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60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김새가 묘하게 익숙한데…….

       

        = 어허! 거대한 거북아! 감히 용을 보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느냐!

       

        = …….

       

        용? ‘용(龍)’이라…….

        잠시 ‘용’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잊혀졌던 먼 과거의 기억 중, ‘용’이라는 생물에 대한 전설이 떠올랐다.

       

        ‘그렇군. 이 차원에는 그 용이 실존하는 것인가?’

       

        그런 차원이라면, 그런 것이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 우천군이라고 했느냐?

       

        = 네 이놈! 감히 용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 …….

       

        대화를 좀 해 보려 했더니, 대화가 되지 않는다.

        상대의 자아가 너무 강한 탓이었다.

       

        자기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좋은 것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아낄 줄 앎은 곧, 생물의 가장 기본적 본능인 ‘생존 본능’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아가 강한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지성체라면, 그리고 사회적 동물이라면 문제가 된다.

        그들은 다른 동족이나 무리 구성원과 교류를 하고, 때로는 양보도 해야 한다.

        그런데 자아가 너무 강하면,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기에 교류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저 우천군이라는 이름의 용은…….

       

        ‘그런데 용이 사회적 동물인가?’

       

        ……생각해 보니 용이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면 딱히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말했다.

       

        = 내 이름은 멸천룡 그랑 라그나. 잠시 이 차원에…….

       

        = 네 이놈! 거북이 주제에 감히 용의 이름을 사칭하다니! 네가 치도곤을 받아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 …….

       

        역시 대화가 되지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상대가 내 말을 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대화하기를 그만두었다. 어차피 쓸데없는 수고가 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신…….

       

        펄럭!

       

        우우우우웅!!

       

        = 으응?!

       

        나는 날개를 펼치고, 강척력 엔진을 작동해 하늘로 떠올랐다.

        그리고 미사일 발사관을 전부 열고, 녀석에게 선고했다.

       

        = 이 영역은 이제부터 내가 갖겠다.

       

        = 뭐, 뭐라?!

       

        쿠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나는 바로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            *            *

       

       

        – 아닠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

        – ㅋㅋㅋㅋ

        – ㅋㅋㅋ

        – ㅋㅋㅋㅋㅋ

        – ㅋㅋ

       

        채팅창에 ‘ㅋㅋㅋ’가 계속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채팅창을 구경하고 있으니, 옆에서 벨제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어머니십니다. 좋아 보이는 영역이 있다면, 빼앗으면 그만이죠.”

       

        “그렇지.”

       

        나는 어지간하면 분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분쟁을 피하지도 않는다.

        나에게 큰 피해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 안에서는 분쟁을 피하지만 나에게 큰 손해가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설 때는 분쟁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 힘이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으냐?”

       

        – ㄹㅇㅋㅋ

        – 맞는 말임

        – 힘이 있으면 써야죠. 

        – ㄹㅇㅋㅋ

        – ㅋㅋㅋㅋㅋㅋ

        – 육체가 강건하면, 머리가 편하다!

        – 싸가지는 바로 실력행사!

        – ㅋㅋㅋㅋㅋㅋㅋ

        – 레알 진짜 웃기넼ㅋㅋㅋㅋ

       

        시청자들이 내 말에 동의했다.

       

        물론 그중에선 다른 의견을 내는 이들도 있었다.

        대체로…….

       

        – 그런데 어디서 들었는데,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하던데요?

       

        “큰 책임?”

       

        묘하게 익숙한 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들어 본 소리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분명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단다.”

       

        예를 들어 보자.

        작은 설치류는 작은 곤충이나 식물이 씨앗, 열매를 먹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작은 설치류가 한평생 먹어 치우는 양은 평균적으로 내 주먹 두 개 정도의 분량일 것이다.

       

        – 주먹 두 개?

        – ???

        – 두?개

        – 읭?

       

        “음? 아! 내 아바타의 주먹 말고, 내 본체 말이다.”

       

        – ㅋㅋㅋㅋㅋ

        – 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그런데 설치류가 한평생 먹는 양이 그 정도였나? 더 되지 않나?

        – ㅋㅋㅋㅋㅋㅋㅋ

        – 그럼 인정ㅋㅋㅋㅋ

        – ㅋㅋㅋ

        – ㅋㅋㅋㅋ

       

        어쨌든, 설치류 한 마리가 먹어 치우는 양은 그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설치류가 아닌, 대형 포유류라면?

        그것도 크기가 큰 생물 말이다.

       

        “그…… 코끼리라는 동물이었던가?”

       

        – 아.

        – 어마어마하게 먹어 치우긴 함.

        – ㄹㅇ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 뻘하게 웃기넼ㅋㅋㅋ

       

        시청자들의 말대로, 코끼리가 한평생 먹어 치우는 양은 설치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코끼리는 설치류보다 평균적으로 수명이 더 길고, 몸집도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코끼리와 생쥐를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생태계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겠느냐? 종이 아니라 개체로 판단했을 때 말이다.”

       

        – 종이라면 모르겠는데, 개체라면 코끼리일 듯?

        – 코끼리요.

        – 코끼리죠.

        – 코끼리 아조씨!

       

        “그렇지.”

       

        내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에 일부 동의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큰 힘을 가진 이들의 행동에는, 좀 더 큰 영향력이 담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 아직 이해가 안 됨.

        – 설명이 더 필요해요.

       

        “좀 전의 비유를 이어가 보자면…… 한정된 공간에서 코끼리가 먹이를 먹어 치운다고 생각해 보자꾸나. 당연히 생쥐가 먹이를 다 먹어 치우는 시간보다, 코끼리가 먹이를 다 먹어 치우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짧겠지?”

       

        – 아하!

        – 아!

        – 오호라!

        – 이해됬음!

       

        즉,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에서 뜻하는 ‘책임’이란…….

       

        “큰 힘을 휘두름으로써 감당해야 하는 대가를 감당할 수 있냐는 뜻이란다.”

       

        – 와.

        – 이게 이렇게 해석되네.

        – ㅋㅋㅋㅋ

        – 이게 원래는 영화에서 나온 대사 아니었나?

        – ㄹㅇㅋㅋ

        – ㅋㅋㅋㅋㅋㅋ

        – 거기서는 히어로 각성시키는 대사였는뎈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 드래곤은 역시 사고방식잌ㅋㅋㅋ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무리 동물이 아닌 내 해석이고, 무리를 이루는 너희들에겐 ‘책임’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조금 다를 수 있겠지.”

       

        그렇게 나는 설명을 끝냈다.

        그러곤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했었지?”

       

        “그 우천군인가 뭔가 하는 놈의 영역을 빼앗았다는 부분입니다.”

       

        “아! 그랬지.”

       

        그 이후로…….

       

       

        *            *            *

       

       

        나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은 물안개가 되어 주변을 촉촉하게 적셨고, 물은 맑고 깨끗했다.

        그 주위에는 수풀이 우거졌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건조하고 따뜻한 동굴도 존재했다.

       

        = 좋군.

       

        이제 동굴 안쪽에 마그마만 끌어올리면 딱 내 취향의 둥지가 완성되겠군.

       

        나는 만족스럽게 내 영역이 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 그럼 이제 너를 어떻게 할까…….

       

        = 켁켁켁!

       

        우천군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털과 비늘은 깨지고 타버렸고, 드러난 맨살에선 포자가 감염된 듯 피부가 울긋불긋했다.

        한쪽 앞발은 잘려 나갔고, 꼬리 끝은 갈라졌으며, 온몸을 차곡차곡 접힌 채 미스릴에 의해 고정되었다.

       

        = 네 이놈! 감히 용을 공격하다니! 하늘이 두렵지 않은 것이냐?

       

        = 하늘? 하하하! 우스운 말이로구나.

       

        하늘을 멸하는 용인 나, ‘멸천룡(滅天龍)’에게 하늘을 말하다니.

        심지어 신조차 죽였던 나에게?

       

        나는 얼굴을 내려 우천군이라는 녀석에게 코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냄새를 맡았다.

       

        킁킁킁!

       

        = 무, 뭣?! 이게 뭐 하는 짓이냐?

       

        = ……따로 독은 없는 모양이군.

       

        독이 존재하는 생물은, 체취에서 특유의 냄새가 흘러나온다.

        생김새가 ‘뱀’이라는 독을 가진 동물과 유사해서 냄새를 맡아봤는데, 다행히 따로 독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러면 수고를 덜었군.

       

        = 오늘의 먹이는 이걸로 해결하면 되겠군.

       

        = ……자, 잠깐?! 네놈 설마?! 나, 나를?! 머, 먹을?!

       

        우천군이 뭐라고 떠들기 시작했으나, 나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영역 다툼을 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나에게 우천군이란 용은 그저 ‘나에게 영역을 빼앗긴 패배자’이자, ‘나의 먹이’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잡아먹을 놈과 대화할 이유가 있나?

       

        나는 녀석을 물고 내 둥지가 될 동굴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끼에에에에엑!! 이건 말도 안 된다! 내가! 이 우천군이!

       

        = …….

       

        = 이거 놔라! 하늘이 두렵지 않으냐!

       

        = …….

       

        내 입에 물려 있는 녀석이 반항하기 시작한다.

        하긴…… 생존 본능은 생물에게 내재된 아주 기본적인 본능이다.

        왜냐하면 저 생존 본능이라는 것 자체가 ‘생명체’라는 존재를 이루는 아주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천군이라는 용이 반항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 시끄럽군.’

       

        먹이를 조금이라도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살려 뒀는데, 그냥 미리 죽여야 하나?

        그런 생각이 이어지는 사이에도 우천군의 비명은 이어졌다.

        하지만 그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 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내, 내가 이루어 주마!

       

        = …….

       

        = 금은보화냐? 인간이 되는 것이냐?! 영생이냐?!

       

        = ……?

       

        조금 황당한 이야기를 들어 버렸기에, 나는 눈동자를 굴려 녀석을 바라보았다.

        금은보화? 인간화? 영생?

        안타깝게도 전부 가지고 있는 나에게, 그걸 조건이라고 들이밀다니?

       

        콧방귀를 뀐 채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동굴 구석에 녀석을 내려놓았을 때, 녀석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 흐어어어어엉!! 죽기 싫어!

       

        = …….

       

        =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으허어어어엉!!

       

        = …….

       

        물론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처음부터 ‘대화’를 시도했다.

        즉, 나는 상대를 ‘지성체’로서 대하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나와의 대화를 거부했다.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고 해서 모두가 ‘지성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지성체란, ‘언어’를 사용해 ‘대화’를 할 줄 아는 존재들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상대가 나와의 대화를 거부한 시점에서, 나는 상대를 ‘지성체’로 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성체가 아니라면, 결국에는 짐승이지.’

       

        그리고 다른 종의 짐승 사이에서는 한 가지 법칙이 적용된다.

        약육강식이라는 법칙 말이다.

       

        =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우천군은 거기 있느냐?

       

        = 음?

       

        = 어?

       

        그 순간, 동굴 밖에서 다른 이의 언령이 들려왔다.

        언령의 방식이 우천군이라는 용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밖에 도착한 이도 ‘용’으로 추정되었다.

       

        = 헉?! 태산군! 여깁니다! 살려주세요!

       

        = 우천군?

       

        쿠구구구궁!

       

        살길을 찾은 듯, 우천군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그 소리에 반응하듯, 커다란 용이 동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 우천군! 밖에 무슨 난리인…….

       

        태산군이라는 이름을 가진 용이 나와 우천군을 바라본다.

        그의 눈동자가 우천군의 모습을 확인하고, 이어서 나를 확인한다.

        그리고 나를 본 녀석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었다.

       

        ‘호오? 눈썰미가 제법인데?’

       

        태산군이라는 용이 나를 본 순간, 무언가가 나의 본질을 읽어내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용금에 가로막혀 실패했으나,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그와 나 사이의 간극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 태산군! 나 좀 살려주시게! 이 천벌 받을 요괴가, 나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네!

       

        = …….

       

        = 태산군! 왜 가만히 있는가!

       

        = …….

       

        마치 천적을 만난 짐승과 같이, 태산군은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침묵했다.

        그러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뒤로 물러서더니, 이내 완전히 동굴 밖으로 나가 버렸다.

       

        = ……태산군?

       

        = ……미안하네 우천군.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 태산군의 기척이 빠르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멍한 얼굴로 동굴의 입구를 바라보는 우천군을 뒤로한 채, 나는 동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감히 내 영역에 침입하다니…….”

       

        먹이를 먹기 전에, 이 주변이 이제 내 영역임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용은 드래곤에겐 점심입니다.

    아니… 저녁이죠.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