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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0

        

         

       엘라의 손에서 떠난 오목눈이는 허공을 가르며 아나스타시아에게 날아갔다. 오목눈이는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아나스타시아의 가슴에 폭 하고 부딪치며 그대로 그녀의 품에 안겼다.

         

       뺙!

         

       아나스타시아의 가슴이 쿠션이 되어준 덕에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엘라가 자신을 집어던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충격이었는지 성난 날갯짓을 하며 엘라를 향해 항의의 표시를 보였다.

         

       퍼덕거리는 날갯짓.

       더 격렬하고 화려하게 바뀌는 RGB 색상.

         

       깜찍하면서도 위협적인 몸짓이었다.

         

       엘라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오목눈이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 이리 올래요?”

         

       짹.

         

       오목눈이는 용서해주겠다는 듯 끄덕이고는 짧은 날개를 퍼덕이며 엘라에게 날아갔다. 그리곤 앞으로 처신 잘하라는 듯 날개로 엘라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더니 그녀의 품 안에 쏙 들어왔다.

         

       “어, 어….”

         

       엘라는 자신의 품 안에 들어온 오목눈이를 꼭 껴안았다.

       마치 커다란 인형을 껴안듯이 말이다.

         

       오목눈이는 그 자세가 마음에 든 모양인지 힘을 쭉 뺐고, 한여름의 찰떡처럼 녹아내리듯 축 늘어졌다.

       짤막한 다리는 편하게 아래에 쭉 뻗었고, 천천히 몸에서 피어나오는 빛의 세기를 줄였다. 마치 절전모드에 들어간 게이밍 마우스처럼 말이다.

         

       그런데…. 게이밍 오목눈이가 편안해진 만큼 엘라는 곤란해졌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게이밍 오목눈이를 끌어안느라 두 팔이 봉인된 것이다.

         

       물론 무게가 무겁지는 않아서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꿈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 오목눈이가 이렇게 가벼운 것인지는 몰라도 정말 풍선을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가벼운 무게였다.

         

       아까 무릎에 올라가 있을 때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무게였다.

         

       하지만 가볍다고 해서 무한정 껴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꿈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두 팔이 봉인된 상태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동생. 걱정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방금 봤잖아요?”

         

       그런 엘라의 불안감을 눈치챈 것일까?

       아나스타시아는 배시시 웃으며 ‘RGB 브레스’라는 괴악하기 짝이 없는 이름의 공격이 지나간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빛이 조금이라도 스친 부분은 삭제가 되어 있었고, 그녀들을 향해서 뛰어오던 사람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이 브레스는 단순히 건물이나 시설만 삭제한 것이 아니라, 아예 공간까지 찢고 부수기라도 한 듯 곳곳에 유리창 같은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현실에서야 큰 힘을 발휘할 순 없겠지만 꿈에서는 어마어마한 힘을 보일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꿈이니까요!”

         

       아나스타시아는 엘라가 품에 안고 있는 오목눈이의 대단함을 늘어놓았다.

       꿈의 세계에서라면 ‘우주를 떠돌아다니며 행성을 갉아먹는 거대한 햄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한 어지간한 것은 다 쫓아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잠깐만요. 현실?”

         

       엘라는 그런 아나스타시아의 설명을 듣다가 신경에 거슬리는 단어를 알아챘다.

         

       “현실에도, 있나요?”

       “넹.”

         

       그녀는 당당하게 질문에 답해주었다.

         

       “아마 꿈에서 깨면 바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나스타시아는 그렇게 말했다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말을 취소했다.

         

       “아 그렇진 않겠네요! 지금 엘라는 엎어져 자고 있고, 우리는 엘라의 등을 베고 누워있으니까요.”

         

       그녀는 담담하게 엘라가 부엉이 인간으로 진화하지 않는 한은 잠에서 깨자마자 자신들을 바로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뭐라고요…. 지금….”

         

       하지만 그 담담한 말을 듣는 엘라는 속이 뒤집힐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사람들이 진짜!”

         

       엘라는 그저 방에서 위치크래프트를 연습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아린과 이세린이 쳐들어오더니 방을 점령하고 깽판을 부렸고, 나가라고 정당한 항의를 했더니 다짜고짜 제압했고, 연습을 너무 많이 한다는 설교와 함께 수혈을 짚어서 잠에 빠져들게 만들기까지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억울한데….

         

       이제는 저 사고뭉치가 방으로 들어와서 자기 몸을 베개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남의 꿈에까지 들어와서 이 난리를….

         

       “나가요! 나가! 내 꿈에서 나가! 혼자 있고 싶으니까 나가요!”

       “어? 동생? 화났어요?”

         

       아나스타시아는 엘라가 버럭 화를 내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당황도 잠시.

         

       그녀는 엘라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움직였다.

         

       엘라의 뒤편으로 빠르게 이동해 그녀를 껴안은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녀의 어깨에 자기 턱을 올리곤 배시시 웃으며 속삭였다.

         

       “화내지 말아요~ 언니가 이렇게 부탁할게요.”

         

       엘라는 아나스타시아의 애교에 한숨을 쉬었다.

       화가 풀려서 나온 한숨이 아니라, 체념에 가까운 감정이 담긴 한숨이었다.

         

       “알았어요. 한두 번도 아니고…. 의도가 나쁜 것도 아니고….”

       “으음~”

         

       아나스타시아는 그런 엘라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불만족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랬다가 뭔가가 떠오른 모양인지 작게 탄성을 내고는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곤 그녀의 팔 사이에 손을 쑥 집어넣어서 강제로 팔짱을 끼고는 그녀를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저번처럼 좋은 구경시켜줄게요!”

         

       아나스타시아는 엘라를 이끌고 게이밍 오목눈이 때문에 깨져버린 공간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곤 가장 금이 많이 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더니 노크하듯 손등으로 톡톡 두들겼다.

         

       파직.

         

       아나스타시아의 손길이 닿자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공간에서 파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금이 간 채 간신히 모양을 유지하고 있던 곳에서는 새까만 빛이 흘러나왔고, 그 빛은 이리저리 퍼져나가며 파괴된 도시를 장악하려는 듯 꿈틀대며 움직였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 같은 빛은 금이 간 곳을 넘어갈 수 없었고, 그저 공간 일부에서 머무르기만 한 채 그 자리에 기분 나쁜 빛을 내며 넘실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건 뭐죠…?”

         

       엘라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꺼림칙하게 만드는 그 빛의 정체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렇기에 꿈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아나스타시아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아나스타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음, 동생? 마법의 단어가 빠졌어요.”

         

       올바른 질문을 하지 않았으니 답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떠한 단어’를 기대하고 있었고, 얼른 말하라며 재촉하는 것처럼 배시시 웃고 있었다.

         

       “언니, 이건 뭐죠…?”

       “그거예요! 잘했어요!”

         

       아나스타시아는 언니라는 단어를 듣고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었다.

         

       “이건 말이에요. 일종의 경계랍니다.”

       “경계요?”

       “음, 그래요. 말하자면…. 국경? 담장? 그런 느낌?”

         

       그녀는 금을 가리켜 꿈과 꿈, 사람과 사람의 정신을 분리하는 장벽이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금이 간 것은 그 국경에 문제가 생긴 거랍니다.”

       “문제….”

       “그러면 여기서 퀴즈. 국경에 문제가 생기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이 몰래 들어오거나 나갈 수 있겠죠…?”

       “정답이에요~”

         

       벽에 구멍이 생기면 그것은 둘을 잇는 통로가 된다.

       자그마한 구멍이라면 반대편을 엿볼 수 있는 구멍이 될 것이고, 그 크기가 적당하다면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구멍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크기가 크다면….

       그것은 구멍이 아니라 문이나 길이 되리라.

         

       “이 금은 다른 곳과 연결된 통로랍니다. 뭐, 본래라면 동생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 ‘벽’을 이렇게 만들 수는 없었겠지만!”

         

       아나스타시아는 엘라가 끌어안고 있는 게이밍 오목눈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파괴적이고 흉포한 새 덕분에 이게 가능하게 되었죠!”

       “잠깐만요. 그럼 벽이 무너졌다? 제 꿈의 세계의 벽이 무너졌다 이 말인가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만 이런 거고, 다음에 다시 잘 때에는 아무 문제도 없을 테니까요. 꿈이라는 게 그렇게 허술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이런 게 원래는 안되는 건데, 정말 아주 우연히 일어난 일인 것 같아요. 확률로 따지자면…. 어지간한 복권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아나스타시아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배시시 웃었다.

         

       “그러니 동생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저와 같이 이 기회를 즐겨보도록 해요. 재미있겠죠?”

       “남의 꿈….”

       “아, 남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 동생이랑 연결된 꿈은 그런 사생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꿈인 것 같으니까요!”

         

       아나스타시아는 넘실거리는 검은 빛을 가리켰다.

         

       “이건 악몽이랍니다.”

       “악몽…?”

       “색이 새까만데다가 공격적인 걸 보니 보통 악몽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위험한 것 아닌가요?”

       “동생, 뭘 걱정하고 있는 건가요! 지금 동생은 무려 오목눈이를 가지고 있다고요! 그것도 RGB 조명처럼 빛나는 오목눈이를!”

         

       그녀는 엘라의 걱정이 쓸데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품에 안고 있는 오목눈이만 있으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악몽이고 뭐고 그냥 공포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악몽에서 뭐가 튀어나오든 브레스를 뿜어내서 모조리 지워버릴 것이라고!

         

       “그, 그래요…? 하지만….”

       “어허, 지금 언니의 말을 못 믿겠다는 건가요! 언니 명령이에요. 같이 구경하세요!”

         

       하지만 그러고도 설득이 잘되지 않자 아나스타시아는 권력을 사용했다.

       ‘언니’라는 권위 있는 호칭에서 오는 무한한 권력을!

         

       엘라는 어쩔 수 없이 그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같이 보도록 하죠!”

         

       아나스타시아는 엘라가 수긍하자 즉시 행동했다.

       이상하게 생긴 생명체를 부려서 폭신한 의자와 팝콘을 가져오게 했으며, 엘라의 품에 안겨있는 오목눈이에게 명령해서 자그마한 규모의 브레스를 내뿜게 만들어서 새까만 빛을 몰아내었다.

         

       파지지직.

         

       새까만 빛은 찬란하게 빛나는 브레스에 의해 증발하듯 사라져버렸고, 아나스타시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페인트 붓 같은 것을 꺼내서 그 자리에 무언가를 칠했다. 그러자 뻥 뚫려버린 구멍은 유리가 들어선 것처럼 투명한 질감의 무언가가 채워졌으며, 구멍 밖의 풍경을 영사기처럼 비춰주었다.

         

       구멍에서 비치는 풍경은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듯 처음에는 아주 흐릿했다.

       하지만 점점 초점이 맞춰지는 것처럼 해상도가 올라갔고, 나중에는 고화질의 영화처럼 또렷하게 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

         

       다른 사람의 꿈.

       다른 사람의 악몽.

         

       그 악몽은, 언젠가 엘라가 보았던 폐병원과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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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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