의 눈에 든 모양이었다.

        

       짧게 근황을 들었는데, 이 시간대의 황제는 내가 그 딸로 있을 때만큼이나 조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게 기억을 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레오처럼 뭔가 느끼는 것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클레어가 황제의 딸이 되었다는 것은 ‘원작’과 같지만, 그 외의 다른 것은 또 나는 모르는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어쩌면 클레어와 앨리스의 관계가 나와는 달라서였을지도 모르고.

        

       “…….”

        

       그리고, 덕분에 미아의 아버지는…… 살았다. 아마도 그 이후로도 계속 그런 삶을 이어오고 있었겠지.

        

       그리고 그 삶은 미아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미아 앞에서는 다정한 아버지였다고 했다. 그 말에 틀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어두운 감정을 내비친 것도 아니고, 정말로 유능한 백작처럼 굴었겠지.

        

       하지만 미아가 자기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아내가 그럴 수 있을까?

        

       아무리 평민을 벌레 취급할 수 있는 콧대 높은 귀족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는데 거리낌 없이 구는 사람이라도, 그 평민을 ‘자위도구’ 취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그러니까 그런 거다. 남자 시선에서 말하는 게 아니라, 평민을 상대로 성행위를 벌이는 남편을 보는 여성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매일같이 나가서 다른 여자를 안고 돌아오는 남자를 좋아할 여자가 얼마나 될지에 다한 이야기다.

        

       게다가 두 부부 사이에 아무런 애정도 없었던 것도 아닐 거다. 실제로 남편이 죽고 나서 아내인 크로우필드 백작 부인은 바로 복수를 계획했을 정도니까.

        

       애정과 증오는 공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이 마구 뒤섞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보통 그 부정적인 감정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귀족가에서는 그런 부정적인 소문이 몹시 빠르게 도는 법이다. 특히 마약에 중독된 인간의 성격이 망가지기 시작한다면.

        

       “아, 안녕하세요…….”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말주변이 없어 보이는 미아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던 미아의 마지막 모습은 분명 그 모든 것을 이겨낸 모습이었는데.

        

       “크로우필드 영애.”

        

       싸하게 가라앉은 학생회실의 분위기에 학생회장조차 조금 당황했기에, 나는 바로 미아를 불렀다.

        

       미아의 고개가 살짝 들어 나를 보았다.

        

       앞머리 아래에서 반짝이는 눈이 보였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소 음침했고, 목소리에 힘이 없어서 말주변도 별로 없어 보였지만, 나는 그 눈을 보고 내가 보고 있는 미아는 내가 알고 있던 미아라고 확신했다.

        

       이미 한 번 그 모든 것을 극복해 보였던 미아.

        

       ……지금 이 세계가 여신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아니면 진짜로 시간이 돌아간 세계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둘 중 어떤 세상이라도, 미아는 아마 다시 한번 극복해낼 수 있을 거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여기 자리가 남아있으니, 와서 앉는 것이 어떤가요?”

        

       나는 그런 미아에게 살짝 웃어주며 말했다. 내 옆자리에는 레오와 클레어가 앉아있었지만, 앨리스의 옆에 한 자리가 남아있었으니까.

        

       그리고 앨리스는 당연히 미아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 반대편에 앉게 된 샤를로트도 마찬가지고.

        

       클레어는 대놓고 반갑다는 듯한 표정이었고.

        

       그런 우리를 보고 미아의 표정이 한순간 변했다. 단어 하나로 표현하자면 ‘어리둥절’일 것이다.

        

       면식도 없는 두 황녀와 사교계에서 이름 높은 남작 영애가 갑자기 친근하게 군다면 나라도 그렇게 반응했을 것 같긴 해.

        

       샤를로트는 우리 반응이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반응’ 때문에 미아에게 약간 흥미를 느끼게 된 것 같기도.

        

       ……어, 잠깐만.

        

       내가 이쪽으로 건너오기 전에 읽었던 만화 중에 아싸 여주인공한테 갑자기 인싸무리가 말을 걸어서 친해지는 만화가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 이거 그 상황 아닌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미아에게 인기가 없는 것은 실비아 잘못이… 아닌가?

    =

    에어프라이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 쓰는 내내 독자 여러분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글을 올릴 수 있었던 건 독자 여러분 덕분이기도 하고요. 제가 제 글 실력에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매일매일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언제나 독자 여러분께서 제 글을 읽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 전체를 통틀어 글을 쓴 기간만 뽑아내라고 하면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제가 살아가면서 가장 살만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겠죠.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에어프라이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응원 덕분에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부분은 처음에는 2부 정도로 구상되었던 부분입니다. 실비아가 사라지고, 기억을 가진 인물은 클레어 하나 뿐이고, 그 상황에서 실비아가 남긴 단서를 바탕으로 다시 일을 해결하는… 식으로 소설 구상 초기에 구상을 했다가, ‘주인공이 없는 2부가 무슨 소용이지?’하는 생각과 ‘그러면 너무 늘어지고 재미없어지지 않나?’하는 생각에 대폭 줄인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그러니 사실 시즌2는 없다…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후에 이어질 외전은 구상중인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몇 화 정도로 끝나기보다는 여러분이 원하는 상황을 조금 더 마음놓고 읽기 좋게 뽑아낼 생각입니다. 외전의 내용은 본편 중간에 있었던 사건일수도 있고, 지금 이 시열대에 있었던 사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후일담일수도 있습니다. 그때도 독자 여러분께서 즐겁게 읽으실 수 있도록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

    진희재또졌어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쿨도네 감사드립니다! 생각해보면 노벨피아 웹소설은 스트리밍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도 같아요. 물론 저는 방송을 해본 적이 없어서 직접적인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 조회수를 얻듯 수익이 나고, 이런 식으로 별도로 후원까지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제게 있어서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한 분 한 분은 모두 소중한 분들입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돈 때문은 아니지만, 그래도 돈이 들어오는 이상 더 많이 들어오면 저도 즐거우니까요. 무엇보다 연중성녀를 쓰던 때보다 심적으로 안정되어서 글쓰는게 조금은 편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받은만큼 만족시켜드릴 수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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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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