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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0

     

     

    예르나가 집에 도착하기 몇 초 전.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나에게 생각이 있다, 파이리스.”

    “뭔데?”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어.”

    “응?”

     

    지금 당장 예르나가 언제 저 문을 열고 들어올 지 모르는 상황이다.

    가만히 앉아서 찬찬히 계획을 설명할 시간 따위는 없다.

    애초에, 계획을 짤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고.

     

    루크는 곧장 파이리스의 이마에 손가락을 올린 채 입을 열었다.

     

    “슬립.”

    “흐에에…….”

     

    파이리스는 그 즉시 잠에 빠지듯 눈을 감으며 쓰러졌다.

     

    아무리 특별하다곤 하지만 파이리스도 역시 마법에 쉽게 영향을 받는 정령.

    게다가 피로를 느낄 수 있는 몸까지 지니고 있었으니 그 효과는 확실했다.

    어째서 파이리스를 재우기 시작했느냐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야, 마력을 과도하게 써서 시스템이 마력을 차단한 마력고갈이라는 변명보다는 파이리스가 자고 있어서 불을 켜지 않았다는 설명이 더욱 심각성이 적으니.

     

    루크는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나마 마력고갈이 도움이 되는 점이 한 가지 정도는 있었다.

    적어도, 어둠이 이 어질러진 난장판을 가려주기는 하는 것이다.

     

    ‘좋아, 이제 예르나를 집 밖에 내보낼 핑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찌하면 좋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던 루크는 이내 답을 찾았다.

    “……그래, 사과파이가 좋겠군.”

     

    루크는 현재 집에 사과나 시나몬 같은 재료가 전혀 없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을 핑계로 예르나를 잠시 내보낸 뒤에, 깔끔하게 싹 치워놓으면 만사 해결이다.

    계획이 너무 급조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었다.

     

    예르나가 조금만 더 늦게 왔더라면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

     

    ……그러니까, 처음부터 자신이 예르나와 함께 나가게 되는 것을 염두한 계획이 아니었단 말이다.

     

     

    ——–

     

     

    -휘익-!

     

    루크의 휘파람소리에 파이리스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하으음……. 언……니?”

     

    잠이 덜 깼는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 파이리스.

    이내, 루크의 휘파람소리를 듣고 그 속에 담긴 정령어를 읽기 시작했다.

     

    -파이, 얼른 일어나!

     

    “끝났어?”

     

    파이리스는 잠시 상황의 판단을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깔끔해진 집안은 커녕, 언니의 모습도 보이질 않는다.

     

    “언니, 어디갔어?”

     

    조금 당황한 파이리스는 이내, 정령으로 변해 루크의 다급한 휘파람 소리를 향해 날아갔다.

     

    이제보니, 루크는 청소는 하지 않고 예르나와 함께 밖으로 걸어가고 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파이리스가 첫번째로 느낀 것은 바로 배신감이었다.

     

    -언니, 지금 나 버리고 도망치는거지!? 나만 혼내키려고!

     

    푸른 구체 모습의 정령의 형상으로 루크의 곁에서 표독스럽게 쏘아붙이는 파이.

    루크는 그런 파이를 달래며 말했다.

     

    -그럴리가 있나, 계획이 조금 틀어진 것 뿐이야.

    -진짜야-? 나한테 다 뒤집어 씌우려고 도망 치는 거 아니지?

     

    정령어에 의심이 한가득 묻어나온다.

    그 말에 루크는 조금 억울한 측면이 없잖아 있었다.

     

    -애초에 그대가 한 일이 아닌가? 내가 뒤집어 씌우다니, 뭘? 그리고, 내가 네게 뒤집어 씌울 생각이었다면 내가 널 굳이 휘파람으로 깨웠겠느냐?

    -……그, 그렇긴 하지마안…….

     

    루크의 말에 할 말이 없어졌는지, 풀이 죽은 듯 낮게 울며 휘청휘청 나는 파이.

    그것은 꽤나 안쓰러워 보이는 형상이라서, 루크는 파이를 조금 달래듯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파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도 있기는 하다.

     

    따지자면, 말 없이 아티팩트인 리브를 곰인형에 이식해 사단을 낸 것이 자신이다.

    그 때는 리브가 너무 반가웠고, 파이가 가진 아티팩트에 대한 거부감이 그 정도로 심한 것인 지는 몰랐으니까.

    어쩌면 이식하기 전에 파이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 주었어야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겐 두번째 계획도 있으니까.

    -저, 정말로?

     

    파이는 마치 구원이라도 내려진 것처럼 들뜬 소리를 내었다.

    그에 루크는 찬찬히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그대는 마력을 모아서 집안의 마력을 복구하는 것을 우선하거라. 그리고 그 다음엔…….

    -응, 응 그 다음엔?

     

    루크는 잠시 파이의 모습을 말 없이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이 녀석에게 청소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

     

    애초에 정령적인 인식범위를 가진 파이는 어떤 물건이 그 물건의 자리인지도 잘 모르는 녀석이다.

    그나마 인간에 적응한 지금이야 어느정도 ‘어질러진 상태, 조화롭지 못한 상태’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모양이기는 하다만, 녀석의 정리정돈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 녀석에게 청소를 맡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

     

    그 때문에 예르나를 보낸 뒤에 루크 자신이 직접 청소를 할 생각이었던 것인데…….

     

    ‘이렇게 함께 나와버리게 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지.’

     

    자신의 외출금지를 이용해 볼 생각이었는데, 예르나가 가진 체벌에 대한 인식이 너무 고무줄이었다.

    당초에 ‘주말동안 외출금지’라고 말을 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외출을 금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앞에서 자신이 조금 아이답게 행동했다고 그 벌을 경감시켜버리다니…….

     

    ‘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또 아니로군…….’

    원래라면 좋았을 것이, 지금은 악수로 작용했다.

     

     

    게다가, 당시엔 전화라는 변수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말이다.

    하긴, 전화라는 실시간 매체가 있는데 누가 상대방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쪽지 같은 걸 주고 받겠는가?

    심부름도 전화로 요청하면 너무나 간편한데.

    물론 자신에게 시간이 더 있었다면 당연히 그리 했을 텐데 말이다.

     

    ‘뭐, 그래도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자신이 청소한다는 계획이 어긋난 지금, 자신은 비록 이렇게 시간을 끄는 정도밖에 할 수 없지만 루크에겐 아직 한가지 희망이 남아 있었다.

    바로, ‘리브’의 존재.

     

    그 난장판이 있기 전, 리브의 마력핵을 곰인형에 이식하는 과정에서 루크는 한가지 추가된 논리회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가사도움’기능.

     

    자신이 만들 때는 딱히 가사도우미를 염두로 두고 만들지 않았기에 이게 대체 뭔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린 그 기능이었다.

    어쩌면, 그 아공간에서 가사도우미가 필요했던 레니에가 추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지금은 그것에 희망을 걸 때다.

     

    -리브를 깨우거라. 마력핵에 마나를 원을 그리듯 주입하면 기동할게다.

    -왜?

     

    파이는 자신이 루크의 정령어를 잘 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조그만 곰돌이 인형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박살내는 건 자신보다도 그 곰돌이 인형이 더 잘했으니까.

     

    -그 아이는 어느정도 청소도 할 수 있을거다. 가사기능이 탑재되어 있었으니까. 아, 이번엔 절대 서로 싸우지 말거라. 알겠느냐?

    -으응…….

     

    파이는 중얼거리듯 자신없는 대답을 했다.

    그에 루크는 힘을 불어넣어줄 필요성을 느껴 다독이는 어투로 말했다.

     

    -파이, 그대가 내 동생이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알겠어. 나한테 맡겨!

     

    과연, 파이는 ‘동생’이라는 말에 크게 기뻐하며 숲의 방향으로 쪼르르 날아갔다.

     

    -아 참, 마나를 너무 많이 챙기지는 말거라! 엄지 크기의 결정 한 두개 정도의 양이면 돼!

    -응!

     

    그렇게 사라지는 파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루크는, 곧 예르나의 흐뭇한 표정을 마주하고는 조금 얼어붙었다.

     

    “저, 절 왜 그렇게 보세요?”

    “아니. 아까부터 휘파람소리가 즐거워 보이길래. 외출이 그렇게 좋아?”

    “아……. 하하하. 네, 정말 좋네요.”

     

    루크는 허탈하게 웃었다.

    다행히 파이와 몰래 정령어로 대화를 나눈 것이 들킨 건 아닌 모양이다.

     

    ——-

     

    결국 루크의 역할은 이것이다.

    시간을 끌어야 한다.

    파이가 마력을 조달하고, 리브가 집안의 사태를 정리할 때 까지.

     

    그러기 위해선 일단 평소와는 전혀 다른 루트의 쇼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크는 일부러 평소엔 잘 가지 않던 과일가게로 갔다.

    주인장이 아이에게도 깐깐해서 흥정이 잘 통하지 않는 데다가, 다른 가게보다 조금 더 멀어서 평소엔 잘 가지 않던 가게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상당히 괜찮은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일단 가게의 거리만큼 시간을 끌 수 있는 데다가, 흥정을 하면서 이중으로 시간을 끌 수 있을 테니까.

     

    “여기야? 네가 가야 한다던 과일가게가.”

    “네, 여기가 품질이 제일 좋거든요.”

     

    품질이 좋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로 품질은 어떤 가게보다 좋으나, 마법재료도 아니고 한끼 식사일 뿐인데 더 비싸고 오래 걸리는 비효율적인 루트로 굳이 쇼핑을 하지 않을 뿐이었으니까.

     

    “와, 정말 사과가 다 맛있어 보이네.”

     

    예르나도 사과를 하나씩 집어보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실제로 겉이 매끈하고 알차보이는 것이, 그냥 먹더라도 굉장히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루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맛 좋은 사과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끌기.

    루크는 이상해보이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천천히 고를 생각이었다.

     

    그렇게 루크가 최대한 사과를 꼼꼼히 살피며 바라보고 있을 때, 가게의 주인이 다가왔다.

     

    “어서오시요. 어이고, 이게 누구야, 너 루크 이루시 아니냐.”

     

    어깨에 숄을 두른 채 지팡이를 짚으며 다가오는 노파.

    그에 루크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그래, 나도 반갑군.”

    “사과를 보러 온 게야?”

    “그렇다만……. 오늘은 꽤 빠르게 맞이해주는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평소엔 이렇게 살갑게 다가오지도 않던 노인이었는데?

    오늘은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먼저 말을 건단 말인가.

     

    루크는 잠시 후, 노파의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나이를 먹으면 쪼끄만 녀석이 가게에서 알짱거리는 건 잘 안 보이거든. 오늘은 엄마랑 같이 온 게냐?”

     

    아, 노안이라서 키가 작은 자신은 잘 안 보였다는 모양이다.

    루크의 경우엔 마력시라는 마안을 지니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과는 노안이 오는 방식이 달랐던 데다가, 마법사들은 신체에 특별한 부작용이 없는 한 눈이 나빠지지도 않아서 생각하지도 못한 경우였다.

    그 옛날은 애초에 눈이 나빠진 노인은 오래 살아남을 수 없기도 했고.

    때문에 루크는 노안이 보편적인 노인질병이 되어버린 현대에서 그 경우에 대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루크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왠지모르게 예르나는 기분이 상당히 좋아진 것 같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루크가 다시 사과를 선별하는 작업에 착수하자, 그 모습을 보던 노파가 큭큭 웃으며 말했다.

     

    “사과를 보러 온 게라면, 여기에 있는 이것들이 제일 맛있단다. 이 쪽에서 보려무나.”

    “치, 친절에 감사하지.”

     

    루크가 마지못해 자리를 옮겨 사과를 고르고 있자, 이제는 아예 ‘이 사과가 제일 나을 것 같구나, 끌끌.’하며 아주 건네주기까지 한다.

    그에 루크는 겉으로는 감사하면서도 속으로는 난처해야 했다.

    오늘따라 이 노파, 너무 친절했다.

     

    그렇게 예상보다 훨씬 빨리 사과를 고르고 만 루크는 한숨을 쉬며, 아쉬운대로 흥정에서 시간을 끌어야 겠다고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가격은…….”

    “오늘은 특별히, 평소보다 싸게 해주마. 개당 500길 어떠냐?”

     

    노파의 말에 루크는 곧장 대답하려했다.

     

    “500길은 너무 비ㅆ……. 어, 잠깐……. 뭐라고?”

     

    싸다.

    여기서 더 이상 흥정을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싸다.

    이 품질의 사과를 그 가격으로 팔면 마진은 남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오늘 이 노파가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뭐지?

    루크는 의문을 담아 노파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파는 그 특유의 끌끌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보아하니, 요리하다가 급하게 나온 모양인데. 얼른 가져가서 엄마랑 맛있는 요리해 먹거라.”

    “뭐, 뭐라고?”

    “어머나, 감사합니다! 그렇게 신경 써 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과연, 다른 사람에겐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던건가……!

     

    루크는 그제서야 이마를 탁, 쳤다.

    이거, 아무래도 생각을 잘못 한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유없는 호의가 루크를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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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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